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 초연 당시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 9개 부문 수상
- 다섯 번째 시즌 X 10주년 기념 공연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플랑팔레 광장에는 19세기 영국 작가 메리 셸리의 가장 유명한 소설 '프랑켄슈타인'에 등장하는 피조물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생명 창조를 통해 자연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과학자 빅터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동상은 2022년 11월, 오픈AI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의 등장과 함께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메시지로 보다 주목되기 시작했다.
2014년 제네바 현대미술기금(KALT)에 의해 처음 공개된 2.4미터 높이의 청동 피조물 조각상은 “부랑자 또는 주변인의 모습”을 상징했고, 인간 사회의 관용과 수용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었다.
피조물의 조각상이 자신의 창조주인 빅터의 어린 남동생을 죽이고 복수의 여정을 시작한 장소인 플랑팔레에 설치된 것은, 죽은 자들의 신체 부위를 접합해 완성한 혐오스러운 외모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추방당한 피조물이 ‘악’으로 치닫게 된 맥락을 떠올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생명의 불꽃”을 일으킨 뒤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피조물을 방치하고 박해와 미움 속에 고독하게 남겨놓은 창조주를 향한 복수는, 타자를 수용하기를 거부하고 배척을 선택하는 인간 사회 전체를 겨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자를 향한 너그러운 이해와 연민의 필요성을 강조하던 피조물 동상은 2022년 생성형 AI의 등장과 함께 “인간의 통제를 뛰어넘을지 모를 잠재성”과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발생하게 되는 “막중한 책임감”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피조물을 창조한 과학자 빅터의 비극을 통해 현재의 우리는 인류를 능가할 수 있는 기술을 ‘위협’으로 바라볼 것인지, 인류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진보의 ‘희망’으로 바라볼 것인지, “지혜와 겸손을 품고 AI에 접근”해야 할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에서는 셸리의 1818년 소설 '프랑켄슈타인: 현대의 프로메테우스'를 각색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10주년 기념 공연이 한창이다.
왕용범 극본/연출, 이성준 작곡/음악감독의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2014년 “제대로 된 한국 창작 뮤지컬을 선보이고 싶다”는 열망으로 출발해 초연 때부터 “국내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초연 당시 8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모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제8회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 9개 부문을 수상했을 뿐 아니라 2015년 관객이 선정한 최고 기대작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2017년에는 대극장 창작 뮤지컬 최초로 일본 라이선스 수출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이전 칼럼 참고] ▶신이 아닌 인간을 향한 투쟁...뮤지컬 '프랑켄슈타인')
2024년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제작사 EMK와의 만남을 통해 더욱 화려해진 “완성도 높은 무대”와 “새로운 매력”의 10주년 공연을 선보일 것을 약속했다.
프로그램북 인터뷰에서 왕용범 연출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이 갖는 의미에 대해, 원작 속 빅터와 마찬가지로 열정이 지나쳐 과도하게 “집착”해온 측면이 있으며, “애증”을 멈출 수 없었던 작품이라고 말했다.
불가능을 말하는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10년 동안 “행복했던 순간보다 절망한 순간이 더 많았다”고 피력한 왕용범 연출은 각색과 무대화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둔 부분은 원작의 사건이 관객에게 “좀 더 있을법한 사건”으로 여겨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빅터와 그의 피조물인 괴물이 서로를 향해 “특별하고 복잡한 감정”을 갖기를 바랐다면서, “몇 가지 단어로는 정의 내릴 수 없는 마음”을 품은 관계를 설정했음을 강조했다.
10주년을 맞이한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극 시작 부분의 영상 활용이나 천둥 번개가 휘몰아치는 장면들의 강렬함,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중첩되는 순간들의 빠르고 유연한 전환 등 세세한 부분의 업그레이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서사에 있어서도 친구 ‘앙리’의 죽은 시체를 이용해 피조물을 완성한 빅터 내면의 이중적인 갈등과 트라우마의 발현, 비극적 하강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
미신적 사고에서 벗어나 과학이라는 ‘앎’을 바탕으로 보다 진보한 세계를 건설하려던 ‘신념’의 몰락은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잃고 괴물을 향해 복수하기 위해 북극으로 향하는 빅터의 무거운 발걸음과 연계되며, 발버둥 치는 ‘인간’을 향해 연민을 낳도록 만든다.
무엇보다 창조주와 인간 사회로부터 버려지고 학대당한 것에 대한 분노와 절망, 절대적 고독 속에서 ‘피조물’이 자신이 겪은 것과 똑같은 고통을 창조주에게 되돌려주기 위해 복수를 열망하는 모습은 ‘빅터’와 중첩되며, 두 인물 간의 ‘도플갱어(doppelgänger)’적 관계성을 강조하게 된다.
똑같은 모습으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존재, 닮은 존재의 다른 측면 혹은 분열된 자아를 의미하는 ‘도플갱어’의 주제는 셸리의 원작을 해석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영문학자 찰스 E. 로빈슨은 ‘프랑켄슈타인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전기적 맥락과 형식주의, 정신분석학, 페미니즘, 마르크스주의, 해체주의, 신역사주의 등의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셸리의 소설이 등장인물 간의 상호 연결성을 강조하는 도플갱어 소설로 읽힐 필요성을 강조한다.
로빈슨은 소설의 주인공인 빅터의 모습이 그가 창조한 피조물뿐 아니라 북극탐험에 나선 ‘월튼’ 선장과 빅터의 절친인 ‘클레르발’, 약혼자인 ‘엘리자베스’에게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무엇보다 피조물과 창조주인 빅터의 삶이 서로를 반영하며 하나처럼 엮여있음에 주목하는데, 셸리는 1931년 개정판 서문을 통해 빅터가 창조한 피조물을 여러 단어로 지칭하면서도 ‘괴물(Monster)’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피조물에 대한 판단을 유보한다.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피조물(Creature)’은 사실상 모든 인간을 뜻하는 보편성을 갖는다. 셸리는 자신의 소설이 처음 연극으로 각색되어 무대에 올랐을 때, 프로그램북에 피조물을 단순히 “———”로 표기한 것을 보고, 영국의 시인 리 헌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름 없는 자에게 이름을 붙이는 방식”으로서 적합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셸리가 피조물을 ‘괴물’로 부르기를 꺼려 한 것은 소설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만의 도덕적 판단과 입장을 갖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흉측한 외모 때문에 피조물을 혐오하고 박해하며 공격한 사람들과 무책임과 외면으로 일관한 창조주에게 복수하기 위해, 창조주 주변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피조물의 행위는, ‘피조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와 ‘괴물’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입장을 달리한다.
‘피조물’이란 단어는 복수라는 선택을 하게 된 배경에 연민과 동정을 담는 반면, ‘괴물’이란 단어는 인간을 살해한 행위에 대한 책임과 비인간성, 부도덕성을 강조하게 된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피조물을 ‘괴물’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기는 하지만, 빅터의 이상을 위해 목숨을 희생한 신체 접합술의 귀재이자 사체의 재활용 이론의 선구자인 앙리 뒤프레라는 ‘친구’의 부활이라는 설정을 더해 ‘도플갱어’의 맥락을 활용한다.
원작에서 빅터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이유로 피조물에 의해 살해당하는 클레르발이 변형된 인물인 ‘앙리 뒤프레’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의사로서 적군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고 치료한 탓에 명령 불복종으로 총살당할 위기에 처한다. 때마침 나타난 무기연구소 책임자 빅터 프랑켄슈타인 대위는 부대 전출 명령서를 근거로 앙리의 목숨을 구한다.
시체를 되살려 전쟁 무기로 군인을 만드는 비윤리적인 연구에는 동참할 수 없음을 피력하는 앙리에게 빅터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가 “미래가 아닌 현재를 바꾸는 것”이며, 생명의 본질을 밝혀 “인류의 진화를 연장하는 것”임을 토로한다.
처음부터 동전의 양면처럼 과학과 신, 자연, 신념, 윤리에 대해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던 두 사람은 전쟁이 끝난 뒤 빅터의 고향으로 돌아와 연구를 지속한다. 하지만 폐쇄된 성문을 열고 전쟁터에서 끝내지 못한 생명 창조의 연구를 지속하는 빅터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하다.
앙리는 빅터의 누나 엘렌으로부터 빅터의 삶에 드리워진 어두운 과거의 기억, ‘유령’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린 나이에 겪은 어머니의 죽음, 주술과 미신에 집착한 아버지의 비과학적 치료, 마녀가 출몰했다면서 성에 불을 지른 마을 사람들, 어린 빅터를 불속에서 구하고 죽음에 이른 아버지….
어린아이가 감당할 수 없었던 상실의 트라우마는 생명에 대한 집착을 낳고, 과학을 통해 죽음을 극복하려는 그의 강렬한 의지와 불굴의 실험정신은 주변인들에게 낯섦과 두려움을 낳는다. 사람들은 빅터를 불길하고 소름 끼치는 존재로 여긴다.
빅터를 향한 사람들의 적대감과 몰이해, 비웃음과 무시는 그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단두대에서 처형된 앙리의 사체를 이용해 창조된 피조물이 자신을 향한 인간들의 시선과 반응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과 같다.
탄생하자마자 자신을 경계하는 빅터의 집사 ‘룽게’의 목을 물어뜯어 우발적 살인을 저지르게 된 ‘괴물’은 시체를 팔기 위해 고의로 사람을 죽인 ‘장의사’에게 분노해 돌로 내리쳐 살인을 저지른 ‘빅터’와 닮아있다.
하지만 빅터는 자신이 창조한 괴물의 행동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하기보다는, 앙리를 되살렸다고 여겼으나 사람을 해하는 괴물을 창조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곧바로 괴물을 향해 총을 들어 방아쇠를 당긴다. 어린 시절 마차에 치여 죽은 줄리아의 강아지를 살려냈으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팔을 물어버린 탓에 다시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실패’의 기억이 떠오른 때문이다.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도플갱어의 주제를 확장하기 위해 창조주가 발사한 총알을 피해 달아난 괴물이 격투장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을 모두 ‘더블’로 설정한다.
빅터는 괴물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격투장 주인 ‘자크’로, 빅터의 누나 엘렌은 돈을 벌기 위해 괴물을 이용하는 격투장 안주인 ‘에바’로 등장한다.
빅터를 끝없이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약혼자 줄리아는 곰에게 물려 죽을 뻔한 것을 괴물이 구해줬지만 그를 배신하는 격투장의 하녀 ‘까뜨린느’로, 빅터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줄리아의 아버지이자 빅터의 숙부인 슈테판 시장은 격투장을 빼앗으려는 투자가 ‘페르난도’로 등장한다. 또, 빅터의 충직한 집사였던 룽게는 격투장에서 괴물이 대적해 죽여야만 하는 상대인 ‘이고르’로 등장한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전혀 다른 속성을 드러내며 상반된 면모를 보이는 인물들은 도플갱어의 관계적 맥락뿐 아니라 인간 사회에 자리한 폭력과 배신, 잔혹함과 이기심, 물질주의와 탐욕, 무도덕과 욕망을 떠올리도록 만든다.
원작에서 셸리가 피조물에게 스스로의 삶을 설명하고 호소할 수 있는 목소리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처럼,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에게 슬프고 처절하며 강렬한 넘버(노래)들을 부여한다.
복수를 위해 돌아온 괴물은 창조주인 빅터에게 “축복 대신 저주를 목에 걸고 나와야 했던” 자신이 겪은 고통의 이야기를 들어줄 것을 촉구한다.
거부와 방치, 외면과 학대, 모욕과 착취, 고독과 결핍…. 잔혹한 세상은 사실상 인간에게나, 괴물에게나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의 최하위층에 속하는 까트린느가 괴물을 향해 “인간이 아니라서 무섭지 않다”고 하는 말은 핵심을 찌른다.
두려움과 공포, 고통을 낳는 것은 미지의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라는 맥락은 도대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을 불러온다.
괴물을 향해 “짐승이니까 동정심 따위는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격투 상대를 잔혹하게 죽일 것을 요구하는 격투장 주인 자크의 말이나, 철 침대에서 태어난 인간이 아닌 자신을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나”를 묻는 괴물의 절규는 존재와 인간성, 사회에 대한 깊은 질문들로 연결된다.
세상에 태어난 ‘나’라는 존재에 대한 질문, 지옥 같은 현실을 벗어나고픈 욕망, 자유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과 꿈,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의 복수, 절망 한가운데서 느끼는 절대적 고독은 비단 인간이라고 규정된 존재만이 품는 것들이 아니다.
빅터가 죽은 세포에 에너지를 불어넣어 재창조한 괴물 역시 같은 질문과 고민, 고통과 슬픔을 마음에 품는다. 괴물은 무책임한 창조주 빅터가 자신과 같이 고독한 상태, 고통으로 짓눌려 더 이상 희망을 품을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놓이기를 바란다.
자신을 ‘앙리’라 부르면서도 죽여야 할 ‘악’으로 규정하고, 친구의 희생을 통해 꿈을 실현했음에도 그 결과를 책임지지 않는 빅터에게 자신이 겪은 끔찍한 현실을 이해시키고 진실과 마주하도록 만들 방법이 그것뿐임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셸리가 원작에서 자전적 배경에 근거해 부모와 자식 관계를 은유하며 그려낸 빅터와 피조물의 모습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에서는 인간 대 인간, 친구 혹은 동료로 변경되며, 사회 속에서 형성되는 수많은 인간관계와 보편적 인간의 속성으로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까뜨린느와 괴물이 꿈꿨던 세상인 북극은 아픔과 슬픔이 없는 완벽한 곳, ‘지상의 에덴’을 상징함과 동시에 오롯이 홀로 생존해야 하는 고독한 곳이자 시간이 정지한 ‘세상의 끝’이 된다.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 차 북극에 도착한 빅터의 모습은 이전보다 한층 더 괴물과 중첩되며 한 인물로 수렴되기 시작한다.
10주년 공연의 경우, 빅터가 괴물을 ‘앙리’로 부르는 횟수가 많아지고, 괴물이 내던 거친 숨소리와 목소리를 빅터가 내기 시작하는 유사함을 통해 도플갱어로 연결된 두 사람의 존재와 삶, 운명을 강조한 듯 보인다.
원작과는 상당히 다른 플롯을 지닌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왕용범 연출의 전작들인 뮤지컬 '잭 더 리퍼'나 '두 도시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장면들이 존재한다.
또, 2011년에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조니 리 밀러가 빅터와 피조물 역할을 번갈아 연기해 큰 화제를 낳았던 닉 디어 각색의 연극 '프랑켄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도 있다.
디어는 영화 각색 버전들로 인해 사라져버린 원작 소설 속 피조물의 목소리와 도플갱어적 요소의 회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볼트와 너트가 박힌 기형적 외모가 아닌 꿰맨 자국이 드러난 인간과 유사한 모습의 피조물을 그려낸다.
또, 피조물의 탄생 장면으로 극을 시작함으로써 월튼 선장이 전달하는 편지 형식에서 탈피하는데, 뮤지컬 '프랑켄슈타인' 역시 괴물의 탄생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데 유사점이 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의 정체성이 합쳐지면서 도플갱어라는 이야기의 모티브”를 강조하게 되는 원작의 맥락은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의 10주년 공연을 통해 보다 강조되며, 빅터와 괴물 모두를 ‘인간’이라는 하나의 존재로 아우른다.
삶은 두 존재 모두에게 버겁고, 고통스러우며, 고독하고, 안타깝다. 두 존재 모두 보다 나은 삶을, 의미를, 자유를, 평화를 꿈꿨지만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비난하고, 저주하며, 원망하고, 분노한다.
결국 죽음을 생명으로 치환하려는 인간의 욕망은 상실에서 벗어나 사랑과 안정, 평화로 나아가고픈 열망과 맞닿아 있다. 타인의 수용, 따스함, 이해, 편견 없는 시선과 인내는 모든 존재가 바라는 ‘꿈’이지만, 인간은 이타심을 통해 꿈을 실현하기보다 이기심을 통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선택을 한다.
생명 창조를 향한 한 인간의 집착과 죄의식, 죽음으로 인한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욕망의 이야기인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경고하는 것은 창조로 인한 파괴의 위험성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파괴하는 것들에 대한 인식, 바로 그것이 아닐까?
스스로가 바라는 것들을 지키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것들 주위에 벽을 세우고, 경계를 긋고, 외면과 방치로 일관하면서 자신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들을 무너뜨리는 자기 파괴성, 셸리는 바로 그 지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로빈슨의 지적처럼, '프랑켄슈타인'은 “지식 추구가 가져올 위험한 결과”에 대한 소설이지만, 우리가 보다 두렵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빅터가 창조한 “괴물에 대한 우리의 반응”, 인간이 타자를 향해 드리우는 차갑고 냉담한 시선이기도 하다. 8월 25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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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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