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에세이] 우리의 산하를 돌아보았는가?
[건축 에세이] 우리의 산하를 돌아보았는가?
  • 류춘수
  • 승인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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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마다 장엄한 풍광, 길고긴 역사들 / 류춘수



[인터뷰365 류춘수] 길고 장엄한 역사를 담아온 우리의 산천 풍광 얘기를 하고 싶었다.

북녘 산하는 민둥산이 되었다는 뼈아픈 소식도 들리지만, 구조가 완벽한 건축은 마감에서 조금만 가꾸어도 빼어난 명품이 될 수 있듯이 그리 멀지 않은 세월 뒤에 우리는 회복된 강토의 아름다운 강산을 되찾을 것이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양자강에 이르는 광대한 대륙이 우리의 터전이었으며, 일 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외치는 「한단고기」를 비롯하여, 「단(丹)」 「대동이(大東夷)」처럼, 우리의 정신과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저작물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동의보감의 허준」, 「목민심서」의 정약용, 「詩人」의 김병연과 「매월당」 김시습..., 선인들의 이야기가 서점가를 풍미하는 최근의 현상에서 오늘 우리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가를 엿보게 된다. 잊혀진 우리의 모습을 되찾으려 피나게 애쓰는 모두의 시대적 요청과 공감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백설공주의 이야기나 로빈훗의 전설을 낳은 평지의 숲의 문화가 아닌, 폭포 아래 옥녀탕의 선녀 이야기나 임꺽정과 홍길동처럼 산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는 오늘의 「남부군」이나 「태백산맥」으로 맥을 잇듯이, 우리의 얘기 - 그 정신과 역사- 는 당연히 문자 그대로 이 산천을 그릇으로 담아 온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고유한 삶의 방식, 즉 전통과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산천을 골골마다 익히고 사랑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구태여 전통건축의 공간이나 양식과 상세히 알려고 얽매일 것도 없으며, 유래와 전설의 발굴을 위한 답사가 아니라, 그저 물 흐르듯, 그러나 온몸으로 적시며 우리의 경관을 두루두루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른 아침, 한강의 물안개 위로 불기둥 세우며 솟는 붉은 태양... 일본인들은 김포에서 서울 시내로 들어올 때 이 도도한 한강에 기가 죽는다던가?

낙동강 흰 모래밭 너머 병풍 같은 절경을 기둥 간살마다 액자처럼 한 폭의 그림이 되게 하는 저 아름다운 병산서원의 풍광이 아니더라도, 우리 외할아버지께서 난간 아래 강물을 떠서 먹을 가셨다는 청종 안덕 명당동의 방호정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발안을 지나 온양으로 가는 서해의 갯벌 바다 위로 지는 낙조, 하동에서 진주 가는 길 평사리 마을 앞을 굽이도는 섬진강, 「강낭콩보다 더 푸른」 진주 남강의 촉석루, 무등산 너머 소쇄원 지나 끝없이 털털거리며 가던 비포장 남도 길, 방어진 울기 등대의 철썩이는 파도소리, 물새소리... 그 동해안 따라 굽이굽이 펼쳐지는 백사장은 부호들의 별장으로 바다의 경관이 막히던 이란 카스피해보다 몇몇 배나 절경이던가?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놓다」라며, 청령포 우리 친 곳에 어린 임금을 두고 온 금부도사 왕방연이 슬피 울던 그 영월을 지나, 아우라지 정선에서 메밀꽃 피는 봉평으로 가는 길은 차라리 칠 십리 불영계곡보다 가슴이 쓰리도록 아름답지 않던가!

『저 멀리 능라도 산산산...?』 시심(詩心)만큼 운율이 떠오르지 않아 마침내 조선의 시인 김황원이 울며 어둠 속으로 내려간 대동강 부벽루는 언제나 가 볼 것인가? 「장길산」의 무대인 구월산 아래 문화는 우리 버들 류(柳)가의 고향이라니 어찌 감개가 없을 것이며, 「토지」의 서희와 길상이 마침내 사랑을 확인한 산수갑산 달구지길, 그 전나무 울창한 장백산맥 저쪽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헐벗은 산하이던가. 백두산 천지가 펼쳐지는 순간 감격에 어리던 눈물과는 다른, 차가운 눈물이 또한 그곳에 있었다.

육백리 휴전선의 마지막 철조망이 동해의 파도에는 부서지지 않는 저 해금강 너머 명사십리 해당화, 약산 진달래보다 더 붉은 핵기지 영변,..., 먼 우주의 진보된 생명체의 삶을 보고 싶으면 우리의 주변을 돌아보라는 말처럼, 북녘 산하 그리운 금강산을 보려면 한계령 너머 오색 남설악의 기암괴석의 절경을 우선 보아두자.

내가 아무리 총석정 주변의 입석을 형성화한 건축을 중국에 세워도 이만큼 아름다울 수 없을 것이며, 진짜 폭포만큼 장엄할 리 없다.

누가 이 나라를 좁은 국토라 했던가?

마을마다 골골마다 풍경이 이처럼 수려장엄한데 어찌 작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고을마다 길고 긴 풍상의 역사와 전설이 있으며, 날씨조차 이렇게 다양할 수 없다.

내가 이 강산에 남길 몇 점의 건축은 사무실 창 너머 저 관악산의 불꽃 형상에 비하면 결국 영원할 수 없는 포말같은 것이리라. 세워져 있는 동안이라도 그 쓰임과 모양이 고향 냇가의 반지르한 빨랫돌만큼은 될 것인지, 그렇게 유용하며 사랑 받는 것이 될 것인가, 의심스럽다.

어느 일요일, 아내와 소문으로 듣던 단양 구인사를 다녀왔다. 월악산에서 단양까지의 물과 지세는 중국 계림의 축소판이란 느낌이었다.

소백산 북쪽 기슭, 기도처로 이름 난 천태종 총본산이라는 구인사에는 소문처럼 수많은 기복 신도들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그 「장대한 콘크리트 사찰」은 우리의 산하에 어울릴 수 없었다.

내가 설계하고 세운 건축이 이곳 구인사처럼 세상의 화려한 소문과 달리 주어진 산천조건과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괴물이 될까 두려워 얼른 발길을 돌렸지만, 정말 나는 이 도시, 이 강산, 이 시대의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명작을 과연 한 점이라도 남길 수 있을 것인가를 산천에 매연 가득 풍기는 상경길 고속도로의 긴 차량 속에서 두고두고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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