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 따라갔다 정애정에서 정소녀로 변신한 행운의 히로인
인터뷰365 정종화 영화연구가 = 1970년대 초반, 많은 감독들은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김정호의 '이름 모를 소녀'를 영화화하기 위해 눈독을 들였다. 그러던 중 1973년 '바람아 구름아'로 데뷔한 김수형 감독이 판권을 획득해 삼영 영화사에서 제작하게 된다.
김 감독은 '바람아 구름아'에서 뉴 페이스 김옥진을 비롯해 한소룡(현 한지일), 그리고 '서울여자'로 인기를 떨친 김추련을 단역으로 픽업했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도 타이틀롤이자 '이름 모를 소녀'의 히로인을 새 얼굴로 뽑으려 했다.
처음에는 서미경을 쓰기로 했으나 신필름에 전속으로 묶여 있어 교섭이 되지 않아 고민하던 차, 당시 샛별처럼 등장한 박모 탤런트를 어느 기획자가 추천해 면담하게 된다. 영화사에 혼자가기 심심했던 박 양은 당시 이두용 감독의 '작은새'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정애정을 데리고 김 감독을 만나러 갔다.
추천을 받은 박 양 보다 함께 온 정애정이 '이름 모를 소녀'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김 감독은 박 양에겐 다시 전화하겠다고 돌려 보낸 후 정 양에게 접근을 시도해 과감히 주연으로 발탁했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어 놓고/ 쓸쓸히 바라보는 이름 모를 소녀'로 시작하는 당시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 '밤의 다이얼'은 외로운 이 밤을 당신과 함께 듣고 싶다는 주제 음악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김 감독은 정애정의 이름이 촌스러워(?) 이름 모를 소녀의 '소녀'를 따서 정소녀로 예명을 지어 주었다.
김 감독은 후에 필자에게 이런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여배우가 되려면 절대로 자기 보다 더 예쁜 친구와 영화사에 가면 안된다며 존경하는 유현목 감독님은 아예 결혼으로 골인했다는 에피소드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 후 김 감독은 박 양에게 인간적인 미안한 마음이 들어 다음 작품에 출연시키려 했으나, 이미 충격을 받은 그녀는 연예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는 씁쓸한 후일담을 들려 주었다.
'말없이 기다리다/ 쓸쓸히 돌아서서/ 안개 속에 떠나가는/ 이름 모를 소녀../'
김 감독은 정소녀와 콤비로 세 번째 영화 '금욕'과 '7인의 말괄량이'에서 호흡을 맞췄고, 모두 멋진 작품으로 남겼다.
'이름 모를 소녀'에서는 가수 정종숙과 홍민, 고영수 보컬 그룹 들개들도 특별 출연해 가수 김정호를 빛냈으며, 정소녀의 연기 가도에 꽃비를 내려 주었다. 그 후 김정호는 1985년 34세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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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화 영화연구가
60여 년간 한국영화와 국내 상영된 외국영화 관련 작품 및 인물자료를 최다 보유한 독보적인 영화자료 수집가이면서 영화연구가 겸 영화칼럼니스트. 196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부터 제작된 영화의 제작배경과 배우와 감독 등 인물들의 활동이력에 해박해 ‘걸어 다니는 영화 백과사전’이라는 별칭이 따름. 인터넷과 영상자료 문화가 없던 시절부터 모은 포스터와 사진, 인쇄물 등 보유한 자료 8만여 점을 최초의 한국영화 ‘의리적 구투’가 상영된 단성사에 설립중인 영화 역사관에 전시, 한국영화 100주년 기념일인 2019년 10월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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