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오만석, 이야기꾼으로 1인 11역 소화하며 진솔하게 전달
- 연기파 오만석의 감성 연기, 재즈 피아노 라이브 연주와 함께 관객 사로잡아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오만석 배우의 '찐 연기'를 보았다.
혼자서 100분 동안 다양한 역할로 변신하며 무대를 끌어가는 힘과 디테일이 대단했다.
화술이 정확하고 몸에 밴 연기가 자연스러운 그가 화자(話者)가 되어 이야기를 펼치자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몰입했다.
음악극이라는 타이틀답게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한몫을 하지만 ‘오만석의 모노드라마’라는 표현이 더 실감 나게 다가오는 '노베첸토'가 6월 8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공연 중이다.
화자는 4명의 배우(오만석, 주민진, 유승현, 강찬)가, 피아노 연주는 2명(김여랑, 조영훈)이 번갈아 하고 있다.
이탈리아 문학의 거장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희곡이 뛰어난데다 기획 공연답게 연출(함영준)과 스태프 완성도가 높다. 선상(船上)처럼 꾸민 세련된 무대에 오만석 배우가 서니 넓은 무대가 꽉 차 보이고, 정적인 연극이 영화처럼 동적으로 펼쳐지면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알렉산드로 바리코의 원작이 깔끔했다.
1900년 1월 1일. 이민자들을 싣고 미국으로 가는 버지니아호에서 발견된 아이에게 선원 하나가 ‘노베첸토’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아들처럼 키운다. 그는 예지로 바깥세상을 익혔으며, 본능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곡을 만들었다.
노베첸토는 태어나 단 한 번도 땅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이 배에서만 33년을 살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피아니스트로 뭇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했고, 때 묻지 않은 영혼으로 자신의 삶을 영위했다. 중간에 한번 육지를 밟으려고 해봤지만 단념했고, 폐선(廢船)이 되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될 그 순간까지 그는 배와 운명을 함께 했다. 어찌 보면 단조로운 뱃사람 이야기지만, 작가는 그를 통해 많은 것들을 들려주고 있다.
이야기는 팀 투니라는 트럼펫 연주자가 배에 오르면서 화자가 되어 노베첸토의 출생부터 피아니스트로 성장하는 과정, 스스로 세상 물정을 익혀가며 예술의 지평을 넓히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여정을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재즈의 신 젤리 모턴과의 피아노 경연은 음악극의 하이라이트로 관객들은 재즈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있다.
특히 오만석 배우가 혼자서 끌어가는 팀 투니와 노베첸토의 대화, 순수한 우정의 교류가 관객의 눈시울을 뜨겁게 달군다.
연출은 큰 무대에 단 1명의 배우를 세웠는데도 마치 수십 명의 배우가 무대에 실재하는 듯 캐릭터마다 개성을 불어넣고, 짜임새 있는 동선과 의상 및 소도구로 극을 다채롭게 펼쳐냈다.
여기에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화자와 호흡을 맞추며 대사 그 이상의 소통을 이루면서 조명까지도 다채로운 표정으로 캐릭터들의 개성을 살려내 마치 연기하는 듯했다. 복고풍의 의상과 소품(가방, 모자 등)들도 한 세기 전의 추억을 소환해 주는 역할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연극원 연기과 1기 출신인 오만석 배우는 데뷔 초부터 연극무대와 드라마, 영화에서 연기파 배우로 두각을 나타냈다.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해진 연극 '이(爾)'의 공길 역, 뮤지컬 '헤드윅'의 헤드윅 역, 체홉 '갈매기'의 뜨레쁠레프와 뜨리고린 역은 배우 오만석의 입지를 다져주었다.
현재 한예종 연기과 교수이기도 한 오만석 배우는 기초가 탄탄하고, 무엇보다 표준어를 바탕으로 한 화술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맡은 캐릭터를 소화해 내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배우 오만석은 모노드라마 ‘노베첸토’에서 좋은 희곡과 좋은 연출을 만나 100분간 신들린 연기를 펼쳤다.
1시간 40분을 피아노 라이브 연주에 의지한 채 혼자서 무대를 끌어가는 그의 입담은 가히 달인(達人) 수준이었다. 그의 메인 캐릭터는 화자인 팀 투나이지만 노베첸토를 처음 발견한 선원 대니 부드먼부터 재즈의 창시자로 불리는 자존심 강한 피아니스트 젤리 롤 모턴, 위트가 풍부한 선상 MC, 권위적인 선장, 이태리 출신 웨이터, 귀부인, 천사에 이르는 11인의 인물을 목소리, 억양, 말투는 물론 크고 작은 동작으로 표현해 내는 연기 변신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그의 장점은 현란한 화술이면서도 의미 전달이 정확하다는 것이며, 번역극인데도 창작극처럼 자연스럽게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번 ‘노베첸토’를 통해 배우 오만석이 작품 속 캐릭터로 변하면서 목소리와 동작뿐 아니라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변하는 섬세한 표정과 눈빛 연기에 더욱 감탄했다.
그는 감수성이 풍부한 배우만이 할 수 있는 눈물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특히 폐선이 된 버지니아호로 찾아온 화자 팀 투나에게 노베첸토가 유언처럼 말하며 고별을 고할 때 배우 오만석의 눈에 고인 눈물, 조명을 받아 더욱 영롱한 빛은 연극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우라로서 경이로운 체험 그 자체였다.
이 1인극은 바다에 떠 있는 배 위에서 33년을 살아낸 한 남자의 평범한 이야기 같지만, 그가 스스로 깨닫고 익힌 인생과 음악은 현대인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우고 울림을 준다는 점에서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보다 많은 것을 배웠고 체험했지만 배를 떠나지 않은 노베첸토만큼 행복하고 여유로웠을까.
땅에서 바다를 보고자 배에서 내리려던 순간 도시의 끝자락을 본 노베첸토는 하선을 단념한다. 피아노의 88개 건반으로 무한한 음악을 만들고 연주했던 그에게 수만, 수억 개의 건반 같은 인류문명은 버거웠던 것이다.
연극과 동행한 피아노 연주도 오만석 배우의 연기와 멋진 앙상블을 이루었다. 글렌 밀러, 조지 거쉬인, 라흐마니노프, 쇼스타코비치 등 다양한 작곡가의 곡들이 현장에서 짧지만 강렬하게 연주되어 극의 분위기를 받쳐주고 이야기의 속도를 조정해 주기도 했다. 특히 강렬한 타건으로 연주한 재즈곡들은 심장을 두들기듯 관객들의 가슴을 쳤다.
“난 불행을 무장해제 했어”
극 중 노베첸토의 이 말은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의 경지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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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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