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나이프 (살만 루슈디 지음, 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2024)
2022년 8월 12일, 셔터쿼에서 벌어진 27초간의 피습으로 살만 루슈디는 오른쪽 눈을 실명했다. 날카로운 칼이 그의 목, 얼굴, 오른쪽 눈을 강타했음에도 그는 이 상황을 증오가 아닌 예술로써 화답한다.
2부로 구성된 이 책은 1부에서 애인과 만났던 순간, 강연장으로 가는 길 그리고 그가 피습당한 순간을 교차재생하듯 보여준다.
2부에서는 그가 위기에서 벗어나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한 뒤, 그를 살해하려던 가해자 ‘A’와 상상 인터뷰를 진행한다. 이 대목을 읽는내내 음모론에 사로잡힌 자의 특징이 두드러진다. 진실을 거짓이라 치부하고 유튜브를 신처럼 추앙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에 모순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도 가해자 A처럼 나와 의견이 달라도 수긍하기보다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던가. 하지만 저자는 피습 이후 잃어버린 눈으로 세상을 선명하게 응시한다. 폭력을 거부한 그는 살아서 증언한다. ‘본질은 사랑이 증오에 응답하고 결국엔 이긴다(55쪽)‘는 것을 보여준 채.(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 오늘도 게임하는 화학자 (장홍제·강경태 지음, 필로소픽, 2025)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게임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게임은 참 많이 변해왔다. 장르가 세분화되고, 콘텐츠가 켜켜이 쌓이면서 게임 안에는 이전에는 없던 것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두 저자는 대학교 화학 교수이면서 동시에 게이머다. 게임 속에서 자신의 전공을 길어 올릴 만큼 게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게임을 많이 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건축 재료를 모아 집을 짓고, 독과 폭탄을 제조해 싸우고, 다양한 재료를 가공하거나 연금하는 장면들. 그 외에 흘깃 보고 넘겼거나, 이게 뭐지 싶다가 그냥 지나쳐 버린 것들. 손이 닿을 듯 닿지 않아 그냥 놔뒀던 그 가려운 부분들을 이 책은 짚어낸다.
화학 전공자가 아니라 저자의 설명을 전부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그동안 해온 게임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용히 바뀌어 있었다. 더 좋은 아이템, 더 빠른 클리어. 그 목적 너머로 각각의 게임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눈을 돌려보기로 했다.(김재훈 /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 예언자 (칼릴 지브란 지음, 유정란 옮김, 더스토리, 2025)
내가 편집자라면 이 책을 어느 분야에 넣을까? 철학, 시, 에세이, 종교. 어디에 속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면서, 그 분야에 가둬놓는 것 같은 이질감이 든다. '예언자'의 규정되지 않는 정체성은 책의 저자로부터 기인한다. 레바논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칼릴 지브란은 어린 시절 낙원과도 같은 풍요를 누렸다. 하지만 경제적 이유로 고향을 떠나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일생을 보내야 했다.
평생 타국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살던 저자가 그러했듯, 책의 내용도 ‘알무스타파’라는 현인이 오팔리즈에 머물며 그곳 시민들에게 지혜를 전하다, 드디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 마지막 답변을 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람들은 그에게 사랑, 결혼, 기쁨과 슬픔, 죄와 벌, 이성과 열정, 고통, 죽음이 무엇인지 묻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이자 이유, 우리를 끝없이 고민하도록 몰아넣는 것들이다. 그의 이야기는 미래를 점치는 예언이라기보다는, 500년쯤 산 구도자가 세계의 근원에 닿은 지혜를 전하는 것 같다. 이 근원은 특정 종교의 메시아가 아니다. 나의 내면, 자연과 이 모든 세계에 깃든 신성에 가깝다.
놀라운 것은 칼릴 지브란이 이 책을 고작 15살에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작품을 읽은 그의 어머니는 그의 나이를 고려해서였는지, 조금 더 숙성을 거친 후 출간하길 권했다. 그는 40세가 되던 해에 '예언자'를 세상에 내보냈고, 자신의 정수를 담은 책이었던 것인지, 얼마 후 타계한다. 결국 지브란 자신이 알무스타파가 아니었을까. 사는 동안 시간을 두고 다시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가르침을 줄 만한 책이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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