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스스로 ‘빛’이 되는 길...뮤지컬 '샤이닝'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스스로 ‘빛’이 되는 길...뮤지컬 '샤이닝'
  • 주하영
  • 승인 2020.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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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분석학의 두 대가 프로이트와 융의 이야기, 창작 뮤지컬 '샤이닝(Shining)'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에서 '쉐도우 역'을 맡은 배우 이준혁. 프로그램북에 따르면,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쉐도우(Shadow)'이다. 또한, 작품의 제목 '샤이닝(Shining)'은 "그림자의 반대편에 반드시 빛이 있다"는 주제를 드러낸다. /사진=뉴프로덕션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분석심리학의 기초를 세웠을 뿐 아니라 무의식의 심리학을 연구했으며, 개성화와 집단 무의식, 원형 등의 개념을 주장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C. G. Jung)’의 서거 50주년을 맞아 2011년 영국의 ‘가디언’은 8주간에 걸쳐 ‘마크 버논의 칼럼’을 게재했다. 

심리치료사이자 작가인 버논은 첫 번째 칼럼에서 “자신이 내향적이라거나 외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면, 원형이라거나 집단 무의식과 같은 용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면, 새로운 시대를 반기거나 혐오한 적이 있다면, 또 MBTI 심리검사나 영성검사와 같은 것을 받아본 적이 있다면” 우리가 감사해야 할 사람은 ‘칼 구스타프 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가 무심코 사용하게 되는 ‘콤플렉스’라는 단어나 자신의 성격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내향성’ 혹은 ‘외향성’, 또 사회가 원하는 모습, 즉 가면을 뜻하는 ‘페르소나’라는 단어들은 심리학을 거론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융 박사’의 산물이다.

“식물처럼 사람도 성장한다. 빛이 아니라 그림자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한 사람, “내 존재의 의미는 삶이 나에게 던져온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데 있음을 강조한 사람, “무의식과의 직면을 통해 내면 밑바닥에 도달하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환상의 이미지들을 탐구하고 표출함으로써 무의식과 의식이 소통할 수 있는 “적극적 상상(active imagination)”이라는 심리치료를 발전시킨 사람...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융’이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환청과 환각, 열등감에 시달리며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융(오종혁)'. 분장 디자이너 임영희에 따르면, 융은 프로이트와 달리 "학문과 신념에 대해 고민하는 연약함과 부드러움을 품고 있는 소년"과 같은 인물이다. /사진=뉴프로덕션

2012년 융 분석학자인 앤드류 사무엘스는 융과 사비나 슈필라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관계를 다룬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영화 ‘데인저러스 메소드’를 소개하면서, “지난 세기(20세기)가 ‘프로이트의 세기’로 불렸다면 이번 세기(21세기)는 ‘융의 세기’라 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융이 1930년대 나치 이데올로기에 동조했다는 평가나 반유대주의를 품었다는 비난을 종식시킬 수 있는 여러 증거들이 제시되었지만 여전히 씻어낼 수 없는 잘못들도 있음을 융 분석학자들이 인정하고 사과한 후, 그가 공헌한 바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2003년에 출간된 디어드리 베어의 전기문 ‘융(Jung: A Biography)’에 따르면, 1930년대 융이 저지른 실수들은 충분히 비난받을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의 명성을 구원할 수 있는 다른 행동들 또한 존재한다.

나치 추종자였다는 고발에 인용되는 글들 가운데에는 융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없이 남용된 것들이 존재하며, 그가 CIA의 전신인 OSS의 스파이로 활동했다는 앨런 델레스의 증언과, 비록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히틀러에 대한 정신분석 평가를 “미쳤다”고 선언한 점 등이 있다. 이와 관련해 버논은 융이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는 2011년 “이제 융이 나치와 공조했다는 비난을 잠재울 때가 되었다”고 평가한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작가 성종완에 따르면, 뮤지컬 '샤이닝'은 "융의 자서전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작품이며, '프로이트(에녹)'를 대표하는 이론인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융의 '그림자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사진=뉴프로덕션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는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로이트와 젊은 학자였던 융의 만남과 결별을 다룬 창작 뮤지컬 ‘샤이닝’의 공연이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06년 4월 첫 편지 왕래부터 1913년 1월 프로이트의 결별 선언에 융이 동의하기까지의 사건들을 축약함과 동시에 결별 이후 융이 무의식의 그림자, ‘쉐도우(Shadow)’와 마주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또 무의식과 자아의 대면을 통해 어떻게 내적 자아와 외적 자아가 자신만의 ‘자기(the self)’를 형성하게 되는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극작과 연출을 맡은 전동민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와 삶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이 융과 프로이트에게 닿도록 만들었고, 작품을 통해 “본질에 조금 더 다가간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진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을 트는 것과 관련이 있다”면서, “내부로, 무의식으로, 어두운 심연으로 들어가는 것이 궁극적으로는 바깥으로, 의식으로, 빛으로 연결되는 방향이었음”을 강조했다. 이 때문에 작품의 제목인 ‘샤이닝’은 오랫동안 자신이 거부해 온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보게 된 융이 “이 시대의 정신”에 자신의 영혼을 잃고 있음을 깨달아 스스로 “궁극의 의미”를 발견하고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는 ‘빛을 향한 비전’을 상징하게 된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융과 프로이트를 맡은 배우들은 모두 1인 2역으로 '쉐도우(Shadow)' 역도 연기하며, 하나의 측면은 반대되는 다른 측면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쉐도우(송용진)'는 '규정할 수 없는 존재'로 여러 신화 속에 등장하는 '트릭스터(trickster)'를 모델로 한다./사진=뉴프로덕션

융은 프랜시스 갤턴이 개발하고 심리학자 빌헬름 분트가 보완한 ‘단어연상실험’에서 피실험자가 일련의 단어들을 듣고 각 단어마다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감춰진 무의식의 정서”를 드러낸다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단어가 피실험자의 ‘콤플렉스’를 자극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 실험에서 융은 프로이트의 연구에서 얻은 통찰들을 사용했고, 무의식의 요인들이 과연 경험적으로 검증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자신의 논문집 ‘진단을 위한 연상연구’를 프로이트에게 보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결과를 제공한 융에게 호의를 보였고, 편지만을 교환하던 두 사람은 1년 후 처음 만난 자리에서 13시간 동안 끊임없는 대화를 이어갔다고 한다.

뮤지컬 ‘샤이닝’은 “융 박사님, 프로이트 교수와는 왜 결별하셨죠? ... 결별 후 심각한 정신문제를 겪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라는 환청을 듣는 융이 일련의 단어들을 듣고 연상되는 단어를 말하라는 요구에 점점 폭발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 아버지, 질투, 분노, 개척자, 절대자, 권위, 억압”으로 이어지는 단어들은 결국 “프로이트”에 이르러 “그만!”이라고 소리치도록 만들고 융은 “여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정신분석학의 창시자인 '프로이트(김승대)'는 자신의 '권위'를 위협하는 융의 존재를 인식한다. 분장 디자이너 임영희에 따르면, 프로이트는 "학문에 대한 높은 프라이드와 신념"을 드러내며 "남성적인 느낌"을 강조한다./사진=뉴프로덕션

작품 중반부까지 모습은 드러나지 않은 채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쉐도우’는 “어둠 속 존재, 깊이 감춰진 진실”에 부합하게 연출되고, 극이 시작됨과 동시에 무대에 세워진 거대한 7개의 벽기둥에 영상으로 투사되는 융의 ‘꿈’은 관객들 역시 같은 꿈을 꾸고 있는 듯 ‘환상’을 낳는다.

휘파람 소리, 시계추가 똑딱거리는 소리, 바람 소리, 어두운 숲 속, 뒤를 쫓는 그림자, 화려한 저택,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들, 중세의 장식들, 고대 로마의 조각상들, 지하로 통하는 계단, 동굴, 고대의 문자, 손에 들려있는 등불까지... 무대 위에 투사되는 꿈은 실제로 융이 어린 시절부터 꾸었던 여러 꿈들의 조합이다.

첫 부분에 영상으로 투사되던 꿈은 프로이트가 융의 꿈을 분석하는 장면에서 다시 한 번 되풀이되며 한 단계 더 깊숙이 들어간다. “태양과 밤의 공존”이라는 고대의 문자들을 읽어낸 융은 마지막 꿈에서는 이전과 다르게 “누군가의 두개골”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프로이트는 두개골이 융의 ‘무의식의 억압’을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판단한다. 프로이트는 융이 아버지처럼 느끼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 즉 프로이트 자신을 향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주장하지만, 융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점점 쉐도우(그림자)의 환청이 크게 들리는 융은 프로이트를 향해 소리친다.

“왜 교수님은 모든 것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연결시키는 거죠? 이 꿈에는 두개골 외에도 다양한 상징들이 있어요. ... 리비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리비도 외에 다른 원인을 찾고 싶어요!”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융(이준혁)'은 꿈 속에서 '등불'을 든 채로 어둠을 헤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길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융의 '꿈'은 융의 심리학적 이론들을 축약해 품고 있으며, 실제로 융이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여러 꿈들을 조합한 것으로 보인다. /사진=뉴프로덕션

버논은 융과 프로이트의 관계는 처음부터 감정이 엇갈리는 양가적인 부분이 있었음을 지적한다.

융을 “가장 능력 있는 조언자”라고 부르며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길 바랐던 것은 프로이트였지만 “동료로서 동등한 존재가 아닌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요청한 것은 융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분노’와 ‘살인’의 욕구가 숨어있음을 의미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창시한 프로이트에게 융의 요청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었다.

버논은 프로이트가 융을 자신의 “아들이자 상속자”로 인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융이 ‘위협’이 된다고 느낀 프로이트가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드러낸 신경증적 사건들이 있었음을 언급한다.

1909년 클라크 대학의 초청으로 정신분석학 강연을 위해 두 사람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늪에서 발견된 “미라가 된 시체”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이던 프로이트는 기절을 하고 만다.

유사한 일은 1912년에도 벌어진다. 프로이트가 취리히 근처를 방문할 일이 있었음에도 융을 방문하지 않은 일을 놓고 불거진 갈등은 두 사람이 함께 2시간에 걸쳐 산책을 한 후 화해에 이르지만 이어진 총회에서 저널 목록에 자신의 이름이 빠졌음에 화가 난 프로이트는 졸도한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융(오종혁)'이 아버지와 같은 인물을 '살해'하고픈 욕망을 '꿈'을 통해 표출하고 있다고 분석하는 '프로이트(에녹)'는 "그 누구도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음"을 강조하며 분노한다. /사진=뉴프로덕션

버논은 처음부터 융은 프로이트가 “진실 추구보다는 개인적 권위를 더 우선시한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고, ‘리비도(libido)’에 관한 다른 견해를 갖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프로이트가 창시한 정신 분석학의 기초 개념이자 인간에게 내재한 성적 에너지를 일컫는 ‘리비도’와 관련해 융은 “정신적 에너지, 생명력”과 같은 더 넓은 개념을 적용하고자 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있어서도 아들과 어머니 사이의 성적 애착에 기인한 것보다는 어머니의 존재가 아이에게 “사랑과 돌봄의 주된 공급자”이기 때문이라는 영국의 정신분석가 존 볼비의 “애착이론(the Attachment Theory)”을 더 지지했다.

무엇보다 융은 무의식이 억압된 것들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또한 담고 있음을 인식했고, ‘집단 무의식’에 이르는 여러 개의 층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미지나 상징을 통해 심령 현상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초심리학’와 관련한 연구를 이어가길 원했다. 이는 “육체 너머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프로이트와 정확히 대치되는 지점이었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에서 쉐도우 역을 맡은 배우 김승대. "내 안의 어둠, 그림자"는 공포, 질투심, 열등감, 좌절, 분노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힘을 얻는다./사진=뉴프로덕션

융이 사망한 1961년 당시 원고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47년이 넘도록 세상에 소개되지 못했던, 16년간에 걸친 융의 무의식과의 대화를 담은 책 ‘레드북(The Red Book)’의 편집자 소누 샴다사니는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가 상당히 신화적으로 각색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프로이트 중심으로 전설화되고 융의 업적의 원천이 프로이트로 귀결되는 것은 옳지 않음을 제기하면서, 융은 프로이트를 만나기 전부터 자신만의 ‘콤플렉스 이론’을 갖고 있었고, 1930년대 ‘프로이트학파의 분립’이라는 글을 통해 융이 자신에게 영향을 준 스승들로 “오이겐 브로일러, 피에르 자네, 시어도르 플루누아”를 언급했음을 강조한다.

샴다사니는 프로이트와 융의 공통 관심사는 “심인성(Psychogenesis) 증상들과 새로운 심리학에 기반해 정신요법을 발전시키는 것”이었다고 주장하는데, 뮤지컬 ‘샤이닝’의 경우 이러한 두 학파 사이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 극의 모든 전개가 융 자신의 ‘꿈’ 혹은 ‘무의식의 발현’이었다는 설정을 택한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귄위적인 카리스마를 드러내는 '프로이트(송용진)' 역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과거 속 자신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리며 괴로워 한다. /사진=뉴프로덕션

관객들은 융이 1913년 프로이트와 결별한 후 무의식과 스스로 대화를 나누는 고독과 고통 속으로 침잠했던 시기를 바라보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환청을 듣고, 환각을 보며, 그림자(쉐도우)와 만나고, 바깥에 있는 ‘빛’을 찾아 헤매느라 외면당한 ‘어둠’을 인식한다.

공포, 질투심, 열등감, 좌절, 분노와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로부터 힘을 얻는 ‘그림자’는 아프고 괴로운 나머지 의식의 층위에 머물지 못하고 무의식 속으로 가라앉은 ‘어둠’이다.

융의 이론과 개념을 인정하지 않는 프로이트를 살해한 쉐도우(그림자)는 융의 억압과 분노를 표출한다. 혼란 속에서 자신이 무의식 속에 있음을 인지한 융은 “등불에 비친 그림자”처럼 자신을 쫓으며 어른거리는 위협과 공포가 포용과 인식을 통해 얼마든지 “무한한 가능성”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신이자 빛, 진리이자 길이기에 “아무도 내 자리를 넘보지 못한다”고 외치는 프로이트를 향해 융이 말한다.

“맞아요. 저는 교수님을 뛰어넘지 못할 거예요. 그건 교수님만의 고유한 신화니까요. 하지만 제 신화는 아니죠!”

융은 자신의 목을 칼로 그으며 이내 암흑 속으로 빠져들고 모든 것이 자신의 환상이자 무의식의 ‘꿈’임을 증명한다. 멈췄던 시계 초침소리는 다시 들리기 시작하고, 꿈에서 깬 융은 자신의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시간을 본다. 꿈속에서 흐르지 않던 시간은 현실 속에서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수많은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기억의 은행’인양 서랍장이 빼곡히 달린 7개의 거대한 회색기둥들, 신경세포와 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synapse)’처럼 돌기가 뻗어있는 막대들은 ‘인간의 두뇌’를 연상시킨다.

앞과 뒤를 향해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두 개의 안락의자가 놓인 무대는 심리분석이 이루어지는 연구실이자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을 담고 있는 두뇌 이고, 어디엔가 어둠의 그림자가 숨어있는 마음속 깊은 숲이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초창기에 '프로이트(김승대)'와 '융(성두섭)'은 정신 분석에 관한 끊임없는 대화들을 나누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한다. 수많은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기억의 은행'인양 서랍장이 빼곡히 달린 7개의 거대한 회색기둥들은 신경세포 사이를 연결하는 '시냅스'처럼 보이는 막대들로 연결되어 있다./사진=뉴프로덕션

무대 디자이너 이은경은 프로그램북을 통해 “인간의 머릿속을 개념으로 가시화한 공간”을 구현하고자 했으며, 융이 “무의식을 연구하기 위해 결국 자신의 무의식을 들춰 그 속의 어둠을 걷어낸다는 메시지를 무대 안에 시각적으로 녹여내고 싶었다”고 밝혔다.

실제로 무대는 어린 시절부터 No.1과 No.2라는 두 개의 성격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던 융이 “항상 안에서부터 나오기를 원하는 어떤 것을 위해 공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말한 그 ‘공간’을 구현한 듯 보인다.

“어떤 사물을 이해하는 것은 그 경로로 되돌아가는 일”이고,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 것은 독단적이기 때문에 간혹 살인이 될 때도 있다”는 융의 말은 무대 위에서 ‘프로이트’를 칼로 찔러 살해하는 쉐도우의 모습을 통해 구체화된다.

또한, 융이 “나의 꿈들이 그대를 아이와 처녀로 표현하고 있다”고 언급했던 그림자, 즉 ‘쉐도우’는 때로는 장난꾸러기 광대처럼, 때로는 분노에 휘몰아치는 잔인한 악마처럼, 때로는 순진한 아이처럼 변화하며 본질적으로 “절대 규정되지 않는 성격”의 모습을 표현한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극 중 1인 2역으로 연기되는 '쉐도우(오종혁)'는 프로이트와 융의 어두운 측면, 즉 그들 안에 내재된 은밀한 욕망과 나약함을 드러내고,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인물로 표현된다. /사진=뉴프로덕션

1952년 융은 1911년과 1912년에 분절 출판했던 ‘리비도의 변형과 상징’의 개정판 서문을 통해 당시 36살이었던 그에게 1911년은 중요한 시기였고 “삶의 두 번째 부분의 시작”이라 할 수 있었다면서, 책을 완성한 후에야 “신화 없이 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화 없이 산다는 것은 “과거와 어떤 연계가 없이 뿌리가 뽑힌 채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동시대와 관련된” 자신만의 새로운 ‘신화’를 건설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이 “신화 속에 있지 않음”을 인정하게 만든 1911년의 연구가 곧 신화를 찾기 위한 연구로 이어졌고, 그것이 “원시적 개념의 영혼”에 귀를 기울이고, 어린 시절의 꿈들을 불러내 분석하고 바라보는 일을 계속하도록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사진=뉴프로덕션
뮤지컬 '샤이닝' 공연 장면. '융(성두섭)'은 자신이 늘 '그림자'와 함께일 수 밖에 없음을 인식하고 무의식 속에서 '화해'를 이룬다. 무의식과의 '화해' 장면은 영상을 통해 제시되고, 융은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날리며 따라가던 '종이 비행기'를 집어든다./사진=뉴프로덕션

1913년부터 1930년까지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에 침잠했던 꿈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눈 융은 1929년 J. A. 길버트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직관들이 있어. 환상의 조각들이 무의식에서 피어오르지. 그것들을 위한 적절한 언어가 없는데도 말이야. 나는 내 환자들이 자신만의 상징적 표현을 찾도록 내버려둬. 그들만의 “신화(mythology)”를 찾도록 말이야.”

그 누구의 신화도 아닌 나만의 신화를 찾는 것, 비록 추하고 모자라며 형편없는 그림자라도 자신으로 포용하고 인정하는 것, 무의식에 갇혀 있는 것들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좀 더 온전하고 완전한 자신으로 나아가는 것, 스스로 ‘빛’이 되는 그 일이 우리에겐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5월 10일까지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1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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