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구원'을 꿈 꾼 한 인간의 삶...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앨리스 박사의 공연으로 보는 세상풍경] '구원'을 꿈 꾼 한 인간의 삶...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 주하영
  • 승인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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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년 기념공연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19세기 후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오른쪽)'와 동생 '테오 반 고흐(왼쪽)'의 이야기는 두 형제가 평생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굳게 결속되어 있던 '형제간의 사랑'을 강조한다./사진=HJ컬쳐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누군가의 구원을 꿈꾸는 사람은 사실상 자신의 구원을 꿈꾸는 것 아닐까? 누군가에게 사랑과 연민을 전달하고픈 사람은 자신이 그 대상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아닐까? 누군가의 영혼을 진실하게 담아내고 싶은 예술가는 그 누구보다 자신의 영혼이 진실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닐까?

19세기 후반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황금빛 태양을 연상시키는 강렬한 그림 ‘해바라기(1888)’로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는 자신이 느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낄 수 있기를, 자신이 보는 모든 것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기를, “우리 모두를 하나로 묶는 유대”를 자연 속에서 발견할 수 있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랐던 예술가였다.

27세라는 뒤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에 들어서서 37세라는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900여점의 그림과 1100개의 스케치를 남긴 열정의 예술가 반 고흐는 내면에서 피어오르는 “도저히 가라앉힐 수 없는 거대한 불꽃”에 온 몸과 마음, 정신을 내맡긴 채 10년이란 세월을 헌신한 신화적 인물이다.

“예술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는 프랑스 화가 밀레의 말을 실천하고자 했고, 인물이나 풍경이 품고 있는 인간의 깊은 감상, 비록 거칠더라도 “내면에 품고 있는 강렬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했던 반 고흐는 평생 자신을 뒷바라지한 동생 ‘테오 반 고흐(Theo van Gogh)’에게 보낸 902통의 편지로 인해 그의 삶을 세상에 널리 알린 인물이기도 하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아무 것도 없는 흰 공간에 틀처럼 형성된 자리들은 반 고흐의 그림 영상들로 박물관 혹은 화랑의 모습을 구현한다. 반 고흐가 자화상을 많이 그린 이유는 모델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혼이 담긴 훌륭한 초상화를 그리는 것이 목표였던 그에게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평생 90점이 넘는 자화상을 그린 렘브란트는 반 고흐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동일한 사람을 다양한 초상화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다"는 꿈을 꾸도록 만든다. /사진=HJ컬쳐

남들과 다른 두꺼운 덧칠과 강렬한 색감, 독특한 관점, 고집스러운 예술관으로 인해 살아생전 단 한 점의 그림 밖에 팔지 못했고, 간질 발작으로 알려진 정신질환으로 인해 ‘미치광이 화가’라는 비난에 시달렸으며, 밀밭에서 입은 총상 사건의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탓에 죽음을 둘러싼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게 된 화가...

1996년에 출간된 펭귄 클래식 ‘빈센트 반 고흐의 편지’의 편집자 로날트 데 레이우(Ronald de Leeuw)는 반 고흐를 “근거도 없이 아는 척하는 사람들 때문에 무척 난감해진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1913년 테오의 미망인 ‘요하나 봉어르’가 남편에게 쓴 반 고흐의 편지들을 묶어 출판한 일이 그녀가 염려했던 대로 “반 고흐의 예술을 직접 이해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되었음”을 지적한다.

편지에 근거한 어빙 스톤(Irving Stone)의 소설(1934)은 반 고흐의 생애를 세상에 알리고 영화(1956)로도 제작되어 그의 그림이 전 세계에 복제되고 그가 평생 꿈꿨던 “민중의 예술가”가 되도록 만들었지만 그림만으로 이해되고 평가받고 싶어 했던 반 고흐의 소망에는 어긋나는 결과를 낳았다.

반 고흐의 사망을 둘러싼 정황들은 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수많은 책과 영화, 창작품들이 파생되도록 만들었다.

레이우는 반 고흐의 삶을 창작한 예술품들이 그의 삶을 왜곡할 가능성에서 벗어나 독자들이 실제로 그의 편지들을 읽음으로써 “농촌 생활을 그리는 화가이자 현대 초상화가”로 알려지길 원하고, 강박적으로 내면세계를 갈고 닦으며, 덧없는 것에서 영원과 진정성을 추구했던 인간 반 고흐를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진지한 독자들에게 반 고흐의 편지들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의 작품 대부분을 둘러싼 신화를 반박할 적절한 근거가 되기를 기대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밀밭'은 화가 반 고흐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밀레(Jean-Francois Millet)의 그림 모사를 즐겼던 반 고흐는 밀밭의 ‘씨 뿌리는 사람’을 5번이나 그렸고 그림에 모든 온정과 사랑을 담았다. 아를(Arles)의 평야와 밀밭의 모습은 '영원성'을 상징하는 것이었지만 1889년 ‘밀 베는 사람’을 그리다 간질발작이 도진 반 고흐는 테오에게 쓴 편지에 '죽음의 이미지'를 언급한다. 그는 낫질을 하면서 땡볕에서 진땀을 흘리는 밀 베는 사람의 그림이 '씨 뿌리는 사람'과 정반대의 그림이라고 설명한다. 낫질하는 사람이 베어내는 밀이 곧 '인류'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사진='HJ컬쳐'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에서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노래로 엮고 그의 그림 50점을 무대 배경과 영상으로 활용해 반 고흐의 예술작품과 삶의 이야기를 환상처럼 느낄 수 있도록 창작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5주년 공연이 한창이다.

“살아 숨 쉬는 반 고흐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만들어내기 위해 ‘3D 프로젝션 맵핑(Projection Mapping)’기술을 활용한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2014년 초연 당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아무것도 없는 흰 공간에 디지털 빔 영상을 쏘아 인테리어나 오브제, 공간을 실제처럼 구현하는 기술인 프로젝션 맵핑은 가상의 이미지가 물리적 현실 세계에 중첩되어 보여지는 기술로 증강현실에 가깝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 무대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은 화랑 혹은 박물관의 빈 벽처럼 기능한다. 그림이 하나도 걸려있지 않은 채 특정 부분에 홈이 파이거나 튀어나오고 들어간 부분들이 ‘틀’로 형성되어 있고 문, 침대, 창문 모양의 공간 자리만 2차원 평면에 선으로 그려져 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새로 태어난 어린 조카를 위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활짝 핀 아몬드 나무 가지를 그린 ‘꽃 피는 아몬드 나무(Almond Blossom, 1890)’가 무대 배경을 가득 채운다. 아몬드 나무는 살아 움직이며 꽃잎들을 바람에 흩날린다./사진=HJ컬쳐

소품으로는 작은 책상과 의자 두 개, 이젤과 화구상자가 놓여 있을 뿐이다. 흰색 벽면은 필요한 순간마다 바닥과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들로 인해 특정 장소가 실제처럼 구현되고 고흐의 그림들, 물건들이 적재적소에 배치된다.

또 심리적 혹은 정신적 상태를 상징하는 환상의 이미지들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펼쳐 보임으로써 뮤지컬 넘버의 가사와 음악만으로는 전달이 어려운 부분들을 보완한다.

관객들에게 잘 알려진 명화들이 화랑에 걸린 그림처럼 투사되거나 반 고흐의 실제 삶 속 공간인 ‘아를’과 ‘오베르’의 장소들이 무대 위에 현실처럼 구현되는 것 외에 흥미로운 점은 뮤지컬이 반 고흐가 사망한 지 6개월이 지나 동생 테오가 형의 유작전을 준비하는 시점에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죽은 형과 끊임없이 대화를 하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구성은 테오의 기억 속에 자리한 형 빈센트의 모습으로 연결되면서 테오 역을 맡은 배우가 빈센트를 제외한 1인 다역을 하도록 만든다.

기침과 함께 지팡이를 짚은 채 등장한 테오는 “미술관 관장이 드디어 전시회를 허락했다”면서 기쁨에 들떠 형에게 혼잣말을 한다. ‘마비성 치매’를 앓고 있는 테오는 33세의 젊은 나이지만 흐릿해지는 시야와 가끔 잘 들리지 않는 귀, 형의 기억이 점점 흐려지는 자신의 상태를 언급하며 서글픈 마음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낸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이 죽기 전에 전시회를 성사시켜 형의 그림과 생각, 삶의 흔적들이 영원히 기억될 수 있도록 만들 것임을 다짐한다. 밀밭에서 자신의 가슴에 총을 겨누었던 날,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던 그 밤, ‘형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의 질문은 회상을 불러오고 무대는 빈센트의 청년시절의 편지를 시작으로 그의 과거를 구현하기 시작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탁자 위에 작은 등불을 두고 감자를 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에 대해 테오(왼쪽)에게 설명하고 있는 빈센트(오른쪽). 실제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빈센트는 그림 ‘감자 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 1885)’은 "땅을 일구었던 손으로 노동의 결과물인 감자를 먹는, 정직하게 땀을 흘려 얻은 사람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화가이자 친구인 안톤 반 라파르트(Anton van Rappard)는 비현실적인 비율과 부자연스러운 구도를 지적하며 "형체도 구도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한다. /사진=HJ컬쳐

작품은 기본적으로 빈센트가 19살, 테오가 15살이던 때부터 교환하기 시작한 편지들이 드러내는 사실들에 충실한 편이지만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며 굳건한 믿음으로 결속되어 있던 ‘형제간의 사랑’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반 고흐의 삶에 대한 해석에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예술작품을 파는 화상으로서도, 목사로서도, 선교사로서도 적응하지 못했던 빈센트는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자신의 감정이 가득 들어간 그림을 곁들이곤 했고, 테오는 형의 재능을 알아보고 “누군가는 형의 그림을 통해 교감과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일에도 적성을 찾을 수 없었던 빈센트는 “그림으로 사람들을 위로 한다”는 테오의 말에 화가의 길이 자신의 마지막 선택이며 자신을 구원할 그림을 그리겠다고 선언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화가 반 고흐의 삶에 있어 가장 크게 놓치고 있는 부분은 빈센트가 엄청나게 많은 양의 책을 읽었던 독서가였으며, 기억력이 뛰어나 종종 문학작품 속 문구들을 길게 암송했고, 다른 작가들이나 화가들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반 고흐가 그토록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했던 이유는 많은 예술가들이 겪는 광기가 “예술가들을 배척하고 세상에서 고립시키는 사회”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당시 프랑스 예술가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바그너의 “총체적, 공동체적 예술관”에 크게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1888년 반 고흐가 ‘노란 집’으로 화가 폴 고갱을 초대해 공동 작업을 하는 일에 유난히 집착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또, 그가 점점 광기에 물들어간 이유는 늘 가족의 기대에 어긋나는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억압적인 부모와 갈등을 겪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으며 동생 테오에게 진 빚을 갚을 길이 없어 보이는 부담과 좌절의 탓도 있었지만 유전적인 정신병의 영향도 있었다. 실제로 2011년에 출간된 나이페와 스미스 공저의 책 ‘반 고흐: 생애(Van Gogh: The Life)’에는 반 고흐의 어머니가 끼친 강박적 불안과 공포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어 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무대는 반 고흐의 명화들이 걸려있는 박물관 또는 화랑으로 기능하고, 빈센트와 테오의 동전의 양면처럼 닮은 듯 다른 삶은 의자 두 개에 등을 맞대고 앉은 두 형제의 장면으로 구체화된다. /사진=HJ컬쳐

사실 후대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반 고흐보다 동생 ‘테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뮤지컬의 선택은 영리한 듯 보인다. 레이우의 표현을 빌자면, 작은 종잇조각까지 모아두는 테오의 꼼꼼한 성격 덕에 빈센트의 편지들이 그대로 보관된 데 비해 테오의 편지들은 소실이 많아 실제로 테오가 어느 정도로 형의 죽음을 막지 못해 자책했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죽기 전 테오가 형이 그렇게 만들고 싶어 했던 화가들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녔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형의 추모전을 열었으며, 극심한 고통과 어지럼증, 환각과 악몽에 시달리다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결국 형의 죽음 뒤 6개월만인 1891년 1월 사망에 이르렀다는 사실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테오가 얼마나 형을 사랑했는지, 형의 화가로서의 삶이 제대로 읽히고 기억되기를 얼마나 바랐는지를 드러냄으로써 테오의 기억을 통해 전달되는 ‘빈센트 반 고흐의 이야기’라는 구조를 획득하게 된다.

미술관 관장에게 전시회의 구성을 설명하기 위해 초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반 고흐의 그림의 특징들을 설명하거나 미술관을 방문하는 관람객들에게 알려주면 좋을 감상 포인트나 숨겨진 에피소드들을 말해주는 장면에서는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그의 이야기를 듣는 미술관 관장이자 관람객들이 된다.

그가 전달하는 형의 이야기들이 점점 고통과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광기를 향해 갈수록 테오의 건강 상태도 나빠지면서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잃으며 걷지 못하게 된다.

동전의 양면처럼 닮은 듯 다른 삶을 살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의자 두 개에 등을 맞대고 앉아 서로에게 머리를 기대는 장면으로 구체화 된다. 두 형제의 끈끈한 애정, 깊은 연대,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따뜻한 사랑은 관객들의 마음에 깊이 각인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3D 프로젝션 맵핑'으로 구현된 아버지의 집과 아버지의 묘지 공간. 반 고흐는 실제 편지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별로 언급하지 않지만 황백색 성경이 펼쳐져 있는 '아버지의 성경'을 그린 정물화를 테오에게 보낸다. 그는 존경과 복종을 강조했던 아버지를 대변하는 성경 앞에 프랑스 소설가 '에밀 졸라(Emile Zola)'의 책을 그려 넣음으로써 "억압과 고통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삶"에서 동질감을 느꼈던 자신을 표현한다./사진=HJ컬쳐

조금 더 넉넉히 돈을 보내줄 수 있었다면 형의 마지막이 달라졌을까 후회를 드러내는 동생과 끝없이 동생에게 부담만 안겨줄 뿐 그 모든 빚을 갚을 길이 없어 절망하는 형, 그리고 예술에 모든 진심을 쏟아 넣으며 사랑과 공감을 갈구했던 빈센트의 몸부림을 끝까지 격려하고 지지했던 테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빈센트를 누구보다 ‘구원’을 갈망했던 한 사람으로 설정한다.

추운 겨울날 임신한 채 길에 버려진 매춘부 ‘시엔’을 만난 빈센트는 누군가에게 버려지고 상처입어 고통과 슬픔 속에 있는 그녀가 “날 닮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서로의 고통을 나누고 상처를 보듬기 위해 그녀와 아이를 거두고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견뎌내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빈센트에게 미망인이었던 사촌 케이 보스를 향한 그의 일방적인 사랑이 매몰차게 거부당한 상태에서 다른 누군가가 버린 여인을 구원한다는 생각은 지극히 옳은 일이었다.

실제로 그는 이를 반대하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나는 빈털터리, 괴짜, 역겨운 사람으로 사회적 지위도 형편없고 갈 데까지 간 밑바닥 사람이겠지.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빈털터리에 별 것 아닌 사람의 가슴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작품으로 보여주고 말 거야. ... 시엔과 나는 서로를 간절히 필요로 해. 그래서 나는 그녀와 떨어질 수 없어. 뗄 수 없이 얽혀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이란다.”

시엔과의 사랑의 끝은 사실 여러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지만 뮤지컬은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아버지의 반대를 가장 큰 이유로 내세운다. 아버지는 테오 역을 맡은 배우에 의해 뒷모습과 목소리 변조만으로 연기되며 조명을 통해 거대한 ‘검은 그림자’로 형성된 아버지의 강압은 빈센트의 의지를 꺾고 그를 집 안에 가둔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추운 겨울날 길 거리에 버려진 임신한 여인 '시엔'을 절대 버릴 수 없다고 토로하는 빈센트에게 가해지는 아버지의 비난과 강압은 '거대한 그림자'로 표현된다./사진=HJ컬쳐

빈센트의 강렬한 감정이 두드러지는 그림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슬픔(1882)’의 웅크린 여인은 그림 속에서 나와 그를 떠나듯 연출된다. 뒤러의 판화 ‘멜랑콜리아(1514)’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웅크린 나체 여인 ‘슬픔’은 빈센트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쏟아낸 감상이나 우울, 고민 같은 것들을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첫 번째 그림이다.

그는 테오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건 시작이야. ... 나는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어. 이 사람은 깊이 느끼고 있구나, 강렬하게 느끼고 있구나. ... 내가 온 힘을 쏟는 이유는 바로 그런 바람 때문이야.”

하지만 구원의 실패는 죄책감과 좌절감, 실패감을 증폭시키고 아버지의 집에서 ‘커다란 털북숭이 개’처럼 취급되던 그는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그를 “온 집안을 젖은 발로 돌아다니는 더러운 짐승”으로 바라보는 가족들의 차가운 시선은 그가 건드리는 바닥마다 무너져 내리는 강렬한 그래픽 영상으로 연출된다.

“서른 살이나 되었음에도 동생에게 기생이나 하지. 나는 가족들을 위협해!”라고 울부짖으며 가슴을 치던 빈센트는 결국 벽장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린다.

이어지는 아버지의 죽음, 스스로에 대한 자책, 동생에 대한 미안함, 안톤과 고갱으로 대변되는 주변 사람들의 몰이해와 비난, 무엇보다 “영혼을 갉아먹는 돈이라는 벌레”에 지친 빈센트는 독한 술과 환각 증세로 인해 광기에 물들기 시작한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시엔을 모델로 그린 웅크린 나체의 여인 ‘슬픔(Sorrow, 1882)’은 빈센트가 자신의 마음속에서 쏟아낸 감상, 우울, 고민을 모두 표현하기로 마음먹은 첫 번째 그림이다. 강압적인 아버지와 가족들의 반대로 인해 시엔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빈센트의 '슬픔'은 뮤지컬 속에서 그림 속의 웅크린 자세에서 일어나 멀어져 가는 시엔의 살아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사진=HJ컬쳐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Les Misérables)’이야말로 “내가 경험한 현실의 핵심”이라고 말했던 사람, “인류애를 느끼고 믿는 것”의 필요성을 강조했던 사람, 자신의 앞날은 “내가 다 마셔버리기 전까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물 한잔”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했던 사람, “인생이란 얼마나 슬픔으로 가득한지, 그래도 주눅 들지 말고 옳은 일을 실천해야 한다”고 외쳤던 사람...

반 고흐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평정심을 되찾기”를 바랐지만 정작 자신을 구원하리라 믿는 예술에 대한 사랑이 “사람을 사랑하는 현실적 사랑을 앗아가는” 아이러니에 빠지게 한다는 것 또한 인식하고 있었다.

고갱이 그린 초상화로 인해 촉발된 불화와 광기의 사건들은 반 고흐로 하여금 “광증을 자신의 질병으로 인정”하고 불안한 생존에서 도피하는 수단으로 ‘자살’을 언급하게 하면서도 동시에 세상에 더 많은 작품을 남기기 위해 ‘그림’에 더욱 몰두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상태를 “자살하려다 물이 너무 차갑다면서 둑으로 기어오르는 사람”이라 표현했고, 상념이 가득 담긴 그림들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사진='HJ컬쳐'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공연 장면. 반 고흐의 자살 직전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알려져 있는 ‘까마귀가 있는 밀밭(Wheatfield with Crows, 1890)’이 배경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실제로 이 그림이 반 고흐의 마지막 그림이라는 증거는 없다고 한다. /사진=HJ컬쳐

누구보다 “내가 느낀 것을 다른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랐던 화가, 자신의 구원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구원을 갈망했던 사람, 온갖 감정으로 점철된 삶이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닿기를 염원했던 예술가, 어쩌면 빈센트가 간절히 추구했던 모든 것들은 사실 그 자신이 갖기를 원했던 것들이 아니었을까?

감정의 공유, 사랑을 통한 구원, 이해와 용서, 그리고 연대... 반 고흐를 처음 호평했던 평론가 알베르 오리에의 말처럼, “여태껏 감각을 이토록 자극했던 화가는 없었다.”

그리고 그가 남긴 900여 통의 편지는 그 어떤 화가도 누릴 수 없을 상상을 후대 사람들이 하도록 만들었다.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바라보는 반 고흐의 삶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전달하고 있을까? 수많은 서적과 영화를 통해 만나게 되는 반 고흐의 생애로 인해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또 다른 ‘사유’와 ‘감정’을 불러오는 새로운 경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3월 1일까지 예스24스테이지 1관.

주하영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한국외국어대, 단국대, 가천대, 상지대 등의 대학교에 출강해오면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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