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조선족의 중국 정착史 ‘국자가의 전설’...“하늘나라 가신 93세 어머니 그리며 집필”
[인터뷰365] 조선족의 중국 정착史 ‘국자가의 전설’...“하늘나라 가신 93세 어머니 그리며 집필”
  • 신향식 인터뷰어
  • 승인 20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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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남용해 선생, 장편인물전기 ‘국자가의 전설’ 출간
- 조선족의 중국 정착사, 어머니의 파란만장한 삶 통해 묘사
- 조선족 1세대가 겪은 한 세기에 거친 역사 재조명..."중국 이민 정착 1백 년사 축소판"
국자가의 전설
장편인물전기 ‘국자가의 전설’을 펴낸 중국 조선족 동포 남용해 선생/사진 =남용해 선생 제공 

인터뷰365 신향식 인터뷰어 = 하늘나라로 가신 93세 어머니 황정자 여사를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담아 감동스럽게 작성한 장편인물전기 ‘국자가의 전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책은 2021년에 중국 조선족 동포 남용해 선생(69)이 도서출판 ‘지식과 사람들’에서 펴낸 단행본으로, 조선족 공동체는 물론 한국 사회에도 잔잔한 감동의 물결이 전해지고 있다. 책을 펼쳐든 수많은 독자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단숨에 읽는 것은 물론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자는 의견도 나올 정도다.

국자가(局子街)는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인 연길(延吉, 옌지)의 옛 이름으로, 실제로 있는 도로명이다.

유명 사진작가이자 기업인, 문화인으로 활약해온 저자 남용해 선생이 ‘국자가의 전설’을 출간한 의의는 단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의 일생을 담은 데 그치지 않는다. 조선민족이 중국 땅에 정책해서 살아온 근현대의 역사를 어머니의 삶을 통해 그렸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이 책에서는 황정자 여사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조선족 1세대가 겪은 일제 강점기의 무단통치와 문화통치, 반일과 항일, 일본인개척단, 조선인부락, 창씨개명, 강제징병, 공출제 실시, 집단이민, 광복, 귀향, 토지분배, 중국 국적 취득, 자치주 성립, 개혁개방을 포함한 근 한 세기에 거친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저자 남용해 선생을 지난달 22일 서울시 동작구 서달산 기슭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역경을 헤친 모든 조선족 어머니들의 이주史" 

- 어떤 이야기를 담은 책인가요?

“아들의 처지에서 자신을 낳아서 키워준 어머니 일대기를 쓰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자라는 과정에서 무식한 어머니, 못 말리는 어머니 또는 창피한 어머니로 보였습니다. 어머니를 그리 예쁘게는 보지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 어머니께서 모든 것을 희생하시면서 자식들 성공을 위해 애쓰신 점을 깨닫고, 보통 어머니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는데 책 쓰는 과정에서 종종 우리 어머니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는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국자가의 전설' 표지/사진 =남용해 선생 제공 

- 연길에 ‘국자가’란 길이 있나요?

“국자가'란 연길시의 1백 년 역사를 대변하는 상징 거리입니다. 협의적으로 말하면 연길시를 상징하는 거리고 광의적으로 말하면 연변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 국자가를 중심으로 활약하셨나 보지요?

“1940년대 중후반에 조선인들이 많이 모여 사는 국자가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보입니다. 국자가를 중심으로 근 70년간 살아오시면서 온갖 역경을 다 극복하시고 바느질 하나만으로 어려운 시기에 4형제를 키우고 모두 대학에 보내 주셨습니다. 모두 큰 성공을 하였습니다.”

- 핵심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쓰면서 보니까 이 책은 우리 어머니만의 책이 아니었습니다. 예컨대, 시장 바닥에서 일하는 동네 이웃집 어머니 같았습니다. 모든 조선족 어머니들의 이야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명감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단지 우리 어머니 황정자 여사의 이야기만 다룬 게 아니라 모든 조선족 어머니들의 이주사, 성공사를 담은 것이었습니다. '조선족 어머니들이 이렇게 역경을 헤쳐내셨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남영철 황정자 어르신 1
조부인 남영철 선생(사진 오른쪽)과 어머니 황정자 여사/사진 =남용해 선생 제공 

- 어머니 황정자 여사는 어떤 분인가요?

“항일 투쟁을 벌인 영웅도 아니고 중국을 건설하던 시기의 노동운동을 한 분도 아닙니다. 전문교육을 받은 대단한 대학교 교수나 교사도 아닙니다. 그냥 보통 일반인 어머니십니다.

그런데 세 살에 중국으로 건너와 소녀 가장의 역할을 하셨습니다. '남남북녀'란 말이 있지만 남조선에서 오신 남성과 가정을 이뤄서 4형제를 성공시키셨습니다. 조선족들이 많이 집거하던 국자가에서 바느질 하나만 가지고 남 씨 가문과 황 씨 가문의 기세를 보여 주신 분입니다.”

- 모든 조선족 어머니들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중국 땅에 악착같이 뿌리 내리고 억척스럽게 살아온 위대한 조선족 어머니들의 이민 정착 1백 년사를 이 책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론적으로 격식적으로 전혀 갖추지 않은, 그냥 막 사신 것 같았지만 아주 규율적으로 인생을 개척해 오셨습니다.

솔직히 조금 창피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철이 들면서부터 우리 어머니는 당당하게 조선족 사회에 내놓을 수 있는 분이란 확신이 들었습니다. 책을 쓰면서 이 세상 어디에 내놓아도 당당한 삶을 살아온 어머니를 가슴 깊이 느꼈습니다. 이것은 조선족 모든 어머니들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 독자들 반응이 궁금합니다.

“조선족 사회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자신들의 어머니 이야기 같다고 하셨습니다. 일부 독자들은 독후감으로 느낀 점을 발표했습니다. 가족 이야기를 썼는데 아주 잘 썼다고 평가해 주셨습니다. 어떤 분들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까지 하셨습니다."

- 영화나 드라마 제안도 들어오나요?

“솔직히 이 책의 반응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기회가 되면 다큐멘터리라도 만들어 가족용으로 남기고 싶은 생각은 했습니다. 여러 해 전에 부모님 이야기를 담아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보자고도 했는데 책부터 나온 셈입니다.

그런데 반응이 상상외로 열광적입니다. 많은 독자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큰 호응을 받을 거라고 합니다. 조선족 4세, 5세들에게 1세대의 이야기를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중국의 모 제작회사에서 제안이 온 것도 사실입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저는 얼떠름한 기분입니다. ‘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건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 부친 남영철 선생께서는 일제 강점기에 대한민국 청주에서 만주로 가셨더군요.

“1917년에 대한민국 청주의 강서2동에서 태어나셨고 1939년인가 1940년경에 서울에서 운전학교(경성운전학교)를 나와서 (한국보다 자동차가 많다고 알려진) 만주 하얼빈으로 가신 겁니다. 돈을 벌겠다고요. 해방되던 해에 남쪽으로 몇 번 오실 기회가 있었는데 좀 더 돈을 모아서 가려고 하시다 알맞은 때를 놓치시고 급기야 한국전쟁이 벌어지는 바람에 오시지 못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어머니를 만나셨습니다. 어머니는 북한 함경도 출신이고 아버지는 남한 출신이다 보니 그야말로 ‘남남북녀’로 가족을 이루신 겁니다.”

- ‘국자가의 전설’ 출간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한 서민 어머니의 삶을 통하여 조선민족이 중국에 정착해서 살아온 1백 년사의 축소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 이야기를 통해 남쪽과 북쪽을 모두 언급하였습니다. 여기에 중국의 조선족 삶을 합한 겁니다.

조선족 1세대와 2세대는 거의 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가 3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책을 내놓고 보니까 3세대는 거의 다 공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 어머니들이 겪어온 삶의 역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4세나 5세대 등 후대들도 이 책을 읽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이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후대들도 이 책을 읽고 선조들이 살아온 역사의 발자취를 알아두면 좋겠습니다.”

- 황정자 할머니의 손자가 중국 수능시험인 가오카오(高考)에서 수석을 했다면서요?

“국자가에서 태어나 여섯 살까지 그곳에서 자란 막내아들의 막내아들 남지용 군이 그 주인공입니다. 광둥성에서 문과 장원을 한 것입니다. 소수민족이 이런 결과를 내기는 정말 힘듭니다.”

- 추가하고 싶은 말씀은?

“조선족 인구가 200만 명인데 그 중 노동력 절반 이상이 지금 한국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미 많이 한국화되어 있는 조선족들이 ‘국자가의 전설’ 출간 소식을 접한다면 무척 읽어보고 싶을 것입니다. 남북한이 갈라져 있고 러시아의 고려인이나 일본의 재일동포나 미국의 재미교포나 모두 한 핏줄입니다. 언젠가는 하나가 되지 않겠나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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