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들은 풍월, 읊은 풍월
[건축 에세이] 들은 풍월, 읊은 풍월
  • 류춘수
  • 승인 2009.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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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화는 창조적 조형과 기술로 가능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이 「들은 풍월」이란 제목은 중학교부터의 친구인 MBC의 이규용이 카피라이터로서 광고계의 숨은 얘기와 경험을 예리한 눈과 빼어난 문장으로 펴낸 책의 이름이다.

안동사람다운 「만져만 봐도 다른」 양반스러움이 언행에 배어 있지 않고는 도저히 쓸 수 없는, 또한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서량이 아니고선 흉내도 낼 수 없는 문학 작품의 경지에 오른 그의 책제목을 딴 것은 이 글을 그의 글에 감히 견주려는 뜻이 아니다. 단순히 문자 그대로 최근에 들은 건축얘기들을 풍월 삼아 얘기하기에 꼭 맞는 제목이라 무단 차용한 것이다. 내가 남에게 말한 얘기도 포함하기에 「읊은 풍월」일 수도 있다.

새해 벽두부터 모든 대중매체는 온통 「국제화」를 외치며, 심지어는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어느 말이 먼저이던가?)』라고 외친지도 옛날인데 「국제화의 원년」이라고 떠들고 있다. 그리고 올해는 「한국 방문의 해」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말에는 「세계로 나아가는 국제화」와 「안으로 소화하는 국제화」의 뜻이 함축되어 있다. “건축이 내 삶의 목적은 아닙니다. 다시 이십대로 돌아갈 기회를 준다해도 거절한 만큼 한 세상 뜻있게 살기 위한 수단으로 선택된 업일 뿐입니다. 과정의 집합이 목표로 기록될 것이기에 결국은 수단이 곧 목적일 수는 있지요.” 얼마 전 어느 건축잡지사의 기자에게 읊은 말처럼, 남들 다해야 한다는 국제화가 내게는 삶의 유일한 수단인 「건축설계의 국제화」를 의미하게 된다.

즉, 국내의 작품이 국제적인 수준이 되도록 해야 하고, 또한 그 이상의 역량으로 해외에서 맡은 일을 훌륭히 수행하며 계속 발굴해야 함을 뜻한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1394년 서울 정도(定都), 1894년 갑오경장과 동학난, 그리고 100년 후인 오늘 1994년, 정도(定都) 600년의 해」 금년은 이런 역사적 시간성으로 수사되는 해이기도 하며, 「개방과 쇄국」이라는 역사의 순환성과 「세기말적 문화현상」의 유사성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리고 50년 분단의 남북문제가 터질듯 농축되는, 여러 가지로 모르는 내가 봐도 특이한 한 해가 분명하다.

“나의 건축은 구조와 설비의 혁신과 개선으로 요약됩니다.” 지난 12월초 싱가포르에서 만난 노만ㆍ포스터가 그의 작품 설명에서 한 말이다. 까까머리 탓인지 인상은 산중의 중을 닮았고, 하는 말은 물리학자와 흡사했다. 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분명 그는 아주 과학적이며, 그래서 자연적일 만큼 아름다운 건축을 진솔하게 설명했었다. 주관적이며, 현학적인 말이 필요 없는 절제된 건축을 우리 주변에선 참으로 보기 어렵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가들의 작품과 설명이 물론 시대가 다르기는 하지만, 논리성보다는 주관적 「예술성」에 치우친 것은 아니던가? 스스로 깊이 반성한 순간이었다. 국제화는 결국 창조적 조형과 함께 기술적 뒷받침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868 Towers의 두 개의 전혀 다른 조형은 그런 대로의 논리가 있으나 두 개를 묶어야 하는 저층부, 가까이서 실제로 느껴야 할 중요한 부분의 조형은 제3의 논리가 있어야 할 진데 보이질 않는군요. 차라리 저한테 맡겨 주시지요!” 메타 건축의 이종호 후배가 한 말이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우리 회사에는 왜 너처럼 말하는, 그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없는지 안타깝다”고 답했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이것은 직원들 탓이 아니라 거의 내 탓이라 생각한다. 내 취향에 지레짐작으로 맞추어 말썽 없이 디자인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디테일의 엄격함이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 획기적인 조형이 안나온다는 이공의 나한진 소장의 실토가 없더라도 내가 새해에는 넘어야 할 문턱임을 알고 있다.

“나는 공간에 있을 때 왕당(김수근 선생님)이 내 디자인을 고칠까봐 되도록 도면을 안보여 주는 대신에 스스로 최선을 다하여 팀웍을 이루며 일한 힘으로 이 나마의 이공을 만들었는데, 나도 「왕당」처럼 이렇게 밤 안 세워도 되게 자네들 도면을 믿게 해 줄수 없나?” 다소 책임 회피의 말이긴 하지만, 이 말도 그리 틀린게 아니란 생각이 남아 있는 이상 나는 내일에도 지금처럼 고달픈 철야 작업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몰두하며 그린다는 작가정신과 타인의 능력을 배양시켜 총체적 힘을 발휘케 하는 용인법이 모두 우선순위없이 중요한 건축가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려면 세계적인 권위의 구조 기술자와 컨설턴트의 도움이 없이는 안됩니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임을 잘 알지만 구조 설계의 능력과 경험은 내가 아는 미국의 작은 회사 보다 30년 뒤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 회사를 인수할 계획입니다. 선생의 장래에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중국의 건축주인 馬玉知회장이 지난 연말 북경에서 한 말이다. 멋진 제안이면서 동시에 한국에 구조 설비 등의 모든 설계를 맡긴 불안한 심정을 노골적으로 나타낸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의 건축설계 수행능력은 국제적 인정을 당연히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건축가는 국내의 기술자들과의 협동만으로 국제경쟁을 할 소극적인 생각도 버려야 할 것이다.

세계의 모든 전문가들을 활용하는 것이 진짜 국제화의 첩경일 수 있으며, 그것이 국내 수준의 향상을 가져오는 최선의 방법일지도 모른다.

미국사람들이 국제화라는 말을 쓸 이유가 없듯, 이런 후진국의 슬로건을 버릴 때가 실로 무소불퉁한 세계화된 한국의 모습일 것이며, 그 날을 위해 우리는 언제까지 이 말을 외치며 밤잠을 설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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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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