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사랑해준 세대에 대한 책임, 장미희
나를 사랑해준 세대에 대한 책임, 장미희
  • 조현진
  • 승인 200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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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별기획 / 조현진




[인터뷰365 조현진]
장미희, 그녀를 인터뷰하기 전날,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가 개막되었다. 그리고 그날 레드카펫위에선 작은 소동이 하나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장미희였다. 그녀의 파격적인 의상은 순식간에 플래시 세례로 이어졌다. 각종 포털사이트에서 갑자기 '장미희' 혹은 '장미희 파격의상'이 검색어 1위가 되었다. 이 이야기부터 시작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어제 의상 파격이었다.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다.

그래? 확실히 인터넷 무섭다. 부천에서도 소란스럽긴 했지만.


화제를 노린건가?

그럼. 당연하다. 난 배우니까. 그 검은 브레지어가 그려진 브라우스만 보는데 그것만이 아니다.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그 레드카펫에 서는게 아니니까.


그럼?

혹시 지난번 대종상 때 기억나는가?


안다. 겨자색 드레스 입은것도 화제가 되었었지. 젊은 여배우들 다 제치고 장미희가 그날의 베스트드레서였다고 기자들이 다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런거다. 대종상 레드카펫에 서기위해 난 트레이너와 함께 한달 이상을 운동했다. 식이요법도 거들었다. 당일 날은 물 한잔 마시지 않았다. 디자이너 정구호씨가 드레스 두벌을 가져다 주었고 독일에서 쥬얼리가 공수되어왔다.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화장을 해주었고.


당신 영화가 대종상에 노미네이트 된 것도 아니잖은가?

그게 무슨 상관인가? 대종상은 상 받으러 가는 게 아니라 영화인의 축제다. 나는 거기 초대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그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준비하는 거다. 그게 내 방식이다. 어제 부천도 마찬가지인 거다.


맞는 말이지만 새롭다. 사실 상 줘도 참석 안하는 배우들이 많은데.

직업의식과 책임감이 부족한 거다. 배우는 개인이라기 보다 공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관객에게 그리고 영화에게 받은 사랑이 있다. 그 사랑을 관객에게 돌려줘야 하는거다. 뭘로 돌려주나? 만날 기회에 준비 잘해서 만나는 거다. 이런 축제에 함께 참석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장미희를 만나기 위해 자료들을 찾아 검토한 후, 선배기자들에게 연락을 해서 장미희에 대해 물었더니 ‘쉽지 않은 인터뷰 상대’ 일 것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답해왔다. 30년 이상 장미희를 기자로 만났던 인터뷰 365의 김두호 발행인의 경우는 ‘너무나 친절해서 혼을 쏙 빼놓지만 단 한 번도 만족스런 대답을 주지 않는 대표적 연예인’으로 장미희를 꼽았다. 특히나 ‘한국의 백여우’로 그녀를 선정하며 역할속의 이름이 아닌, ‘장미희라는 사람’을 꺼내기란 정말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70년대 중반 영화 <겨울여자>를 통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후, 한 번도 최고에서 비켜본 적이 없는 여자 장미희. 당연히 그녀는 산전수전 공중전까지를 다 경험한 노련한 인터뷰이다. 인터뷰장소로 가면서 나는 장미희에게 말려들지 않아야 한다고 여러 번 다짐을 했었다. 그녀에게 말려들지 않기 위해선 이것저것 재지 말고 무대뽀로 밀어 붙이는 것이 상수다.



2007년 7월 현재,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에 장미희 같은 배우는 없다. 이제 제법 나이가 들었음에도 당신은 많은 왕년의 스타들이 자연스레 변하는 것처럼 나이든 엄마나 아줌마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도 아니고. 여전히 당신은 어떤 신비함을 가지고 대중과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산다. 동의하나?
난 왕년의 스타가 아니다. 결혼을 안했고 자식도 없기 때문에 난 엄마역할을 잘 할 수 없는 사람이다. 결혼 안한 미스(Miss)기도 하다. 아줌마는 아닌 거지. 그건 내가 경험 못한 부분이다. 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잘 할 텐데 왜 내가 그걸 해야 하나? 그리고 대중과의 적당한 긴장감이란 무슨 말인가?


작품에서 잘 만날 수도 없다는 말이다.

2년에 한 작품 정도씩은 한다. 2005년에 드라마 (SBS, 그 여름의 태풍)했었다. 그리고 일부러 안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좋은 작품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건 안다. 2003년도에 영화 <보리울의 여름>을 한 것도 <황태자의 첫사랑> <그 여름의 태풍>같은 드라마를 했던 것도 조사해서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내 질문은 그게 아니라 대체로 관객들에게 장미희는 영화 <사의 찬미>를 마지막으로 기억되어져 있다는 뜻이다. 왤까?

글쎄 왤까?


사실 이런 질문이 오늘 당신에게 물어볼 가장 중요한 이슈이다. 좀 거북스러울지도 모른다.

뭔데? 해봐라.


압축하자면 장미희를 단순한 배우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배우는 작품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데, 우리가 기억하는 당신의 대다수의 작품들은 장미희를 위해 작품이 존재했었다는 것이다. 일예로 배창호 감독과 작업한 <적도의 꽃> <깊고 푸른 밤> <황진이>등을 보면 영화가 아닌 장미희만 기억난다. 장미희와 작업하지 않았던 <고래사냥>이나 <꼬방 동네 사람들> <기쁜 우리 젊은 날>에는 배창호가 보이는데. 그건 김호선 감독도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내 영화들에 감독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엔 동의 할 수 없지만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런 이야기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내 영화주간을 할 때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에게도 들은 적이 있다. 내겐 김기영 감독님부터 시작해서 김호선, 하길종, 배창호 등 각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들과 영화를 하는 행운이 있다. 그런데 그 분들이 만들어 준 내 극중 캐릭터들이 다 너무 쎘다. 죽이거나, 미치게 하거나... 김기영 감독님은 <느미>에서 날 벙어리로까지 만드셨다. 물론 장미희라는 배우가 강한 캐릭터에 어울리니까 그렇게 되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관객들이 내 캐릭터에 몰입되었고 오래 기억한다면 그 영화들은 감독과 내가 함께 앙상블을 이루어 우리의 목적을 달성했다는 것이겠지. 그럼 좋은 작품인거 아닌가?



물론 그것은 배우로써의 당신의 출중한 능력에 관한 부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당신은 쉬지 않고 대표작을 내 놓은 배우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장미희라고 말하면 각 세대들은 다른 사진을 기억한다. 긴 생머리의 청바지를 입은 <겨울여자>의 ‘이화’나, 컷트 머리의 짙은 선글라스를 낀 <깊고 푸른 밤>의 ‘제인’, 그리고 물론 <사의 찬미>의 ‘윤심덕’까지.
모두 다 어떤 ‘신명’을 경험했던 영화들이다. 난 지금 대학에서(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학생들을 가리키고 있는데 ‘동양적 메소드’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게 쉽게 말하면 ‘신들림’이다. 캐릭터에 집중을 하고, 환상에 빠져들다가 그 극치의 순간에 캐릭터와 배우가 일치되는 경험이다. 나는 영화에서 그런 체험들을 해 왔다. 그리고 그 체험이 영화에 나오는 것이다. 그럼 관객들도 장미희와 제인, 장미희와 윤심덕의 일체를 느끼게 되는 거다. 아직도 알 파치노 하면 <스카페이스>이고 말론 브란도 하면 <대부>가 그냥 떠오르지 않나? 바로 그런 거다.

그것이 장미희가 다른 배우들보다 영화를 끝낸 이후에도 그 캐릭터 이미지를 오래 가지고 가는 이유인건가?

내가 가지고 간다기 보단 관객들에게 오래 남는 것이겠지. 물론 나 개인적으로도 그런 캐릭터를 연기한 이후에는 의식의 영역이 많이 확장된다. 그리고 정말 하고 싶은 캐릭터를 만났으니까 그 몰입이 가능한 것이다. 70년대에 신문에 연재되던 <겨울여자>를 읽으며 이건 꼭 내가 해야 한다고, 내가 대한민국에서 ‘이화’를 제일 잘 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 날 이후부터 나는 이화로 살았다. 김호선 감독, 황기성 기획자 만났을 때 난 이미 이화로써의 준비가 끝나 있었다. 하길종 감독과 했던 <속 별들의 고향>이나 김기영 감독의 <느미>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꼭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준비했었다. 그것이 나의 20대다. 무모하리만큼 캐릭터를 닮아내려고 했었다. <깊고 푸른 밤>에서 나는 조금 성장했다고 믿는다. 이 영화는 최인호씨가 쓴 ‘깊고 푸른 밤’과 ‘물의 사막’ 두 개의 중편을 조립한 작품이다. 그때 미국에서 공부할 땐데 원래 나에게 주어진 캐릭터는 동두천에서 미군에게 몸을 팔다가 미국으로 온 여자였다. 촬영일정은 잡혀있는데 도저히 이 캐릭터를 내가 시간내에 만들어 낼 자신이 없었다. 머리도 뽀글뽀글 하게 만들고, 피부도 거칠어야 하고, 말투나 스타일도 바꾸어야 했으니까. 그래서 배창호감독과 상의한 거다. 장미희가 할 수 있는 캐릭터. 당시의 내 환경에서 나올 수 있는 연기. 그렇게 나온 것이 바로 미국에 살기위해 계약결혼을 하는 ‘제인’이다. 이때 나는 캐릭터를 닮는 것이 아니라 캐릭터를 이해하고 만드는 경험을 했다. 정말 제인이 된 거다. 그러니까 최소한의 표현으로도 제인이 읽힌다. 즉, 작은 소리로 말해도 강한 아우라가 표출되는 거지. <사의 찬미>의 ‘윤심덕’은 바로 이 두 가지인 장미희의 열정과 캐릭터에 대한 이해가 만나 폭발한 거고. 그러니 그 다음 어떤 ‘캐릭터’를 만나기 전까지 그 전 모습을 지운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이 아닌 거다.


그렇다면 아직까지 당신은 ‘윤심덕’인가?

관객이 장미희를 윤심덕으로 기억한다면 분명히 나는 아직 윤심덕일 것이다.


장미희의 최대 유행가 되어버린 어느 해 시상식에서의 소감이 이제 이해가 된다.

‘아름다운 밤이네요~?’를 말하는 건가? 어떤 이해?


그 표현은 장미희가 한 것이 아니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받은 1920년의 윤심덕이 한 말이라는 거지.

맞다. 호호.


어떤 사람들은 장미희를 이기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그렇게 아우라가 있지 않은 배역은 잘 맡지도 않고, 맡아도 겉 돈다는 기분을 주니까. 즉 장미희가 중심이지 않은 영화나 드라마는 곤란하다는 건가?

배우가 맡는 작품마다 대표작을 만들 순 없다. 그럼 얼마나 좋겠는가? 또 최근에는 내가 꼭 하지 않아도 되는 배역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이기적으로 봐도 어쩔 수 없지만 이젠 그런거 흥미가 없다. <사의 찬미>때는 김호선 감독이 내 연기를 편집할 수 없어서 런닝 타임을 2시간 10분까지 간 거다. 이런 게 배우로써의 명예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작품과 감독을 기다리고 있는 거다. 이것이 한 제너레이션을 책임졌던 배우로써의 책임이라고 나는 믿는다.




한 제너레이션(세대)을 책임졌던 배우 장미희. 그래. 이것이 오늘 인터뷰의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것 같다. 당신에게 배우와 스타는 같은 말인가?

음... 어려운 질문이다. 이렇게 대답하고 싶다. 배우란 내가 선택한 인생의 길이고 좋은 배우란 내 삶의 목표다. 이건 장미희라는 개인의 노력의 범주다. 하지만 스타는 그런 배우 장미희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스타란 단어는 어떤 의무와 책임감을 동반하다. 이건 관객과 나를 사랑한 세대가 나에게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시장갈 때는 아무렇게나 입고 화장도 안하고 가도 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청바지에 티셔츠 입어도 된다. 하지만 스타라는 이름으로 등장할 때는 그러면 안 된다.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고 그들을 만나야 하는 것이다. 그게 내 철학이다. 그래서 대종상이나 부천국제영화제에는 스타 장미희로 나타나야 하는 거다.


당신을 사랑했던 세대를 위해서 말인가?
그렇다. 이제 그 분들은 나이가 들었어도 그 분들 기억속의 장미희가 20대나 30대라면 나는 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CF를 잘 안하는 이유기도 하다. 그 분들은 자기 돈 내가며 극장에 와서 1시간 30분 동안 일 지언정 나를 사랑해 준 관객이다. 배우란 그런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어떻게 내가 그런 분들한테 개인적으로 밥 한끼 못 사드릴 지 언정 ‘이 물건 사세요. 저 물건 사세요.’ 할 수 있겠는가?


굉장히 의미 있는 철학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대출광고’에 출연하는 배우들로 소란 스러울 때에 어떻게 보는가?

개인적으로는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옳다, 장미희. 한 세대를 대표하는 배우라는 자신의 책임감과 관객에게 받은 사랑을 진심으로 감사하는 스타. 이런 분명한 철학과 내공이 있었기에 장미희는 오랫동안 관객의 사랑을 받은 것이다. 요즘 장미희에겐 배우라는 이름 외에 크게 세가지 호칭이 더 있다. 하나는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정(正)교수님’이고 다른 것는 ‘영화진흥위원회 부위원장’과 ‘국제 어린이 영화제 집행위원장’ 이다.



교수님이다. 이젠 오래됐다.

1989년 도 부터니까 20년 가까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시간강사였다. 그다음에 전임을 거쳐서 이젠 정교수가 된 거다.


뭘 가르치나?

제작실기를 가르친다.


학생들은 어떤가?

다들 착하다.


그런 모법적인 대답 말고.
하하. 착한 건 사실이다. 이제 15년 넘게 하다 보니 학생들의 어떤 변화는 분명히 보인다. 초기에는 끼 있는 친구들만 모였었다. 정말 부모 반대를 무릎 쓰고라도 배우가 되겠다고 집에서 쫓겨나면서 까지 공부하는 친구들이 그때는 있었다. 지금은 전혀 다르다. 부모가 더 적극적이지. 그러다 보니 검증 없이 너무 쉽게 오는 친구들도 있다. 그래서 많이 도태된다. 80~100명이 입학하는데 최종적으로 졸업하는 친구들은 20명 전후다.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주는 장미희 교수의 메시지는 무언가?

늘 같다. 배우가 되겠다는 친구들이라면 평생 배우만 할 수 있는가를 분명히 하라고 가르친다. 배우는 퇴직금이 있는 직업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평생 임시직에 평생 ‘취업대기자’ 일 뿐이다. 그래서 이건 큰 각오가 없으면 반드시 중간에 포기할 수 밖에 없는 길이다. 그걸 분명히 알고 시작하라고 가르친다.


학생들이 스타교수를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는가?

전혀. 난 이제 15년 이상 된 ‘장수교수’라니까. (웃음) 학생들 중에 내 영화 한편도 못 본 친구들도 있다. 그러니까 서로 아무런 부담도 없다. 실기하다가 같이 떡복이 사먹고 자장면 시켜먹고 그런다.


그렇지만 분명히 세대차이도 느낄거다. 학생들과 어떨 때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나?

음...아이들은 세 부류로 갈라지는 것 같다. 1/3은 너무 순진하고, 1/3은 중간이고, 나머지 1/3은 소위말로 너무 까졌다. 생각도 없어 보이고. 그런게 좀 아쉬운 건데 아이들이 너무 인문학적 배경이 없다. 독서량, 철학 이런게 부족한 거다. 갈수록 심해진다.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일 수도 있다. 그럴 땐 너무 답답하지.


그건 역사대대로 내려오는 스승과 제자의 숙명 같은 거 아닌가? 고대 동굴 안에서도 ‘요즘 애들은 너무 까졌다.’라는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나?

그럴 수도 있지만... 뭐랄까... 요즘 아이들은 다 정직하다. 이게 우리 세대랑 틀린 거다. 남을 속이고 밟고 그래야 살 수 세상이 지금은 아니니까. 다들 센스도 기가 막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배우가 되려면 자기 내면을 봐야만 하는데 그 내면을 들여다본 아이들이 드물다는 말이다.




장미희는 배우가 되려는 학생들이 다른 공부를 좀 많이 하고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양한 장르의 독서습관도 필수다. 배우가 되려는 이들에게 권할만한 책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녀는 <티벳 사자의 서>와 같은 구도자의 책들,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 책들, 그리고 가능하면 레너드 스윗, 엘빈 토플러같은 미래학자들의 책까지도 자기 지식으로 채우라고 대답했다.


어린이영화제 집행위원장이다. 올해도 고양에서 하나?

아니다. 올해는 장소를 옮긴다.


어디로?

거의 결정은 되었는데 확정되지 않아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다. 이번이 세 번째 어린이 영화제인데 지난 두 번보다는 훨씬 프로그램도 다양해지고 많은 영화를 선보일 것 이다.


그래? 어린이영화제가 장미희와 참 잘 어울린다는 것이 영화계 안팍의 시각이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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