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①] 지리산 '은자'의 삶에서 돌아온 김행수 영화감독
[인터뷰①] 지리산 '은자'의 삶에서 돌아온 김행수 영화감독
  • 김두호
  • 승인 201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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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수 감독 소설 '공유' 발표, 영화화 시동
-'공유'는 지리산서 준비한 판타지 불교영화
-주인공 묵계스님역 '만다라'의 전무송 캐스팅
영화 인생의 고향같은 충무로를 찾은 김행수 감독. 지리산에서 홀로 살며 불교 구법소설 ' 공유' 를 발표하고 곧 영화 연출작업을 시작한다./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인터뷰어] 한 번 영화감독으로 발을 들여놓으면 대다수 영화감독들은 연출현장을 떠나도 영화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운명처럼 일생을 영화준비로 보내며 산다. 1985년 영화 <단>으로 감독활동을 시작해 영화인생 30여년을 넘긴 김행수(1953∼ ) 감독도 예외일 수 없다. 

<화분> <한네의 승천> <바보들의 행진> <병태와 영자> 등으로 1970년대 반사회적영화 지평을 연 하길종 감독의 제자이면서, 연출팀 출신의 김행수 감독은 <지금 이대로가 좋아> 등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하고 <지장보살 신라승 김교각> 등의 다큐 영화를 찍기도 했지만, 충무로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긴 공백기에도 꾸준히 영화작업을 멈추지 않고 살아왔다. 한편은,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모아 ‘영화학교 밀짚모자’를 만들어 교장으로 재능봉사 활동도 해왔다.

김행수 감독의 인생에는 그런 가운데 영화와 함께 불교라는 또 하나의 ‘운명적인 조우(遭遇)’영역이 있다. 오래전 지리산 자락에 흙벽을 직접 쌓아올려 움막을 짓고 산중 구도자의 생활을 하는 은자(隱者)로 살면서 ‘영화와 불교’라는 화두를 접목한 작품 구상을 하고 카메라를 돌릴 기회를 준비해 왔다. 마침내 스스로의 수행체험으로 찾아낸 구도 불교의 주제를 정리해 4월 7일 출판문화회관(서울 삼청로)에서 1차로 <공유>(空有)라는 제목의 소설을 출간, 출판 기념회를 하고, 5월 10일경 <공유>출연진들은 여법한 불교 정통 방식의 삭발식과 함께 제작발표회를 준비하고 있다.

출가자는 아니지만 일찍 불교에 심취해 고승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불경, 구도의 지식을 접하고 체험하면서 순수 불교 영화를 제대로 만들어보겠다는 간절한 소망과 포부를 드러낸 김행수 감독을 만났다.

-김 감독이 지리산으로 들어가 홀로 도인처럼 살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지 오래 된다. 지리산으로 들어 간 까닭이라면?

용인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 주로 지리산에 머물지만 나는 직업이 영화감독이지 도인도 아니고 승려도 아니다. 그러나 사는 방법이나 생활은 스님들의 토굴 수행생활과 별로 차이가 없으니 도인으로 산다는 말도 허튼소리는 아니다. 과거 지리산 자락이 좋아서 언젠가 와서 살고 싶어 약간의 등 부칠 땅을 마련해 둔 곳이다.

-지리산 어디쯤인가?

경남 하동군 청암면이다. 작년에 도로명 주소를 받았다. 움막으로 주민등록 이전 신청을 하려 면사무소로 갔더니 도로명 주소가 없으면 신청을 받아 줄 수가 없다고 하더라. 할 수 없이 가건물신청을 하게 되었다. 겨울에 춥긴 해도 누워서 하늘이 보이는 가건물 비닐 움막이 좋다. 청학동이 지척이라 지리산 중턱으로 해발 800m 쯤 될 거다. 처음에는 비바람만 가리는 비닐하우스를 짓고 살다가 이번에 주민등록 이전 때문에 내 손으로 흙을 뭉쳐 쌓아 올렸다. 대여섯 평 공간이지만 구들장도 놓고 충분히 살만한 누울 자리가 생겼다.

- 그럼 그 공간이 마음 수련하는 선방인가? 영화감독이 작품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작업 공간인가? 아니면 그저 자연을 벗해 사는 평범한 귀촌 생활인인가?

귀촌만 빼고 모두 무관하지 않다. 마음 수련이라는 것이 꼭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다.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이라 하지 않은가. 가나서나 누우나 자나, 말하나 침묵하나 모두 지 마음 붙들라 하지 않은가. 누구나 탐욕을 털어내는 지 마음보는 것이 구법(求法)이고 구도(求道)로 볼 수 있다. 나는 영화감독이라는 굴레에서 평생 발목이 잡혀 무슨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지가 화두인데, 지리산에서 어찌 사는 것이 잘 사는 생인지 인생의 화두로 함께 생각하다보니 <공유>라는 작품을 쓰게 되었다.

김행수 영화 감독/사진=인터뷰365

- 잘사는 생? 김감독이 말하는 잘사는 생이란 무엇인가?

불편하지 않게 사는 삶이다.

- 당장 납득이 안 된다.

불편하지 않게 사는 삶이라니까 먹고 사는 의식주 생활의 불편함을 떠올리지만 아니다. 먹고 사는 생활의 불편함은 자신이 노력하면 해결된다. 내가 말하는 불편함이란? 마음의 불편함이다. 형편이 안 되는 사람으로부터 식사를 대접을 받은 것부터 불편하지 않은가, 죽은 친구에게 잘해줬어야 하는데 영원히 갚을 길이 없는 것이 불편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까지 불편함이며, 이해하는 것도 오해하는 것도 인간은 눈에 보이는 모든 일체가 불편함으로 맞서 있다. 그 불편함이 인간을 괴롭히고 병을 만든다. 그 불편함을 내려놓는 것이 도의 길이고, 도의 길로 나서는 것만이 잘사는 생이다.

내려놓았으면 다시는 그것으로 인한 불편함이 내 맘속에 없어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 된다. 전생 현생 습관에 의해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마음이란 그런 것이다. 돌아서면 어느새 불편함으로 시달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면 산만큼 불편하다. 내 것을 지키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하니 얼마나 불편하겠는가. 처음부터 불편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지 말아야 한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처음의 마음이란? 어머니 몸을 빌러 이생에 오기 전 나의 마음을 말하니 그동안 쌓인 습관이 좀 많겠냐. 그러니 모든 것이 불편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생에서 불편함을 털어 내지 않고는 다음 생은 더 불편해 진다는 사실이다.

-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모든 불편함은 나로부터 생기니 내 존재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 인간은 살아 있는 것만 생각하지, 의식적으로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는 그 자체가 불편함이다. 그럴 것 없다. 죽음과 생(生)은 한 솥이다. 생을 생각하듯 죽음도 생각해야 한다. 생만 생각하니 고통이 따른다. 영원히 살아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재물을 명예를 끌어 모으는데 온 인생을 소진 하지 않은가.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수천억 원을 방바닥에 깔고 자도 죽을 때 단 돈 1원도 가져가지 못한다.

자기 목숨보다 귀한 사랑하는 사람일지언정 같이 죽을 수는 없다. 사랑도 행복도 봄눈에 지나지 않는다. 가진 것이 많고 사랑하면 할수록 죽을 때는 더 힘들어 진다. 그러니 평소 살아 있음을 생각하듯 죽음도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럴수록 삶이 진지해진다. 죽음은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것일 뿐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지금 내 육신은 지금 입고 있는 옷일 뿐이다.

사람들은 지금 입고 있는 옷에 영원성을 부여해 나만이 오래살고 나만이 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범죄를 발생시키고 건조한 사회를 만든다. 끝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유한하다는 것을 인지하며 살면 우리는 정말 잘사는 생을 영위할 수 있다. 끝이 있으니 한 순간 한순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겠는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생각한다면 어찌 남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겠는가. 불편함의 근원적인 문제를 하나씩 정리해 가다보면 정말 행복한 생을 누릴 수 있다.

소설 '공유' 표지/사진=말벗

- ‘구법(求法) 장편소설’을 앞세운 <공유>는 ‘공유’(空有)라는 주제부터 난해하다.

‘공유’는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불교의 근본에서 가져 왔으며, 진공묘유를 떠난 화엄법계연기(華嚴法界緣起)를 말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진공 상태라면 텅 빈 것이라 하지만, 기실(其實)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말로 글로 설명되지 않고 마음으로만 느껴지는 묘한 것이 있어, 그 묘한 것이 부처의 자리이고 우주의 중심이다. 나는 작품 <공유>를 통해 인간은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 묵계라는 노선사가 이생을 마무리하면서, 한 점 흔적 남기지 않고 열반에 드는 완성자의 행적을 투영했다.

- 작품의 줄거리를 듣고 싶다.

주인공은 당대의 산중 도인 묵계 대선사와 비구니 묘연스님 그리고 비구 법공스님이다. 묵계 선사에게는 오로지 두 상좌가 있는데 현재는 인연을 끊고 살고 있다. 세월이 흘러 묵계선사와 법손 묘연스님이 다시 만난 것은 열반직전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마련된 묵계의 법석에서다. 묵계가 열반에 들면서 까지 진리의 골수를 전하려 했던 법손 묘연이가 그렇게 나타난 것이다.

법석으로 가는 묵계를 향해 “영감 사기 그만 쳐”라고 소리를 내지른 자가 다름 아닌 자신의 법손이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토록 기다렸던 법손 묘연은 다 떨어진 누더기 차림과 몸에서 나는 냄새는 옆 사람이 피해 앉을 정도의 폐인의 몰골이 되어 묵계를 향해 거듭 저주를 쏟아 냈다.

<공유>는 과거 20년 전에서 시작, 묵계가 적멸에 들고 그의 유언에 따라 바다 속으로 수장되기까지이다.

-불교사상과 승려의 수행 구법의 과정을 배경으로 했다면 그대로 모처럼의 순수 불교영화로 볼 수 있겠다. 임권택 감독의 <만다라>와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후 37년이 지나고 진지한 불교영화로 접근하려는 작품으로 보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순수 불교영화 맞다. 나는 <단>이라는 첫 작품에서 단추를 잘 못 끼웠다. 지금이 영상시대다. 그런데 나는 수 십 년 전에 판타지 영화를 만들겠다고 덤볐다가 시선을 끌지 못했다. 이제 비로소 대사를 늘어놓는 스토리 작가의 형식을 벗어나 영화감독인 내 이미지로 작품을 만들고 싶다. 만다라.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이 만들어진 햇수가 37년이다. 빠른 세월이 놀랍지 않은가.

세월이 그만큼 지났는데도 인간의 정신적 가치를 다룬 영화가 없었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다. 불교영화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승복만 입힌 영화만 있었을 뿐 진지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는 보이지 않았다. 있다면 다시 내가 만들 이유가 있겠는가. 다른 사람이 만들지 않으니 내가 만드는 것이다.

-37년 동안, 정통 불교 영화가 안 만들어 졌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상 할 것이 없다, 불교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 환경이 너무 어렵다. 어느 누구도 종교영화 특히 불교 영화 투자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지금도 제작 환경을 완전히 갖추지 못했으니, 크랭크인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이유도 그런 것이다. 출판사에서 출판 수익금 전액을 영화제작비로 내 놓겠다니 책이 많이 팔리길 기대해 본다.

물질만능 시대를 주도하던 미국에서 최근 명상이다, 참선이다 하는 이유도 삶에 순서가 지 마음보는 것이 먼저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 마음보는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불교의 정신적 가치를 지닌 나라가 대한민국인데, 그 가치를 미국인들에게 뺏기게 되었다는 용문산 상원사 용문선원장 의정스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다.

-요즘 출판계 시장을 보면 쉽지 않은 출간인데, 특별한 출간 배경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장편 소설을 쓸 생각이 없었다. 10여 년 동안 ‘공유‘시나리오를 가방에 넣고 다녔지만 불교 소재의 영화에 투자할 투자자를 만나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 할 수는 없는 일이지 않는가. 인사동 전시장에서 ‘도서출판 말벗’의 박관식 이사를 십 수 년 만에 만나, 근황을 묻는 과정에 공유를 꼭 만들어야 하는데, 제작비를 구하지 못했다고 하니 시나리오를 보여 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날 공유 시나리오를 본 박관식 이사는 장편소설로 내는 것이 어떻겠냐며 출판 수익금 전액 영화제작비로 내 놓겠다는 제안을 했다.

박관식 이사는 학교 후배로 내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한 제안이라 생각한다. 내가 영화를 오랫동안 못 만든 것도 한 작품에 꽂히며 이렇던 저렇던 겹눈을 뜨지 못하는 미련함 때문이다. 진행되고 있는 일이 끝이 나야 끝을 내는 내 성품 탓이다.

1993년부터 ‘카라인‘이라는 해저인 환타지 영화를 기획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해 17년 동안 가방에 넣고 투자자를 찾아다녔던 것은 충무로 사람이면 거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결국 투자자를 구하지 못해 프린트해 놓은 시나리오 모두를 불 질러 버리고 컴퓨터에 저장된 시나리오는 삭제해 버린 후 끝이 났다. 그러니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가족들에게는 정말 할 말이 없다. 장편소설 공유가 영화제작비에 작게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책이 팔리길 기도해 본다. 또 17년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나.

오랜만에 충무로를 걷고 있는 김행수 영화 감독. 영화의 거리 충무로는 그의 고향과 같다./사진=인터뷰365

-좀 더 작품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법회를 난장판으로 만든 뒤 묵계스님과 묘진스님의 다음 행적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묘진은 묵계스님의 상좌로 암자에서 사라진 후, 그렇게 알코올 중독자로 폐인이 되어 법회에 나타난 것이다. 묵계가 열반에 들기 직전까지 상좌들에게 전하려 했던 진리의 골수가 진공묘유이니, 지(자기) 마음으로 살지 않고 남의 마음으로 살아가니 지옥이다. 지옥이 죽어서 있나! 남의 마음으로 사는 그 곳이 지옥이지. 누구나 평생 거짓과 욕망의 속물이 되어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살고 있지 않은가. 천당이 따로 있나! 지 마음으로 살면 그 자리가 천당이지! 지금 앉은 자리를 천당으로 만들지 못하면서, 죽어 무슨 천당을 기다리느냐! 묵계의 언행은 한결 같았다. 그는 스스로 적멸에 들 날을 정해 놓고, 그날, 어린 법손과 같이 쌓은 돌탑 앞에 꼿꼿하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선정에 들어 좌탈입망(坐脫入亡/앉아 열반에 드는 것)한 채, 오는 듯이 가는 듯이 열반(涅槃/일체의 속박에서 영원히 벗어난 경계)의 길로 떠나갔다.

- 산다는 목적이 다른 사람보다 더 잘 먹고 잘 산다는데 있는 것 아닌가? 그 보편적인 생각을 두고 내 마음이 아닌 남의 마음으로 살기 때문으로 보는 이치가 있다면 비종교적 일상적인 시각으로는 설득이 어렵고 모호하게 들린다.

자기를 인지하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신이겠느냐? 아닌 거 알잖은가. 지 맘이다. 마음 떠나서는 나도 없고 세상도 없다. 마음 닫으면 바늘 끝도 들어 올 자리가 없다. 그런 우리 마음이 자신은 안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으면 세상은 어찌 되겠느냐? 누구나 죽는데 자신만이 무한하다 생각하는 데서 인간은 점점 삶이 건조하고 힘들어진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 치자. 자신을 지키려면 얼마나 힘들겠느냐. 소중한 인생을 자신을 지키는데 소진해야겠느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과 얼마 후면 주위 사람뿐만 아니라 나부터 죽는데. 죽어서는 어떻게 할 건데? 살면서 답을 찾듯 죽어서도 답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이 말에 질문은 애써 피해 버린다. 자기는 안 죽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욕 즉 식욕, 색욕, 재욕, 수면욕, 명예욕 등이 모두 지 마음속을 차지한 남의 마음에서 비롯된 탐욕이고 그게 지옥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지옥을 짊어지고, 다시 지옥으로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당장의 달달한 접시물만 생각한다. 바다도 있는데 말이다. 바닷물을 생각하면 그것이 도(道)이고 우주로 나가는 길이고 죽지 않는 길인데 말이다. 남의 마음은 지 마음속의 무겁고 불편한 짐이다. 묵계 스님이 환자를 치료하는 중에 문밖으로 새어 나온 신음소리를 파계승의 작태로 본 법손 묘진 스님의 오해도 지 마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사태를 불러들인 것이다.

<이어서> ☞ [인터뷰②] '산중 구도자' 김행수 감독 "'공유'는 지리산서 준비한 판타지 불교영화"

김두호

인터뷰 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기자, 스포츠서울 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전무이사를 지냈으며,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