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세 일하는 농민 김주석 옹
92세 일하는 농민 김주석 옹
  • 김철
  • 승인 2008.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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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고향을 벗어난 적 없는 농촌 지킴이 / 김철




[인터뷰365 김철] ‘이태백’은 오래 전부터 흔한 일이다. ‘사오정’이 앞당겨져 ‘삼팔선’이라고 자조하는가 하면 ‘오륙도’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는 세상이 됐다. 실업과 실직이 넘치는 세태를 풍자하는 서글픈 유행어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조어와 무관한 직업도 많다. 그 중의 하나가 농업이다. 농민에게는 정년이 없다. ‘삼팔선’과 ‘사오정’을 걱정할 필요 없고 ‘오륙도’ 소리를 듣는 5, 60대는 되레 젊은이로 취급받는다.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92세의 김주석 옹(경북 상주시)은 정년을 모른다. 논밭이 직장이고 직업이 농업이기 때문이다.



농사일을 한다고 해서 정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을 상실하면 농사를 포기해야 한다. 이 경우는 대부분 질병을 동반하는 고령이 원인이다. 농촌인구의 고령화로 현재 농촌에는 80대의 연로한 농민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아흔이 넘도록 농사를 짓는 전업농민은 전국의 농촌 어디를 가도 보기 어렵다. 그 점에서 김 옹은 우리나라에서 찾기 힘든 최고령에 드는 농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한국인들의 평균수명이 78.5세(2005년 기준)인 점을 볼 때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연령이다. 평균수명보다 14년을 더 살면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80대의 노인들조차 엄두를 내기 힘든 노익장을 과시하는 김 옹을 찾았다. 김 옹이 거주하고 있는 곳은 상주에서 20km 정도 떨어진 낙동강 인근의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그 연세가 되도록 농사를 짓는다는 게 궁금했다. 적은 농사도 아니다. 논 15마지기와 밭 5마지기를 합쳐 20마지기가 된다.



“농촌에서 일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좀이 쑤셔. 농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일수록 그래. 자식들이야 농사짓는 늙은 애비가 당연히 못마땅하겠지만 내가 짓고 싶은데 어쩌나. 아직까지 움직일 힘이 있으니까 논밭을 부치는 게지. 농사라는 게 어디 정년이 있는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짓고 싶을 때까지 짓는 게 농사 아닌가. 세상에 농사만큼 좋은 직업도 없어. 누가 눈치 볼 필요가 있나, 잘릴 염려가 있나. 죽을 때까지 정년이 보장되는 셈이지.”




김 옹은 육체노동이 요구되는 농사일이 힘들다고 하지만 농사만큼 자유롭고 정년이 보장된 편한 직업도 드물다고 자랑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는 노동이 일상인만큼 사실은 별로 힘 들 것이 없다고 했다. 더구나 그로 인해 얻어지는 수확의 기쁨과 건강한 삶은 다른 어떤 직업과 비교해도 보람 있는 직업이라고 강조한다. 김 옹의 하루는 보통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가마솥에 물을 끓이며 소 닭 개 등 가축에게 먹일 사료를 준비하는 것부터 시작, 어두워질 때까지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는다. 마을 사람들이 혀를 내두른다.



육체노동으로 단련된 김 옹의 노익장은 한 마디로 놀랍다. 일손이 많이 가는 모심기나 벼 수확을 제외하고 기계에 의존해 농사를 짓는 법이 없다. 한가하게 시간을 허송하지도 않는다. 일이 없을 때는 일거리를 만들어서라도 일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부지런한 성격이다. 남들이 외면하는 농로변의 유휴지까지 텃밭으로 일구어 옥수수며 콩, 참깨 등의 농작물을 재배할 정도다. 보통 농부들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이다.





김 옹은 왕복 30리가 되는 장터를 오갈 때는 마을까지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마다하고 건강에 좋다며 낡은 자전거를 고집하고 있다. 김 옹의 걸음걸이나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모습을 보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자세가 바르고 발걸음도 가볍다. 그의 앞에서는 허리가 굽은 7, 80대의 마을 노인들도 감히 아프다는 한숨 소리를 낼 수가 없다.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옹이 지금까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농사는 건강하지 않으면 짓기가 어렵다. 아흔이 넘도록 농사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남달리 건강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김 옹의 건강비결이 궁금했다.



“건강을 염두에 두고 특별히 노력한 게 없다오. 비결이 있다면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고 삼시 꼬박꼬박 밥 먹고 온종일 맑은 공기 마시며 일하는 것이 전부지. 일이 운동이 아니겠나. 언젠가 아침에 일어나 생수를 마시면 몸에 좋다는 애기를 듣고 계속 마신 것이 도움이 됐을라나 모르겠네.”



비결이 없는 것 같지만 김 옹의 말을 간과해서 안 될 대목이 있다. 에콰도르의 발카밤바 등 세계적 장수지역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장수지역으로 꼽히는 구례 순천 북제주 등도 공기와 물이 맑고 환경오염이 안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 옹이 거주하는 마을도 이와 다를 게 없다. 낙동강 지류의 상류에 위치한 마을은 고지대인 데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와 물이 깨끗한 청정지역에 속한다. 세계적인 장수 지역과 같이 기본적인 장수의 환경요건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30여명의 마을 주민들은 70세 이상의 노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마을 단위로 치면 당연히 장수촌에 속한다. 인근 마을들이 거의 다 그렇다.



일반적으로 환경 요인 외에 무병장수의 요인에는 여러 가지 닮은꼴이 있다. 우선 장수촌의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쉴 새 없이 일을 한다는 점이다. 평생 농사를 짓는 김 옹 역시 쉬지 않고 일을 한다는 점이 같다. 이것은 환경요인과 함께 운동량이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식생활도 장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게 장수촌의 주민들은 소식과 함께 채소 육류 생선 콩 제품 등의 순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채식이 건강 장수에 필수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넌센스다. 세계적인 장수 지역으로 알려진 일본 오키나와 주민들은 삶은 돼지고기를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월등하게 많이 먹는다는 것이 하나의 상징적인 예가 된다고 하겠다.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채소류보다 육류섭취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도 채식위주의 식단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장수마을의 노인들이 대체로 특별한 음식을 먹지 않듯이 술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김 옹의 경우라고 해서 이렇다 할 건강식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여느 장수노인들과 같이 평소 먹는 음식을 소식으로 즐길 뿐이다. 그러나 끼니때마다 평균 한 공기의 밥은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든다. 반찬은 손수 가꾸고 기르는 채소와 토종닭이 낳은 달걀 등으로 요리하는 자급자족형이다.



김 옹의 경우 특이한 점이 있다면 언급한 대로 기상과 함께 생수를 매일 빠뜨리지 않고 한 컵씩 마신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우리가 날마다 마시는 물이 공기와 함께 건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엿보게 하는 것이다. 환경과 운동 그리고 음식 외에 성격도 장수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학자들에 의해 발표된 세계적인 장수지역과 우리나라 장수지역 노인들의 성격을 조사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낙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그것이다. 이는 김 옹의 말에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나는 농사를 지어도 편안한 마음으로 지어. 일을 하다 피곤하면 쉬었다 하는 거지. 오늘 할 일을 마무리 못하면 내일하면 되거든. 태풍이 와도 걱정하지 않아. 걱정해서 될 일이 아니잖는가.”



그는 평소 말이 없는 것으로도 소문이 났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말이 적을수록 시비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만큼 스트레스를 자초할 일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낙천적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 김 옹의 성격은 농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소출을 많이 올리기 위해 애를 쓰는 법이 없다. 농사를 지어도 느긋하게 짓는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김 옹의 논에서만 해마다 벼메뚜기를 볼 수 있다. 농약을 뿌리지 않는 대신 수확량은 반감되지만 그래도 건강을 위해 그게 훨씬 낫다는 계산에서다. 그는 수확한 무공해 쌀을 도시에 살고 있는 자녀들에게 제 값을 받고 공급한다.



환갑 무렵에 상처(喪妻)를 한 뒤 재혼한 서른 살 연하의 부인과 단 둘이 농업을 천직으로 여기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김 옹은 지금까지 다른 일을 하기 위해 고향을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는 만년 향토 지킴이다. 7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농사에 뛰어들어 평생 한 우물만 파고 있다. 대처로 나간 3남4녀의 자녀들이 농사일을 그만 두도록 만류해도 어림없다. 그러나 요즘은 전과 같지 않다. 뜻하지 않은 병으로 지난해는 난생 처음 병원신세를 졌다고 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힘든 논농사를 다른 사람에게 잠시 맡기고 밭농사만 짓지만 농사를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노라고 말했다.



김 옹의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농민들은 대부분 질병으로 노동력을 상실하지 않는 한 평생 일과 씨름한다. 그들에게는 일손을 놓는 것이 곧 죽음으로 이어지는 불행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쉬지 않고 전원에서 일을 하는 대신 자연은 그들에게 깨끗한 공기와 물을 제공하며 건강장수를 보장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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