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에서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 여덟 단어(박웅현 지음, 북하우스, 2013)
인기 있는 책이나 영화는 괜스레 기피하는 지독한 ‘홍대병‘을 앓고 있다. 고전은 망설임 없이 집어 들지만, 베스트셀러는 괜히 심통이 나서인지 잘 안 읽게 되는 구석이 있다. 박웅현의 책들도 그랬다. '책은 도끼다'는 주위에서 하도 입 마르게 칭찬해서 읽었고, 분명 좋았지만, 굳이 다른 책들까지 찾아서 읽고 싶진 않았다. 편집자로서 박웅현 같은 저자를 항상 찾아 헤매면서 말이다.
'여덟 단어'는 분명 ‘주류’의 책이다. 하지만 이곳이 아닌 저곳, 중심보다는 변두리, 항상 외딴섬을 자처하는 사람도 가끔은 중심을 잡아줄 책이 필요하다. 꼬이고 꼬인 생각만 하다가 분명하게 기본기를 다잡는 시간이다. ‘그래, 이렇게 살아야지’ 한 번쯤 해봤던 생각들. 허투루 읽으면 다 아는 내용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런 말 누가 못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아는 생각‘을 체화하고 있는가다. 머리로만 알지 정말 그렇게 살아본 적이 있는가.
누군가 하는 일이 쉬워 보인다면 그 사람은 고수라는 말이 있다. 숙달될 대로 숙달되어 일을 자유자재로 해내기 때문일 거다. 박웅현의 책은 읽기 쉽다. 그가 고수라는 증거다. 쉽게 읽힌다고 얕은 것은 아니다. 2013년에 나온 책이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거슬림 없이 읽히는 것은 그 책이 삶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는 의미다.(서민서 / 출판편집자·비평연대)
■ 동네책방의 기쁨과 슬픔(배인영 지음, 오월의봄, 2025)
‘책 추천해 드릴까요? 시, 소설, 에세이 등 어떤 종류 좋아하세요?’
10평 남짓 1층 책방. 망원동과 합정동 사이에 위치한 ‘로우북스’ 의 사장인 저자는 손님이 올 때마다 이 멘트를 건네어 책으로 사람을 연결한다. 책이 팔리지 않아 고민이 넘쳐나는 시대, 이 책은 지속 가능한 노동을 위해 ‘두려움과 불안이 아닌 즐거움을 동력삼아(166쪽)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저자의 솔직한 기록집이다.
높은 성과와 매출에 집중하기보다 이 공간이 환대와 존엄이 담긴 서점이길 바라는 책방의 철학을 지키기 위해 음·미·체(음악 미술 체육의 줄임말) -사장님께선 걱정을 내려놓고자 탱고, 꽃꽂이, 요가나 킥복싱을 한다- 를 실천하고, 망원동 모아타운 재개발로 소중한 가치가 소수의 자본가 앞에 무너질 위기에 놓일 때 세입자와 동네 가게들(103p)과 연대를 하며 다정한 관심을 안에서 밖으로 표현한다.
'동네책방의 기쁨과 슬픔'은 에세이로 분류되지만, 나는 철학서(哲學書)처럼 읽었다. 철학은 상대의 관심 없이는 결코 행동으로 이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책방에 편견을 지닌 사람일지라도 어느샌가 손에 책이 들리기까지. 다정한 관심과 애정을 담아 건네는 저자의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 해에도 7천여 권이 그의 손을 떠난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로우북스는 철학이 단단한 책방이 아닐까.(최상현 / 출판평론가·비평연대)
■ 익숙한 건축의 이유(전보림 지음, 블랙피쉬, 2024)
건축학부에서 설계하며 늘 의문이 있었다. 왜 우리나라의 주택과 아파트는 거실을 중심으로 배치되고, 현관문은 복도 쪽으로 열리는가. 성수동을 조사하던 중 골목마다 빼곡한 불법 주차와 화려한 간판을 보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생각했지만, 그 이유를 깊이 들여다본 적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지난 시간 동안 품고 있던 질문들에 작은 해답을 준 책이었다. 작가는 ‘집’에서 ‘동네’, 그리고 ‘도시’로 시선을 넓혀가며 한국과 런던의 건축을 비교한다. 복잡한 이론 대신 생활의 풍경 속에서 건축을 이야기한다. 현관문이 한국에서는 복도 쪽으로, 런던에서는 실내 쪽으로 열리는 이유처럼, 일상 속 건축적 차이가 우리의 삶의 방식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풀어낸다.
건축을 잘 모르는 독자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설명은 섬세하고 친절하다. 한국의 집이 거실을 중심으로 방들이 배치된 것과 달리, 런던의 주택에서는 거실이 다른 방들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방’일 뿐이라는 사실을 통해 건축이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반영임을 깨닫게 한다.
책을 덮고 난 후 가만히 생각에 빠졌었다. 지난 시간 내가 여행을 다니며 설렜던 이유는 어쩌면 익숙한 건축에서 느낀, 다른 생활방식의 건축적 디테일에서 느껴지는 숨은 삶의 냄새일지 모른다.(김재훈/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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