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프 소벨의 2022년 연극 ‘푸드’ 아시아 초연
-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과 뉴욕 BAM 페스티벌 전회 전석 매진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현대인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우리에게 음식은 육체에 에너지를 공급하고 유지하기 위한 목적을 넘어서서, 감성적인 추억과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사교의 기회이자, 공동체의 연대를 돈독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한다. 음식은 일상의 삶과 가족, 친구, 동료, 전통과 문화에 대한 감각과 기억들을 창출하고, 그로 인해 매우 강력한 정체성의 표식으로 기능하게 된다.
음식이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관계를 이어주는 통로이자 공동체의 기반이 된다는 사실은, 음식을 둘러싼 인간의 태도와 관행, 의식과 역사를 돌아봄으로써 우리 자신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신념,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깨달음을 낳는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누구인가와 연결되어 있고, 음식과 관련된 인간의 역사는 현재의 우리뿐 아니라 미래에 어떤 우리가 될 것인지를 미리 엿볼 수 있는 ‘창’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근 강동아트센터는 2022년 미국 필라델피아 초연에서 큰 주목을 받은 뒤, 1년 7개월 동안 미국의 다른 지역과 영국, 호주를 거치며 전석 매진의 신화를 기록한 제프 소벨(Geoff Sobelle)의 연극 ‘푸드(FOOD)’의 짧은 아시아 초연을 선보였다.
마술을 이용한 환영과 신체성을 강조한 퍼포먼스, 광대의 유머와 아날로그적 감성, 흥미의 촉발을 특징으로 하는 소벨의 ‘푸드’는 2013년부터 시작된 “평범한 주제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찾아내 인간이란 존재와 삶에 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3부작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다.
일상을 채우는 사물과 삶과의 관계를 살펴본 ‘더 오브젝트 레슨’(2013)과 무대에 집을 가져와 가정과 집의 건축, 인간의 관계에 질문을 던진 ‘홈’(2017)의 연장선에 있는 ‘푸드’는 매일 “식탁에 둘러앉는 일상의 의식을 갖고 작업하고픈 마음”에서 출발했다.
신체성이 강조된 “실험적인 D.I.Y. 연극 쇼”를 만들면서도 공연의 구조에 관객이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체험과 경험’의 창출을 목표로 하는 소벨은 ‘푸드’ 공연을 위해 30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거대한 테이블을 무대로 활용했다.
관객들이 메뉴를 주문하기도 하고, 레시피를 설명하기도 하며, 와인을 따르기도 하고, 내레이션을 대독하기도 하는 연극 ‘푸드’는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에 따라 매회 다른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는 이머시브 씨어터(Immersive Theatre)와, 환영을 만들어내는 마술적 트릭, 언어보다 배우의 신체성을 강조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피지컬 씨어터(Physical Theatre)를 적절하게 조합한 ‘소벨만의 형식’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미국의 배우이자 제작자, 연출가인 소벨은 연극적 환상과 시적인 요소, 부조리극적인 유머를 조합한 퍼포먼스를 통해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연을 창작하는 데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다.
7살 때 뮤지컬 ‘캣츠’의 환상적인 공연의 속성을 잊지 못해 의사와 성직자가 되겠다는 꿈을 버리고,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소벨은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자크 르코크 학교에서 피지컬 씨어터 퍼포먼스를 공부했다.
언어로 말해주기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는 개그와 유머, 연극적 환영을 통해 특정 의미에 이르게 되는 무성 영화 속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에게 영향을 받은 소벨은 본인을 “헌신적인 부조리주의자”라고 일컫는다.
“희극이 가장 높은 수준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소벨은 ‘웃음’을 통해 관객들이 평범하게 보던 것에서 낯선 무언가를 발견하고, 마음을 열게 되며,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고 여긴다.
우스꽝스러운 광대의 유머와 희극적 행동 속에서 순간의 ‘숭고함’과 마주할 수 있다는 그의 생각은 “환영”이자 “거짓말”인 연극을 통해 오히려 현재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관객의 ‘호기심’을 열어주는 방식을 고민하는 것으로 확장되었다.
‘푸드’ 역시 ‘웃음’의 속성을 담고 있는데, “마술사로 시작해 배우로 활동하다가 광대가 되었다”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만큼 익살스러움과 환상을 만들어내는 트릭, 연기를 통해 관객들을 이끈다.
재즈 음악이 흐르는 극장 안으로 들어선 관객들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하얀 테이블보가 씌워진 가로 6미터(20피트), 세로 6.5미터(21피트) 크기의 거대한 테이블과 한쪽에 서서 미소를 머금고 반가움의 눈인사를 보내고 있는 ‘웨이터’ 소벨이다.
고급 레스토랑을 장식하는 플라스틱 조각의 화려한 샹들리에와 조명, 테이블 중간을 가로지르는 자수 장식의 테이블 러너, 식사하는 고객들이 감상할 수 있는 벽면에 걸린 그림까지, 공연장은 테이블에 착석하는 30명과 그 주변을 둘러앉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련된 220개의 객석으로 구성된다. 한국 공연에서는 영어로 진행되는 공연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소벨 옆에 통역사가 함께 한다.
‘제4의 벽’처럼 가만히 앉아 무대를 바라보는 수동적 관객이 아닌, 보다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공연을 만들어내고 구성하는 퍼포머로서의 역할은 거대한 테이블 주변을 둘러앉은 관객들에게 주어진다.
이머시브 씨어터의 경우, 참여를 불편해하는 관객들의 편의와 감정을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전통적인 객석의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웨이터로 변신한 소벨이 레스토랑에 온 30명의 손님들과 만들어 낼 ‘환상’을 바라보는 주변의 객석은 일종의 ‘안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소벨은 주변 객석에 앉은 관객들에게도 먹고 싶은 음식을 떠올리게 한다든가, 요청을 함으로써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시도를 한다.
그렇다면, 소벨이 고급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관객)들을 대상으로 ‘음식’과 관련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소벨은 연극 ‘푸드’에 대해 “우리가 먹는 방법과 이유에 대한 명상”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관객이 무엇을 생각해야 할지 알려주기보다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연을 보고 난 뒤 극장을 나서면서 함께 이야기할 거리를 남겨줄 수 있기를 바라는 소벨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겨냥한다.
“우리는 왜 우리가 먹는 음식을 먹는 것일까? 우리의 음식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먹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들일까? 그런 음식을 위해 우리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일까?”
마술사인 스티브 쿠이포와 함께 공동창작하고, 리 선데이 에반스와 함께 연출한 연극 ‘푸드’는 총 4개의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볼 수 있다.
무언가에 대해 조용히 마음을 집중시키거나 일정 시간 동안 차분한 상태에 머무는 ‘명상’의 속성은 저녁 식탁 위를 밝히는 ‘촛불’과의 연계 속에서 ‘환영’이라는 연극의 속성과 만나게 된다.
소벨은 공연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이 가짜를 ‘진짜’로 상상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통해 소품 ‘초’를 바라보며 향기와 열기를 느끼고, 몽롱함 속에 최면상태에 빠져들며, 눈을 감고 자신의 목소리에만 귀 기울여줄 것을 요청한다.
영적 수행의 일부로서 ‘호흡’에 집중한 상태에서 깊은 내면으로 침잠하는 ‘명상(meditation)’의 어원은 “숙고하다(to ponder)”라는 뜻의 라틴어 ‘meditari’이다.
소벨이 관객을 이끄는 숙고의 과정은 태초의 생명체가 먹을 필요를 갖게 되면서 진화의 과정을 거쳐 인류가 생겨나고, 수렵 채집 생활을 하던 인류가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쳐 현재의 삶을 가능하게 한 긴 역사를 빠르게 돌아보는 일이다.
자연에서 시작된 모든 것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지만, 일상을 정신없이 되풀이하는데 급급한 현재의 우리가, 장구한 세월의 순환과 역사를 떠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땡’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길게 중간을 가로지르던 테이블 러너가 자동모터로 빠르게 당겨져 사라지고 나면, 명상의 끝과 함께 바로 소음과 재즈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으로 공간이 전환된다.
관객의 참여가 가장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상황극은 기본적으로 창작자인 소벨이 정해놓은 순서와 각본에 따라 진행된다. 하지만 참여하는 관객이 전달하는 음식에 대한 기억과 경험, 레시피, 와인의 향에 대한 분석에 따라 매번 다른 공연을 만들어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서구적인 다이닝 테이블을 소재로 하는 만큼 소벨이 와인을 서빙하면서 시작되는 공연은 오믈렛과 스테이크, 북아메리카의 극지방에 서식하는 연어와 송어의 사촌 격이라 할 수 있는 ‘북극 곤들매기(Arctic Char)’와 같은 메뉴들을 설정하는데, 국내 공연의 경우 한국적인 특성을 반영하기 위한 세부사항들의 변경이 있었던 듯 보인다.
테이블 위에 놓인 접시 옆에는 포크와 나이프 대신 젓가락과 숟가락이 놓이고, 실제로 김밥과 같은 한국 음식이 일부 등장하기도 하며, 소벨이 직접 수십 가지의 정갈한 반찬들이 잔뜩 차려진 한식 밥상을 상상하도록 설명을 더하기도 한다.
레스토랑 상황극은 흙 속에 씨를 뿌려 키운 고구마가 갑자기 뜨거운 군고구마로 변하거나 테이블 위가 극지방 빙판 위로 변해 연기가 피어오르는 사이로 얼음낚시가 펼쳐지는 등 음향과 조명효과, 마술적 트릭을 통해 초현실적인 ‘환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포함한다.
광대의 익살스러움과 정신없음, 소란스러움과 분주함의 식사 시간이 지나가고, 양동이에 식기와 와인 잔을 수거하며 작별인사를 마친 웨이터는 업무가 끝난 뒤, 느슨해진 한 개인의 휴식 시간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제 모든 관객들은 신발을 벗고 테이블 앞에 느긋하게 앉아 계산서에 끼워진 돈을 정리한 후 남은 음식들을 먹기 시작하는 소벨을 말없이 지켜보는 ‘벽’처럼 작용하기 시작한다.
사과 5개와 날계란 4개를 시작으로 방울토마토 한 그릇, 샐러리 1단, 양파 1개, 밥 3그릇, 립아이 스테이크와 와인 2병, 피우던 담배와 검색하며 무언가를 보고 있던 휴대폰, 지폐까지 먹어치우는 소벨의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흥미로움에서 시작해 불편함과 역겨움, 놀라움, 충격으로 변화하는 감정과 마주하도록 만든다.
점점 변화하는 소벨의 표정과 탐욕, 괴이한 음향과 어두워지는 조명 속에서 관객이 떠올리는 것은 폭식과 욕망, 탐닉, 그리고 광기이다.
더 이상 공간은 레스토랑이나 웨이터 개인의 공간이 아닌 하얀 테이블보가 사라진 ‘흙’으로 뒤덮인 지구가 된다. 소벨에 의해 대독해 줄 것을 요청받은 관객은 흙 위에 두 손을 올려놓고 마이크를 앞에 둔 채로 귀에 들려오는 말들을 그대로 다른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인류가 처음 지구상에 출현하면서 먹기 시작한 것들, 재배하게 된 것들, 가공된 식품들, 간편화된 음식들, 기호식품과 상품으로 산업화된 ‘푸드’의 변천사는 흙 테이블 위로 올라선 소벨이 펼쳐 보이는 신체성과 소품, 마술 트릭과 음향효과로 무언극의 ‘환영’으로 완성된다. 들소들이 떼를 지어 활보하던 땅 위에 밀과 같은 곡식이 자라나고, 추수와 운반을 위한 기구들이 발명된다.
또, 연료가 되는 석유를 발견하게 되면서 트랙터와 트럭, 기차가 발명되고, 공장과 집,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땅 위의 공간들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작은 장난감과 같은 모형 소품들을 여기저기 이동시키는 관객들의 분주함만큼이나 바쁘게 빼곡하게 채워진다.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오는 시간과 역사의 물줄기 속에서 인간이 세운 모든 것들도 결국 땅속으로 사라질 것들이지만, 우리는 자연이 순환과 반복 속에 끝과 처음을 되풀이하며 맞물린다는 사실을 잊은 채, 끝없이 소비하고 생산하고 욕망하면서, 그 모든 과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
영어로 ‘푸드(food)’인 음식은 사람만이 아닌 동물과 식물이 생명과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흡수해야 하는 영양소를 갖춘 물질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지만 현대인에게 ‘푸드’는 즐길 거리이자 산업이며, 생존을 위한 목적보다는 ‘소비재’로서의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팬데믹 기간에 아내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텃밭에서 채소를 기르면서 흙을 만지는 경험을 했고, 학창 시절 농장에서 잠시 일을 하면서 동물의 도축과정에 대해 알게 된 뒤 채식주의자로 전향한 소벨은 “인간이 먹이사슬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물론 소벨의 연극 방식이 그런 사유에 보다 깊이 접근할 수 있을 만큼 효과적이라거나 충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연결하지 못했던 것들을 문득 떠올리고 잠시 ‘명상’에 잠겨볼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연극 ‘푸드’의 목적은 소벨의 설명처럼, 먹는 것과 관련해 “수렵 채집에서 농장과 공장으로, 산업 소비주의로 이동한 과정”을 생각해 보면서, 동시에 놀이의 속성을 가진 약간의 “재미도 즐겨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줄과 도르래와 같은 장치를 사용하고, 오래된 감수성의 트릭과 장난감 모형과 같은 소품을 이용해 ‘환영’을 만드는 방식이 낡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연극에 참여한다는 ‘체험’의 특성을 강조해 주기도 한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소벨이 이스라엘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듯이, 연극 ‘푸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라는 사실을 긍정한다.
변화가 축적되어 바뀐 사회 속에 살아가면서 여전히 고대 수렵 채집인들의 DNA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한다. 좀 더 쉬운 삶을 추구한 결과는 오히려 더 복잡하고 어려운 세상을 만들어냈지만, 희망했던 것과 다른 세상이 도래했다고 해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위해 먹고 삶을 영위하는지, 그 대가로 무엇을 희생하고 있는지에 대해 ‘명상’하는 일은 가치 있는 경험이다.
밤하늘을 뒤로 한 도시의 고층건물 모형들의 깜빡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더 리틀 디퍼스의 1960년 노래 ‘포에버(Forever)’의 선율이 더해지는 마지막 장면은 씁쓸하면서도 긴 여운을 남긴다.
흙 속으로 사라져버린 소벨이 의미하는 바를 떠올리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전히 흘러가는 세상과 시간, 인류의 먹는 삶과 자연, 산업과 소비 앞에서 무력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환영’의 시간은 끝나고 촛불이 꺼지듯 한순간에 사라졌지만 음식과 자연, 인간과 삶에 대해 회고했던 90분의 시간은 잔상을 남긴다. 소벨이 연극 ‘푸드’를 통해 관객에게 바란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4월 19일부터 21일까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예술극장 극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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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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