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地名]을 제목으로 한 영화 뭐가 있었나
지명[地名]을 제목으로 한 영화 뭐가 있었나
  • 김우성
  • 승인 2010.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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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 개봉으로 본 국내외 사례들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하명중 감독의 신작 ‘주문진’이 21일 개봉했다. 영화 ‘주문진’은 강릉 주문진을 배경으로, 연인을 잃고 그녀와의 추억이 깃든 펜션에서 떠나지 못하는 고스트(김기범)와 동네 횟집주인의 조카 지니(황보라)의 사랑을 그렸다. 영화는 제목에 걸맞게 도시 곳곳의 아늑한 풍광과 짙푸른 바다를 그림처럼 담아냈다.

특정 도시를 배경으로 하면서 그 자체로 제목이 된 영화는 ‘주문진’이 처음이 아니다.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밀양’(감독 이창동)도 있었고, 가장 최근에는 거친 세계를 살아가는 남자들의 운명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산’(감독 박지원)이 있었다. 이처럼 도시명 그대로가 제목인 영화는 관객들에게 호기심을 유발한다. 제목만 듣고는 내용은커녕 장르조차 짐작하기 어렵기 때문에 더 궁금해지는 것이다.

도시명이 영화제목으로 인용되는 가장 큰 이유는 도시가 자아내는 고유한 파노라마와 분위기, 즉 로케이션에 있다. 도시(명)가 영화내용을 결정짓는 건 아니지만, 대부분은 해당도시와 떼어놓고 보기 힘들다.

제목의 일부에 들어간 경우를 포함해 ‘서울’만 수십여 편이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행정, 경제, 문화의 밀집지인 탓에 이야기 소재가 무궁무진한데다가 한국사회의 양면성을 나타내기에 더없이 좋은 배경이라는 데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서울은 만원이다’(1967) ‘서울이 좋다지만’(1970) ‘서울 무지개’(1989) ‘구로 아리랑’(1989) ‘서울 에비타’(1991) ‘홀리데이 인 서울’(1997) ‘달마야, 서울 가자’(2004) 등 시대를 가리지도 않는다.
해외작품으로 눈을 돌려보면 사례는 훨씬 많아진다. 톰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1993)은 도시의 기후가 제목에 작용한 경우다. 시애틀은 9월경 우기가 시작되어 6개월 동안이나 지속된다. 영화에서처럼 쉬지 않고 내리는 부슬비에 밤잠을 설친다는 의미를 사랑이야기에 빗댄 것.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시애틀보다 뉴욕이 더 결정적인 공간으로 소개된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가고 들어오는 항구는 로맨스가 일어나기에 용이한 장소다. 노르망디 지역 항구도시 셰르부르를 무대로 한 뮤지컬영화 ‘쉘부르의 우산’(1964)에서 남자주인공도 참전을 위해 항구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옛 연인과 재회한다. 바다를 사이에 둔 공백의 시간은 이들의 아름답고도 가슴 저미는 사랑을 가능케 했다. 프랑스 북부도시의 특색을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낸 자크 드미 감독은 이 영화로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거머쥐었다.

절망, 희망, 불안, 배신, 체념 등의 이미지를 담아내기에 환락의 도시만한 곳이 있을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1995)에서 실직 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시나리오 작가 벤(니콜라스 케이지)은 LA에서 차를 몰고 라스베가스로 떠난다. 그곳에서 매춘부로 살아가던 여인을 만나 잠시 행복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한 채 비극적 결말을 받아들인다.



도시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제목이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는 극의 사실성과 긴장감이 더해진다.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사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뮌헨’(2005), 2차 세계대전 나치시대의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한 서사시 ‘레닌그라드’(2007)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독립선언으로 잘 알려진 도시 필라델피아는 미국의 이상이라 할 수 있는 자유, 독립, 정의를 상징한다. 필라델피아는 그리스어로 형제애를 뜻하기도 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변호사의 부당함에 맞선 투쟁 ‘필라델피아’(1993)에서 감독은 사회적 소수 문제를 자연스럽게 미국의 양심에 호소한다.

한국에서도 ‘007시리즈’의 테렌스 영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해 ‘인천’(1981)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적이 있다. 6.25 전쟁 인천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제작자의 입김이 지나치게 작용하면서 핵심배역인 맥아더 장군 역의 올리비에가 무성의로 일관, 결국 최악의 영화를 가리는 골든 라즈베리 어워드 주요부문을 휩쓸었다.

코엔형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파고’(1996)는 완전한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실제 있었던 사건에 몇몇 설정만 바꾸는 척하며 노스 다코다 주의 소도시 파고를 제목으로 사용하는 뻔뻔함(?)을 보여준다. 그렇다 해도 인간의 탐욕을 독창적인 리듬감으로 풀어가기에는 적절한 배경이었다.



제목에서의 도시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베트남전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남자(이영하)와, 폭력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에 유린당하는 매춘부(강수연)의 우연한 만남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1987)에서 제네바는 주인공들의 막연한 이상향, 혹은 자유의 또 다른 이름으로 은유될 뿐이다.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1989)도 일면 비슷하다. 핀란드 황량한 툰드라 지대의 쓰러져가는 창고에서 민요를 연주하며 지내던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밴드가 어느 날 흥행업자의 권유로 미국으로 향한다는 이야기. 레닌그라드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으로 핀란드만에 인접한 도시다.

도시가 배경이자 제목인 영화로는 이밖에도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 ‘베를린 천사의 시’(1987) ‘뉴욕 스토리’(1989) 등이 명작으로 꼽힌다.

한편 영화 외적인 요인이 작용하기도 한다. ‘홍콩’은 국내 수입 과정에서 흥행을 위해 활용되는 경우다. ‘홍콩 마스크’(영어 원제목 Sixty Million Dollar Man) ‘홍콩 레옹’(Out Of The Dark) ‘홍콩 식스티 세컨즈’(Super Car Criminals) 등이 있다. 국내 관객들에게는 한낱 패러디물로 각인되기 십상이라, 제작진으로서는 달갑지 않을 작명이다.



김우성 기자 ddoring2@interview365.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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