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사의 '거목', 고 최은희 여사를 떠올리며 (하)
한국영화사의 '거목', 고 최은희 여사를 떠올리며 (하)
  • 김두호
  • 승인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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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영화 만들 때 가장 행복"

[인터뷰365 김두호 기자]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끈 전설의 여배우 최은희 여사가 투병생활 끝에 향년 92세로 타계했다. 

1926년생인 고인은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 후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 '상록수'(1961년), '한국의 비극'(1961), '대심청전'(1962), '빨간 마후라'(1964) 등의 다수의 영화에 출연하며 현대 한국영화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거목의 여배우였다.

기자는 1985년 북한 탈출 후 미국을 통해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저널리스트의 단체인 관훈클럽 토론회의 패널리스트로 참가해 신상옥 최은희 부부의 북한 체류기를 처음 공개적으로 고백 받는 등 영화기자로 활동하면서 깊은 인연이 있기에 고인의 별세 소식은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정정했던 고 최은희 여사를 기억하며 2007년 그와 나눴던 인터뷰를 소개한다.

▶한국영화사 전설의 여배우, 고 최은희 여사를 떠올리며 (상) 이어서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오래전부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잠깐씩 만나고 온 사람들이 많지만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8년2개월의 북한 생활 중 그곳에서 신감독과 재회하기 전까지 5년여 동안 김위원장의 보호를 받으며 생활한 최여사 만큼 김위원장에 대해 깊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물론이다. 우리만큼(신감독을 포함) 김위원장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물에 대해 좋고 나쁜 것을 평가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곳에서 접하는 모든 뉴스나 이야기들이 찬사기 때문에 좋은 점만 부각된다. 시작이 어떻게 이루어졌던 김위원장과 나는 영화가 인연의 고리가 됐기 때문에 그의 영화에 대한 애정만은 깊이 접할 수 있었다. 그는 알려진 대로 우리가 갖지 못한 <빨간 마후라> 등 옛날 필름들을 대부분 소장하고 있었다. 내가 출연한 50년대 작품도 그곳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남편역 신영균과 애첩 역 윤정희가 본처역의 나를 괴롭히는 영화 <저 눈밭에 사슴이>라는 작품을 보면서 김위원장은 얼마나 마음 아팠느냐며 위로를 해주었다. <상록수>는 그곳에서 영화 교육교재로 활용하고 있었고 <평양 폭격대> <빨간 마후라>는 반공영화인데도 잘 보존하고 있는데 놀랐다.

-신감독과 함께 북한 탈출 후 미국에 머물다가 귀국한 직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패널리스트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쓴 수기를 읽고 두 사람에게 질문을 했지만 김 국방위원장이 최여사에 대한 호감이 특별했다는 점이 최여사의 운명을 바꾼 동기였고 그것이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가까이서 느낀 인간적인 면모를 듣고 싶다.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를 데려가지 않았을 것 아닌가? 남포항에 내려(1978년 1월14일 홍콩에서 출발한 납북선 ‘능라호’ 편으로) 마중나온 김 위원장이 “내가 김정일 입네다”라고 악수를 청하며 자신을 소개했을 때 이젠 죽었구나 하고 겁이 났지만 함께 리무진 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면서부터 정중하게 대하는데 호의를 느꼈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처음부터 나를 최선생으로 불렀다. 좀처럼 하지 않던 배 멀미로 힘들어 하는 것을 보고 산보를 권하는 것까지 신경을 써주었다. 그 후 감독님(신상옥)을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5년간 살면서 김위원장의 특별한 배려가 따랐고 김위원장 가족들과도 만나며 지냈다. 사회주의의 생활 규범이나 분위기가 우리 사회와 다르지만 눈에 띄게 별난 성격 같다는 행동을 나에게 보여주지는 않았다.

-특별한 배려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기억에 남는가?

생일 때마다 축하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언젠가 고향 생각, 가족 생각으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점심을 먹지 못한 일이 있는데 그걸 알고 집안 일을 돕는 책임자를 불러서 “최선생이 고향 떠나 외롭게 사는데 왜 식사를 제대로 안 챙겨드렸나?”라며 꾸짖는 걸 보고 민망해서 혼났다. 모든 행동을 지도원이나 부부장직의 사람들이 보고를 한 것 같다.

-김위원장의 영화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다. 앞서 이야기한 것 밖에도 그와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다면?

외국영화 필름도 1만여 편 소장하고 있었다. 외국 배우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좋아했다. 또 우리 배우 중 윤정희도 좋아했다. 우리 쪽 TV 드라마를 보다가 사미자가 나오자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감독님은 그곳에 온 후 탈출을 하려다가 붙잡혀 감옥에서 고생했지만 나중에 나를 만나게 하고 다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하면서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감독님은 하루 두 세 시간 자면서 영화에 매달렸다. 우릴 인정해 주고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지원해준 것은 고마웠다. 그러나 결국 우리가 살기에는 불편한 사회였기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점들이 가장 불편했는가?

지도원이 교대로 와서 혁명사상과 주체사상에 대한 교육을 시킨다. 원래 공부하기 싫어하는데 그런 것이 힘들었다. 함부로 활동할 수 없어서 외로움이 깊어져 괴로워하면 집일을 돕는 여자가 마시지 못하는 술(인삼주)을 권하기도 했다.

-신감독은 영화 <징키즈칸> 연출에 대한 생각을 오래전부터 밝혔다. 자료도 많이 모았을 텐데.

한을 안고 떠났다. 아마도 북에 그대로 있었다면 제작비 걱정은 없으니 <징키즈칸>을 만들었을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영화밖에 모르고 살았다. 사실 나와 숙명의 부부라고 하지만 아내도 영화에서 필요하다면 소도구로 활용했을 사람이다. 시간이 있어도 오락이나 다른 취미를 몰랐다. 돈도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돈밖에 소중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 신상옥으로서 보다는 영화감독 신상옥에 대한 재평가를 받아 기념관사업을 제대로 하고 싶은 것이 지금 나의 소망이다.

-불행한 일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행복했던 때도 많았지 않은가?

좋은 영화를 만들어 국내외에서 평가를 받을 때가 나에게 가장 행복하고 보람 있었던 시간들이다. 우리가 북에 있을 때 3년여에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불가사리> <조선아 달려라> 등 17편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물량이었다. 그 중 1985년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때 <소금>(신상옥 감독)으로 내가 받은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두고 온 게 서운하다. 러시아산 청석에 지구를 상징하는 금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것도 없지만 이곳 신필름 시절에 받은 수많은 트로피도 모두 어디론가 사라졌다. 간혹 우리 부부의 50여년 삶이 망각 속에 빨려들어 가 지워진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도 든다.

-평소 맺혀 있거나 묻어 둔 이야기는 없는가?

이곳으로 돌아온 후 허전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영화와 함께 산 죄 밖에 없는데 우리 부부의 조국, 나의 조국은 멀리 있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북에서도 등을 돌린 우리를 곱게 생각지 않을 거고 이곳에서도 돌아온 후 긴 공백기를 극복하지 못해 뜬구름 같이 지냈다. 많은 것이 변해 있다. 감독님도 제대로 재기하지 못하고 불안정한 생활을 하다가 떠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연기활동을 할 수 있다는 기다림에서 산다. 한 번도 은퇴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앉은 의자 정면 벽에는 32살 신상옥 청년의 꽃다운 청춘시절 사진이 걸려있다. 팔순의 최은희의 가슴 속에는 신감독이 여전히 불같이 사랑을 나누던 열혈 청년으로 살아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면서 주인은 앵무새 코코에게 ‘안녕히 가세요’를 시켰지만 그 녀석은 벙어리 행세를 했다. 오는 손님에게 인사는 안 해도 가는 사람에게 인사를 잘한다는데 장시간에 걸쳐 주인이야기를 엿들은 그 녀석은 생각할 게 많은지 침묵에 빠져 있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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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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