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삭둥이 한명회 연기 평생 못잊어” 배우 정진
“칠삭둥이 한명회 연기 평생 못잊어” 배우 정진
  • 서영석
  • 승인 2009.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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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는 자신과의 투철한 싸움에서 이겨야 / 서영석



[인터뷰365 서영석] 한때 칠삭둥이 한명회로 세간에 화제가 되었던 연기자 정진을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재사(才士)로 알려진 한명회의 호는 압구정. 지금은 강남의 압구정동 하면 부의 상징처럼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조선시대 인물 한명회의 호이자 그가 말년을 보냈던 정자 이름이기도 하다.

정진은 작은 체구지만 내뿜는 열정만은 여전히 만만치 않은 연기자였다.



배우로 입문하게 된 특별한 동기가 있었나요?

그냥 허영심이었죠, 뭐. 인천의 동산중고등학교시절에 놀기 좋아하고 영화나 보러 다니고 하다 보니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 남들이 하는 연기가 너무 멋있게 보여 중학교 시절 연기학원에 등록하면서 이 길을 걷게 되었어요.


고향이 중국으로 되어있던데요?

중국에서 태어났어요. 아버님이 일정 때 정미소, 토목기술자이다 보니 중국, 만주 등을 노동자처럼 다니셨어요. 그러다 인천에 정미소가 많아 정착을 하게 되었지요. 태어나기는 중국이었지만 해방 후 본적을 인천으로 옮겼기에 엄밀하게 얘기하면 고향은 인천이 맞지요.


어린 시절 기억이 나는 것이 있다면?

그저 산과 들, 바다, 자연과 하나였다는 기억이지요. 유년기는 아버님의 기술로 봉급생활을 하셨기에 밥술이나 먹고 살았답니다. 그 시절에 밥이나 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요즘 아이들은 이해를 못할 겁니다. 그러다 보니 허영심에 배우가 되겠다고 연기학원을 다니고 엑스트라지만 영화에 출연도 하고 했지요. 세월이 지나면서 누이 셋이 결혼하고 나니 그야말로 기둥뿌리가 뽑혀 나갔지요. 가난이란 걸 알게 되었어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1회 졸업생이십니다. 정식 데뷔 무대는 어떤 작품이었나요?

명동국립극장에서 했던 <그 얼굴의 햇빛을>인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맞을 겁니다. 기록은 사학자들의 몫이라서 공연 역사에 대한 관심이 없어요. 난 현장맨으로 내 역사를 바로 쓰레기 통으로 버립니다. 간혹 집사람이 스크랩인가를 해도 별로 관심이 없어요. 당연 내 공연 기록들을 잘 몰라요.

자신의 연기 인생에 영향을 끼친 분이 있다면?

3년 전에 작고하신 김순철(연극배우, 탤런트)선배가 있어요. 그 형은 녹화장에서도 항상 술에 취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 촬영할 때 주무시다가 자신의 차례쯤 되면 아무 후배에게 대본을 읽어달랍니다. 한 번 듣고는 바로 촬영, 한 번도 NG를 내는 법이 없어요. 남들이 볼 땐 천재인 줄 착각하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후배가 읽어주는 것을 한 번 듣고도 절대 실수를 하지 않을 정도이니 남들 보지 않을 때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겠습니까? 그 형이 하신 말씀, “연기는 연습과 준비다. 준비 없이는 이룰 수 없다.”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대사뿐 아니라 퍼포먼스(연기나 행동을 의미하는 듯)까지 철두철미하게 준비를 해야 녹화에 자신을 가지고 임할 수 있지요.




방송을 하게 되신 계기는?

1979년 연극을 함께 하던 동료가 방송국 PD로 가면서 픽업이 되었지요. 방송을 하다 보니 연극 보다는 생활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그해 결혼도 하고 그랬지요.

많은 작품을 하셨지만 특히 한명회를 하면서 그야말로 스타로 떴는데요?

운이 좋았어요. 인생을 살면서 누구에게나 기회가 온다는 말을 실감했어요. 아마 한국 방송 사상 이런 배우(못생긴)가 주인공을 맡은 첫 번째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굉장했지요. 물론 신봉승 작가의 역작이기도 했지만 연출이 기가 막히게 잘했어요. 따분하고 템포도 느린 기존의 사극과는 판이하게 연출을 했지요. 사극을 템포감과 현실감 있게 현대식으로 연출했어요. 또 당시의 혁명 정부가 자신들 혁명의 정당성과 정통성을 홍보하기 위해 각 방면에 압력행사를 했지요. 단적으로 방송(한명회) 시청을 위해 군인들의 취침시간을 연장하기도 했고 심한 경우 초등학교 선생들이 학생들에게 감상문을 숙제로 내는 해프닝까지 있었으니까요. 독재시에나 있을 수 있는 해괴한 혜택을 엉뚱하게 내가 단단히 누리게 되었지요. 골목이나 어디를 가도 칠삭둥이 한명회 떴다고 난리가 났었지요.

불리한(?) 신체 조건에서 그렇게 유명한 대중적 스타로 뜨기엔 드라마 외적인 무언가가 있었을텐데요?

신체나 외모에서 상대적 핸디캡을 풀듯 신이 나서 신기(神氣)로 연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미친 듯이 매달렸지요. 언제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는가? 내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어요. 일생일대 가장 통쾌한 연기시절이 아니었나 되돌아봅니다. 준비와 노력도 죽을 각오로 했지만 속 시원하게 이 연기에 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지요. 내가 외모가 출중한 연기자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연기력 밖에 없다고 각오를 다졌지요. 그 후 다른 한명회(이덕화, 최종원)도 있었지만 그들은 나보다 다들 잘났잖아요.(호탕하게 웃음) 거지가 잘 나고 멋있으면 드라마가 되겠습니까? 가장 거지 같아야 관객들도 호응을 하는 거지요. 배우는 자신의 역에 가장 충실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순리를 배웠다고나 할까요? 평생 기억에 남는 소중한 드라마였어요. 또 당시에 이주일이란 코미디의 황제가 등장을 해서,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가 공전의 히트를 쳤는데 그 덕을 가장 많이 봤다고도 할 수 있지요. 사석에서 만나 서로 못생겼다며, “사돈 남말 하네” 하며 즐겁게 웃을 수도 있었지요.


여의도의 방송국, 충무로, 대학로를 자주 왕래하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분야가 있다면?

다 내 고향이지요. 애정이 없으면 가지를 않겠지요. 좋아하는 것만 해도 세월이 아까운데 싫어하고 애정이 없는 곳에 허비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흔히들 연극배우들의 고민 중 하나가 무대 연기와 카메라 연기와의 차이를 드는데 조언이라도 해주신다면?

메커니즘의 차이일 뿐 그다지 어렵지는 않아요. 다만 연극(무대연기)은 풀(Full), 롱샷(Long Shot)이다 보니 피사체인 연기자는 조금 행동이 커야 되고 방송이나 영화에서 클로즈업이 많아 악을 쓴다거나 몸을 휘두르는 큰 연기는 거부감을 줄 수 있지요. 대극장과 소극장에서의 연기는 달라져야 한다는 의미와 상통한다고 할까요?

배우의 기본을 따진다면 무엇을 꼽을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 대사, 작품을 꿸 수 있는 통찰력과 작가나 연출가가 요구하는 적합한 인물상을 창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장르가 마찬가지로 연극이나 영화, 드라마가 공동작업이다 보니 자신의 주장보다 전체를 배려하는 흐름을 읽어야겠지요. 연습 후 대본 뒷주머니에 꽂아놓고 술만 마시는 배우들 장래성 없습니다. 자신의 배역을 완벽하게 소화할 때까지 대본과 죽어라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역이 그려지면 다른 배역과의 앙상블, 연출과의 교감을 통해 작품 속에 용해를 시켜야지요.



좋은 배우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좋은 배우는 없습니다. 물론 신체적 조건이야 타고 날 수 있지만 배우는 모름지기 자신과의 투철한 싸움이죠. 열심히 하는 배우가 좋은 배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본을 100번 탐독한 배우와 대충 읽은 배우는 무대 위에서 명확하게 판가름 납니다. 그런 배우는 다른 연출이나 감독, PD들의 눈에 들 수밖에 없지요. 외모가 그럴듯한 배우들은 거의 길거리에서 매니저들에게 픽업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진정한 배우는 자신의 노력의 결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연극을 하면서 어려웠던 부분도 많았을텐데요?

경제적 어려움 문제는 너무 식상하니 그만 두고... 지금은 문화가 급변하고 대부분의 소비층이 젊다 보니 당연 포커스가 젊은층에 맞춰지는데 이런 면에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공간은 하나지만 세대간의 공백에서 오는 의사소통과 언어의 차별에서 이해가 어려워요. 얼마 전 우리 사회의 커다란 문제로 대두되었던 여자 탤런트 문제(장자연) 같은 것이 불거질 때마다 회의를 느낍니다.

(술을 한잔 하고 담배를 꺼내 문다. 최근 여배우의 자살 사건으로 여러 상념이 겹치는 듯 우울한 표정으로 연기자 생활에 대한 회의감을 토로한다.)

평생 연기자로 살면서 사회적으로 존경 받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연기자를 어릿광대 취급하는 풍토에 너무 화가 납니다. 물론 모든 개개인의 행동에 잘잘못은 있을 수 있겠지만 후원한다는 핑계로 연기자를 하찮게 여기는 높으신 분들의 무지함이 역겹습니다. 내가 출세시켜주니까, 용돈을 주고 인기도 얻어주니까 적당히 데리고 놀아도 된다는 발상은 연기자를 인격 그 이하로 취급하는 비인간적 행위밖에 되지 않습니다. 현실이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거부하지 못하는 연예인들의 처지가 개탄스럽고 울화통이 터집니다. 자본주의의 만연에 따른 폐해가 인간성 말살과 도덕, 윤리의 소멸로 귀결되어 엉망진창인 사회가 되었어요. 사회전반적인 생활환경과 의식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술을 너무 좋아하신다는 주위의 걱정이 많은데요?

술이나 음식은 부친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봐요. 격변기 어려웠던 시절 가장 만만한 게 대포집이었으니까. 연극쟁이들이 무슨 돈이 있어요? 돈을 못 벌다 보니 그저 대포집에서 주머니 털어 신세 한탄이나 할 밖에요. 나이 40이 되도록 자신의 치다꺼리도 못하는 신세다 보니 자연 술에 의지하기도 했지요. 술은 내 마음의 안정제 역할을 하나 봅니다. 그저 마시면 편하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니 어쩌겠어요?

50여년 연기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당연 한명회 시절이지요. 하지만 내 인생의 황금기는 인천시립극단 시기였어요. 한명회 시절에 연기에 미쳤다면 인천시립극단에서의 시기는 무대에 미친 때였지요. 정말 정열적으로 활동을 했어요. 특히 1995년 8.15 50주년 특집 공연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렸어요. 조정래 원작 소설 <아리랑>을 각색하여 제가 연출을 했지요. 핍박받고 살았던 민중에 대한 감명적 작품으로 3시간짜리 대작이었어요. 티켓이 동이 났지요. 아마 관단체의 공연 중 유료로 전석이 매진되기는 그 때가 처음일 것입니다.




연기자로 한평생을 지내셨는데 다른 회한이 있다면?

없어요. 내 인생에 가장 멋진 결단이 배우인생이 아닌가 자부합니다. 이 ‘견적’에 무얼 해서 먹고 살 수 있을 것이며 어떻게 남 앞에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겠어요? 제 연기에 울고 웃는 시청자들 반응에 보람을 느끼고 팬들이 알아봐 줄 때 우쭐함도 느끼며 직업 선택에 자부심을 가져보기도 했지요.


평생을 연극에 종사하시면서 아쉬운 점이나 바람이 있다면?

잠시 언급했다시피 예술은 유년시절부터 교양으로 관심을 부여해야 합니다. 학교 때부터 재미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솔하게 예술을 대하는 태도를 길러야 하는데 그런 교육의 부재가 안타깝습니다. 흥미유발에만 치중하는 세태에 자성과 자각이 미흡함에 교육의 실패가 더 휑하니 느껴집니다. 인성교육과 더불어 예술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에 너무들 무관심합니다. 사회가 걷잡을 수 없게 포악해지는 요인이 예술 교육의 부재와 필시 연관이 있을 겁니다.


현재 출연중인 작품은?

<천추태후>에서 내관 역을 맡아 하고 있지요. 고려 시대에는 두 종류의 내관이 있었는데 난 남자구실이 가능한 내관을 자청했지요. 수염 다는 분장이 번거로워서요. 영화든 연극이든 겹치기 출연은 하지 않습니다. 물론 많이 하면 수입이 짭짤하겠지만 연기자로서 겹치기를 하면 한 가지 역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쨌든 하나가 끝나서 쉴 만하면 또 다른 출연제의가 들어오니 연기자로 막 하지는 않았나 봅니다.



인터뷰의 막바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 동료들과의 옆자리 술좌석으로 옮겨 세간에 회자되는 영화 <워낭소리> <집으로>에 대한 이야기로 열변을 토하는 정진. 왜소한 몸에서 뿜어내는 남다른 에너지가 술집을 가득 메우고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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