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띠 해에 소에게 받은 잊을 수 없는 감동
소띠 해에 소에게 받은 잊을 수 없는 감동
  • 김철
  • 승인 2009.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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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 당하고 눈물 흘리던 황소 / 김철



[인터뷰365 김철] 가난한 시절, 농가의 재산 목록 1호는 단연 소였다. 우리 집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일찍이 잘 나가던 도회지의 ‘모던 걸’에서 결혼 후 팔자에도 없는 얼치기 농사꾼으로 전락한 어머니에게도 소는 귀중한 존재였다.

유난히 많은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어머니는 가난한 공직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도시에서 시골로 내려와 농사꾼이 되는 길 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해방 후 농지개혁으로 전 재산을 거의 잃은 천석꾼 할아버지가 물려준 얼마간의 논밭뙈기가 아버지에 의해 절단나지 않고 그나마 남아있는 게 다행이었다. 농사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었다. 방학 때가 되어야 어쩌다 한 번 얼굴을 내비치는 아버지는 쇠스랑이 어떻게 생겼는지조차 모르는 농사의 문외한이었다.


어머니는 일꾼과 함께 밤낮 억척스레 일에 매달리면서 소를 자식처럼 돌보기를 잊지 않았다. 주인의 지극한 보살핌 탓인지 소는 중노동으로 보답하면서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잘도 순종했다. 그런 소가 어느 날 갑자기 사나운 야수로 돌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사람도 도는 판에 소라고 돌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평소 온순하기 짝이 없는 녀석이 언덕 위에서 풀을 먹이고 있는 어린 누이동생을 그 힘센 뿔로 냅다 들이받아 언덕 아래로 내동이친 것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몇 걸음 밖에 있던 나의 두 다리가 연신 후들거렸다. 중상은 고사하고 동생이 죽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날 우리 집에서는 당연히 소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는 결석재판이 열렸다. 그리고 추방이라는 선고가 내려졌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정든 소와의 영원한 생이별은 어린 나의 가슴에도 너무 가혹한 징벌로 여겨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재판장인 어머니에게 선처를 호소하기에는 미친 황소가 너무나 무서웠고 겁났기 때문이다. 외양간에 감금된 채 형 집행을 기다리던 소는 며칠 후 결국 장날을 택해 우리 집에서 영구 추방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날 장터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있었다.




어느 마을을 지날 무렵, 정자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던 누런 황소가 우리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소리 내어 우는 것이었다. 멀리서 봐도 조금 전의 우리 식구임이 분명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서자 순하고 순하게 생긴 커다란 눈망울에서 금세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과오로 이별을 자초한 걸 뉘우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를 쳐다보는 어머니와 나 그리고 남동생과 일꾼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소는 떨어지기 싫다는 듯 우리가 시야에서 멀리 사라질 때까지 울음을 멈추지 않았고 그 애잔한 소리를 뒤로 하고 집으로 왔던 기억은 지금도 어머니와 나의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다.

소도 사람을 알아본다. 그런데 세상은 뭐가 뭔지 모르게 진보든 보수든, 정치판의 여든 야든. 노동자든 사용자든 뒤죽박죽이고 다들 뜻대로 안 되면 막보자는 식으로 서로 못 알아보는 경우가 많다. 세상 살기가 힘들수록 소처럼 듬직한 한해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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