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가 만난 人] 위안과 치유음악의 라이브 가수 권용욱
[김두호가 만난 人] 위안과 치유음악의 라이브 가수 권용욱
  • 김두호 인터뷰어
  • 승인 2021.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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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명 넘는 팬클럽 두고 인기 누리기도
-마지막 남은 미사리 카페촌의 스타 싱어
-'365생명사랑' 캠페인 홍보대사로도 활동
가수 권용욱은 위안과 치유 음악의 가수, 사랑을 노래하는 ‘희망의 가수’다. 평생을 공백기 없이 가수를 천직으로 라이브 공연 활동을 해오며 ‘미사리 카페촌’을 상징하는 마지막 인기 싱어로 살고 있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 가수가 된 뒤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음악활동을 계속하는 가수가 가요계에는 흔치 않다. 권용욱 가수(1969∼ )는 크게 히트한 노래는 없지만 평생을 공백기 없이 가수를 천직으로 라이브 공연 활동을 하며 ‘미사리 카페촌’을 상징하는 마지막 인기 싱어로 살고 있다.

그는 바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불면증, 우울증 환자로 넘치는 이 펜데믹 고난의 시대를 살며 음악을 찾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미사리 카페’에서 만날 수 있는 위안과 치유 음악의 가수, 사랑을 노래하는 ‘희망의 가수’로 통한다.

노래 ‘희망’(HOPE)은 2001년 12곡을 수록한 그의 첫 앨범 타이틀곡이다.

‘이 험한 세상 사람으로 태어나 / 살아가는 일에 지쳐 가끔 넘어지지만 / 나 그댈 만나 사랑이란 힘으로 매일 희망 속에 꿈을 꾸어요’로 시작되는 노래는 사는 게 힘들어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노래다.

7남매 집안의 막내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 트럼펫, 하모니카를 불며 음악인생 쪽에 발을 들여 놓았다. 전자공학을 전공하였지만 대학시절부터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불렀고 부산에서 라이브 가수로 출발한 지도 30년이 지나갔다.

‘미사리 카페촌’으로 가수들이 몰려들 무렵 서울로 옮겨와 한 때 2000명이 넘는 권용욱 팬클럽의 함성에 묻혀 솔로 콘서트도 여러 곳에서 개최했다.

이제 ‘미사리 카페촌’이 음악팬들에게 추억의 그곳이 되었으나 여전히 그는 키타를 치며 미사리 <열애>라는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가수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입과 코를 가리고도 사람끼리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고난의 시대를 만나 희망을 노래하고 위안의 노래를 불러주는 그를 대한민국인터넷대상 사회공헌부문 최우수상 매체 <인터뷰365>가 펼치는 ‘365 생명사랑운동’의 ‘살자TV’가 홍보대사로 위촉했다.

‘함께 가요. 희망의 나라로’

가수 권용욱/사진=인터뷰365

- 송창식 윤시내 인순이 이은하 조관우 강산에 이치현 박강성 채은옥 임희숙 최백호 권인하 강인원 신형원 등등 한 시대 가요무대의 주역들이 대다수 몰려와 노래를 불러주던 ‘미사리 카페촌’이 지금은 모두 사라진 것 같아요.

"1990년대 번창기의 미사리 카페촌에는 60여 개 업소가 라이브 무대를 운영했어요. 그러다가 열기가 조금 식어지면서 무대를 넓히고 업소가 서로 합병을 하는 시기에 30여 개 정도 유지되더니 손님이 점점 쇠퇴하면서 지금은 두 개 정도만 남아 있어요."

- 그 중 한곳에서 지금 노래를 부르고 있군요. 미사리에서 활동한 시기는 언제부터지요?

"아하, 25년 전이네요. 1996년 부산을 떠나 미사리로 왔어요. 직접 배운 적은 없지만 노래 공부를 하며 멘토처럼 생각한 최성수 박강성 선배도 이곳에서 만날 수 있었지요."

- 그 전에는 부산에서 활동했다는데.

"안동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경남정보대의 전자공학과 진학한 뒤에도 공부보다 음악동아리 활동에 빠져 살았어요. ‘싱어롱’이라는 그룹에서 활동하면서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가 부산시내 라이브 카페에서 인정을 받아 솔로로 노래를 부르게 되었어요. 당시 부산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서면, 남포동, 해운대 등지에 디스크자키(DJ)가 진행하는 음악 홀 형태의 카페가 많았어요."

- 음악을 좋아하게 되거나 가수가 되고 싶은 꿈을 갖게 된 동기가 있나요?

"안동시 산골동네(남후면 상아리)가 고향입니다.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아마도 맏형님이 음악을 좋아하시고 하모니카를 잘 불어 영향을 받은 것도 같아요. 나도 하모니카 연주에 일찍 호감을 가졌고 고교 시절에는 트럼펫을 불기도 했어요. 그 때 악대반에 들어가 나중에 악장을 했어요. 안동시내 축제 행사가 있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나의 모습이 멋졌어요. 연주악대 맨 앞에서 통솔자로 지휘봉을 휘두르면서 구경꾼들이 늘어선 큰 길을 지나갈 때의 그 희열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 그런 시절이 있었군요.

"그러나 성장기는 힘들게 느낀 일이 너무 많아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안동시내로 옮겨 자취생활을 하게 되었고 성격이 워낙 소심해 스스로 자제를 많이 하다 보니 친구관계도 왕따로 느낄 만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혼자 즐기는 음악이 좋아졌고 가수들의 노래에 많은 위안을 받아 일찍 그쪽으로 꿈을 찾으며 친숙해 진거 같아요. 사춘기도 많은 시간을 혼자 노래 부르거나 음악을 듣는 시간을 즐기며 보낸 것 같습니다."

삶의 용기 준 2천여 팬들의 환호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가수 권용욱. 그는 따뜻하게 격려의 말을 건내 주는 청중이 한사람만 있어도 힘들지 않는 것이 라이브 가수의 보람이라고 말한다. /사진=권용욱 제공

- 미사리 전성기에 겪었던 일화들을 공개한다면

"미사리 카페촌에서 권용욱의 팬클럽이 대단했었어요. 2000명이 넘었으니까요. 정확히 2천50명까지 갔었어요. 그 때가 권용욱의 노래인생에서 가장 행복했고 하이라이트 시절로 아무래도 내 삶에서도 정점을 찍었던 시기 같습니다. 그때 받은 에너지가 지금까지 서울 대학로와 지자체 문화회관, 수도권 도시의 공연무대에서 연 2, 3회 단독 콘서트를 꾸준히 개최해 올 정도의 도움이 되었습니다."

- 그런데 2001년에 신곡 발표를 하게 된 데뷔 앨범이 나왔으니 일찍 라이브 무대에 선 경력에 비해 늦은 편입니다.

"매일 노래를 부를 공연스케줄에 매달려 살다보니 음반을 낼 기회도 만들지 못했고 또 섭외할 틈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뜻밖의 독지가를 만났어요. 어느 날 내 노래를 듣고 난 카페 고객 한 분이 왜 당신 같은 가수가 발표 앨범이 없느냐면서 바로 음반을 내는데 도움을 주신거지요.

바로 더하기미디어 이성권 대표인데 그분 도움으로 13곡을 수록한 타이틀곡 ‘희망’ CD를 출반하게 되었어요. 작곡가 김범수(가수와 동명이인)의 창작곡들입니다. 바로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위안이 되는 치유 음악이라고 해서 지금 라이브 무대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어요."

‘이 험한 세상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가는 일에 지쳐 가끔 넘어지지만/ 나 그댈 만나 사랑이란 힘으로 매일 희망 속에 꿈을 꾸어요’. 가수 권용욱이 발표한 '희망' 가사의 일부다. 그는 희망을 노래하고 위안의 노래를 부른다./사진=인터뷰365

- 오랜 세월 라이브 활동을 하다보면 팬들과 나눈 그런 비화들이 많겠군요.

"많지요. 대기업의 임원으로 있었다는 초로의 신사 한 분은 내 노래를 듣고 너무 마음이 편안해져 일주일간 매일 찾아와 결국 마음의 친구로 알게 된 분이 있어요. 그 분은 사업상의 좌절에서 비롯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극단의 생각도 하며 강변을 헤매던 중 우연히 라이브 카페로 찾아온 분이었어요."

- 지금은 끔직한 펜데믹 재난기입니다. 특히 공연이나 카페 영업은 가장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업종 중 하나입니다. 2년째 접어들어도 끝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고통을 강요하는 때인데 라이브 가수의 활동은 영향을 받지 않나요?

"무슨 말씀을요. 여기저기서 팬데믹 비명소리가 들리면서 순식간에 나의 활동 주변도 참담하게 문을 닫을 정도의 폐허가 되어버린 것을 보게 되었고 나도 한동안 불면증 우울증 공항장애의 고통을 겪었어요. 술로 고통을 달래기도 하고요.

한동안 노랠 못 부르니 감염 공포 따위보다 가족의 생계와 생존을 걱정하는 일이 벌어져 그걸 극복하는데도 힘들었어요. 그러다가 바닥에 이르면 올라갈 길 밖에 없다는 말을 자각하면서 내 노래처럼 희망을 향해 기타를 품에서 내려놓지 않고 버텨 조금씩 안정을 회복했어요. 가던 길을 벗어나지 않고 열심히 땀 흘려 가며 단지 몇 사람을 위해서라도 노래를 부르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게 모두 내가 사랑하는 음악, 내 노래를 들어주는 분들이 주는 힘 덕분인 것 같아요."

- 한번 무대에 서면 얼마동안 공연을 합니까?

"저는 노랠 시작하면 필요 없는 말을 안해요. 한 시간을 두고 노래를 이어가는데 온 몸으로 열기를 토해내는 탓으로 온 몸이 땀으로 젖어요. 그걸 지켜보며 따뜻하게 격려의 말을 건내 주는 청중이 한사람만 있어도 힘들지 않는 것이 라이브 가수의 보람입니다. 때로는 산삼을 캐러 다니는 심마니 분이 산삼 한 뿌리를 선 듯 건네주며 땀에 저린 내 등을 어루만져 준 일도 있어요. 초대를 받거나 선물을 받는 경우는 허다하구요."

사진=권용욱 제공

- 가족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나요?

"딸 하나 두고 있어요. 3남 3녀 형제의 맏이로 음악을 좋아하시던 큰 형님께서 평생 초등학교 교직에 계시다가 정년퇴직 후 포항에서 하모니카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 유튜브 방송도 운영하고 있지요?

"팬데믹으로 공연활동을 못해 마음의 병이 생길 무렵에 돌파구로 유튜브 방송을 하게 되면서 큰 위안이 됐습니다. 지금도 열심히 ‘권용욱TV’를 운영하고 있어요. 일찍 이런 쪽으로 눈길을 돌리지 못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열심히 공연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생은 올라가면 내려갈 길밖에 없고 내려가면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는 말이 진리 같아요. 가진 것이 많다고 교만에 차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마음 속으로 그 말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리고 힘들 때마다 그 말이 내게 희망의 노래로 떠오릅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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