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사진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시인 박후기
산문사진집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의 시인 박후기
  • 김재원
  • 승인 2014.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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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365 김재원】시인 박후기는 별로 말이 없다. 하고 싶은 모든 말을 글로 쓰는 것 아니냐 싶게 말을 아낀다. 그는 지난 여름 혼자서 약 1개월간, 나폴리, 시실리, 돌로미티, 코르티나 등 이태리 전역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이태리에서 만난 사람과 산과 하늘과 골목 등 모든 것이 좋았다는 박후기는, 여행에서 귀국한 직후부터‘산문+사진집’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더욱 말수가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가 산문+사진집이라고 낸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를 읽으며 산문+사진집이라기보다는 시+사진집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아예 시+사진집이라 부르기로 한다.


박후기는 2003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내 가슴의 무늬' 외 6편의 작품이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 후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갖고 있다’‘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2권의 시집을 냈다. 이번에 내놓은 시+사진집‘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는 그의 두 번째 시집과 제목이 같다. 아마도 박후기는 이 제목을 많이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제목 가지고 시집도 내고 시+산문집도 내는 시인은 없으니까. 그것도 성에 차지 않는지 그는 한 술 더 떠서 앞으로 그 제목 가지고 소설집도 내겠다는 것이다.


박후기는 말수는 적지만, 입을 열면 말을 아주 잘하는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를 잡으면 사람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모임에서 사회를 보고 있다. 각종 문화인들 모임에서도 그렇고 직업인으로서도 마이크 잡을 기회가 많다. 박후기는 시인으로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직업인으로서는 마이크를 잡아야 하는 구조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사회를 볼 때도 시인의 테두리를 심하게 벗어나지 않는다. 웃기고 너스레 떠는 사회자가 아니라, 아주 정제된 언어로, 진행하는 이벤트에 맞는 의미 있는 언어로 진행하는 그의 사회 솜씨는 어떤 모임에서든 명사회 소리를 듣고 있다.


박후기는 그러니까 시 속에서는 아주 감성적인 언어의 마술사가 되는가 하면, 사회를 볼 때 구사하는 언어를 보면 인생 각 부문에 걸쳐 통달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쩌다가 시인이 되었는가?
허구 많은 직업 가운데 왜 하필 그런, 시인 같은 것이 되었느냐고 묻는 것 같다.(웃음) 나는 시인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시인 된 거 자랑할 만한가?
물론이다.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내 아내도 남편이 시인이라는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아이들도 그렇다.

장가를 잘 간 것 같다. (웃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웃음)

시를 이루는 건 어떤 거라고 생각하나? 이른바 3다, 많은 독서? 많은 사색? 많은 창작...이라고들 하는데.
생활 속에서 문득 튀어나오는 거, 자연 발생적인 거..생활 속에 시의 실마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처음 잡히는 실마리 속에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좀 어렵게 들린다.
글쎄...이론은 어려울지 몰라도 시는 어렵지 않다.

시인이나 작가는 어려서 성장 환경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가정 환경이 시적(詩的)이었다고 생각하나?
아버지가 시인은 아니었지만, 시를 사랑하는 문학청년이었다. 나는 4남1녀 중 막내였는데, 우리집 4형제 가운데 셋이 문예창작을 전공했다.

감탄할 만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형제들도 다 시인이 되었는가?
그렇지는 않지만 3형제가 모두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사랑한다. 가만히 보면 우리 집 1남1여도 다 그렇게 자라고 있는 것 같다.

부럽다. 아버지도 시를 사랑하는 문학청년이셨고...그래서 형제들도 다 영향을 받은 것인지.
집안 분위기가 매우 문학적이었다. 어려서 내가 자란 집 벽에, 시가 적힌 종이가 많이 붙어 있곤 했다. 나는 아버지가 손수 종이에 써서 붙여 놓은 그 시들을 읽으며 자랐다. 어떤 때는 매일 몇 번씩 읽기도 했다.

주로 누구의 시였는가?
여러 편이 있었는데 그 중에는 강은교의 시 ‘풀잎’이나 박남수의 ‘새’ 같은 시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좋은 시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많이 읽었다면 외우고 있을 성싶은데 한 번 들려줄 수 있나?
여기 이 장소가 글쎄 시 낭독할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서.(웃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박후기 시인의 입에선 아주 낮은 목소리로 흥얼흥얼 강은교의 시 ‘풀잎’ 앞부분이 낭송되고 있었다.)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와/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거기까지 낭독하고 시인 박후기는 입가에 웃음을 띠며 차 한 모금을 마셨다. 얼굴은 약간 상기된 것 같고...역시 타고난 시인이다. 사람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그의 인간적 특성이나 직업을 나타내는 경우는 적지 않다. 그런 기준으로 따져도 그는 시인이다. 올백 위주의 헤어스타일이나 입고 있는 의상을 보아도 그렇다. 계절이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자기만의 특성을 고집한다. 의상은 주로 중간색을 택하는 것 같다. 때로는 검은색이 주조인 것 같기도 하고...그의 응시하는 눈길은 항상 조용하지만 뭔가를 깊이 생각하는, 사색하는 시인의 눈이다. 박후기의 눈 얘기가 나온 김에 인물 얘기도 한 마디. 박후기는 미남이다. 지금 그가 20대였다면 아마 아이돌 소리를 들어도 좋을 만큼이다. 주변에서도 인물평은 점수가 좋은 것 같아서, 그와의 인터뷰를 위해 탐문한 정보 가운데 하나가, 직장에서도 미남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잠깐 그의 직장생활로 넘어가 보자. 박후기 시인은 (주)인산가에 18년째 근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죽염을 생산한 회사, 인산가는 우리나라 대체의학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중소기업인데 18년 근속의 박후기는 그 회사 터줏대감이고 홍보실장이다.

한 직장에 18년 다녔다고 들었다. 꽤 오래 다녔다고 생각되는데, 실례의 질문이지만 유능해서인가? 아니면 참을성이 많아서인가?
한 직장에 ‘너무 오래 다녔다’는 얘기인가? ‘그래도 더 다녀야 되겠다’는 질문인가?(함께 웃음)

본인은 어떤 경로를 통해 시인이 되었나?
작가세계 문학상에 당선 되어 등단했다. 참 신동엽선생과 같은 해(1959년)에 조선일보를 통해 데뷔하신 걸로 아는데...

나야 데뷔는 일찍 했지만 아직 시집도 없으니...
늦으셨지만 시집을 기대하고 싶다.

이번 시+산문집 외에도 산문집이 더 있다고 하는데, 앞으로도 계속 시와 산문을 오갈 것인지.
첫 번째 산문집은‘나에게서 내리고 싶은 날’인데, 가끔 나 자신도 시와 산문의 경계가 확실치 않은 것 같은 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크게 피해야 할 일고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시를 읽으면 그가 얼마나 언어를 절제하는 시인인 줄 알 수 있다. 그가 이번에 낸 시+사진집‘내 귀는 거짓말을 좋아한다’에서 보는 산문도 참으로 절제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어떻게 보면 시와 산문의 차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박후기의 에스프리는 그의 내부에서 심하게 용해되어, 언어로 나타낼 때는 최대치의 절제와 응집의 의미로 독자에게 다가간다. 그렇다고 난해한 시냐 하면 전혀 아니다. 한 번 읽으면 그냥 가슴에 오는 시다. 그의 언어 절제에 대한 긴 해설보다는, 여기서 그의 시 한 편을 보는 것이 그의 시를 이해하는 지름길일 것 같다. 자신의 시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시는 ‘폐광(廢鑛)’이라고 한다. 그의 첫 번째 시집 ‘종이는 나무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다’에 실려 있는 시이고 평론가들도 좋은 평을 하고 있는 시이다.

폐광

아버지, 검은 입 벌린 채 눈 감았다

나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진달래꽃보다 늦게 병원에 도착한 나는 아버지 다리가
녹슨 레일처럼 구부러지지 않게 두 팔로 힘껏 무릎을 눌렀다

막장은 벽만 있을 뿐, 바닥이 없었다
발밑을 파내려가도 눈앞엔 검은 벽, 바닥은 어느새 궁륭이 되었다
아버지는 앞만 보고 살았지만, 언제나 뒤가 무너졌다

나는 페치카 옆의 카나리아, 연탄가스를 마시며 놀았다
구멍보다 틈이 무섭다는 것을 나는 안다

죽음의 生家가 텅 비어있다


아마도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썼을 그의 시 ‘폐광’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생의 숙연한 의미를 만날 것이다.‘폐광’ 속에는 모든 아버지와 아들이 있고, ‘앞만 보고 살았지만 언젠가 뒤가 무너지는’인생이 농축되어 있다. 박후기는 이렇게 짧고, 농축되고, 심하게 절제된 언어의 시인이다. ‘구멍보다 틈이 무섭다’는 이 한 구절은 차라리 시를 뛰어 넘어, 정신이 번쩍 드는 아포리즘이다. ‘진달래 꽃보다 늦게 도착한 나’, ‘나는 페치카 옆의 카나리아, 연탄가스를 마시며 놀았다’에서 독자는 가슴이 아려오는 통증을 느낄 수도 있다. 긴 서술이 아니다. 아주 짧고 아쉽기까지 한 시 속에 그의 에스프리는 거의 약동한다. 시와 산문 속에서 빛나는 그의 에스프리는 그가 동참하고 있는 여러 가지 활동 속에서도 발견되는 ‘끼’하고도 통한다. 신동엽문학상 수상자이기도 한 박후기는 시인이고 명사회자인 동시에, 가수 소리도 듣고 연출자로 대우 받기도 하는 등 문화 각 분야의 끼=기질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에 수록된 사진들.

친구들 사이에선 가수 소리도 듣는다고 하는데 음악이 부전공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86학번이다.

86학번이라고 ‘86’이라는 연대(年代)를 강조하는 데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각자가 다 자기가 살아온 연대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학번은 시대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뜻대로 뭐가 되지 않을 때 연대를 따지는 세대로서...태어나고 자라기는 평택에서 자랐다.

음악다방 DJ도 했다고 들었다. 거기서 많은 음악을 만났을 텐데..
그렇다. 집에 있는 턴테이블이 고장 나서 음악이 아쉬웠는데 친구 형이 DJ였다. 거기 가서 나도 DJ를 하며 3천여 장의 LP 판을 다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밤을 새우기도 했다. 대부분 팝이었지만 다양한 음악과 접할 수 있었다.

그룹 사운드룰 했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크게 내세울 만큼은 아니다. 아산만에서 나이트클럽 하는 친구가 있어서 같이 노래도 많이 불렀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시인일 뿐 아니라 가수다’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농담으로 그러는 거다. 가수 소릴 들을만한 수준은 아니고.

시인에 가수일 뿐 아니라 연출가이기도 하다는데..
연출가, 라기엔 좀 그렇고 5-6개 작품의 공연 연출을 맡긴 했다. 음악회, 시 낭독회등의 공연을 기획도 하고 연출도 했지만..

그런데 왜 박홍희라는 좋은 이름을 두고 후기라는 필명을 쓰는지.
그렇다고 ‘후기’라는 이름도 나쁜 이름은 아니지 않나?(웃음) 후기는 한문으로 쓰면 後氣가 된다. 버티는 힘이라고 해야 할지...

버티는 힘 없으면 살기 힘든 세상이라는 뜻으로도 들린다.
해석은 자유다.(웃음)

시집 제목에도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가 있고 이번 시+산문집 제목도 '내 귀는 거짓말을 사랑한다‘이고 앞으로 그 제목으로 소설집을 내겠다고 한 것 같은데 왜 그렇게 그 제목에 집착하는가?
글쎄 내 귀가 좋아하는 거짓말은 인간을 음해하고 상처 주는 그런 거짓말은 아니다.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고 싶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라면, 사랑의 말이라면, 거짓말이라도 믿고 싶은 경우를 겪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서 그의 시+사진집에서 임의로 골라낸 시+사진을 감상하기로 한다. 시에 그림을 곁들인 시화전은 그동안 많이 있어 왔다. 시와 그림을 곁들인 시집도 더러 있어 왔다. 시+사진집, 또는 산문 사진집은 흔치 않았다. 아마도 박후기의 이런 작업을 계기로 시+사진집이, 문학의 새 장르, 또는 출판의 새 장르가 될 수도 있다고 믿기에.

신문은 빵의 배경이 되어 주어야

어린아이는 빵을 먹고, 어른인 남자는 신문을 읽습니다.
그러니까, 빵은 본능에 가깝고 신문은 이성에 더 가까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문은 빵의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어른은 아이의 배경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음악 같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음악은 나를 아주 먼 곳으로 데려다 주곤 했다.
물론, 그 먼 곳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었지만,
적어도 음악만큼은 술집주인처럼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려 하지 않았다.

음악을 모르고 늙어간다면, 그것만큼 불쌍한 일은 없을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시간은 멈추었으며, 음악은 그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나의 이야기를 얼마동안 들어주었다.

바람 부는 날엔 음악 같은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김재원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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