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나찌를 찬양한 독일의 마지막 마에스트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나찌를 찬양한 독일의 마지막 마에스트로
  • 소혁조
  • 승인 2007.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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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혁조의 인터미션


[인터뷰365 소혁조]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그는 19세기 후반 낭만주의 음악의 선두주자였으며 독일 음악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로 추앙받았다. 표제음악, 교향시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으며 '돈환' '알프스 교향곡' 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지금도 전세계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멀리는 바흐부터 베토벤, 멘델스존, 슈만, 브람스, 바그너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귀로 듣는 음악이란 분야에 있어서 독일 민족이 끼쳤던 영향력이란 가히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세계의 음악사를 지배했던 찬란한 독일민족의 음악사는 19세기의 마지막과 20세기의 초까지 장식하였으나 아쉽게도 그 이후엔 음악과 영상을 비롯한 모든 엔터테이너의 맹주자리를 미국에게 빼앗긴 듯 하다.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의 초입인 지금까지도 문화예술에서의 미국의 전 세계적 지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막강하기 때문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 아마도 그는 위에 언급한 것처럼 전 세계 음악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마지막 독일인이었을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독일 낭만파 작곡가의 마지막 세대이며 낭만파 음악을 가장 찬란하게 빛냈던 한 사람이다. 작곡가로서의 활동뿐 아니라 당대의 명 지휘자였고 교향곡, 협주곡, 관현악곡,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종교음악을 제외한 전 장르에 걸쳐 왕성한 작곡활동을 하였고 그가 남겼던 주옥같은 작품들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에서 널리 연주되고 많은 음반들이 발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트라우스의 생애를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독일역사상 가장 격동적인 시대를 살았던 뛰어나지만 나약한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부딪치며 살아가는 대신 시류에 휩쓸려 가는 나약함을 보여주었다. 바로 그의 천재적인 예술성이라는 강렬한 빛의 그림자로 항상 따라다니는 나치에의 부역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선동정책에 가장 충실하게 따랐고 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의 올림픽찬가를 작곡하기도 했다.


그는 19세기와 20세기를 관통하는 독일음악 최고의 작곡가였고 독일의 자랑이었으나 나치에 부역한 혐의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멍에가 되어 일생동안 그를 괴롭혔다. 그가 뿜어냈던 강렬한 빛만큼 어두운 그림자 역시 길게 드리워져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나치의 요구를 한 번도 뿌리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끌려 다녔다는 점에서 훗날 법정에서 무죄판정을 받기도 하였으나 푸르트벵글러와 마찬가지로 그만큼의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예술가의 행적으로 결코 옳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바로 그의 일족이 유대인의 혈통이 섞였기 때문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치의 비위를 건드려선 안 된다는 점이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부추겼다).


한 가지 덧붙일 내용이 있다.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는 베를린에서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을 찬양하는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는 것은 이미 영상물로도 증거가 남아있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또 한가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안익태가 일본 찬양 작품 '대일본축전'을 일본에서 지휘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음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되는 이 엄청난 사건. 그런데 바로 '대일본축전'이라는 이 미친 우익꼴통조의 엄청난 제목의 관현악곡은 바로 안익태의 스승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것이다.


슈트라우스는 12세 때부터 천재성을 발휘하여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프란츠. J. 스트라우스)역시 뮌헨궁정관현악단의 명 호른주자였는데 음악을 사랑하는 가풍과 부모님의 영향으로 그는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하며 음악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첫 시작은 악단의 제1 바이올리니스트였다. 20세가 되어 작곡가와 지휘자로서 맹활약하며 그의 교향곡이 뉴욕필에서 초연되기도 하였다. 음악가로서는 거칠 것 없는 탄탄대로의 인생을 살며 전 세계에 그의 빛나는 명성을 알릴 수 있었다.


슈트라우스 음악의 특징은 독특한 실험정신에 입각한 파격적인 음악이라는 점과 여러 장르에 걸쳐 매우 다작을 했다는 점이다. 그의 음악은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다분히 퇴폐적인 음악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당시에는 빛을 보지 못했으나 사후에 다시금 후기작품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그의 음악들은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그는 교향곡, 협주곡, 관현악곡, 성악곡, 실내악과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방대한 양의 작곡을 하였다. 그가 남긴 관현악곡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갑빠잡는 분위기의 서주를 알릴 때 너무도 많이 쓰이는 레퍼토리이고 '돈환' 또한 수많은 교향악단이 많이 연주하고 있다. 또한 '엘렉트라'와 같은 오페라들도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슈트라우스는 다작의 작곡가로서, 당대의 명 지휘자로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렸으나 예술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환영이나 존경받을 수 있는 삶을 살았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음악에는 많은 철학이 깔려있다. 한때 그는 쇼펜하우어에 심취했었고 그의 음악 중 가장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대표작인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바로 니체의 동명의 책을 읽고 너무도 감동하여 작곡한 것으로 유명하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사상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그의 음악은 밝고 화사한 느낌보다는 웅장하고 우울하며 격정적이다. 너무도 모순되어 있다. 인간 슈트라우스는 소극적인 성격에 일신의 안녕을 위해 나치에 협력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했으나 그의 음악들은 대단히 격렬한 인상을 풍긴다는 점이 너무도 모순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가 추구했던 예술과 인간으로서의 삶의 부조리에서 느껴지는 모순이 참 재미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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