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애잔한 노부부의 삶...가슴 먹먹한 연극 '3월의 눈'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애잔한 노부부의 삶...가슴 먹먹한 연극 '3월의 눈'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1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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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3월의 눈' 콘셉트 컷/사진=국립극단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우리네 심성이 배어있는데다 나의 모습을 보는 듯해 먹먹해진 연극. 국립극단의 '3월의 눈'을 보며 내내 가슴이 먹먹하고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세계 명작도 필요하지만 한국 연극이 왜 중요한지를 새삼 느꼈다. 여백이 있고 느리고 소박하고 그러면서도 잔잔하게 가슴으로 잦아드는 작품, 어느 노부부의 일상을 보는 듯한 '연극 같지 않은 연극'이다.

2011년 3월 서울 서계동에 백성희·장민호 배우의 이름을 붙인 백장극장 개관기념으로 장민호·백성희 두 분이 출연한 초연을 놓쳐 무척 아쉬웠다. 그 두 분은 저 세상으로 가셨고 2012년, 2013년, 2015년에도 공연했지만 볼 기회가 없었다. 이번 3년 만의 재공연은 오현경·손숙, 오영수·정영숙 두 팀이 출연하는데 오영수·정영숙 공연을 본 것이다.

연극 '3월의 눈' 배우 오영수·정영숙 콘셉트 컷/사진=국립극단  

오영수는 70대에도 쉼없이 무대에 서온 관록의 배우이고 TV드라마에서 오래 보아온 정영숙 또한 친숙한 배우인데 예상대로 나직하면서도 소소한 정이 묻어났다. 

요란한 동작에 소리소리 지르는 요즘 공연 풍토에서 황혼의 노부부가 조고조곤 얘기하며 가는 세월에 묻혀지는 모습이 오버랩되어 애잔하면서도 관극이 편안함을 안겨줬다. 

배삼식 작가의 글솜씨는 탁월한데가 있다. 한옥을 배경으로 3월의 눈처럼 반짝 사라지는 우리네 인생사를 펼쳐내면서 분단과 이념을 녹여내고 피붙이에게 모든걸 다 주고 요양원으로 가는 고령화 사회의 단면까지 투영시켰다. 손진책 연출은 과하거나 지나침이 없는 담백한 연출로 배우들의 연기를 살려냈다.

연극 '3월의 눈' 공연 장면/사진=국립극단

오영수는 투박하지만 넉넉한 인품의 한국인상을 잘 그려냈다. 대사가 없을 때의 실루엣에 연민이 느껴질만큼 강한 체취가 배어나왔다. 정영숙은 다소곳하면서도 잔정이 많은 여인상을 보여주었다.

두 배우가 문 창호에 종이를 뜯어내기 위해 물을 뿜어대며 서로 다른 기억의 옛이야기로 토닥대는 장면은 이 연극의 압권이었다. 대사가 간혹 흩어지는 흠이 조금 있긴 하지만 연기하지 않는 것처럼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을 넘어서 두 배우는 진정성으로 앙상블을 이뤄냈다.

무대미술가 박동우의 한옥 무대가 연극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선배 한 분이 상처(喪妻)하고 나서 "집의 지붕이 날아간 것 같다"던 말이 이 무대를 보며 실감이 났다. 마루가 뜯겨지고 라스트에 창호문이 다 떼어져 나가도록 기능케 한 구조 자체가 사라지고 소멸되는 이 작품의 주제와 잘 맞았다. 나도 우리도 저렇게 사라지고 뜯겨지겠다는 생각이 들어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모처런 만족스런 연극을 보았는데도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무얼까. 연극 아닌 연극이란 말이 걸린 때문이다. 희곡 자체가 더 연극적이었으면 명작이 될 수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드는건 나만의 과욕일까?/3월 11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연극 '3월의 눈'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관객들에게 박수세례를 받고 있다./사진=정중헌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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