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어머니’로 살다 간 명배우 황정순
‘한국의 어머니’로 살다 간 명배우 황정순
  • 김두호
  • 승인 2014.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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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배우 신영균 씨의 서강대 명예문학박사 수여식에 참석한 생전의 황정순 여사. 사진=인터뷰365

[인터뷰365 김두호] 노후를 외롭게 지내다가 17일 병상에서 생애를 마감한 영화배우 황정순 여사(1925∼2014)가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여준 것은 지난 연말 대종상 시상식에서 공로패를 받을 때였다. 거룡 배우협회 이사장이 밀어주는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등장해 “고맙습니다”는 말만 간신히 표현하고 무대를 떠났다.


황정순 여사는 우리 영화사에 남는 명연기자로 이름과 얼굴을 남겨두고 이 시대를 일찍이 떠나 있었다. 1970년대 이전에 극장가를 찾던 한국영화의 올드팬에게는 잊을 수 없는 여배우지만 워낙 오래전 은퇴를 해 생존한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흘러간 우리 영화사를 담론에 올리면 누구나 다정다감하고 그윽한 ‘한국의 어머니상’으로 황정순 여사를 떠올린다. 1979년 유현목 감독이 연출한 <장마>에서 미움을 사랑으로 감싸는 인자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여준 뒤 1980년대부터는 사실상 은막의 성좌(星座)에서 흘러간 스타로 잊혀졌다. 비록 스크린에서는 사라졌으나 그의 존재는 생존한 많은 후배 연기자들에게 존경과 동경의 인물로 자리를 잡고 있어서 주요 영화 행사에서는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또 각종 공로상이나 문화상을 받는 경사도 이어졌다.

유현목 감독 '김약국의 달들'(1963)에 출연한 황정순(사진 왼쪽에서 두번째). 사진=한국영상자료원

황정순. 구수한 한국인의 체취를 느끼게 하며 토속영화에서 가장 한국적인 아버지상으로 사랑을 받은 김승호와 함께 수많은 화제작을 남긴 그의 연기 인생은 1925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나 1939년 동양극장 전속극단 ‘청춘좌’에 입단하면서 연극배우로 점화됐다. 데뷔하던 해 <호화선>에 출연하고 1942년 2월 창단된 극단 ‘성군’에 참여해 연극활동을 하다가 1943년 영화 <그대와 나>에 첫 출연했다. 일제강점기라 출연 첫 영화는 어용작품이었다. 라디오시대에는 서울방송국 전속 성우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명배우로 명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은 해방후 1950년대 <인생차압> <돈> <구름은 흘러도> <김약국집 딸들> <청춘극장> <박서방> <마부> <혈맥> 등 김소동 유현목 강대진 김수용 영화감독들을 만나고 명 콤비 김승호와 더불어 활동하면서 400여 편의 작품 출연을 기록했다.

한국적인 어머니상의 명배우 황정순 여사가 충무로를 떠나 평범한 보통 여자로 돌아간 뒤의 노후인생은 가족과 더불어 사는 다복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그의 인생철학이 ‘부부사랑 자녀사랑 이웃사랑’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으나 의사였던 부군 이영복 박사와 젊은 나이에 사별하고 독신으로 살았다. 실제 성품도 온화하고 여성적이었던 그는 은퇴 후 노후의 삶을 소리 이 조용히 보내다가 치매병상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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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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