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6.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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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연대] 이솔림·황예린·김상화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주]

■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 (정보라, 최의택 지음, 요다, 2025)

이렇게 된 이상 포항으로 간다(정보라, 최의택 지음, 요다, 2025)

미스터리는 보통 작가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로 전개된다. 치밀한 설계 아래 심어둔 복선들이 결말에서 회수될 때의 쾌감이 이 장르의 매력이다. 그렇다면 작가조차 다음 장면을 알지 못하는 미스터리라면 어떨까. 그것이야말로 미스터리의 본질에 더 가까운 형식 아닐까. SF 소설가 정보라와 최의택이 그걸 해냈다.

‘국내 최초 릴레이 장편소설’이라는 타이틀을 단 이 작품은 두 작가가 한 챕터씩 번갈아 쓰는 방식으로 탄생했다. 작가들은 시추공 분양 사기로 돈을 잃은 두 인물이 서로를 의심한 채 포항으로 향한다는 큰 줄기만 공유한 채 차례로 서사를 이어나간다. 테헤란로에서 경부고속도로를 거쳐 호미곶에 이르는 이야기의 동선은 한국의 익숙한 도로와 지형들을 구체적으로 호명하며 생생한 로드무비의 외형을 갖춘다.

다음 장면을 작가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합작은 하나의 도박에 가깝다. 땅속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자원을 믿고 현재의 돈을 맡기는 시추공 사업이라는 소재 역시 이 소설의 창작 방식과 겹쳐 읽힌다. 이런 위험을 흔쾌히 감수한 작품이기에, 이 미스터리는 설계된 퍼즐을 맞춘다기보다 불확실성의 즐거움에 올라타는 시도로 읽힌다. 이런 합작이라면 언제든 환영이다.(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이솔림<br>
이솔림 

■ 적당히 잊으며 살아간다 (후지이 히데코 지음, 이미주 옮김, 쌤앤파커스, 2025)

적당히 잊으며 살아간다(후지이 히데코 지음, 이미주 옮김, 쌤앤파커스, 2025)

올해는 정말 잘 살아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힘이 바짝 들어가 벌써부터 스트레스 받고 있다면, 어깨에 들어간 힘부터 좀 풀고 시작해 보면 어떨까? 마음 아픈 일들, 창피한 일들은 어째서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지 않는다. 떨쳐내려고 할수록 점점 더 불편한 감정과 생각은 크기를 키워가기만 한다. 자꾸만 들러붙는 생각들을 물리칠 방법을 알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일본의 신경증 치료 전문 의사인 후지이 히데코는 간단히 방법을 알려준다. ‘적당히 잊으며 살 것’

이 책은 지나간 일에 연연하다가 쉽게 지쳐버리는 현대인들을 위한 94세의 할머니 의사인 후지이 히데코의 연륜을 담은 다정한 처방전이다. ‘적당히 잊으며 살아간다’는 제아무리 거센 파도가 쳐도 버텨야 한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을 떨쳐버리게 도와준다. 언제나 정답은 심플한 법. 일어난 일을 부정하지 않고 수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를 바탕으로 복잡한 속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잊어야 할 것들과, 삶이 더 가뿐해지는 해야 할 일 71가지를 처방해준다.

지난 일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당신에게 이 책은 스스로 가뿐히 헤엄쳐 나올 수 있게 손을 내민다. 뻣뻣하게 서서 견디다 부러지는 대신, 유연하게 삶이라는 파도를 타는 법을 알려준다. ‘적당히 잊으며 살아간다’와 함께라면 힘을 빼고 삶의 파도에 몸을 맡긴 채 자유롭게 내 길을 가는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황예린/출판마케터·문화비평가·비평연대)

황예린<br>
황예린 

무지의 즐거움(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2024)

무지의 즐거움(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2024)

언제나 ‘스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때 “너, 그 길 아니야!” 하고 일순간 나를 다그쳐 줄 어른. 사실 돌아보면 주변에 꽤 있었을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자각하기로 2025년엔 스승을 못 만나는구나 싶었는데, 비로소 만났다는 기분이다. 일본의 무도가이자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다.

‘무지의 즐거움’은 우치다 선생이 배움에 관하여 쓴, 이른바 ‘공부 이야기’ 책이다. 총 7가지 주제로 인간에게 배움이란 무엇인지를 깊고 넓게 파헤쳐 나간다. 배움의 결과물을 꾸준히 내기 위해 우치다 스스로 “반드시 지키는 (일상의) 원칙”부터 그가 “학자로서 지금까지 만들어 온 ‘학지’”란 무엇인지까지. 책 속엔 인간의 성숙을 도모하는 다종다양한 요소에 관한 우치다의 사유가 단단히 들어 차 있다. 교육과 정치, 종교와 무도 등 다방면의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에 살을 덧붙여 나가는 그만의 기개 넘치는 문장 또한 시종 책에서 눈을 못 떼게 만든다. 이 책이 그의 다른 책들과 달리 오직 한국인만을 위해 출간된 ‘오리지널 한국판’이라는 점은 뜻밖의 덤이다.

책에서 우치다가 가장 반복해 말하는 바는 ‘배움이란 연속적인 자기 쇄신’이라는 점이다. 그는 배움이 누군가와 우열을 가리며 얻어지는 게 아닌, “오직 어제까지와는 다른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라 이른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인간에겐 반드시 무구의 상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이미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귀착되지 않고, 끝없이 모르는 것을 향해 순진한 호기심을 내비치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배움의 시작과 끝이라는 말이겠다.

내 안에서 이제껏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는 새로운 사념이 떠오르는 순간, 즉 ‘배움이 일어나는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더듬거리면서” 말하게 된다고 우치다는 말한다. 그러니 언제든 지켜봐야겠다. 내 주변 누군가가 우물쭈물하며 전에 없던 이야기를 하려 할 때, 누군가 그의 말을 가로막으려 하지는 않는지. 그게 혹여 나는 아닐지. 우치다 다쓰루를 또 한 명의 스승으로 삼기로 한 만큼, 2026년에는 내 안의 호기심과 내 주변의 중얼거림에 더는 무심해지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김상화<br>
김상화 

 

김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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