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공장 사장이 된 애마부인 안소영
김치공장 사장이 된 애마부인 안소영
  • 김두호
  • 승인 200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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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히 당당했다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영화배우라구요? 그래요. 저도 배우였지요. 그 시절을 못 잊고 살지만 지금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네요. 바쁘게 살다보니 고민하고 외로워할 틈도 없었어요. 결혼은 안했지만 이쁜 우리 아들이 나를 행복하게 해요.”


안소영. 그녀는 80년대 은막을 분홍색으로 물들인 영화 ‘애마부인’시리즈의 원조 글래머 스타였다. 지금 그녀는 김치를 생산하는 식품회사의 사장으로 변신해 있다. 오랫동안 모습을 감춘 그녀를 최근 ‘애마부인’을 연출했던 정인엽 감독의 아들 결혼식에서 마주쳤다. 그리고 압구정동 찻집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기자에게 독특하고 씩씩하게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떻게 감쪽같이 종적을 감추고 살았어요?

미국서 8년을 살고 2년 전에 돌아왔어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활동을 하지 않기로 작정하면서 영화 쪽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연락도 안해 종적을 감춘 것처럼 생각들 하나 봐요. 죄진 일도 없는데 숨어 살 건 없잖아요.


미국서 8년이라면 어디서 무얼 하고 살았나요?

뉴욕과 가까운 뉴저지에서 식당을 운영했어요. 한식당인데 원래 제가 요리를 잘하는 편이라 쉽게 생각하고 덤볐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식당업이라는 게 몸으로 떼우는 중노동이더라구요. 잠이 늘 부족했어요. 우리 동포들 모두 그렇게 열심히들 살아요. 피눈물 나게 일하고 저축해서 자식 교육 제대로 시키며... 그렇게 힘들게 살면 자신이 힘들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니까요.


기반을 잡았을 텐데 왜 귀국했어요?

올해 74살 되신 어머니도 계시고 또 우리 아들이 어릴 때 어느 정도 내 나라에서의 정서교육도 필요할 것 같고. 미국의 교육환경이 선진국답게 자유스럽고 이상적이지만 어릴 때부터 미국물이 들면 의식구조도 미국사람으로 바뀔 것 같아 그래도 좀 자랄 때까지 여기서 키우고 싶어요.



결혼은 언제 했지요?

결혼요? 제가 지금 50 살인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결혼 한 적이 없어요. 내 팔자에 결혼 운은 없나 봐요. 일찍부터 결혼하려는 꿈도 접었고 남편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이제는 안 들어요. 사실 저는 겉보기가 여자이지 처신하는 것이나 속 마음씨는 남자와 같아요. 영화에서는 사랑의 화신처럼 보였지만 사실 전 연애에 소질이 없어요. 좀 바보스럽다고 할까요. 이성교제는 취미 없는 종목 같아요.


그런데 아들은?

어쩌다 낳게 되었어요. 임신을 하고 물론 낳고 싶어서 낳았지요. 올해 11살로 초등학교 4학년인데 귀엽게 잘 커요. 이곳에서 낳아 한 살 때 미국으로 갔었지요.


그럼 그 아이 아버지는?

지금은 이 세상에 살지 않아요. 제게 아이가 있다는 걸 그분의 집안에서도 알고 있어요. 낳아 준 아버지 쪽의 호적에 올렸어요. 태어나서부터 엄마만 보고 살지만 우린 행복해요. 저의 사랑도 행복이나 꿈도 모두 아들과 함께 있어요.



이런 솔직함이 기자가 기억하는 안소영이었다. 지금 보면 꽉 막혔던 80년 대의 대한민국에서, 자신이 원했건 그러지 않았건 간에 20대 초반에 나이에 ‘가슴만 있는 여자’처럼 알려지며 남성들의 섹스 심볼로 살아야 했던 그녀. 매스컴은 그녀를 자극적인 상품으로 포장했고, 보수주의자들은 그녀를 성(性)의 마녀처럼 손가락질했다. 모르긴 해도 혼자서 많이 아팠을 것이다. 어쩌면 그 상처를 이겨낸 힘은 바로 그녀의 이런 당당함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왜 그녀는 영화를 떠났던 걸까?



영화를 떠난 지가 언제였죠?

1995년 박광수 감독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이 마지막 작품이었어요. 그 후 압구정동에서 의상실을 열어 사업이란 것에 눈을 떴어요.


지금은?

하남시에서 김치공장을 운영하고 있어요. 직원은 수십명 정도지만 제대로 된 현대시설의 식품회사인데 지금은 학교 급식용 김치를 납품하고 있어요. 앞으로 수출까지 생각하겠다는 그림도 그려 보고 있어요. 미국에 있을 때 구상을 했어요. 우리 식품 중에 국제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식품이 김치라는 것을 느꼈고 저도 김치 담그는 데는 일가견이 있거든요.


영화가 그립지 않은가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아요. 지금은 제 삶이 소중하지만 그래도 한 시절 꿈을 폈던 배우 때를 잊을 수는 없겠지요. 원래 연극부터 했으니까 기회가 오면 다시 연극을 하고 싶어요. 출연보다 뮤지컬 작품을 하나 제작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요. 그런데 바깥에서 요즘 연예계 돌아가는 걸 보면 우리들 때와는 사고방식이나 스케일 등 모두가 딴 세상 같이 보여요. 그때는 영화라면 영화인들끼리 인간적인 관계가 돈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는데 요즘은 냉정하고 비즈니스적인 게 우선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출연료를 안 따졌잖아요.




무엇을 하든 행복해지려는 것이 사람들의 소망인데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삶에서 행복지수를 이야기한다면?

살아온 길을 돌아보면 행복한 순간보다 생각하기 싫은 순간들이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7대 3정도로.. 어둡고 답답한 길들이 너무 많았고 힘들었어요. 성격이 타협을 잘 못하는 경우가 많아 외로울 때도 많았구요. 이제 아들과 함께 평온하고 실속 있게 잘 살고 있어요. 행복이 7이라면 불행지수는 3정도랄까. 사실 행복이다 불행이다 라는 것이 우리 마음의 수양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 아닌가요?



<애마부인>이후 안소영은 충무로의 우뚝한 히로인이 되었다. 그리고 충무로를 떠났지만 여전히 그녀에게선 그 당당함이 가득했다. 인기라는 파인더를 통해 자기의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며 초조하게 살아가야 하는 연예계를 떠나 이제 행복도 불행도 자기가 관리하기 나름이라고 말하는 식품회사의 안소영 사장. 80년대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여전히 당당하게 오늘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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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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