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중 제작된 전창근 감독 영화
- 온전한 필름으로 기록적 가치 높아
▶ [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13)] '자매의 화원'(1959)과 최은희·최지희·남궁원·김석훈·김승호 그리고 아역배우 안성기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한국전쟁 중이던 1952년에 제작된 전창근 감독의 영화 '낙동강'은 한마디로 경상남도 공보과가 제작지원한 계몽 영화다. 그해 부민관에서 개봉된 이 영화의 러닝타임은 44분. 장편영화라고 보기에는 분량이 짧으나 출연배우 이택균, 최지애가 등장하는 극 장면에 낙동강의 시정 가득한 영상들과 실제 전쟁 기록 영상이 합쳐진 세미 다큐멘터리 형식의 극영화라고 할 수 있다.
낙동강 강변의 어느 자그마한 농촌이 배경이다. 대학 졸업 후 귀향한 주인공 박일령(이택균 분)이 이 고장의 여교사이자 애인인 백옥남(최지애 분)과 협력해 마을 사람들을 계몽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는 게 영화내용. 조용자의 무용 장면으로 오프닝되는 이 영화는 이은상의 시 ‘낙동강’을 원작으로 ‘전통의 낙동강’, ‘승리의 낙동강’, ‘희망의 낙동강’등 3장 형식을 취하고 있다.
‘낙동강 흐르고 흘러서/쉬임없는 낙동강’ 자막과 함께 시작하는 화면은 낙동강 가에 떠 있는 한척의 돛단배가 동란중임에도 강물을 따라 유장하게 흘러간다. 이어 강변 들녘에 황소를 몰고 가는 남자들이 등장하고, 항아리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가는 여성들과 시골 농촌이 오버랩된다. 이어 까까머리 아이들과 동네 사람들이 강변에 모여들면 돛단배에 탄 환한 미소의 여주인공 최지애가 등장한다. 낙동강 변 마을 학교에 여교사로 부임해 온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낙동강 변 한 마을을 무대로 펼쳐지는 '낙동강'은 영화적 미장센인 비내리는 절간 마당과 키 큰 파초잎을 시원하게 두드리는 빗소리 등 영화적 은유를 곁들이면서 낙동강에서 치열하게 펼쳐지는 전쟁의 모습을 다큐로 편집해 넣었다.
한반도의 지형 안에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그려 넣은 두만강, 압록강, 대동강, 한강, 금강, 낙동강의 지도 속에 당시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의 애환과 전쟁 상황이 가져온 힘겨운 세상살이라는 고난과 역경이 펼쳐지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이내 희망을 잃지 말자는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낙동강'은 이택균, 최지애 두 배우의 실감나는 연기가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킨다.
롱 테이크로 담은 두 사람의 강변 데이트와 전쟁에 참전했다 한 쪽 팔을 잃고 돌아온 이택균의 귀향. 그들의 절망적인 상봉에도 잠시, 집을 새로이 짓고, 낙동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두 사람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낙동강'은 이처럼 사운드와 영상이 전혀 유실되지 않은 온전한 필름으로 기록적 가치가 큰데, 이는 한국영상자료원이 한국전쟁 시기 영화 중에 제작된 '태양의 거리'(1952), '삼천만의 꽃다발'(1951)에 이어 세 번째로 발굴 공개한 작품이 된다.
대한협동영화촬영소(진해) 협찬과 부산 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향토문화연구회’가 제공하고, 사진작가 김재문이 설립한 무명영화연구소(제작 김석호)가 제작한 작품이다. 여기에 새나라의 희망적 전주곡인 윤이상이 작곡한 음악들과 낙동 관현악단과 부산합창단, 진해도천초등학교 학생들이 합창으로 참여해 전쟁의 상흔 속에서도 전국민적 희망을 전파하려는 의지가 드러나는 영화다.
6.25전쟁 중에도 악보와 각본이 살아남았고, 70여년이 지난 기억들을 후세에 남기는 명작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는 전창근 감독이다. 전창근은 당시 관객들에게 '자유만세'(최인규, 1946)의 지하 독립운동가나,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전창근, 1959)에서 안중근 역할, '아아 백범 김구 선생'(전창근, 1960)에서 김구 선생으로 오버랩되는 항일 독립투사의 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는 영화인이다.
배우와 감독에 제작까지 전방위적으로 활동해온 전창근은 주지하다시피 '아리랑'의 나운규와 동향인 함경남도 회령 출신이다. 이 때문에 전창근은 나운규의 도움에 힘입어 윤백남프로덕션의 연구생으로 들어가면서 영화에 입문했다. 이후 윤백남 프로덕션이 해산되자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그곳에서 활발히 영화 활동을 한 뼛속까지 영화인인 인물이다.
'애국혼'(정기탁 감독,1930)과 '양자강'(이경손 감독,1931) 등에 출연한 뒤 1938년 고국으로 돌아온 뒤 '복지만리'(1941)를 각본, 감독, 주연을 맡아 제작했다. 이 무렵 그는 배우뿐만 아니라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영화작가로 다양한 활동을 했다.
'낙동강'에서 주인공으로 나온 배우 이택균(李澤畇,1926~2011)은 1950년대를 대표하는 영화배우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독립유격대’라는 이름으로 군대에 소속되어 활동했는데 이런 연유로 '낙동강'에서 첫 주연을 맡게 됐다. 그는 무성영화시대부터 활동한 여배우 석금성의 둘째 아들이다. 어머니 석금성은 토월회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한 초창기 여배우.
이택균은 한때 화가가 되길 원했으나, 당시 배우로 활동하던 어머니 석금성이 대한영화사에서 간부로 일했던 정병모에게 추천하여 '육탄십용사'(1949)에 조역으로 출연한 게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다.
배우 이택균은 '북위사십일도'(김성민 연출)를 비롯해 '미망인'(1955) '교차로'(1956) '처와 애인'(1957) 등 멜로드라마에서 주인공으로 출연해 관심을 모았으며 1950년대 후반에는 '애정무한'(1958) '양지를 찾아서'(1959) '언제까지나 그대만을'(1959)에 출연했다. 홍콩 합작영화에도 출연했다. 한편 '처와 애인'에서 함께 연기한 강숙희와 영화제목처럼 결혼했다.
부인 강숙희와 함께 '황진이의 일생'(1961) '내 마음 별과 같이'(1963)등을 제작했으나 이후 영화계와 멀어졌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살다 2011년 세상을 떠났다.
'낙동강'에서 백옥남 역으로 출연한 여배우 최지애(崔芝愛)는 최인규 감독이 이끈 고려영화사에서 배우활동을 시작했다. '독립전야', '죄없는 죄인'(1948), '파시'(1949) 등에 출연한 배우다.
6.25전쟁 발발 후 국방부 정훈국 소속 배우로 활동하면서 '낙동강'(1952)에 출연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피난지 부산에 주재한 미국대사관 문정관 유진 크네즈(Eugene I. Knez)를 만나 결혼했는데 남편과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에 가서는 영화계와 거리를 두고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에서 아나운서로 일했다. 신학대학원 졸업 후 하와이 최초의 여성 한인목회자가 됐다는 후문. 2011년 8월에 별세했다.
-
백학기 칼럼니스트
시인 겸 영화감독. 전북 고창 출생으로 <삼류극장에서 2046>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영화 <공중의자><이화중선><선미촌>등을 감독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SDU) 교수로 재직 중으로, 섬진강영화제 위원장을 맡고 있다.
- Copyrights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