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장소 찾아내는 ‘도사’ 로케이션 코디네이터 양성영
영화 촬영장소 찾아내는 ‘도사’ 로케이션 코디네이터 양성영
  • 김우성
  • 승인 2009.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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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 자동차 충돌 씬 위해 경찰청 브리핑도"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는 2000년대 들어 영화계에 등장한 신종직업이다. 주 업무는 영화 속 장소를 찾아내는 것. 영화나 TV드라마 장소를 찾아다니는 로케이션헌팅은 예전부터 있었으나,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는 단순히 장소를 찾아내는 것에서 나아가 촬영허락을 받아낼 뿐 아니라 경찰, 소방, 행정 등 관공서의 협조까지 이끌어낸다. 그야말로 촬영'장소'에 관한 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다.

이러한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직접 운영하는 '영상위원회' 소속 직원들이다. 지난 1999년 12월 세밑에 부산광역시에서 출범, 현재 서울 전주 제주 등 전국 각지의 영상위원회에서 30 여명의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로케이션 매니저)들이 영상물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다.

부산영상위원회 로케이션지원팀장 양성영(33)씨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 일한 로케이션 전문가다. 로케이션 코디네이터의 근무 기간은 보통 5년이 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는 올해로 벌써 9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다. 지금껏 유형무형으로 참여한 영화만 3백편이 넘고, TV드라마와 CF 등 기타 영상물을 합치면 무려 5백편에 이른다.

양 팀장과의 인터뷰는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들의 활약에 힘입어 영화도시로 발돋움한 부산 해운대 바닷가에서 진행됐다.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라고 하면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건가요.

우리가 스크린에서 보는 한 장면 안에는 다양한 요소가 포함되어 있죠. 스토리가 있고, 주인공도 있고요. 그 중 주인공이 움직이는 장소에 관여를 하는 일이라고 보시면 돼요. 이때 시나리오 상에는 장소가 식당, 술집 하는 식으로 간단하게 기재되어 있잖아요? 어두침침한 카페, 70년대 막걸리집, 복수혈전이 일어날 것만 같은 창고... 이런 식으로 감독이 염두에 둔 느낌이 있는데요. 로케이션 코디네이터는 글로만 써져 있는 장소를 시각화할 수 있도록 장소를 발굴하고 제안하는 사람들이예요. 그리고 그 장소가 마음에 들었다고 하면 가장 편하게 촬영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고 편의를 제공합니다. 부산영상위원회는 부산시에서 조직한 곳이기 때문에 저희가 부산시를 대표해서 경찰, 소방, 항만, 공항, 철도 등 촬영에 필요한 일체의 관공서 협조를 요청합니다. 또한 촬영장 인근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양해를 구하고, 필요하다면 시의원들을 설득하기도 하지요.


촬영하러 부산에 가는 모든 영화팀은 그런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물론 무조건 다 되는 건 아니예요. 때문에 영화 제작사들은 촬영하기 훨씬 이전인 시나리오 개발 단계부터 미리 저희에게 지원요청을 합니다. 그러면 저희와 제작사 양 측이 사전에 충분한 협의를 거치게 되는데요. 불가능하다 싶은 장면이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 조정되는 과정이죠.




혼자 한 해 참여하는 작품이 몇 편정도 되나요.

평균 30~40편 가량 되는 것 같아요. TV드라마나 CF, 뮤직비디오 등을 합치면 그보다 좀 더 되겠네요.


활동범위가 부산에 한정되나요?

그렇진 않아요. 현재 김해시, 진해시, 합천군과의 협의 체계가 구축되어 있고요. 크게는 경상남도 전체를 관할하고 있습니다. 최근 경상남도에서 별도로 영상위원회를 설립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요. 경남영상위원회가 출범하더라도 부산과 긴밀히 협력하는 형태가 될 거라 예상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참여한 영화 중 주요 작품들은 뭐가 있었나요.

<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가 사는 집과 골목을 주례여고 인근에서 찾았고요. 일본영화 <히어로>에서 기무라 타쿠야와 마츠 타카코가 병력을 동원해서 범죄자들을 덮치는 장면은 국제시장에서 촬영을 했었어요.(웃음) 그 밖에 <우아한 세계> <태풍태양> <착신아리 파이널> 등등이 있었고, 부산에서 촬영은 안했지만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 장소를 찾기 위해 뛰어다니기도 했죠.


로케이션 지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건 다른 지자체에서도 실시하고 있는 상황인데요. 부산에서 유독 영화촬영이 많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뭘까요.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행정기관의 협조체계가 국내 어느 곳과 비교해 봐도 잘 구축되어 있다는 점을 우선 꼽고 싶어요. 부산영상위원회 당연직 위원장을 부산시장이 맡게 되어 있기에 공문을 보내면 대부분의 관공서에서 흔쾌히 협조를 해주시죠. 부산의 독특한 '그림'도 빼놓을 수 없어요. 부산은 바다, 산, 강, 논밭 등 자연적인 풍광을 지니고 있는 동시에 도심의 규모도 상당해요. 서울 강남의 빌딩숲 한복판에서 대규모 촬영을 하려면 제약이 많이 따르잖아요. 그럴 때 서울을 대체해서 부산으로 발길을 돌리는 거죠. 또한 부산영화제를 통해 시민들이 영화에 대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서 영화촬영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도 부산의 강점입니다.


근 몇 년 사이 해외영화의 부산 촬영이 부쩍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영화인들의 방문이 가장 많아요. 지리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영화제를 오가면서 부산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게 된 것도 큰 이유예요. 시나리오에 일부러 부산을 삽입하기도 하는데, 재밌는 일화가 하나 있어요. 영화 <키사라즈 캐츠아이>(2003)에서 원래 이야기 구조 에는 부산이 나올 이유가 전혀 없었는데요. 제작진이 회의하다가 주인공 이름이 '붓상'이었던 데서 착안해 "영화 오프닝을 부산으로 하자"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고 해요. 그래서 부산에서 잠에서 깨어나 벌어지는 코믹요소가 탄생하게 됐죠.(웃음)



초창기 얘기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지금보다는 체계가 잡혀있지 않았을 터라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

방화범과 소방관들의 사투를 그린 <리베라메> 촬영을 할 때였어요. 바로 저기(해운대 요트경기장)에 주유소 오픈세트를 설치하고 폭파하는 엔딩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당시 저희로서는 비슷한 폭파 경험이 없었던 거예요. 앞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지, 폭파 피해는 예측을 못하겠지. 결국 수 천 명의 주민들에게 안내문을 돌리는 수밖에 없었어요. 임신한 주민을 위해 따로 호텔을 잡아주기도 했고요. 초량동 침례병원에서는 병원에 불이 나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는데, 불이 나는 것처럼 효과를 주는 거잖아요. 하지만 주민들이 화재로 오인할까봐 동사무소 민방위 차량에 올라 동네방네 안내방송을 하고 다니기도 했어요. 그렇게 했음에도 안내방송을 못 들은 주민들은 119로 신고전화를 했었죠.(웃음) 곽경택 감독의 <친구> 촬영할 때는 도로통제를 위해 불가피하게 버스 노선을 임시로 변경해야 하는 일도 있었어요. 그러자 경찰, 소방, 구청, 동사무소 등 교통 및 민원 담당자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가졌어요. '도대체 영화 촬영 때문에 버스 노선을 변경하는 게 말이 돼냐'는 얘기가 주를 이뤘죠. 그때 저희가 "부산도 뉴욕, LA와 같은 영상도시가 될 수 있다."하며 싹싹 빌었어요. 결국 <리베라메>와 <친구>의 성공으로 충무로에서 '부산가면 영화 찍기 편하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어요.


지역주민들이 불만을 표하는 경우도 많겠습니다.

멀쩡한 길을 막고, 민가에서 촬영을 하는 등 부산시민께 직접적 피해를 드리는 점에 대해서는 굉장히 죄송합니다. 부모님 같은 분들께서 불편을 겪으시고, '영화 찍으면 돌아오는 게 뭐냐'고 말씀하실 때는 무척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건설현장이 있다고 할 때, 그 현장이 서울에 있느냐 부산에 있느냐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봐요. 인력, 자재, 기술, 금융 등 자연적인 인프라가 구축되는 거예요. 이런 점을 잘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시민과 함께 가는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언론을 통해 캠페인도 실시하고 있고요. 영화시사회 등 행사가 있을 때 초대를 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지금까지 일 해오는 동안 가장 인상 깊은 영화인이 누군가요?

<아홉살 인생>의 윤인호 감독님이요. 극중 학교와 마을을 찾는다며 윤 감독님을 비롯한 주요 스텝들이 부산에 왔었어요. 당시 제가 '초보'였던 터라 일을 조리 있게 못하고 무조건 열심히 몸으로 때웠어요. 영화인들이 헌팅을 다닐 때 보통 아침 8시를 전후해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저는 해 뜨는 시간 되면 스텝들이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갔죠. 4일 내내 그렇게 꼭두새벽부터 시작해 승합차에 열 명이 빼곡하게 몸을 싣고는 쉴 틈 없이 장소를 찾아다녔어요. 밤에는 자동차 라이트 켜놓고 둘러보면서 12시 다 되어서야 일정 끝내고. 제 스스로가 뭘 모르니까 경남 전체 폐교와 분교 리스트 뽑아서 거미줄처럼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때 연세 많으신 전조명 촬영감독님께서 "젊은이 나 좀 살려줘"라고 하셨을 정도였죠. 하하. 결국 다른 지역에 가서 촬영을 했는데 윤 감독님이 굉장히 미안해하며 "다음 촬영은 꼭 부산에서 할게"라고 약속을 하셨어요. 그리고 몇 년 후 <더 게임>을 가지고 부산으로 내려오셨죠.


약속을 지켰네요.

<더 게임> 시나리오에 일부러 부산을 넣은 거예요. 말 뿐인 줄 알았는데 크게 감명을 받았어요. 혼신의 힘을 다했던 어리고 순수할 때의 에피소드라 더 뭉클해요. 그때 생각하면 내가 점점 머리 굴리며 정답에 대충 맞춰가는 사람으로 변한 건 아닌지 반성이 돼요. 아무튼 그런 인연으로 제 결혼식 때 윤 감독님이 사회도 봐주셨어요.(웃음)


가장 짜릿하고 보람있던 순간을 꼽는다면요?

<우아한 세계> 촬영할 때예요. 도심 교차로에서의 자동차 충돌씬을 촬영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순간 다리에 힘이 빠지더라고요. 국내에 전례가 없었어요. 그런데 '내가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르지만 한 번 쯤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공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실패하면 그 책임이 저에게 돌아오는 일이었어요. 일단 영화사 측에는 불가능하다고 공문을 보내놓고, 혼자서 군사작전도에 촬영 후보지 일대 도로를 다 그린 후 자동차 모형과 경찰모형을 만들었어요. 그걸 가지고 도로통제 시나리오를 각 상황별로 7~8개 준비해서 해운대 경찰서로 향했어요. 정성이 통했는지 책임자로부터 '이 정도하면 가능하겠다. 해보자'는 답변을 받았어요. 단, 지방경찰청 병력을 확보해달라는 조건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지방경찰청으로 가서 다시 브리핑을 했는데 '주변 도로가 혼잡해지는 상황이 30분 이상 발생하는 즉시 입건하겠다'는 조건으로 허가를 받았어요. 3주 동안 일어난 일이죠. 제가 원래 담배를 안 피우는데 그때 담배를 피웠을 정도로 고생이 심했어요. 엑스트라를 태운 버스만 70대, 의경버스 3대, 현직경찰 20여 명에 통제요원만 1백여 명, 차량 배포용 전단지 4천장 등등. 지금 하라면 절대 못해요. 시뮬레이션 덕분이었는지 아무 문제없이 촬영을 마칠 수 있었고,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틀 동안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습니다.(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부산에서 아시아 프로젝트가 이루어질 때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영어공부를 열심히 할 계획이예요. 최근 아시아가 극장, 휴대폰, IPTV 등 콘텐츠 유통 구조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잖아요. 한국이 그 시장을 주도할 거라 확신해요. 뛰어난 신진영화인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는 게 증거죠. 앞으로 그들과 함께 활약하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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