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 뱃속에서 나온 ‘요나’ 고아성
고래 뱃속에서 나온 ‘요나’ 고아성
  • 이희승
  • 승인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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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부터 요나에 빠져있어 떠나보내기 힘들다”

【인터뷰365 이희승】고아성은 지난 5년간 ‘설국열차’에 탑승하고 있었다. 인류가 멸망한 미래, 유일한 생존 열차에서 태어난 ‘트레인 베이비’ 요나 역할을 단순히 연기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서일까. 솔직히 어떻게 영화와 이별할지를 모르겠다고 했다. 이제 고작 스무 살을 넘긴 고아성에게 ‘설국열차’는 배우로서의 큰 경험과 기회, 그리고 숙제를 안겼다.
개봉한 지 며칠 안되어 이미 한국영화사의 흥행기록을 빠르게 갈아치우고 있는 ‘설국열차’와의 인연은 7년 전 중학생이었던 고아성이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출연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천만 관객의 신화를 기록한 영화 ‘괴물’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송강호의 사춘기 딸 현서. 한강에 출몰한 괴물과의 사투 끝에 뱃속에서 빼내지지만 결국 죽음을 맞는다. 성경 속에서 고래 뱃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인물인 요나가 ‘설국열차’에서 고아성이 맡은 캐릭터 이름인 건 봉준호 감독의 네이밍 센스이자, 고아성이 아니면 안됐을 이유이기도 하다.
‘벌써 이렇게 컸어?’와 ‘또 송강호와 부녀지간이야?’라는 되물음은 이쯤 하자. 분명 ‘설국열차’는 고아성을 ‘성공(으로 가는)열차’에 탑승시켰다. 평범함과 묘한 매력이 공존하는 얼굴은 실물이 더 예뻤고, 연기력과 그의 가능성을 확인한 해외 에이전시들은 발 빠른 행보에 나선 상태다.
누구의 딸, 혹은 어린 시절을 연기했던 아역배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고아성을 만난 건 뜨거운 여름, 애완 악어와 육지 거북이가 돌아다니는 한 스튜디오 카페 안이었다. 약간의 괴성과 호들갑을 기대했는데 반응은 정반대였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악어거든요”라며 눈을 반짝이는 여배우를 보는 즐거움은 그렇게 한 시간이나 이어졌다.

‘설국열차’의 반응이 반반이다 흥행력은 남다르지만.
원래 영화평을 잘 안 보는데 이 영화는 매시간 체크하고 있다.(웃음) 사실 ‘설국열차’는 두 번은 봐야 더욱 매력적인 작품이라 극과극의 반응이 아쉽기도 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게 내 영화를 혼자 극장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보는 거다. 그런데 ‘설국열차’는 표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 스케줄이 10시 넘어서 끝나는데 그 시간대 이후가 의외로 꽉차있더라.


딸 막내여서 놀랐다. 가족들은 ‘설국열차’에 대해 뭐라고 하나.
막내 느낌이 안 나는 사람이 있지 않나. 독립적이고 맏딸 같은. 내가 그런 케이스다. 엄마는 나와 같이 ‘설국열차’ 체코 로케이션 내내 계셨으니까 ‘고생 많았다’고 하시고. 언니들도 방학 때 들려서 현장도 보고 가고 그랬는데 완성작을 보고는 놀라더라. 친구들? 내가 워낙 학교에서는 평범 그 자체에다 절대 배우인 줄 못 알아봐서인지 극중 요나가 나란 걸 알고는 놀라던데.(웃음) ‘정말 저게 너야?’그러고. 몇 명은 부러워하고.


꽤 긴 시간 체코에서 머물렀다. 그럼 학교는 휴학한 건가?
한 학기는 당연히 쉬어야 했다. 그렇게 하고서라도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사실 엄마가 나보다 영화를 보는 눈이 더 다양하고 정확하다. 예술영화부터 안 보시는 게 없고, 또 엄청 좋아하신다. 오죽하면 봉준호 감독님의 ‘살인의 추억’을 당시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보여주시면서 ‘이 영화 정말 예술’이라고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물론 잔인하거나 비교육적인 건 빨리 감기를 하셔서 뭐가 뭔지 이해가 안갔다.(웃음) ‘괴물’의 경우도 CG로 나중에 입혀야 하기 때문에 대상이 없는 상태서 연기를 하는 게 자신도 없고, 어려워 보여서 못하겠다고 하니까 엄마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부탁할게. 이 한 편만 하자”고 해서 하게 된 거다. 그 정도로 봉준호 감독님의 팬이셨다. 그 인연이 ‘설국열차’까지 이어졌다.


극성 엄마셨던 건가.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상상이 안되겠지만 서너 살 때는 눈도 크고 남다른 외모라서 엄마 친구들이 대회 같은데 나가라고 부추기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한다. 실제로 아기모델 2위하고 그랬다는데 기억은 안 난다. 연기는 엄마가 시켜서 한 건 아니고 앞에서도 말했지만 워낙 영화 광이셔서 그 영향은 받았다. 나는 봉 감독님이 누군지 모를 때 엄마는 이미 비디오로 ‘플란다스의 개’부터 챙겨본 관객이었으니까.(웃음)


(좌) ‘설국열차’ 언론시사회 때 봉준호 감독, 송강호와 함께. (우)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고아성.


봉준호 감독 인터뷰 때 나온 얘긴데, 나중에 요나와 같이 살아남은 5살짜리 티미가 인류의 기원이 된다더라.
현장에서 그 말을 듣고 발끈했다. 난 연하남 안 좋아하거든.(웃음) 현장에서 그 아역배우가 얼마나 말썽을 많이 부리는지. 정말 감독님이 원하는 얼굴상만 아니면 때려주고 싶더라. 그 아이가 캐스팅된 건 딱 그 얼굴 대문이었다. 미국 아역배우들은 규정이 심해서 45분 촬영하면 15분은 꼭 쉬어야 한다. 티미가 나오는 장면은 모두 그 아이 위주로 흘러가야 해서 감독님을 비롯해 모두들 고생이 많았다.


‘설국열차’의 경우 본인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갔다고 들었다. 극중 학교 선생으로 나오는 알리슨 필을 워낙 좋아하는데, 임신한 설정이 고아성씨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극중 아이들 선생님으로 나온 알리슨 필의 역할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내가 꽂힌 캐릭터였다. 은연중에 내 연기가 아닌 그 캐릭터의 설정을 고민하고 있더라.(웃음) 원래는 임신한 상태가 아니었는데, 학부 수 업때 한 외국인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분이 만삭이었는데 어찌나 깐깐하신지 필기는 볼펜으로만 해야 하고, 노트북 사용금지에 핸드폰이 울리면 바로 가져가는 타입이었다. 기차 안에 아이들을 세뇌시켜야 하는 입장과 동시에 뱃속의 아이가 들어있는 캐릭터가 생각났다. 내가 낸 아이디어는 10개 중에 한두 개 됐나. 그래도 채택되니 희열이 있더라.


생각보다 영어가 유창하더라. 평소 실력인가.
시나리오상에서는 영어뿐만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몇 가지 하는 설정이었다. 요나는 인류가 17년간 갇힌 기차 안에서 태어난 ‘트레인 베이비’니까. 단 유창하기보다는 외국인이 보기에 좀 웃긴 억양으로 해야 했다. 영어도 그래야 했는데, 현지 한국 스태프들이 죄다 교포 출신이어서 오랜 외국 생활에 한국어를 너무 코믹하게 하시는 거다. ‘밥 먹었어?’라는 한국말을 ‘밥 먹었니이?’라며 끝을 올리는 식으로. 나는 연수나 유학도 한번도 가본 적은 없지만 내 전작 ‘여행자’의 우니 르콩트 감독님과의 작업도 그렇고 다국적 환경을 경험해 본 게 많은 도움이 됐다.
영화에서는 안 나오지만 ‘설국열차’는 인물마다 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요나는 사실 엄마가 에스키모인이다. 한국인이자 설계사인 남궁민수(송강호)와 사랑에 빠지고 함께 핍박받는 기차보다 밖에서의 삶을 꿈꾼다. 그래서 요나가 1살 때 추위에 강한 에스키모 출신인 엄마가 먼저 나가서 살 터전을 만들어 놓고, 기차가 1년마다 동일한 곳을 지나니까 거기서 남편과 만나기로 한 거지. 근데 아빠가 1년 후 기차 밖에서 몇 발자국 밖에 못 나간 채 얼어죽어 있는 아내를 발견한 거다. 기차사람들이 세뇌 시키는 ‘얼어붙은 7인’의 맨 앞의 여자가 바로 엄마다.


촬영할 때는 세트장 안에서 벽을 보고 하는 거라 그런 설정이 도움이 많이 됐겠다.
체코바란도트 세트장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화 촬영장 아닌가. 한국의 세트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감독님은 갱도에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푸념하셨지만 배우의 경우 세트장에 갇혀 연기를 하는 게 훨씬 집중도 잘 되고 도움을 많이 받는다. 요나의 경우 100% 기차 안에서만 있었기 때문에 연기하기 편했다.


(좌) 괴물의 뱃속에 들어가는 중학생 역을 맡았던 ‘괴물’. (우) 트레인베이비로 다시 봉 감독과 인연을 맺은 ‘설국열차’.

캐스팅 제의가 들어온 건 5년 전이라 들었다.
생각해봐라. 얼마나 많은 설정과 상상을 해봤겠나.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건 ‘최후의 툰드라’라는 다큐멘터리였다. 순수하고 악의없는 부족 어린아이들을 보고 그게 바로 요나가 아닐까 싶었다. 그들은 배고프면 짐승의 배를 갈라 입에 피를 잔뜩 묻힌 채 해맑게 웃는다. 살인을 해도 별 감흥이 없는 요나의 표점은 거기서 출발했다. ‘설국열차’에 탑승하기 전까지의 그런 상상력을 펼치는 게 정말 재미있었다.


봉준호 감독이 바로 그런 고아성의 상상력을 사랑하는 게 아닐까.
아니다. ‘여행자’의 내 연기를 보고서는 “너의 최고작은 ‘괴물’이었는데 우니 르콩트 감독이 그걸 뺏어갔다‘고 분해 하셨다.


영화의 흥행이 양갱 판매로 이어지고 있는 건 아나? 만약 CF가 들어온다면 할 의향은 있나.
영화관 근처 편의점 계산대 옆에 양갱 판매대가 생겼다고 하더라. 사람들이 그걸 집어 들면 가게 사장님이 ‘설국열차 보셨나 봐요’한다고.(웃음) 사실 CF가 들어와도 못 할 것 같다. 영화속 단백질 덩어리가 뭐로 만들어졌는지는 아시지 않나.


해외에서의 활동은 정해진 건가.
여러 에이전시의 제안이 있었지만 아직 확정된 곳은 없다. 나는 연기에 있어서는 할리우드, 혹은 한국의 구분은 무의미 하다고 본다. 뭐든 매력적인 작품이면 할 거다. 함께 연기한 틸다 스윈튼의 경우 스코틀랜드에서도 못 살고, 정말 시골 막사투리를 썼다고 하더라. 그 억양을 총리가 구사하니까 거기부터가 해외 관객들은 뒤집어 지게 재미있는 거다. 난 그런 걸 바로 옆에서 보고 경험했다는 게 너무 좋다. 꼬리칸 사람들과 진압군인들이 싸울 때 물고기의 배를 가르지 않나. 원래는 없었던 건데 현장에서 추가됐다. 뭔가 뜻은 몰랐지만 의미심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순간들을 겪어 봤다는 게 정말 좋다. 미국 배급사인 와인스타인 컴퍼니가 그 장면이 전혀 상관없다고 삭제하려고 하는데 감독님이 “내 아버지가 어부다”라면서 살렸다더라.


자르려면 마지막에 아이를 부품으로 쓰는 장면이나 자를 것이지. 깜짝 놀랐다. 요나의 투시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랄까.
그것도 훨씬 더 잔인한 설정이었다. 감독님이 기계 부품인 채로 있는 아이의 그림을 몇장 그려 주셨는데 정말 심했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 아기에 대한 규정이 엄격해서 등급을 좀 더 낮춰야 했다. 요나의 경우는 초능력이 아닌 청각이 발달한 거다. 기차 밖 눈 내리는 소리도 듣는 설정이었다. 요나에게는 기차 소움이 들리지 않는다. 삭제된 대사 중에 하나가 ‘I SEE SOUND’라는 게 있다. 일반인들한테는 기차소리가 소음이지만 요나는 그게 안 들리니까 다른 걸 듣는 거다. 그래서 문 밖의 상황들이 보이는 것처럼 나오는 거다.


“친구들은 부러워하지만 난 프리랜서에 비정규직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4살부터 CF로 데뷔했고, 앞으로 더 걸어가야 할 길이 멀지만 현재까지 배우로서 행복했나.
지금은 어렸을 때의 경험이 내재되어 있는 상태다. ‘괴물’ 직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고민을 했었다. 배우 관두려면 지금 관둬야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언젠가 헤어지는 연인을 둔 기분이다. 드라마 ‘공부의 신’에 함께 나온 이현우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언제든 배우는 그만둘 수 있고, 지금도 늦지 않는 거라고. 아역 출신이면 그런 고민을 안할 수가 없다. 하지만 후회는 없고 아직은 더 연기를 하고 싶다. 5년 전부터 요나에 계속 빠져있었는데, 지금은 떠나보내는 시점이다. 사진이나 그림, 음악, 모두 다 도움이 안되더라. 이상하다. 평소 같으면 그런 취미를 통해 영화 속 캐릭터들을 보냈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하려고 한다.


다음주부터 다음 작품 촬영에 들어간다고 들었다.
김희애 선배님과 ‘우아한 거짓말’에 들어간다. 난 막내인데 왜 항상 동생이 있는 설정인지 모르겠다. 10대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누구의 딸 아니면 누군가의 아역이었지만 나를 연기할 수 있는 운 좋은 배우인 것 같다. 친구들은 일찍 일을 시작한 나를 부러워하지만 난 프리랜서에 비정규직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서 친구들한테는 이왕이면 ‘정규직’에 가라고 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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