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만의 힘으로 만든 기적의 영화 <봉천9동>
장애인들만의 힘으로 만든 기적의 영화 <봉천9동>
  • 김우성
  • 승인 2008.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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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창을 발견한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푸르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엄청난 노력이 뒤따른다. 영화 제작 과정은 기간에 따라 크게 3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우선 사전준비라 할 수 있는 '프리프로덕션(Pre Production)' 과정이 있다. 프리프로덕션에서는 시의적절한 소재를 발굴, 기획하여 수십여 차례에 걸쳐 수정을 거듭하여 시나리오를 발전시킨다. 그렇게 완성된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촬영장소와 배우는 물론 의상과 소품 등이 미리 결정되는데 건축으로 치면 설계도가 완성되어가는 과정에 해당한다. 준비기간을 거치고 나면 실제촬영에 해당하는 ‘프로덕션(Production)’ 과정에 돌입한다.



주변에서 영화 촬영하는 광경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면 가장 먼저 그 엄청난 규모에 놀랐을 것이다. 미술, 촬영, 조명, 녹음 등 각 분야별 전문화된 수많은 인력들이 고가의 장비를 다루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렇게 수개월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촬영된 필름은 현상, 편집, CG, 믹싱 등 ‘포스트 프로덕션(Post production)' 이라는 후반작업을 거쳐서야 비로소 극장에 걸리게 된다. 이렇듯 산고의 고통과도 비견될 만한 쉽지 않은 일들을 장애인들이 해냈다. 지적장애인(知的, 이전 정신지체 장애인) 신민철씨가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그린 영화 <봉천9동>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기존에 부분적으로 장애인들이 영화제작에 참여한 적은 있었으나 엄밀한 의미에서 장애인들만의 힘으로 만들어 낸 영화는 <봉천9동>이 처음이다.


장애인들만의 힘으로 만들어 낸 최초의 영화 <봉천9동>



당초 영화 <봉천9동>의 촬영은 지적 장애인을 위한 교육 차원에서 시작됐다고 한다. 첫 시나리오 작업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장애인들 스스로 각자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대로 시나리오가 만들어지자 영화 촬영에 대한 이들의 열의는 한층 더해졌다. 그러나 순탄한 듯 했던 이들의 작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예기치 못한 난관에 부딪힌다. 워크숍 형식으로 가볍게 시작하긴 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나머지 각자의 임무를 분담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란 지금껏 살아왔던 삶의 패러다임을 일순에 뒤바꿔버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영화라는 낯선 세계에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이들은 급기야 감독, 스텝, 배우를 모두 직접 투표로 결정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역할 분담이 이루어지고 제목도 여러 개의 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한 끝에 최종적으로 <봉천9동>이 선정되어 촬영에 들어갔다. 교육을 목적으로 했던 영화 촬영은 대성공이었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현장경험이 있는 영화인들의 도움도 컸다. 하지만 장애인들 스스로의 의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촬영 구경하던 비장애인들 악담 서슴지 않기도.



촬영 전반을 진행하고 장애인들을 보조했던 ‘함께 사는 세상’ 교육센터 서성민 팀장은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영화 제작을 하면서 ‘과연 그들이 해낼 수 있을까?’, ‘다음부터 영화 찍지 말자는 말이 나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들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하였다. 촬영 횟수가 거듭될수록 자신감과 표현력도 몰라보게 달라져갔다. 한번은 술집 장면을 촬영에서 다들 술을 마시지 못해 보리차에 거품을 내서 맥주로 대신했는데,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겐 이루 말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이었다. 결국 영화를 다 찍고 나서 내년에도 또 찍자고, 서로 감독을 해보겠다고 아우성이었다. 또한 이번 작업 후 사람들을 대할 때 예전보다 훨씬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다가서는 모습들을 보면서 참 많이 변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촬영하는 동안 마냥 즐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서성민 팀장은 말을 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날씨였다. 낮에만 촬영이 가능한 데다 날씨가 지나치게 덥거나 흐릴 때는 장애인들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져 간질 증상을 보이는 경우까지 있었다. 또한 거리에서 촬영하는 도중 ‘장애인도 그런 거 할 줄 아냐?’라든지 ‘애드리브가 무슨 뜻인지는 아냐?’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말 한마디에 상처를 받는다는 건 다르지 않다. 장애인들에게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음을 열어 대하는 것은 물론, 적어도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 점이 가장 가슴이 아팠다.”



장애인, <영화>라는 새로운 창을 발견하다



작년 12월 중순, 장애인센터 ‘함께 사는 세상’ 식구들과 장애인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봉천9동> 시사회가 열렸다. 비록 조촐한 시사회였지만 ‘관객과의 대화’에 대비해 의상에도 공을 들이는 등 ‘해냈다’는 성취감은 여느 시사회장이 부럽지 않았다. 현재 <봉천9동>은 한창 편집 중이다. 원래 50여분 분량이었으나 시사회 당시의 의견들을 수렴하여 30~40분 분량으로 재편집될 예정이다. 편집이 마무리 되는대로 장애인영화제나 인권영화제 등 국내외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나아가 내년에는 또 한 편의 영화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작품의 완성도를 넘어 <봉천9동>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물론 그들이 장애인이라고 해서 특별한 시선으로 영화를 거론하는 건 발전적인 방향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차별받고 멸시받던 장애인들이 ‘영상미디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는 것, 특히나 그것이 고도의 전문적 기술을 요구하는 영화였다는 것은 일대 사건이었다.


장애인들에 대한 대우는 이전에 비해 법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장애인들이 진학과 취업에서의 차별로 인해 저학력과 불안정 고용이라는 문제를 갖고 있으며 이는 곧 현실에서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비장애인들의 인식 부족과 선입견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그들에게 몸의 불편보다 더 큰 정신적 고민들을 떠안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영화라는 새로운 창을 발견한 그들의 마음은 한없이 푸르다. 그것이 바로 세상을 향해 스스로 나아간, 영화 <봉천9동>이 빛나는 이유이다.

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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