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여판사’(1962년)와 배우들...문정숙·김승호·황정순·김석훈·박암
[시인 영화감독 백학기의 시네스토리] ‘여판사’(1962년)와 배우들...문정숙·김승호·황정순·김석훈·박암
  • 백학기 칼럼니스트
  • 승인 2025.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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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 남아있는 한국고전영화와 그 배우들(23)]
- 韓 두 번째 여성 감독 홍은원 연출작
영화 ‘여판사’(1962) 촬영장에서 연출 중인 홍은원 감독./사진=KMDb

(22) ‘또순이’(1963)와 배우들...도금봉·이대엽·최남현·정애란·이빈화 이어서

인터뷰365 백학기 칼럼니스트 =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 2015년 수집한 필름 ‘여판사’의 촬영현장 사진을 보면 흑백사진 속 뜨거운 볕 아래 스태프와 배우들이 마주 보고 서 있다. 카메라 뒤를 지키는 많은 남자 스태프들 사이에 한 여성이 눈에 띈다. 여성 감독 홍은원이다. 아이를 등에 업고 ‘레디 고’를 외친 첫 여성 감독 박남옥에 이은 한국 영화계에 두 번째로 등장하는 여성 감독이 바로 홍은원이다.

영화 ‘여판사’는 사법과 고등고시를 준비하러 절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는 진숙(문정숙)을 두고 스님과 시아버지가 될 사람(김승호)이 혼담을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후 진숙은 당당히 판사에 임용되고, “어쩐지 여자에게 법관이란 직업이 너무 무거운 짐 같다”며 시험 준비를 그만두려는 여자 후배에게 “하지만 우리는 개인의 일시적인 고통이나 난관보다는 많은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라고 말한다.

그렇다. 여성들의 지위 향상. 진숙의 그 대사가 귀에 와 꽂힌다.

아마 홍은원 감독은 1960년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같은 계몽의 메시지를 건네고 싶었던 것 같다. 오늘날 여성 지위 향상과 남녀평등 사상은 소위 이 같은 여성 감독들의 작품 속 인식 있는 사회 통찰을 통해 드러난다.

영화 ‘여판사’(1962)의 배우 문정숙, 박미혜./사진=KMDb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도 상영된 바 있는 ‘여판사’는 허진숙이라는 여판사를 내세워 아내의 사회적 지위에 열등감을 느끼는 남편과 그녀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등장한다.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 제도 속에서 여성의 역할, 진숙은 한 가정의 아내와 며느리로서 의무를 다하는 한편 판사라는 직책에도 충실하고자 하는 역할이다.

그러던 중 갑작스럽게 시할머니의 죽음이 누군가의 살인에 의해서라고 밝혀지고, 시어머니가 범인 혐의를 받게 된다. 진숙은 그녀의 무죄판결을 위해 변론을 맡게 된다.

'여판사'는 당시 세상의 관심을 받았던 여판사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착안하여 제작된 영화로 대중들의 관심이 쏠렸다.

영화 ‘여판사’(1962) 야외 촬영 현장./사진=KMDb

영화를 만들면서 대한민국 사회에서 여성이 나아갈 길에 물음표를 던진 열정의 홍은원 감독. 그녀는 눈으로 보이는 성공한 여성과,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낡은 가정과 사회를, 다룬 영화 ‘여판사’ 극 중 인물과 상황을 주시한다.

"여성으로서 사회 활동을 할 경우, 잘못하면 소홀하기 쉬운 가정생활 같은 것도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도 알고 있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지난 2022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신수원 감독의 ‘오마주’ 영화는 영화 속 인물인 영화감독 주완(이정은 분)의 상황으로 ‘여판사’ 필름을 복원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다.

아르바이트 삼아 한국의 두 번째 여성 영화감독인 홍은원 감독의 작품 ‘여판사’의 필름을 복원하게 일이다. 사라진 필름 ‘여판사’를 찾아 홍 감독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던 지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함께 그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된다.

(사진 앞에서 두 번째 줄, 오른쪽에서 세번째) 홍은원 감독./사진=KMDb

‘오마주’에서 실제 문정숙이 여판사로 나오는 ‘여판사’의 낡은 필름을 돌려보면서 주완은 “당시 슈퍼 우먼이었겠네요”라고 씁쓸히 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검은 눈동자의 우수’ 이미지로 널리 알려진 배우 여판사 역의 주인공 문정숙은 ‘악야’(1952, 신상옥 감독)를 시작으로 ‘유전의 애수’(1956, 유현목 감독), ‘실락원의 별’(1957, 홍성기 감독), ‘꿈은 사라지고’(1959, 노필 감독), ‘과거를 묻지 마세요’(1959, 안현철 감독) 등에서 보듯 1950년대부터 영화계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했다.

이어 1960년대 들어서도 ‘흙’(1960, 권영순 감독), ‘사랑해선 안될 사랑을’(1960, 이봉래 감독), ‘표류도’(1960, 권영순 감독)와 ‘오발탄’(1961, 유현목 감독), ‘내 청춘에 한은 없다’(1961, 박상호 감독), ‘두만강아 잘 있거라’(1962, 임권택 감독)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한국영화의 간판급 여배우 경력을 자랑한다.

배우 문정숙./사진=KMDb

특히 이만희 감독의 ‘만추’(1966)와 ‘귀로’(1967)에서 비련의 주인공 역할을 맡아 이만희 감독의 페르소나로 알려지면서 대중들의 기대와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

말년에도 연기 생활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면서 박철수 감독의 ‘학생부군신위’(1996)를 통해 영화의 중심을 잡아주는 종갓집 어머니 역할로 출연하는 등 전 생애를 통틀어 30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1953년 가수로도 데뷔한 배우 문정숙은 ‘꿈은 사라지고’, ‘검은 머리’, ‘심야의 부르스’ 등 주제를 불러 올드팬들의 여전한 사랑을 받고 있다.

"1960년대 가장 뛰어난 성격배우," "검은 눈동자의 우수," "도회적 이미지가 빛을 발했"던 배우 등의 평가를 받은 배우 문정숙이다.

백학기 칼럼니스트

시인 겸 영화감독. 전북 고창 출생으로 <삼류극장에서 2046>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영화 <공중의자><이화중선><선미촌>등을 감독했다. 현재 서울디지털대학(SDU) 교수로 재직 중으로, 섬진강영화제 위원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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