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편집자주]
■ 네가 봄에 써야지 속으로 생각했던 (심보선, 아침달, 2025)
이 책은 여름이 돼서야 나왔고, 나는 겨울이 돼서야 시집을 다 읽었다. 시집은 나오자마자 샀지만, 바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해서 한 번에 쭉 읽지 못했다. 시인은 늘 그래왔듯 사적인 기억이 사회의 시간과 맞물리는 순간들을 조용히 포착한다.
내란의 시간을 통과해 온 흔적들도 시의 배경처럼 스며 있다. 분명 무거운 이야기도 있지만, 읽는 동안 무겁지 않았던 이유는 시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같은 개인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결국 "애썼다"*는 한마디에 가까워서일 것이다. 다만 위로라기보단 실제로 우린 좀 애썼으니까, 그리고 늘 애쓰고 있으니까 그렇게 쓰는 것 같았다.
*이 말이 오늘날 속된 위로와 다르게 전달될 수 있을지가 쓰면서도 의심스러웠다.(맹준혁 / 출판편집자·콘텐츠기획자)
■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문학동네, 2009)
새해의 독서 목표로 유명하지만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작가를 읽어보기로 했다. 첫 시작은 하루키다. 그동안 무성히 들어온 하루키적 삶, 하루키의 재즈, 하루키의 루틴, 하루키의 커피…. 표상화된 이미지가 아닌 글로 만난 하루키는, 내심 과평가되었다고 비죽대고 싶던 마음을 완전히 뒤엎었다. 개인과 시대가 적절한 레이어로 쌓여 엉킨 실타래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는 그가 거장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시대성을 찾기 어려울 만큼 세련된 도쿄의 현대인 덴고와 아오마메가, 버블의 풍요 속에 남아 있는 불안한 전후의 흔적과 사회운동, 컬트 종교, 환상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나가는 과정은 감탄이 나올 만큼 촘촘하다. 새해의 첫 번째 책으로도 추천하고 싶다. 괜히 부담을 안고 한 해를 거룩하게 시작해야 할 것 같거나, 멸망해가는 세계 앞에서 새해를 기뻐하는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면, 현대인보다 더 현대를 선행한 하루키의 인물들을 통해 예정된 공허와 보장된 불안을 통과해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이수련 / 비평연대)
■그릿 (앤절라 더크워스 지음, 김미정 옮김, 비즈니스북스, 2022)
‘새해 첫 책’은 마음을 몰아붙이기보다 방향을 정리해 주면 좋다. '그릿'은 성공의 비결을 재능이나 열정에서 찾지 않는다. 대신 오래 가는 태도를 말한다.
이 책이 말하는 ‘그릿’은 재능도, 순간의 열정도 아니다. 흔들리는 시간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다.
책에 소개된 워렌 버핏의 ‘우선순위 3단계 수립’이 특히 인상적이다. 중요한 직업 목표 25개를 정한 후 가장 중요한 목표 5개를 우선순위로 설정하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는 과감히 피하라는 워렌 버핏의 우선순위 3단계 수립에 저자는 한 단계를 더한다. 그 목표들이 하나의 공동 목표에 얼마나 기여하는가를 끝까지 점검하라는 것.
하고 싶은 일, 해야 할 일을 늘리는 대신, 같은 방향의 선택을 반복하는 힘. 새해를 시작하며 더 많은 계획보다 필요한 건 하나의 기준일 테다. 2026년, '그릿'은 조용하지만 분명한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김미향 / 출판평론가·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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