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권택의 스승, 한국 액션영화의 대부가 온다
임권택의 스승, 한국 액션영화의 대부가 온다
  • 김우성
  • 승인 2011.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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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화 감독

【인터뷰365 김우성】추석 연휴 직후인 9월 15일부터 한국 액션영화의 선구자인 정창화 감독 회고전이 열린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마련한 이번 회고전에서는 영국영화협회에서 발간하는 영화잡지 <사이트 앤 사운드>가 발표한 ‘세계영화사 걸작 베스트 10’에 이름을 올린 <죽음의 다섯손가락>(1972)을 비롯해 한국적 무협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황혼의 검객>(1967) 등 정창화 감독의 대표작 12편이 상영된다.

정창화 감독은 한국영화사를 풍요롭게 한 감독으로 근래 영화제를 중심으로 활발히 재조명되고 있지만, 지금 관객들에게는 여전히 낯선 이름이다. 최인규의 문하로 1950년대 초 데뷔한 그는 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한국 장르영화의 중요한 감독이었다. 그러던 60년대 후반 홍콩으로 건너가 70년대 후반 영화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는 등 긴 공백기를 가지면서 소수의 팬들에게 전설처럼 회자되는 감독으로 남게 됐다. 그러나 정창화 감독은 한국 액션영화의 선구자이자, 임권택 감독의 스승이었고, 한국영화 감독으로는 최초로 미국 박스오피스에 이름을 올렸으며, 칸영화제가 주목한, 한국 액션영화의 살아있는 신화로 평가 받는다.

이번 회고전은 일반 관객들이 사실상 접할 수 없던 작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데에 의미가 크다. 또 감독이 직접 무대에 올라 관객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가 두 차례 예정되어 있는데, 열악한 환경 속 자신만의 액션영화 영토를 구축한 정창화 감독을 돌아보는 귀한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회고전 상영작 중 주목할 만한 5선을 소개한다.

▲ 노다지(1961)

김승호, 엄앵란, 황해 | 35mm | 127분

황금을 둘러싼 액션극으로 사금을 찾아 내려온 운칠(김승호)과 그의 금을 노리는 수많은 인간들의 음모, 배신, 출생의 비밀이 얽힌 서사를 복잡하게 엮어간다. 황금을 둘러싼 욕망들의 이전투구는 이런 종류의 영화에서 늘상 발견할 수 있는 전형이지만,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과 감정을 일관되게 끌고 가며 매듭짓는 연출력은 감독으로서 정창화의 역량을 잘 보여준다. 서부극의 영향이 느껴지는 무국적 장르영화이지만, 감독 본인은 “일거리가 없어 다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일확천금을 꿈꾸어야 했던 당대 한국사회 구성원들의 무의식을 담아내길 원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임권택 감독이 이 영화의 제1조감독으로 참여했는데, 영화 초반 플래시백을 중첩시켜 복합적인 시간구조를 축조해내는 기법은 이후 임 감독의 영화들에서 하나의 스타일로 정립된다.

▲ 예라이샹(1966)

신성일, 문정숙, 최남현 | 35mm | 116분

나이트클럽 마담인 난희는 4.19 혁명 시 부상을 입은 법대생 세영을 간호하다가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세영은 가정교사로 들어간 집의 딸 정숙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 정숙의 아버지 박원혁은 일제시대 일본군 앞잡이로 난희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임이 밝혀지고, 난희는 그를 죽이고 감옥에 수감된다. 연상의 연인으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비운의 여인을 문정숙이, 그녀에게 ‘당신은 내 운명 위에 핀 아름다운 꽃 예라이샹이요, 다시 밝은 세상에서 만나는 날까지 부디 잘 있어요’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세영을 신성일이 연기했다. 66년도 상반기에 개봉해 9천5백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5위를 기록했는데, 담배를 피우며 고혹하게 앉아 있는 문정숙의 옆모습 오프닝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다.

▲ 황혼의 검객(1967)

남궁원, 윤정희, 허장강 | 35mm | 80분

가족을 죽게 만든 장희빈 일파에 대한 무관 김태원(남궁원)의 복수극이 주된 플롯을 이룬다. 영화는 ‘외톨이 총잡이’라는 서부극 장르를 차용하고 있지만, 필름 느와르의 플래시백 장치와 사지 절단의 고어 장면 등 장르적 혼용의 탁월한 예를 제시하고 있다. 또한 여백의 미를 통해 지속되는 단단한 긴장감, 칼을 쥔 채 피를 흘리는 선비의 비장미는 동아시아 다른 국가의 무협액션과 확연히 차별된 연출이었다. 두 인물이 롱 숏 안에서 침묵을 지키다가 한 번에 칼로 상대방을 베는 일격의 합,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춤사위처럼 섬세하고 느린 움직임들, 하얀 도포자락, 반짝이는 칼이 빚어내는 고요하면서도 강한 이미지는 소위 ‘한국적 무협’이 가능하다는 걸 웅변해주는 빛나는 장면들이다. 9월 17일(토) 오후 4시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 천면마녀(1969)

패트 팅 홍, 티나 치 페이, 첸 리앙 | 디지베타 | 83분

정창화 감독이 홍콩 쇼 브라더스로 가서 만든 첫 작품이며 동시에 유럽으로 수출된 최초의 홍콩영화이기도 하다. 당초 쇼 브라더스에서 내민 시나리오에는 남자 형사가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었으나 남성들은 이미 고정관객이니 여성관객들을 확보하기 위해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자고 정창화 감독이 쇼 브라더스 란란쇼 사장을 설득해 ‘천개의 얼굴을 가진 마녀’라는 제명 하에 영화를 만들었다. 일본인 세트 디자이너와 협력해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감을 구현했으며 여배우의 성적 매력과 와이어 액션 등으로 감독 특유의 현대 액션물을 선보여 이후 쇼 브라더스 내에서 교과서로 여겨질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 죽음의 다섯 손가락(1972)

로 례, 남석훈, 웡핑, 긴위 | 디지베타 | 101분

장철의 <독비도>(1967)나 이소룡의 <정무문>(1972)과 맥락을 함께 하는, 사부와 제자 그리고 그를 시기하는 무리나 타 무도관과의 대결이라는 이른바 ‘무도관 영화’의 전형으로 권격 영화 붐의 중심에 있던 작품이다. 강한 개성의 악역으로 명성이 높았던 로 례의 강렬한 눈빛을 수시로 클로즈업 하는 등 박진감 있는 연출을 선보였으며 곡선의 아름다움보다는 파괴력 넘치는 직선의 쾌감으로 당시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쿠엔틴 타란티노가 뽑은 ‘세계영화사 걸작 베스트 10’에 선정되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해 2001년 칸국제영화제 클랙식 섹션에서 상영되었다. 9월 18일(일) 오후 2시 상영 후 감독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정창화 감독 회고전’은 9월 15일 목요일부터 22일까지 일주일 간 서울 상암동 시네마테크에서 열리며 모든 상영과 부대행사가 무료다. 자세한 상영 일정은 시네마테크KOFA 홈페이지(www.koreafilm.or.kr/cinema)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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