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건축개혁은 자기개혁에서 출발
[건축 에세이] 건축개혁은 자기개혁에서 출발
  • 류춘수
  • 승인 200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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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요체는 철저히 기초를 다지는 일/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1960년, 필자가 중학교 3학년이던 그 해, 4ㆍ19혁명 이후 학생들의 목소리는 전국에 드높았었다. 「데모」라는 생소한 외래어가 그때부터 보편화되어 오늘날까지 한 세대가 지나도록 우리 주변에 끊이지 않고 있다.

그 해 초여름 본과(사범학교) 선배들의 선동에 따라 전교생이 교정에 모여 난생 처음 군중심리에 휩싸이며 정의감에 불타는 우리들은 이른바 「사이비」교장과 선생님들을 축출, 성토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교정의 매미소리조차 구호에 묻힌 뙤약볕 아래서 까까머리 우리들은 비로소 군중의 힘의 위력을 맞보았고 대세의 흐름에 개인의 반성은 거의 무의미한 묘한 「정치적」 경험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듬해 5ㆍ16에서는 학생들보다 더 센 군인들의 힘을 보았으며, 그날 그 시절 이후 우리는 수십년 지난 오늘까지 통제된 삶에 길들여졌으며, 익숙해진 통제의 틀이 마치 우리의 안정과 번영을 위한 필연의 수단으로 양해된 듯 적응되어 살아왔다.

건축분야에도 어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시류에 따라 개혁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개혁의 속성이 그러하듯 우선 기존의 틀을 고치려 하며 또한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모호하며 잘못된 법규, 말단 공무원의 주관적이며 부정적인 법해석에 따른 부조리, 획일적 행정 편의와 편협한 심의위원의 사고가 맞아떨어지는 각종 심의제도, 설계 감리의 제도적 모순과 터무니없이 어려운 건축사 시험제도와 기존 단체들 간의 불협화음과 보수성... 어느 분야 못지않게 실로 우리는 건축 개혁의 당위를 뼈저리게 느끼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개혁을 하려 해도 전혀 불가능한 것은 개인적인 능력과 자질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개혁으로 고쳐질 수 없는 사안이다.

분명 훌륭한 건축가도 많지만, 참으로 한심한 수준의 설계와 허가업무를 보는 건축사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네모난 됫박 속에 든 더러운 물을 둥근 표주박으로 퍼내는 것이 정치라고 공자가 말했던가. 구석에 남을 수밖에 없는 것조차 다 퍼내어 개혁하고자 하는 어리석은 마음을 갖기 전에, 그리고 그 한심해 보이는 수준의 사람들을 고치려고 하는 불가능한 일에, 남의 일에 헛된 시간을 보내기 전에 진실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리딩그룹 건축가들의 자성과 발전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우리 건축의 미래를 위한 개혁이 될 것이다. 건축사들은 우선 「확실한 도면」으로 말해야 하며, 하자가 적은 도면이라면 부조리의 절반은 최소한 사라질 것이며, 이른바 유명 건축가일수록 도면에 책임을 지며, 조형의 표피적 희롱이나 관념적 모방의 유희가 건축이 아니라 기술적 기초에 충실하며, 행위와 조건의 객관적 분석을 우선으로 하는 건실한 설계를 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필요로 하는 확실한 개혁정신은 아닐는지?

『아틀리에적, 예술적 건축운동보다 우리는 우선 기초적 기술의 소화와 진실로 창의적인 스스로의 목소리를 찾는 자기개혁을 먼저 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조차 모르며 즉, 문제의식이 없는 일상에 침몰하여 남의 허물을 보는데 익숙할 뿐 스스로의 성찰에는 개인이나 단체는 물론 온 나라가 게을리한 세월이 아니었던가? 경부고속도로가 상징하듯 70년대의 고도산업화 성장은 국가 건설의 첩경이며 필연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으나 진짜가 아닌 「근사한 것」으로는 결국 세계의 벽을 넘을 수 없음을 이제야 느끼게 되었으며, 걷힌 거품 속에 얼마나 알맹이가 있는지, 그 알매이조차 실은 속빈 강정은 아닌지...? 처음부터 기초를 다져온 나라가 있다면 그들보다 결국은 뒤져야 하는 역사적 오류를 범한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이다.

자루에 돌을 채우는 방식에도 두 가지가 있다. 빈자루부터 당겨놓고 빈속을 채우는 방식과 바닥부터 돌을 채워가며 점차 큰 망태를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누가 빠르고 옳은 것인지는 모르나 자루부터 당겨 그럴듯하게 외형부터 갖춘 방식을 택한 우리도 결국은 신속히 돌을 채우지 않으면 안된다.

한 세대 동안의 우리의 구호의 특징은 「근사한 외형」을 갖추는데 있었으며, 그리고 군복처럼 획일적인 「하향적 평준화」에 몰두되었다.

언뜻 그럴듯하게 보이되, 또한 서로 비슷하게 보여 잘잘못과 우열과 개성과 책임이 흐려지게 하는 정치ㆍ경제 그리고 문화... 건축이 또한 그러하지 아니했던가?

손색없이 보이는 우리의 자동차, 전자제품 등의 모든 공산품들, 스포츠는 물론 못하는 것이 별로 없는 우리나라... 우리는 지금 행복한 듯 보이지만 늦기 전에 우리가 다시 시작해야 할 일은 빨리 자루가 무너지기 전에 돌을 채워야 하는 일이다.

이 시대의 모든 개혁의 요체는 철저히 기초를 다지는 일에 있음이라 생각한다.

중동건설의 경험은 기술적으로 체계화되지 못했으며 엔지니어링이 어느 단계 이상으로는 뒷받침되지 못하는 근사한 도면, 근사한 건물을 어느 책에서 본 듯한 비슷한 집을 우리는 설계하고 짓고 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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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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