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미스 박’과 함께한 추억여행 3박4일
어머니 ‘미스 박’과 함께한 추억여행 3박4일
  • 김두호
  • 승인 2008.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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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에 떠나면 좋을 이색여행 체험기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너나없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효자 효녀들이다. 그러나 복잡다단(複雜多端)한 사회생활에 묻혀 일과 시간에 쫓겨 살다보면 어머니라는 성스럽고 소중한 어른의 모습을 잊고 살 때가 많다. 배우자가 생기고 자식을 낳으면 어머니와 함께 할 시간도 줄어든다. 필자는 중년을 넘어 선 어느 해 일상의 모든 것을 접고 팔순을 바라보는 노모와 단 둘이 추억여행을 다녀왔다. 모자가 함께 아름다운 추억 속으로 떠난 3박 4일의 이야기는 보통 가족, 보통 사람의 평범한 기행문이지만 어버이날을 앞두고 이색 체험담을 공개하기로 했다.



필자는 30여 년간 신문사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 중 대부분을 서울시청 뒤에 있는 프레스센터 빌딩 5층에서 보냈다. 젊은 날의 꿈같은 시간을 그곳에서 모두 소모하고 지천명에 이른 어느 해 4월 이맘 때였다. 더러운 매연이 스며들던 창가로 건물 앞에 심은 라일락 향기가 어린 시절 고향집 마당에서 어머니와 맡던 그리움을 안고 콧속으로 후욱 날아들었다.



당장 3박4일 휴가원을 냈다. 오래전부터 생각만 하고 미루어 왔던 ‘어머니와 추억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삶의 흔적을 찾아 무작정 떠나는 아들과 어머니의 여행은 준비할 것도 없고 결행이 복잡하지도 않았다. 다른 가족들이 잠든 새벽에 모자가 조용히 손을 잡고 아파트를 빠져나와 아들이 모는 차안에서 서로 기억을 되살려가며 목적지를 정하면 된다.



미스 박으로 돌아간 김천 노실고개 친정집


낳은 자식 많고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의 어머니들은 어느 가정 할 것 없이 희생의 모성애로 자식들을 키웠다. 교육공무원의 박봉에 7남매가 매달려 살았던 필자 가족도 사는 형편이 늘 궁핍했고 힘들고 모자라는 부분을 어머니가 눈물과 땀으로 채워주셨다.



우리는 먼저 어머니가 어린 시절을 보낸 친정집부터 찾아보기로 했다. 필자의 외가인 그 집에는 어머니의 추억과 함께 철없이 뛰어놀던 필자의 어린 시절 추억도 고여 있다. 경북 금릉군(현재의 김천시) 감천면에서 밀양 박씨 가문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어머니는 불행하게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없다. 필자의 외조부인 어머니의 아버지는 아기를 둔 19살 신부를 두고 일본으로 떠난 후 영원히 돌아오지 않으셨다. 천사처럼 착하고 예쁜 필자의 외조모는 일생동안 딸 하나와 십자가를 양손에 잡고 홀로 사셨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처녀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친정은 김천역전에서 평화동 길로 20여분쯤 걸어가면 닿는 ‘노실고개’ 언덕위에 있다. 필자는 고향인 상주에서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의 손목에 이끌려 그 작은 언덕위의 집을 빈번하게 찾았다. 그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재판소 길(과거 법원을 그렇게 불렀다)로 막 들어서자 어머니는 60여 년 전의 ‘미스 박’이 되어 상기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연애편지 받던 어머니의 애틋한 추억


“여기서 너의 아버지가 숨어 있다가 불쑥 튀어나와 연애편지를 전해주고 얼굴을 붉히며 도망가곤 했지. 한 달만 지나면 방안에 편지가 수북이 쌓였어.” 상주에서 김천고등학교(과거 김천고보)로 유학 온 아버지는 여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인 회사에 근무하는 어머니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구애를 하셨던 모양이다. 이윽고 옛 자리에 그대로 있는 평화동 교회 앞을 지나 노실 고개 언덕에 있는 외가를 찾았다. 옛집도 지붕과 흙벽돌의 담장이 달라졌을 뿐 변한 게 없었다. 어릴 때보다 더 작게 보이는 그 집 마당 끝에는 새순을 고추장에 찍어먹던 가죽나무가 고목으로 남아 있었다. 외할머니는 딸네 집인 상주로 오셔서 우리 고향집 농사일로 여생을 보내시고 그곳 앞산에 잠들어 계신다. 또 안동 복주여중 교장을 끝으로 정년퇴임하신 ‘미스 박’의 부군(필자의 아버지)도 고희를 눈앞에 두고 오래전 떠나셨다.



필자에게 추억 속의 외갓집은 외할머니의 포근한 사랑이 솜털같이 느껴지는 편안한 둥지였다. 외손자를 위해 좁은 마당에 포도나무도 정성껏 가꾸셨다. 밤낮없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일하던 옆집 대장간 아저씨,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정일이, 부채를 만들어 팔던 이만이네 가족들, 모두 어디서 사는 지 그리웠다. 외가 동네를 벗어나 다시 어머니가 평생 잊지 못하던 당신의 외가로 향했다. 경북 금릉군 지례면 삼실리였다. 김천 시내에서 거창 가는 길로 1시간쯤 달려 산속 도로로 꺾어 들어간 산중턱의 20여 가구가 있는 동네다. 지금은 마을까지 차도가 있으나 과거에는 다섯 등을 넘어 꼬불꼬불 산길에 올라야 닿는 오지였다. 속칭 ‘똥재“라는 산 이름도 그 산의 재를 넘을 때 너무 힘이 들어 똥을 쌌다는 데서 유래됐다.



동구 밖에 이르러 외딴집 앞에서 어머니는 걸음을 멈추신다. 되살린 까마득한 옛 기억 속에 삼돌네 가족이 떠오른 것이다. 그 집을 지날 때 호박전을 맛있게 얻어 잡순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어디선가 뻐꾸기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필자가 고향 마을에서 해마다 여름이면 듣던 소리와 같았다.



할머니가 되어 온 아기 외손녀의 눈물 젖은 감회


마을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희미한 기억을 살려 당신의 어머니와 함께 물을 퍼 올리던 우물을 찾으셨다. 잡초에 묻혀 흔적도 없지만 우물자리를 확신하며 가리켜 주셨다. 그리고 70여 년 만에 당신의 외가를 방문하셨다. 금방 어머니의 눈에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 초가지붕은 양철지붕으로 바뀌고 지금의 주인은 도시로 떠나고 없었다. 녹슨 자물쇠가 문고리에 걸린 빈집 마당에서 그 집의 아기 외손녀는 할머니가 되어 돌아와 넋을 잃고 한참동안 서 계셨다. 삶은 시간에 실려 그토록 무상하게 인생이 흘러간 것이다.





어머니의 친지도 모두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고 마을에는 낯선 사람들이 할 일 없이 방황하는 우리 모자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는 뒤따르는 아들의 귀에 들리도록 몇 번이고 독백처럼 말씀하셨다. “꿈만 같구나. 세상 모든 일이 꿈이구나” 라고. 어머니는 어리실 때 당신의 어머니와 외가에 가면 반겨주셨던 어른들을 북받치게 그리워하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이어서 찾아 간 곳이 어머니가 어릴 때 살던 친정집이었다. 김천시 남산동 노실고개로 이사 가시기 전에 살던 집은 금릉군 감천면 금송리에 있었다. 산골짜기에 끼어 있는 외딴 마을, 필자의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살던 집은 역시 알 수 없는 노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분들은 난데없이 나타나 과거로의 여행을 한다는 모자를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무표정한 시선으로 인사를 받았다. 주민들도 몇 번 바뀌어 어머니가 알던 분들은 마을을 떠난 지 오래였다. 마을 어귀로 돌아 나오면서 어머니는 당신의 조상들이 잠드신 산소를 보고 싶어 하셨다. 그 언저리에 있었다는 백일홍 숲은 간 데 없고 이끼 낀 밀양박씨의 돌비석 주변에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산천은 의구한데 사람은 가고 없는 유년의 친정집


“저 고개를 넘어 밤늦게 학교에서 돌아올 때 우리 엄마(필자의 외조모)는 여기 마을 앞에서 호롱불 초롱을 들고 어린 딸을 기다렸지.”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서 계셨던 자리에서 당신 어머니가 떠나신 먼 하늘을 바라보신다. 산에서 캔 도라지를 고추장에 찍어 드시며 어머니는 또 말씀하셨다. “꿈속에서 헤맨 것 같구나”라고. 멀리 어머니가 당신 어머니와 메뚜기를 잡으며 헤맸다는 들판 가운데로 경부선 열차가 세월처럼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필자는 신문사를 떠나 여유가 생기면서 몇 차례 더 어머니와 ‘사람 찾기’ ‘추억 찾기’ 여행을 다녔다. 지금 여든 일곱이신 어머니는 고향에서 꽃을 가꾸며 사신다. 겨울이 다가오면 아들 집으로 오시지만 서울의 더러운 공기가 싫고 벌 집 같이 삭막한 아파트 동네가 싫어서 7남매와 추억을 만드시던 상주 낙동강 인근의 고향 집에 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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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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