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에서 1조 매출의 기업 일으킨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
비엔나에서 1조 매출의 기업 일으킨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
  • 김두호
  • 승인 2010.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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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22차례 비행기 갈아타며 1년 200여일 출장 다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박종범 영산그룹회장(53)은 아름다운 도나우강이 흐르는 예술의 도시 비엔나에서 연매출 1조원대 규모의 대기업을 경영하는 입지전적인 재외동포 기업인이다. 모기업은 비엔나에 있지만 세계 13개 지역에 설립, 운영되는 계열법인에서 1천여 명의 직원들이 그에게 월급을 받는다.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금융기관 뱅크오스트리아는 2008년도 '올해의 고객상'(Customers of the Year) 메달을 그의 가슴에 달아주었다.


여직원 한 명을 채용해 영산그룹의 모체인 영산한델스(무역)라는 회사를 차린 지 11년 만에 거상(巨商)이 되어 돌아온 박종범 회장은 2010년 10월 대구 엑스코에서 개최된 제9차 세계한상대회에 참가해서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와 더불어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장으로 한인회관 설립과 각종 문화교류 사업에 쏟고 있는 열정이 재외 동포 경제인 사회에서도 한층 돋보이는 점이 되고 있다.


박종범 회장의 인간 승리, 사업 성공담은 IMF 때 소속 기업의 부도로 갈 길을 잃었던 샐러리맨에서 시작된다. 1996년부터 기아자동차 오스트리아 법인장으로 비엔나에 주재하던 그는 불과 몇 년 후 외환위기 때 회사가 무너지자 ‘물러나기’식 철수를 거부하고 현지에서 자신의 사업으로 ‘홀로서기’ 재기의 길을 선택했다.



지금 돌아보면 전화위복이었지만 귀국을 않고 개인 사업을 하기로 결심할 무렵이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로 짐작된다. 귀국을 해야 하는 처지에서 좌절하고 고민했던 시기의 일화를 들려 달라.

그때가 내 인생에서 아마도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였을 거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이삿짐을 싸야하는 것이 정상적인 생각인데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혼란을 주는 것이 마음에 걸렸고 비록 내 개인 사업이 아니지만 망한 회사의 직원이 되어 고개를 숙이고 귀국하는 스스로의 모습도 고통이었다. 부장급이었던 나는 복귀해도 구조조정 대상이었다. 고심 끝에 물러서지 않고 버텨보자는 각오를 하고 작은 사무실을 얻었다. 전화 받는 여직원 하나 두고 무역업을 시작했다.


남의 나라에서 시작한 개인 사업이라 창업초기에는 겪은 일도 많았을 것 같다.

물가가 비싼 곳에서 생활비와 아이들 교육비에 회사 운영비까지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서울에 있는 개인 재산을 정리한 돈을 활용했지만 곧 바닥이 보였다. 발전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면 절벽에 떨어진다는 위기감을 떨쳐버리지 못해 하루 두 시간도 편안하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식은땀이 쏟아져 수건을 몸에 두르고 잠자리에 들었다. 영어로만 통했지 독일어 등 언어도 부족하고 사회전반의 시스템이나 경제구조가 안정적으로 꽉 짜여 있는 유럽에서 내가 파고 들어갈 틈새가 너무 작았지만 죽기 살기로 뛰었다. 무역사업이 조금씩 확장되면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등지로 출장을 다녔다. 연중 220일을 출장으로 보냈고 한 달에 갈아 탄 비행기 편을 어느 날 새어보니 22회가 되더라.


얼마나 치열하게 뛰며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어떤 내용의 무역업인가?

사탕 포장지로 활용하는 엷은 필름으로 시작해 우리나라가 생산하는 다양한 유화제품에서 타이어, 배터리, 알미늄 휠 등 각종 자동차 부품까지 망라된다. 처음 재미를 본 것이 사탕 포장용 필름인데 우크라이나의 제과공장에서 6개 컨테이너를 주문받아 너무 기뻤던 순간을 잊지 못하겠다. 25만 달러어치인데 10%가 나에게 떨어진다. 그게 자신감의 불씨를 안겨주었다. 그로부터 국내 석유화학 제품을 취급하다가 2005년부터 내가 비즈니스의 전문성을 인정받는 자동차로 품목을 넓히면서 회사가 성장을 많이 했다.



매출 규모가 어느 정도인가?

2006년에 1억 유로를 넘어섰고 2008년부터 우리 돈으로 1조원에 달하는 7억 유로의 실적을 올렸다.


지금도 무역이 주력사업인가?

무역을 하지만 물류 유통 판매에서 제조생산업으로 확대하고 있다. 2007년부터 슬로바키아에서 기아차 공장의 협력사를 운영하고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의 부품 납품과 조립공장도 영산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해외 법인이 비엔나의 모기업에서 러시아 우크라이나 미국 캐나다 중동 서남아프리카와 남미공화국, 그리고 서울 등 9개국에 13개 현지 법인이 설립되어 우리 직원이 모두 1천여 명 넘는다.


오스트리아에서 세운 기업의 이름을 우리말 ‘영산’으로 불러 특이하다. 요즘 우리 기업들도 회사 명칭을 한글식 이름을 버리고 외래어를 주로 사용하는데 ‘영산’을 굳이 회사명으로 정한 사연이나 동기가 있는가?

있다.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광주 근교의 영산강 마을이다. 지금은 광주직할시 남구 구소동이지만 과거에는 광산군 대촌면 구소리였다. 또 나의 가톨릭 세례명이 영산(靈山)을 의미하는 카르멜로이다. 구멍가게처럼 시작한 기업이지만 나의 신념과 각오 같은 것을 그 이름에 걸고 뛰기 시작했다.


회사(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영산그룹의 한국 법인)에 걸려 있는 경영지침이 ‘사람 존중(Respect) / 정직과 성실(Integrity) / 신속(Speed) / 탁월성(Excellence)’이다. 회장이 내세운 것인가?

아니다. 작년 연말 경기도 영흥도에서 그룹의 세계 13개 법인 대표들이 모여 단합대회를 하면서 공동으로 의견을 나누고 합의한 기업 정신이며 시대에 필요한 경영지침이다. 나는 수시로 나의 생각이나 생활 속의 발견을 이메일이나 책을 통해 직원들에게 전달한다.


직원들에게 책을 통한 CEO의 메시지는 어떤 방법을 말하는가?

나는 독서광이다. 틈나면 신간 서적을 본다. 내가 보고 감명을 받은 책이 있으면 그 책을 구입해서 앞머리에 나의 독후감을 적어 직원들에게 선물로 보낸다.


최근에 보낸 책은 어떤 책인가? 그리고 선물한 책은 어떤 내용의 책들인가?

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한 불황기에 오히려 10배나 성장한 <일본 전산이야기>를 읽고 나의 의견을 첨부해 선물했다. 그동안 선물한 책은 <상자 안의 사람, 상자 밖의 사람> <무지개 원리> <긍정의 힘> 등 많다.


<일본 전산이야기>에 첨부한 회장의 메시지(의견)는 어떤 내용인가?

(박종범 회장이 서울법인 직원들에게 지난 새해 선물로 책을 전달하며 첨부한 글을 인터뷰 중 직원을 통해 입수, 내용을 그대로 옮겼다.)

친애하는 영산가족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모두 경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지금처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순간이면 모든 사람들이 지난해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새롭게 한 해의 계획을 수립하고 새로운 각오를 다집니다. 자기 자신과 가족과 회사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뭔가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영산 가족 여러분들 또한 마찬가지로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이에, 여러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이 책을 권합니다. 어려운 불황기 속에서도 아주 짧은 시간 내에 매출과 손익 및 조직 면에서 신화적인 성장을 이루어낸 일본 전산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라는 불굴의 정신과 포기를 모르는 의지야말로 자신의 발전은 물론 회사의 발전에 필수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안 된다’고 변명할 거리를 찾는 시간에 차라리 ‘되는 다른 방법’을 찾으라는 나가모리 시게노부 사장의 가르침을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실력이 없으면 시간을 두 배 투자하여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말 또한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매사에 큰 열정과 열의와 집념을 갖도록 합시다.


본인을 비롯한 임원진 및 모든 관리자들은 ‘한 마리 늑대가 이끄는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의 집단’과 ‘한 마리 양이 이끄는 아흔 아홉 마리의 늑대 집단’이 서로 싸운다면 어느 집단이 이길 것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답하도록 합시다. 옛날 많이 꾸짖었던 선생님과 엄한 상사가 훗날 더 오랫동안 머리에 남습니다.


우리 영산 또한 우리 나름대로의 기업 문화를 만들어 갑시다.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우리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또 새로운 각오를 다져봅시다.

‘사람이 희망이고 사람이 힘이다’라는 경구를 생각하며 본인 또한 언제나 여러분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미래의 희망한 비전을 만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월 4일 서울에서

박종범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면 박 회장은 무엇부터 내세울 지 궁금하다.

내가 살던 집이 남의 집이 되면 옛집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그리고 빠르게 잊어야 재기할 수 있다. 나는 일하던 기아법인장의 자리를 철저하게 버리는 것으로 새 일을 시작했다. 대기업에 있었다는 생각에서 깨어나 바닥에서 겸손한 자세로 바이어를 찾아 다녔다. 일도 자동차 비즈니스의 기존 업무를 완전히 떠나서 새롭게 내 사업을 구축해 가는데 매달렸다. 내가 만든 회사는 모든 것이 오르지 내 개인의 꿈과 힘으로 새롭게 구축되어 주인과 기업이 일체감 있게 움직일 수 있었다.


무역은 처음부터 한국산 제품을 주로 취급한 것인가?

가장 자신 있게 팔 수 있는 물건이 내나라 상품 아닌가. 무역에서는 구매자가 갑이고 공급자는 을이다. 무역업은 품질, 가격, 납기가 잘 맞아야 한다. 물건이 좋고 가격이 맞아도 필요한 기간에 전달하지 못하면 신뢰를 잃는다. 내가 전문 비즈니스 분야로 생각하는 자동차 관련 품목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은 2005년부터였다. 그 힘을 실어 준 곳이 거래관계에 있던 뱅크오스트리아였다. 2008년에는 ‘올해의 고객상“까지 받았다.


이제 사업 일보다 개인의 이야기로 화제를 바꾸자. 태어나 자란 곳이 영산강이라는데.

농업에 종사한 선친(박흥두)은 내가 대학 4학년 때 별세하셨고 어머니(백남례 86)는 건강하게 살아 계신다. 3남4녀 7남매 중 넷째인 나는 광주 사레지오 고교를 졸업하고 조선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성적이 좋아 법관을 지망했지만 법대 진학이 뜻대로 안되어 졸업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며 다시 고시를 준비하다가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대성그룹에 취업해 무역 업무를 시작하면서 인생행로가 달라졌다.


비엔나에서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은?

아내(송효숙 49)와 비엔나공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는 큰 아이(박건영 25)와 런던정경대에서 법학을 전공하는 둘째(박건호 23)까지 아들 형제가 있다. 그런데 두 아이가 초등학교 때 비엔나로 가 한국에서 군복무 의무가 없으나 부모 의사와 본인들의 희망이 서로 합치해 동시에 나란히 대한민국 육군에 당당하게 입대했다. 지금 신병으로 복무중인데 이번에 대구 세계한상대회 참석하고 바로 두 아들이 복무중인 부대로 위문을 갔다. 마침 큰 아이는 200km 행군훈련을 하고 귀대해 가족 상봉을 하는 날에 위문을 하게 되었다. 구리빛 건강한 얼굴에 씩씩한 국군 유니폼의 모습으로 멀리서 온 아버지를 감격에 젖게 했다.



두 아들을 나란히 입대시킨 부모님이나 군복무를 지원한 두 아들 형제 이야기는 흐뭇하고 감동적이다. 군 입대를 피하기 위해 멀쩡한 몸을 망가뜨리며 수술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박 회장은 오스트리아 한인연합회를 이끌면서 한인회관을 건립중인 것으로 안다. 한인회 소식을 전해 달라.

오스트리아에 사는 우리 교민이 유학생을 포함해 2천5백여 명에 이른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교민들은 자녀들이 점점 한국어도 멀어지고 문화 역사 등 모국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어 민족의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다. 교민들의 구심체가 될 한인문화회관을 세우기 위해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운영하는 전미자 여사가 위원장을 맡고 한인연합회장인 내가 부위원장인데 이미 15억 원 정도를 모금했다. 우리 회사의 사업파트너들도 많은 성금을 내놓았고 이번에 모국의 재외동포재단에서 15만 달러 지원도 약속했다. 오스트리아 정부도 비엔나 중심가에 건물과 부지를 99년간 무상임대해주기로 해 우리가 바라는 한인문화회관이 2011년 6월 준공 예정이다.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문화 교류사업도 적극적으로 펼쳐 온 것으로 알고 있다. 영산그룹에 한오문화교류 사업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계획하고 추진해온 문화관련 사업은 어떤 것들인가?

오스트리아와 한국의 교류 역사는 1958년에 시작되어 곧 50주년을 맞는다. 가톨릭 성직자가 한국에 오고 우리 유학생이 비엔나를 찾으면서 비롯된 한오교류사를 틈이 나면 자료를 집대성해 책으로 편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승만 초대대통령의 부인 프란채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오스트리아 주재 대사를 역임해 그곳 국민들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높다. 2010년 7월에는 한오문화교류협회가 창립되어 발기멤버인 봉준호 영화감독의 누이 되는 봉지희 교수(안양과학대)가 우리 한인연합회와 여러 가지 교류사업 추진에 앞장서고 있다.

한인문화회관이 건립되면 한글학교와 유학생들의 활동 공간이 마련되고 본격적인 한오문화교류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 이미 한오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가곡의 밤 공연을 비엔나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특히 음악의 도시인 비엔나의 오케스트라와 한국의 오케스트라의 교류 공연을 정기적으로 마련하고 우리 사업의 파트너가 많은 우크라이나와 슬로바키아와도 한국과 예술문화 교류행사를 마련할 계획이다.

영산그룹의 현지법인에서 스포츠단체를 지원하는 나라도 있지만 비엔나에서는 6년전부터 영산컵 축구대회를 비롯해 골프 농구 탁구 테니스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앞으로 행사를 발전시켜 모국과 교류전을 열 계획도 있다.

노후를 어떻게 살 것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이제 이 정도로 내가 할 일을 했다는 선에 이르면 아내와 내가 태어나 자란 모국의 고향으로 돌아가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젊은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돈을 바라보고 달려가면 돈이 도망가지만 꿈과 일을 좇으면 돈은 저절로 따라온다. 긍정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열정과 집념으로 살고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 성공에 가장 필요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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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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