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1)
소설-조선 최초의 여배우 이월화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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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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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부 여배우의 꿈 / 유지형




(21) 해의 비곡


[인터뷰365 유지형] 월화는 부산으로 내려왔다. 은은한 자주색 투피스에 코발트색 망사 숙녀모을 쓴 월화는 달랑 은색 구슬 핸드백과 작은 트렁크 하나를 들고 기차에서 내리자 바닷내음이 콱 코를 찔러 온다. 비로소 항도 부산에 온 실감이 난다. 부산역에 마중을 나온 종화는 반가움에 그 순진한 미소가 번진다. 언제 준비 했는지 한 아름 라일락 꽃다발도 뒤춤에 숨겼다고 수줍게 건네준다.

“여행은 즐거웠어?”

마치 연인처럼 정답게 묻는다.

“응...”

월화도 꽃다발을 받아 들고 반가움에 함빡 웃음 짓는다.

“내가 월화를 처음 만난 곳이 이곳 부산이지?”

“그래, 정말 그렇구나.. 우리가 만난 지 몇 년이나 되었지?”

“벌써 햇수로 삼년이야.”

“어머! 벌써 그렇게 되었나.”

월화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마음속으로 해를 세어 본다. 그 삼년의 세월이 후딱 지난 것 같지만 그 동안 변화도 많고 사건도 많았다.

종화는 부산역 광장에 대기해 놓은 자동차에 월화를 모시듯 태운다. 이렇게 자동차 까지 대령해 그녀를 반길 줄은 몰랐다. 월화는 결코 낯설지 않은 도시의 풍경을 차창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이곳 부산은 내게 행운을 가져다 준 도시이다. 이곳에서 백남 선생님을 만났고 함께 평생 친구 종화도 만났다.

그들 덕분에 연극무대의 스타로 빛났고 조선최초의 은막의 여배우가 되었다.

이제 이곳 부산에서 다시 태어나는 이 월화가 되어야 한다.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본정통에 있는 상점가 모퉁이에 <나데 총포상>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종화는 자동차에서 내린 월화를 총포상 옆에 있는 이층 계단으로 안내 한다.

사무실 입구에는 <조선키네마 주식회사>라는 간판이 걸려 있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촬영준비로 온 직원들이 분주 해 있었다. 월화가 들어오자 직원들은 작업을 중단 한 채 모두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특히 사무실 벽에는 급히 만들어 쓴 것 같은

‘축! 환영 스타 이월화 양’

벽보가 붙어 있었다. 월화는 종화의 소개로 감독과 제작자 등을 소개 받는다.

“조선키네마 사의 대표이며 제작자이신 나데 사장님 이십니다”

“반갑소! 나데 오도이치요.”

월화는 당당하고 자신 있게 목례를 하며

“이월화 예요”

“이번에 메가폰을 잡은 왕필렬 감독입니다”

옆에 박박 머리의 사내를 인사 시키자 왕필렬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반갑습니다. 왕필렬입니다.”

“이분은 촬영기사 이십니다.”

“오시느라 수고 했소. 나 사이또요.”

“이쪽은 조감독입니다.”

“연출보를 맡은 이경손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월화는 손을 내밀어 일일이 그들과 악수 했다. 누가 제작자고 감독이고 조감독인지 전혀 기억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그들은 황송하고도 영광스런 표정으로 악수의 손을 내밀고 월화를 존경하고 환영하는 모습만은 역역 했다. 감독은 직접 석 달이나 걸려 썼다는 대본을 월화에게 건내며

“부족한 시나리오 입니다만 열독을 부탁드립니다.”

연신 고개를 숙인다.

월화는 임시 숙소로 동래 온천지대의 한 일식 여관으로 정하고 일단 여장을 풀었다.

저녁에 나데 사장이 환송 식사를 대접한다는 연락을 보내 왔지만 월화는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환송연을 정중히 사양 했다. 대신 여관에서 주는 생선초밥이 곁들인 복어 튀김 우동을 간단히 먹고 객실에 딸린 개인 독탕의 뜨거운 온천수에 온몸을 담그고 이마에 땀이 총총 매친 채 시나리오를 읽었다. 솔직히 대본의 좋고 나쁨을 월화가 따질 겨를이 아니었다.

다음 날, 사무실에서는 계약이 이루어졌다. 월화가 파격적인 금액으로 촬영 계약서에 도장을 찍자 감독인 왕필렬이 그제야 안도하는 얼굴이 된다. 혹시나 계약이 파기되어 월화가 경성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한 모양이었다.

다음 날 부터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촬영은 초여름에 시작되어 가을이 오기 전 끝내 전국 극장 개봉에 붙질 예정이었다. 그들은 제주도까지 가서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니며 활동사진을 찍었다. 오늘은 서귀포에 있는 바닷가에서 로케이션 촬영이 있는 날이다.

감독인 왕필렬과 일본인 촬영기사 사이또는 좋은 앵글을 잡으려고 바닷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설치고 다닌다. 월화는 파라솔이 쳐진 간이의자에 앉아 분장사에게 얼굴을 맡기고 있다. 관광객들 중에 월화를 알아 본 사람들이 다가와 머뭇거리며 말을 건다.

“저.. 혹시 월화의 맹서에 나온 이 월화 여사님 맞죠?”

“네! 맞는데요?”

“아-이거 영광입니다 이월화 여사를 이렇게 직접 만나 뵐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여기 사인 한 장 만?”

과연 활동사진의 힘은 대단하다. 더욱이 <월화의 맹서>는 팔도각지에 무료 상영 되었으니 그 관객의 수가 연극무대를 찾는 숫자와는 비교도 안 된다. 자신을 알아보는 그 사람이 신기한 듯 월화는 사인을 해준다. 연극무대가 끝나면 분장실 까지 들어와 사인을 요구하는 열광팬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월화는 사인을 해주는 일이 참으로 즐거웠다,

오늘 이렇게 촬영장에서의 사인은 처음이다. 더욱이 상대는 잘 생긴 미남자이다. 월화가 사인을 해주자 그 미남은 사인지를 고이 받고 정중히 인사를 하고 물러난다. 그러자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주위에 있던 관광객들도 수첩 등 종이 쪽지를 우르르 내민다. 월화는 친절히 모든 사람들에게 사인을 해 준다.

연출보 이경손이 그런 월화를 향해 소리를 치며 부른다.

“월화 씨! 촬영 준비 다 됐습니다.”

그 사이 불란서 제 최신 카메라인 바르보 카메라의 위치가 정해지고 곧 촬영이 시작될 모양이다. 월화는 급히 사인을 해주고 카메라가 설치 된 백사장으로 향한다. 그런 그녀의 곁에는 분장사와 의상 담당이 따르며 마무리 손질을 해준다.

이번 장면은 산에 사는 화전민 처녀가 꾸는 꿈으로 바다를 동경하여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백사장을 힘차게 달려가는 모습을 찍는 것이다.

그러기에 월화는 하늘거리는 마치 선녀 같은 흰 길고 늘어진 날개 의상을 입었다. 감독인 왕필렬이 유독 큰 메가폰을 들고 “레디 액션!”을 외친다.

월화가 백사장을 달려간다. 바람이 불어오며 그녀의 천사의 날개 같은 흰 옷 자락이 바람에 휘달린다.

돌연, 카메라의 크랭크를 돌리던 촬영기사 사이또가 루뻬에서 눈을 띠며 컷! 을 외친다. 그러자 감독인 왕필렬이 의심스러운 표정이 되며

“사이또 기사! 무슨 일이요?”

“배우가 프레임에서 빠져 버렸어요.”

“음.. 그래도 컷은 감독만이 할 수 있는 거요. 다음부턴 나한테 먼저 알리시오.”

거만한 말투로 의시된다. 그러자 사이또는 아니꼽다는 듯

“그럼 공연히 생필름을 돌리란 말이요?”

“그래도 컷이라 말 할 수 있는 건 감독이요!”

“허.. 더러워서... 나도 감독이나 해야지.”

“지금 뭐라고 했소? 뭐 더럽다고.”

두 사람의 싸움으로 촬영은 시작부터 중단된다.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서로 다투는 것이다. 그만큼 현장에서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서로 강조하다보니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 새우게 되고 이런 일은 곧잘 일어난다. 감독과 촬영기사가 다투자 당황하는 건 스태프 들이다. 경손은 감독을 구석으로 데리고 가서

“감독님이 참으시죠. 감독은 예술가입니다. 왜 기술자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촬영기사와 다투십니까?”

종화도 사이또를 달랜다.

“감독이 신인감독이라 아무것도 몰라서 일어난 일이에요. 카메라에 배우가 빠지면 당연히 컷을 해야죠.”

두 사람이 나서서 겨우 달래자 마지못한 표정으로 촬영이 다시 시작된다.

“레디 액션!”

월화가 다시 백사장을 달리기 시작한다. 이번엔 감독이 “컷!”을 외치며 엔지를 낸다.

“어? 난 좋은데 왜 그러실까?”

은근히 약 올리는 사이또 이다.

“얼굴 표정이 안 좋았소. 다시 갑시다!”

“허.. 롱숏이라 얼굴 표정까지는 안 보일 텐데?”

“다시 가라면 가지 뭘 그래 말이 많소?”

“좋소! 뭐? 내 돈으로 필름 값 내는 거 아니니까.”

다시 카메라가 돌아간다. 몇 번의 반복 끝에 겨우 촬영이 끝난다.

월화는 헉헉 숨이 차 죽을 지경이다. 감독이 오케이! 을 외치자 월화는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진행요원이 달려와 얼음에 재운 수건으로 월화의 얼굴과 어깨에 대주며 열기를 식혀준다. 스태프 모두 더위에 지친 표정이지만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다. 분명 좋은 화면이 나오리라 월화는 생각하니 숨찬 것도 곧 가라앉으며 기분이 좋아 진다. 오늘의 촬영 분량은 이것으로 끝났다.

“월화 상! 아주 수고가 많았어요.”

감독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자 촬영기사도 엄지손을 내보이며

“월화상은 역시 최고예요.”

감독에 지지 않겠다는 듯 칭찬을 아끼지 앉는다. 감독인 왕필렬를 비롯하여 촬영기사와 조명기사, 조감독 등 모든 스태프들은 촬영장에서는 물론 촬영장 외에서 까지 정중히 월화를 대한다. 이미 활동사진 스타로써 이름을 떨친 여배우 이 월화에 대한 존경과 예우이다. 특히 남주인공인 종화가 월화에게 보여 주는 우정은 실로 극진하다. 평소 단둘이 있을 때는 월화에게 반말을 하지만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서는

“월화 씨! 식사는 하셨습니까?”

“월화 씨! 어디 불편한데는 없으십니까?”

하며 깍듯이 존대어를 썼다. 이제 월화는 그 어둡던 추문과 사랑의 악몽에서 깨어나 빠르게 치유되었다. 또한 몸가짐도 바르게 했다. 절대 그 어느 사내에게도 흐트러진 눈길을 주지 않았고 마치 청신녀처럼 자신의 몸과 마음을 청결히 했다. 그것은 자신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려는 조씨가 곁에 없기에 더욱 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출연료를 전부 조씨에게 보내고 당분간의 절연을 선언 했다. 그러기에 촬영 작업은 즐겁고 보람찬 나날이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적수가 나타난다. 그 적수는 늘 여자다. 그것도 같은 여배우끼리 문제가 생긴다. 특히 여배우란 늘 존망의 대상이 되다 보니 그런 직업병이 돌출하여 늘 자신이 디바이고 프리마돈나 이어야 한다는 착각에 늘 다른 여배우들을 경쟁과 라이벌 의식으로 대하게 된다.

월화는 이미 극단생활을 통해 그런 걸 경험 했다. 여명극단에서 유리가 그렇고 설희 역시 그런 갈등의 관계를 갖고 있었다. 이번엔 역시 남주인공 종화의 약혼자로 나오는 이채전이 문제 이었다.

그 첫 싸움은 촬영장도 아닌 바닷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에 일어났다.

오늘은 남자 배우들로 촬영 일정이 잡힌 날이라 월화는 더위나 피하겠다며 숙소 앞에 있는 바닷가로 나갔다. 한적한 백사장에는 긴 비치의자가 놓여 있었다.

월화는 빈 의자를 보고 잘 됐구나 하며 그 의자에 길게 누어 밀짚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태양 욕을 즐기며 솔솔 낮잠에 빠지려는데 누군가 날카로운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켜요! 이건 내 의자예요.”

“........?”

돌아보니 유록색 원피스 수영복에 검은 선 그라스를 쓴 채전이 태양을 등지고 노려보고 서 있다. 한 손에는 여성잡지, 다른 한 손에는 과일 주스가 빨대가 꽂힌 유리컵이 들고 있는 것이 그런 걸 가지러 다녀온 모양이다.

월화는 미안 한 듯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 난 그냥 빈 의자가 놓여 있기에.. 임자가 없는 줄 알고.”

채전은 홱 잡지를 모래위에 집어 던지더니 방금 전 월화가 앉았던 천으로 된 비치 의자를 확 뒤집으며

“누군가 임자가 있으니까 갖다 놨을 거 아녜요? 원 재수 없을래니까 별 여자가 남의 의자에 다 앉고.”

마치 무슨 불결한 거라도 묻은 듯 천을 툭! 툭! 털어 낸다.

그런 채전의 태도에 월화도 은근히 화가 나서

“그렇담 미안 한데요? 허지만 재수 없다니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요?”

“흥...! 이거 스타라고 재는 거야 뭐야?”

마치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 확 돌아서 월화를 식식대고 노려본다. 완전 계획적인 시비조이다. 그런 태도에 월화는 어의가 없다. 그러나 채전 그녀 입장에서 보면 늘 자신 보다 스태프들에게 대접을 먼저 받는 월화가 부럽기도 하고 질투가 났던 모양이다.

두 여자는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정오의 백사장에서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고 서 있었다.

이후, 촬영이 계속 되는 현장에서도 월화와 채전의 은근한 눈싸움은 계속 됐다.

그런데 어느 날, 촬영장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바로 촬영기사인 사이토가 채전을 희롱한 사건이 일어 난 것이다. 촬영 중 장소이동을 하려고 한라산 산길을 가던 중 으슥한 곳에서 사이또가 채전을 껴안은 모양이다. 채전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사이또도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보도자료 및 기사제보 interview36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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