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청와댄데, 당장 <피라미>를 준비하시오.
여긴 청와댄데, 당장 <피라미>를 준비하시오.
  • 신일하
  • 승인 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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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공시절 면사무소 직원들의 피라미 사냥사건 / 신일하


[인터뷰365 신일하] “경부 고속도로 금강휴게소 부근에 피래미 매운탕 집이 많은데 왠지 아세요?” “흔한데다 작고 나약해 낚시꾼이 잡으면 놔주는 물고기인데 그걸 먹다니.” ‘땡전뉴스’ 시절 KTV 교양국에서 전국 유명 맛 집을 찾아 방송했던 K모 PD를 만나 소주를 마시다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는데 이어진 그의 설명은 상상도 못했던 거라 놀라고 말았다. 그 당시 전두환 대통령이 그 집을 찾았던 게 입소문으로 퍼져 그곳이 명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간부가 불러 ‘자네 금강 휴게소에 각하가 다녀온 피래미 집이 있다던데 알고 있나?’하며 물어요.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맛 집 PD가 그걸 모르다니’ 하고 마는 거예요. 취재해 방송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얘기도 않고 ‘응, 알았어’하고 말아 싱거운 간부가 있네 하고 방에서 그냥 나왔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 PD는 간부가 왜 부른지 깨달았다는 것이다. 5공 시절 청와대 동정을 언론이 마음대로 다룰 수 없었다. 게다가 대통령의 동정과 촬영은 물론이고 그날그날의 뉴스도 청와대 출입기자 만이 취급하는 마치 성역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 간부는 정보를 흘려준 거에 불과하지만 PD에게 귀띔한 건 알아보라는 의미가 담긴 거다. 사실 당시의 언론들은 청와대 주변 동정 기사를 다루기 꺼려했다. 80년대에 이순자 여사가 고인이 된 코미디언 심철호씨 차와 시청 광장에서 박치기한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실수가 아니었지만 마치 죄인이나 되듯 심철호씨는 기관원의 요청에 의해 입을 봉하고 있다 문민정부가 다할 무렵에야 흘러간 연예가 소식으로 흘려 세상에 알려졌지 않은가.


피래미는 피라미의 방언. 길이 10cm 정도로 작은 편이나 2급수 하천에 많이 서식하고 매운탕은 담백한데다 뼈 채로 먹을 수 있고 영양가도 높아 식도락가들이 즐기는 민물고기라는 게 그 PD의 설명이었다. 아삭아삭한 튀김은 물론 은은하게 구은 소금구이로도 좋아 인기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은 체구의 사람을 ‘피래미족’이라 놀리거나 물속에서는 민첩하나 밖에 나오면 산소 부족으로 금방 죽어버려 성질 급한 사람을 ‘피래미 같다’고 비유하는 등 낚시꾼들에게는 성가신 존재로 취급 되어온 물고기다.



K모 PD는 그 후 지방에 갔다 오다 금강 휴게소에 들렀다. 강을 따라 10여분 올라가 그 집을 찾았다. “어! KBS에서 왔구먼. 올 줄 알았어”하며 여주인은 무녀가 손님을 맞듯 인사하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집 방송해주지 않아도 돼. 그냥들 올라가”하면서 불청객을 대하듯 하는 바람에 자초지종을 듣는 게 쉽지 않았다. 튀김, 매운탕 등 그 집의 식단을 모두 주문해 놓고 스태프들과 소주를 거나하게 마시며 얘기꽃을 피우니 그제야 여주인이 “손님 대접은 해야 하는 게 아닌 가”하고 합석해줘 그 집이 유명해진 사연을 들었다.



“손님이 다 가서 장사 끝내려는 데 전화가 왔어. 뭐 청와대 부속실이라 했던가. 각하가 피래미 시식하러 갈 거니 준비해 달라며. 누가 장난 전화하는 거로 알았어. 그런데 전화 끊었는데 다시 울려. 면사무소라는 거야. 조금 전에 청와대 전화 받았냐고. 그래서 장난 전화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 여주인은 낮에 잡은 피래미를 모두 팔아치워 난감했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다시 면사무소에 전화해 “피래미 다 떨어졌으니 너희들이 와 잡아줘야 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직원들이 달려와 심야 피래미 낚시 소동이 벌어졌단다.



“글쎄 잠자는 피래미 새끼들을 깨워 잡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알아. 낮에는 그냥 뜰채를 넣기만 해도 나오지만 고것들도 잠자는 시간이라 강가에는 없어. 사람들이 강 깊이 들어가 장대로 휘저어 잠든 걸 깨워 낚았지 뭐” 여주인이 해준 설명을 마치 성우처럼 PD가 흉내를 내며 당시를 떠올리는데 언뜻 이런 생각이 들었다. ‘죄 없는 피래미들이 불쌍하게 잠들었다 황천에 가고 만 게 아닌가’하고.



전두환 대통령은 사단장 시절 피래미가 별미라며 그 집을 가끔 찾았다고 한다. 비록 심야이었지만 각하가 되어 찾아온 단골손님을 보고 얼마나 고마워했을지 상상해 보았다. 잠든 피래미들에게 “요것들 일어나지 못하고 뭐해. 각하가 오셨어. 오늘 너희들 진상하는 날야.” 여주인은 마음속으로 이처럼 ‘전비어천가’를 읊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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