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7)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37)
  • 유지형
  • 승인 20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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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여배우의 길 / 유지형

유지형 감독이 쓰는 소설로 읽는 초창기 한국 영화사.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인 이월화(1903-1933)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조선 연극 영화계의 역사와 복고, 낭만의 시대상을 그려 낸다.

출생부터 기구했던 이월화는 극단에서의 혹독한 배우수업을 거쳐 윤백남의 도움으로 조선의 첫 영화 <월하(月下)의 맹서>에 출연, 조선 최초 은막의 여배우가 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인 이월화의 생애를 통해 초창기 한국 연극 영화사와 그 주역의 인물들을 추적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편집자주


등장인물


이월화(본명 이정숙)=이화학당을 나온 연극배우 출신 은막의 여배우. 계모의 손에 자라나 연극과 영화에 투신하고 자신을 키워준 영원한 스승 윤백남을 운명 직전까지 연모한다. 결국 기생으로 전락하고 중국남자와 결혼하여 일본에 가서 신혼생활을 영위하나 일본인 시어머니의 학대로 불행하게 그곳에서 죽는다.


윤백남 / 작가 연출가 영화감독=조선 연극 영화계의 거목. 이 월화를 무명극단에서 발굴해 연극계의 스타로 만들고 조선최초의 활동사진을 찍으며 이월화를 대 배우로 출세시킨다. 선비적 기질과 대쪽 같은 성격으로 월화의 방종을 보고 절연한다.


안종화 / 배우 감독=이월화의 평생 친구. 끝까지 순수함으로 월화를 대한다. 최근 발굴되어 화제가 된 무성영화 <청춘의 십자로>의 감독이기도 하다.


박승희 / 배우 연출자=극단 토월회의 대표. 미주대사를 역임한 박정양 대감의 장남이다. 일본 유학을 다녀오고 극단에서 여배우 이월화를 만나 사랑에 빠지만 약혼녀의 등장으로 결국 월화에게 상처만 주게 된다.


박승규 / 극장 단성사 부사장=단성사 사주 박승필의 친동생. 기생인 월화를 만나 동거하나 주위의 반대로 결국 헤어진다.


윤기성 / 연극배우=월화의 연하의 남자. 고아로 자라난 불우한 청년이다. 월화와 함께 상하이로 가서 새로운 인생을 꿈꾸나 결국 마약밀매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이응수 / 연극배우 여장배우=극단에서 월화를 만나 변태적 관계로 발전한다. 월화에게 많은 도움과 길잡이가 된다.


조씨 / 월화의 계모, 기생출신=고아인 월화를 키워준 은인이다. 월화를 괴롭히기도 자책도 하는 이중적 성격의 여인이다.




(37) 노류장화


[인터뷰365 유지형] 월화는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짓누르듯 아팠지만 문밖에서 암고양이 년이 울어 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 날 수밖에 없다. 한 동안 안보이더니 어디가서 바람을 피다가 이제야 돌아 온 모양이다. 이 고양이는 연극을 하던 극장 막 뒤에서 주워 온 새끼 고양이었다. 이 고양이를 데려다 기른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른다. 새끼도 수도 없이 낳아 기르더니 이젠 늙어 새끼도 낳지 못한다. 그래도 며칠 동안 안 보인 것은 분명 수놈을 만나러 갔다 온 것이 분명한데 그래도 돌아오면 아는 체를 해달라며 저렇게 울어 댄다.

머리맡에 자리끼를 있는 걸 보니 조씨가 떠다 놓은 모양이다. 월화는 지끈거리는 머리에 얼굴을 찡그리며 상반신을 일으켜 자리끼를 마신다. 어젯밤 인력거를 타고 온 것은 기억나나 어떻게 집까지 왔는지는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아마 술에 취한 월화를 인력거꾼이 부축하고 대문을 들어섰고 새벽잠을 깨어 난 조씨는 그래도 맨발에 버선을 꿰차고 달려 나와

“에그... 또 무슨 술을 이리도 많이 마셨담?”

손사래를 치며 월화를 부축해 방안에다 눕혔을 것이다.

술에 취한 월화는 조씨를 사내처럼 껴안으며

“에구..에구... 돈 좋아 하는 우리 엄마! 예쁜 딸이 돈 많이 벌어 왔우.. 좋지... 좋아!”

치마 안 단속곳 주머니를 헤집어 행하로 받아온 지전을 던져 주었고 조씨는 싫지 않게 눈을 흘기며

“이년아! 돈도 돈이지만 네년 몸 걱정이 더 걱정이다. 내 이 돈으로 네 년 보약이라도 한 제 지어 먹여야지.”

그렇게 말하며 방바닥에 떨어진 지전을 날름 챙겼을 것이다. 월화는 머리의 찌릿찌릿한 통증을 참으며 주섬주섬 자리에서 상반신을 일으켜 화장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들여 다 본다.

눈빛에 검은 기미가 역역한 것이 그 동안의 과도한 술과 놀이 때문이리라. 월화는 자신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버릇처럼 뇌신다. 월화가 깨어 난 걸 안 조씨는 안방에서 월화의 방으로 건너와 숙취에 고통스런 표정의 월화의 심정은 아랑곳 않고 대뜸 잔소리부터 해 댄다.

“화무는 심일 홍이요, 꽃도 피면 시드는 법! 네 년 청춘이 무한정 인줄 아는 모양인데 한살이라도 젊었을 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이 늙은 어미 꼴이 난다는 걸 왜 모를까?”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월화는 귀가 닳도록 들어 잘 알고 있다. 그러고 보니 월화가 기생이 된 지도 벌써 일 년이나 되어간다. 노류장화 생활 일 년이면 돈푼께나 있는 기둥서방이 붙고도 남았을 텐데 월화는 겨우 행아 몇 푼을 받아 올 뿐 통 소식이 없다. 그래도 매달 권번에서 월화의 해우채를 계산해 준다.

기생의 하루 불러나가 놀고 받는 해우채는 한 시간당 이원 오십 전으로 쌀금으로 쳐서 한말 반값이다. 보통 초저녁부터 시작한 놀이는 두세 시간의 보통이요 월화의 경우는 하루에 두세 군데의 술자리에 불려 나가니 한 달에 이십일만 놀이를 나갔다 해도 그 돈은 엄청난 금액이 된다.

그런데도 욕심 많은 조씨는 더 큰 돈을 요구하고 있다. 월화의 배우시절 조씨는 중매를 빌미로 남자들에게 많은 돈을 뜯어내었다. 그런 사내들은 당당히 조씨를 “장모님! 장모님!”하며 서슴없이 불렀고 조씨 역시 “우리 사위!” 하며 맞장구를 쳤고 그럴수록 그녀의 주머니는 쌈지 돈으로 가득 채워졌다. 더욱 신이 난 남자들의 호기로 월화가 선물로 받은 귀금속이며 값비싼 비단들도 모두 현금으로 바뀌어져 그녀의 재복을 채웠다.

그런데 그렇게 뜯어낸 돈은 지금 조씨 수중에는 한 푼도 없다. 조씨는 그야말로 돈을 쓰면 쓸수록 채워진다고 생각하는 화수분 이와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저축을 하거나, 이제를 불리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 조씨는 미두에 미쳐 있었다. 매일 아침이면 경성 역으로 나가 경인선 기차를 타고 인천의 미두 취인소에 가서 살았다. 한 번에 백 원씩의 보증금을 예치하고 쌀 이백석을 사면 요행 재수가 좋아 미두가 오르면 그 보증금은 두 배인 이백 원이 통장으로 들어온다. 손도 안대고 코를 푸는 그야말로 완전 고부라진 이익을 보는 장사이다. 그러나 계속 쌀값이 곤두박질을 칠 때는, 그야말로 몇 백 원이 먼지처럼 사라진다. 그래도 미두꾼들은 벼락부자가 되는 환상을 쫓아 취인소로 몰려든다. 아마 조씨가 미두에 갖다 쏟아 부은 돈을 따지면 수 천원이 넘고 이 돈으로 마포나 안양 쪽으로 나가 논과 밭을 샀으면 수천마지기의 땅 부자가 되어 있을 것이다.

조씨가 월화가 깨어나기를 기다려 달랑 방으로 달려 온 걸 보면 요즘 미두 미천이 떨어진 게 분명하다. 얼마 전에도 미두에 돈을 다 날리고 대문을 들어서며 억울하다고 펑펑 주저앉아 울던 조씨였다.

“그놈의 미두가 악마굴이며 독아인 걸 왜 몰랐던고? 우리 딸 화류계로 벌어 온 피눈물 같은 귀한 돈을 그놈의 미두에 다 날려 버렸으니... 내가 미치고 환장한 년이다. 이제 심청이 처럼 착한 내 딸 얼굴을 어이 볼꼬. 부끄럽고 남사스러워.. 어히 대할꼬..”

마당에 고무신짝을 펑펑 두들기며 울고불고 난리를 떨었다. 그런 조씨가 밉기도 하였지만 이미 날린 돈을 어쩐단 말인가? 월화는 그런 조씨를 부축해 안방으로 모셔 온다. 조씨는 월화가 들으려는 듯 다짐의 말을 한다.

“내가 다시 미두를 하면 네 딸년이다. 내가 네 어미가 아니라, 네가 내 어미다.”

손이라도 지질 듯 장담에 장담을 한다. 하지만 누가 어미고 누가 딸인들 뭐가 달라질 것인가? 어차피 팔자에 육신의 피가 다른 두 여자가 만나 모녀지간을 이룬 이상, 그것도 운명이요 천륜인 것을, 또한 미두에 미친 조씨의 병은 명의도 못 고칠 고질병이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장담하고 호언했던 조씨는 사흘을 못 넘겨 또 다시 경인선 기차에 올랐다.

“그래 하고 싶은 말씀이 뭐예요?”

월화는 반쯤 남은 자리끼를 다 마시며 조씨에게 묻는다. 조씨는 금방 비굴해 지며 아양 떨 듯 말한다.

“저,. 너한테 돈 많은 영감 하나가 중신이 들어왔는데... 나이가 좀 많아서 그렇지.”

“몇 살인데요?”

“나이가 막 환갑을 지냈는데 타고난 강골이라 힘은 젊은 사람 못지 않다더라. 그 영감이 노년에 잠자리가 허전한지 후처자리가 될 여자를 찾고 있는데... ”

“그럼, 엄마가 가면 되겠네요. 나이도 딱 맞고..”

“아이고.. 내가 가면 얼마나 좋으련만, 그저 사내들이란 지 늙은 진 모르고 그저 젊은 년들만 찾으니...”

조씨의 나이는 이제 갖 쉰을 넘었다. 늘 툭하면 하는 말이

“내가 젊었을 땐 돈 많고 잘생긴 남정네들이 나래비를 섰지. 그땐 웬만한 사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입에 거품을 물며 화려한 과거사를 자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씨는 밤이면 바침 술집에 나갔다. 바침 술집이란 주머니가 가벼운 사내들이 간단한 안주에 술 한 잔으로 취할 수 있는 목로주점 같은 곳이었는데 조씨는 이곳에서 술도 따라주고 사내들의 질탕한 농도 받아 주며 한잔 술에 취해 돌아오기도 했다.

때론 술 취한 사내들을 집으로 끌어 들이기도 했는데 밤이 세도록 안방에서 들려오는 조씨의 달뜬 감창소리는 월화의 귓전을 괴롭혔다.

“필요 없으니 다신 그런 영감 말은 꺼내지도 마세요.”

월화는 차갑게 말을 끊고 소피라도 보겠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자 조씨가 월화의 흰 속치마 단을 잡고 매달린다.

“애야! 곡해하지 말고 내 말을 좀 더 들어 보라니까.”

“듣고 자시고 다 필요 없다니까요.”

월화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조씨를 뿌리치고 방문을 열고 나간다. 문이 닫히기도 전에 조씨의 악쓰는 소리가 들려온다.

“세상에 그 어느 어미가 제 딸 늙은 영감한테 첩실 보내는 걸 좋아 하겠나? 난 네년이 기생 질에 뭇 사내들한테 실없는 웃음이나 팔며 허구한 날 밤을 술에 취해 들어오는 꼴이 가엾어 그래도 늙은 영감 첩실로 가면 귀염 받고 잘 살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그런 어미의 뜻도 모르고 어미 말을 엿가락 자르 듯 잘라 먹어! 어디서 저런 불효막심한 년이 다 있는지. 아이고... 내 팔자야!”

온 동내가 떠나갈듯 극악의 너스레를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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