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교 50주년 韓濠 문화교류의 리더 백지희 화백
수교 50주년 韓濠 문화교류의 리더 백지희 화백
  • 김두호
  • 승인 2010.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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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로 호주에 한류를 심는 동양 채색화 작가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한국과 일본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호주로 이주, 시드니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주목을 받고 있는 백지희 화백(호주명 Kara 45)이 15년 만에 모국으로 돌아와 두 차례 개인전을 열고 있다. 10월 11일까지 인사갤러리(서울 인사동) 초대전에 이어 10월 12일부터 18일까지 윤당갤러리(서울 압구정동)에서 초대전을 갖는 백 화백은 시드니에서 카라스 아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다양한 역량의 예술인이다.


20대 젊은 나이에 국전(대한민국 미술대전) 특선작가로 천재성을 인정받은 그는 덕성여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해 미술석사 학위를 받고 다시 일본의 명문 미술대인 교토 시립예술대학원에서 채색화를 전공했다. 민족회화의 선각자인 박생광 화백(1904-1985)의 교토 시립예술대 후배가 된다. 백 화백의 특별한 점은 호주에 이주한 뒤 원주민의 전통 미학과 그곳 현대 서양미술의 영역까지 접하면서 독창적인 자신만의 미적 조형미와 화풍을 담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있다.


유근오 미술평론가는 "백지희의 화면 위에는 다른 차원의 문턱에 발을 디디는 순간의 아픔을 표현한 신체의 편린들이, 현대 작가들이 기꺼이 포기한 고전적인 드로잉 풍의 신체들이, 꽃인지 아니면 꽃과 신체를 몽타주한 듯한 이미지들이 얹혀지고 담금질 되어 있다. 그 화면은 미술사의 구태의연한 지평을 거부하고 새로움을 가장 하기에는 여전히 우리의 시선을 빼앗는 주제이기도 한, 아직은 썩어 문드러지지 않은 인간의 존엄성이 도저한 형상들로 구체화 되는 공간이다"라고 평했다.


백지희 화백은 지금 2011년 한호(韓濠) 수교 50주년 기념 문화교류 이벤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음식문화에서 미술을 포함해 음악 영상예술까지 대규모 교류전을 통해 호주에도 한류(韓流)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계획을 세워 두고 있다.

200호의 대작을 포함해 4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 인사갤러리에서 백 화백을 만났다.



작품은 호주에서 선편으로 옮겨 온 것인가?

항공편으로 가져왔다. 선편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모국에서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얼마만인가?

관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진 때가 1996년 초였으니 15년 쯤 된 것 같다. 그리고 2000년에는 교토시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호주로 이주한 것은 언제인가? 이주하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2001년이다. 친정어머니와 오빠가족이 먼저 시드니로 이주해 결정에 고민이 따르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작품 활동까지 하면서 6년간 머물다가 호주로 옮겨갔다.


반구상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부각된 인체의 이미지가 역동적으로 느껴진다. 그림만 보면 여자 화가로 볼 수 없을 것 같다.

교토대에서 석사과정을 지도한 은사 고지마 교수도 내 그림이 여자가 그린 것 같지 않게 힘이 느껴진다고 언제나 말씀하셨다.


작가 자신의 기질이나 성품이 창작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가?

그럴 수도 있지만 작품을 통해 작가의 성품을 판단하고 느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전혀 다르게 나타날 수도 있어서 정답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나의 경우도 성격이 남성적이지 않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내면의 잠재성 기질에서 남자같은 강한 파워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체나 물체의 부드러운 표현방법이 정감을 느끼게 하고 아름다울 수 있으나 힘이 빠진 생명체의 모습은 자신감이 떨어지고 생동감이 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군도 일본에서 함께 유학을 했다면 혹시 같은 길을 가는 예술인이 아닌지?

대학이 다르고 전공이 다르지만 우린 통하는 것이 많은 부부로 볼 수 있다. 남편(이인근 46)은 홍익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 공예섬유대학원에서 조형공학, 교토대에서 건축공학 박사과정을 마쳤다. 유학하기 전 삼성 등 대기업과 중앙박물관, 대전 엑스포 등에서 무대 또는 시설 디자인과 기획 설계사업에 참여했는데 조형예술에도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서 나의 활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남편은 지금 150여점을 동시에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인 시드니의 카라스 아트갤러리(KARA’S Art Gallery)를 나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백 화백의 호주 이름이 카라인데 꽃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 아닌지?

시드니에 있는 아름다운 거리의 이름이 마음에 들어 내 이름으로 가져왔다. 한국에 오니 가요무대에서 활동하는 그룹 이름에도 카라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는 전공이 한국화였는데 지금은 작품 세계와 표현 영역이 다양해 진 것 같다.

나의 대학 시절에는 한국화를 동양화로 호칭했다. 전통 한국화가 내 그림의 뿌리로 볼 수 있겠지만 일본에서도 그곳 전통 채색화를 전공한 것을 감안하면 나의 창작세계는 동양화란 장르 쪽에 가깝다. 호주에서 깊이 접하게 된 단순하면서 깊은 멋이 있는 원주민의 색조미술도 동양화적 요소가 짙게 깔려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활동하며 느끼고 발견한 양국의 전통 미술과 현대 미술의 크게 다른 점, 특히 미술인의 차이점을 간단히 설명해줄 수 있는가?

하하하. 간단히 설명할 수 없는 질문이다. 전통이나 역사적인 근원까지 거슬러 오르면 채색화만 해도 책 몇 권 분량을 얘기해야한다. 분명한 것은 재료, 구성, 색조 면에서 서로가 다같이 많은 변화를 겪으며 새로운 표현의 현대미술로 발전해왔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한국의 색깔이 있고 일본은 그들대로의 전통적인 색깔이 있다. 그런데 눈여겨 볼만한 그들 사회의 돋보이는 전통이 있다. 꽃이나 새 등 화조(花鳥)만 대대로 그린다든가. 오르지 새만 4대째 그려온 야쓰지 화가 같은 분이 많다.

나는 유학을 떠나기 전 우리나라에서 고전 가구나 사찰에 남아 있는 꽃문양 등 조각을 통해 한국 전통문양의 조형성에 관한 연구를 했지만 그 분야의 자료는 있어도 생존한 전문가가 그렇게 많지 않아 힘들 때가 많았다.


예술은 스승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분야로 알려져 있다.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스승은 어떤 분들인가?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화가 임송희 박세원 정은영 교수님을 대학시절에 만났고, 일본에 건너가서는 그곳 전통 미술을 현대적 조형미로 변화시킨 고지마 교수(교토시립예술대) 같은 분들을 만나면서 무엇을 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깊이 있는 작가의 고민을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유학생활 때는 아내와 엄마의 역할까지 한 것인가?

그렇다. 유학중 아기를 키우며 남편 뒷바라지, 미술 수업에 작품 활동까지 힘들고 고생했던 기억이 더 많이 난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의 내 그림은 다소 무겁고 어두운 색조가 주류였지만 호주로 옮겨간 후는 아주 밝은 쪽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작품 활동에 작가의 삶의 환경 변화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특히 일본에서는 우리 아이가 이를테면 학교에서 이지매(왕따)를 당해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두 아이 중 하나는 교토에서 태어났지만 영주권을 받지 않았다. 나도 대학에서 귀화를 해 교수로 활동하기를 원했지만 잠시 고민을 하다가 6년 만에 가족과 함께 호주로 떠났다.



이제 호주에서 한류문화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당신의 구상과 노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현재 호주 사회에서 한국계 동포들에 대한 인식이나 위상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 동포의 뛰어난 점은 어느 곳에 살던 어느 가정에서나 자녀에 대한 뜨거운 교육열이다. 호주의 우리 동포들도 마찬가지 같다. 덕분에 이민 2세들 중에 각 분야에서 실력이나 리더십으로 두각을 나타낸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어서 희망적이다.


2011년 한국과 호주의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예술문화 교류전을 추진한다는데 새삼 한국과 호주의 역사적인 관계가 관심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호 수교는 1961년에 이루어졌지만 호주 선교사가 1889년에 한국을 찾았고 1904년 호주의 사진작가 조지 로즈가 한반도를 여행하며 남긴 풍물사진은 역사적인 사료로 활용 보존되어 있다. 그보다 진한 유대관계는 역시 6.25때 호주 군대가 1만 8천명 참전해 340명이 희생된 혈맹의 관계를 떠올려야 한다.

지금은 정치 경제 분야에서 깊은 관계를 나누고 있고 한국은 호주의 4번째 교역 상대 국가이다. 양국 정부는 이미 2011년을 '우정의 해'(Year of Friendship)로 공포한 바 있다. 그러나 문화 예술 분야는 무역 경제관계와 달리 폭넓은 교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 양쪽에서 활동해온 나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할 생각인가?

아직은 계획에서 제안단계에 있다.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호주 국립미술관을 포함해 시드니와 캔버라 등지에 있는 대표적인 기념관 미술전시관에 한국 작가들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전시하고, 반대급부로 호주 작가들의 작품을 한국에도 전시하는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그와 함께 양국 국민들이 모두 좋아하는 음식교류전도 개최하고 싶고, 미술전시회만 아니라 음악인들과 영상 예술인들의 교류 행사도 기획하고 있다. 이같은 행사는 모두 관련단체의 참여와 예산이 밑받침 되어야 하므로 구상이나 계획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지만 성취를 목적으로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단체와 기관이 참여해야 하는가?

문화 교류는 정부 차원보다 민간 교류 차원에서 추진되는 것이 다양성이 있고 바람직하다. 그래서 글로벌 기업들과 예술 문화단체들이 공동으로 손을 잡고 준비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나의 역할은 행사가 성공하도록 길을 만들어주고 안내하고 섭외하는 일로 생각한다. 국가적인 큰 이벤트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내 개인적인 힘으로 어느 정도 규모의 미술 교류전은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한호 교류전을 추진 중이다.


계획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호주는 땅이 좁은 우리에게는 기회의 국가일 수 있다.

한국과는 대조적인 것이 많다. 우선 땅덩이도 차이가 있지만 자원 빈국인 한국과 달리 호주는 자원 부국의 매력적인 나라이다. 또 환경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국가이면서 무한한 관광자원으로도 세계인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그곳에서도 한류가 일어나야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부유하다기보다는 훌륭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는 말이 어울릴 것 같다. 아버님이 판검사를 모두 거친 법조인인데 변호사로 활동하시다가 별세하셨다. 내가 1남 3녀 중 어머니가 39살에 낳은 늦둥이 막내인데 아버지는 내가 결혼식을 올리고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그때 가족들은 나를 무척 사랑했던 아버지가 딸의 시집가는 모습을 마지막 즐거움으로 간직하고 싶었던 모양이라고도 하셨다.


20대에 국전 특선작가로 이름을 올렸다면 작품 활동 이력도 20년이 넘은 것 아닌가?

국전 작품은 1989년 24살 때였다. 그 이전에 후소회 대상전과 서울미술제 등에서 인정을 받았고 2000년에는 일본 아사히 미술공모전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미술에 대한 재능은 스스로 생각할 때 천부적인 소질인가?

서울의 혜화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다고 칭찬을 받기 시작했다. 은석초교 시절에는 각종 미술전시회에서 상을 받았는데 일본에서 개최한 국제 아동미술전에서 받은 상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러나 나의 재주를 인정하고 배려하셨던 어머니와 달리 아버지는 예술가는 가난하다면서 화가 지망을 언제나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셨다.


화가로 또 어떤 꿈을 간직하고 사는가?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 말고 화가에게 어떤 꿈이 있나? 당장은 엄마이기도 해서 우리 아이들이 그들이 원하는 뜻을 이루도록 돕는 것과 함께 호주 사회에 한류의 토대를 내 힘으로 보태고 도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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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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