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세계와 통하는 토종 건축가 류춘수
[인터뷰] 세계와 통하는 토종 건축가 류춘수
  • 김다인
  • 승인 200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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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경기장보다 한계령휴게소가 나의 진품” / 김다인

 

 

 

 

[인터뷰365 김다인] 2002년 한일 월드컵대회 개막식이 열리고 한국과 터키의 4강전이 열렸던 서울 상암동의 월드컵경기장은 축구뿐만 아니라 건축미학적으로도 우리에게 긍지를 심어준 곳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선수와 관계자들에게 방패연을 연상시키는 곡선의 지붕과 한지 색상이 어우러진 한국적인 경기장을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의 아름다움이 담긴 월드컵경기장을 설계한 이는 건축가 류춘수, 당시 언론에서는 ‘설계의 승리’라고까지 경이로워하며 숱한 스포트라이트를 그에게 비췄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가장 한국적인 건축가’라는 것이다.

서울디자인올림픽이 열리는 등 새삼 도시의 디자인에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요즘 그가 생각하고 있는 ‘한국의 건축’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다.

사당동에 위치한 그의 ‘이공건축’ 건물은 관악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비탈길 위에 높고 가느다랗게 서있었다. 7층에 위치한 류춘수 회장의 사무실에 들어선 첫인상은 천정이 낮다는 것이었다.

 

 

천정이 낮네요. 키 큰 사람은 부딪히겠습니다.

(슬쩍 필자의 키를 보더니, 괜한 걱정을 한다는 듯) 2미터가 넘는 사람은 그렇지요. 그래도 2미터 가까운 외국인이 몇 년 동안 여기서 근무했습니다. 허리를 살짝 굽히고 다니기는 했지만요. 천정은 굳이 높을 필요가 없어요. 머리만 안 닿으면 돼요. 옛날 우리 시골집은 다 그렇지 않았습니까.

 

최근 부산 해운대에 짓게 될 국내 최고층 건물 설계를 맡았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130층짜리 건물인데 테마 파크 등이 있는 복합공간으로 설계를 했습니다. 최고 높이라는 건 별 의미가 없죠, 더 높은 건물이 생길 테니까요.

 

 

 

 

스케일이 큰 건물 건축을 많이 하십니다. 그중에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겠습니다. 당시 ‘설계의 승리’라고 언론매체에서 크게 이슈가 됐던 기억이 납니다.

하도 많이 한 이야기라 선도가 좀 떨어집니다만. 아직까지도 전율이 흐르는 기억이 있습니다. 방패연 때문입니다. 처음 경기장을 설계했을 때는 관람석을 원형으로 할 생각을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파리를 가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보다가 우리의 방패연을 본 겁니다.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르더군요. 이거다 싶었죠. 직사각형 모양으로 되어있는 방패연의 비율은 축구장과 비슷합니다. 그리고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했던 설계를 다 백지화하고 경기장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 뒤 가운데 둥근 구멍을 넣은 겁니다. 주변은 방패연의 살이 한지를 잡아당기는 느낌으로 처리했구요.

 

그때 대기업이 총동원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응모를 하지 않았습니까.

현대, 삼성, 대림, 포스코 등 국내 굴지의 회사들이 건축사를 정해서 입찰에 응했습니다. 저는 삼성엔지니어링이라는, 삼성 계열이기는 하지만 말단의 작은 회사와 함께 했구요. 골리앗과 다윗의 싸움, 99대1의 확률이었지만 설계로 모든 것이 뒤집어졌습니다. 결국 제가 되면서 현대가 삼성에게 졌다는 식으로 기사화되기도 했죠.

 

올림픽체조경기장도 설계를 하셨지요, 유난히 국가적 큰 경기와 인연이 깊으십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올림픽 때는 올림픽체조경기장을 짓고 월드컵 때는 월드컵경기장을 짓고. 제가 아주 럭키한 사람입니다. 체조경기장은 특히 세계 최초로 케이블 돔 공법을 이용했던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건축에 문외한이라 기초적인 것도 여쭙니다. 설계를 할 때 외형을 먼저 정하고 하십니까 아니면 내부를 먼저 하십니까.

외형을 먼저 생각한 일은 없습니다. 평면과 단면을 그려내면 외형은 저절로 완성됩니다. 월드컵경기장 경우도 내부를 먼저 설계하고 바깥을 방패연으로 덮은 겁니다.

 

 

 


여태까지 많은 건축물을 설계하셨는데, 가장 애정이 가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한계령휴게소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산 속에 경사가 45도나 되는 가파른 곳에 휴게소를 짓는 일이었죠. 바람도 심하게 불고 눈도 쌓이는 그곳에 어떤 휴게소를 지을지, 생각을 많이 하다가 기본적으로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 산속에 어울리는 집을 짓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경사각도에 따라 건물 기둥의 길이를 달리하는 등 산에 어울리는 곳으로 완성했습니다. 자연을 점령한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 속에 스며든 건축물이 된 거죠. (류춘수 회장은 이 한계령휴게소를 배경으로 탤런트 이요원과 함께 모 건설회사의 CF도 찍은 바 있다.)

 

우리나라 건축은 김중업 선생, 김수근 선생으로, 그리고 류 회장으로 큰 줄기가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건축은 어떤 작업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건축은 과학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이 합쳐진 작업입니다. 공존하기 어려운 두 요소를 적절하게 조화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조각가는 자신의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작품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하지만 건축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려해야 할 컨텍스트(context)가 무궁합니다. 오늘도 제가 설계한 리츠칼튼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왔는데, 그 건물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 건물을 설계할 때 종업원들이 하루에 침실 몇 군데를 청소하는가, 호텔 내 레스토랑 운영은 어떻게 할 것인가, 쓰레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부터 외국의 대통령이 와서 묵을 것인가 등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설계에서 고려할 사항이 됩니다. 뿐 아닙니다. 건물 주변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과 물건의 건물 내 움직임을 통제하는 것이 바로 건축입니다. 큐빅 아시죠? 한면이 7개 정도인 큐빅을 색깔대로 모두 맞추는 작업이 건축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런 걸 어찌 다 하십니까, 그렇다면 건축가는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창호가 바둑을 잘 두는 것은 공부 때문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이 E=MC²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공부 때문이 아니구요. 깊이 생각하고 몰두한 결과입니다. 거기에 사상과 철학이 더해졌을 때 창조적인 무엇인가가 나온다고 봅니다. 타고난 것에 피나는 노력이 더해져야죠.

 

요즘 국내에도 보기에 멋스런 건축물이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발전하고 있는 건가요?

외형으로 감각적인 건축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능이 제대로 들어가 있지 않은 채 형태만 감각적인 건물은 의미가 없습니다. 만약 조형과 기능 가운데 하나를 택하라면 기능을 택하는 것이 옳습니다. 유명한 구겐하임미술관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이렇게 종이를 구겨(실제로 구겨) 던져놓고(실제로 던지고) 이대로 만들라고 한다면 그런 건축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건축물을 만들어놓고 그 외형에 맞춰 견디며 살라는 것은 건축의 기본이 없는 겁니다.

 

 

1946년 경북 봉화에서 태어난 류춘수 회장은 한양대 건축과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조경과를 졸업했다. 1974년부터 86년까지 고 김수근 선생의 ‘공간’에서 배운 후 86년 10월 ‘이공건축’을 설립했다. 92년 국제 현상설계에서 당선된 중국 해남시의 868타워를 계기로 세계적 건축 설계가로 발돋움했다. 국제건축상 금상(호주/올림픽체조경기장), 한국건축가협회 협회상, 대한건축사협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지난 5월 미국 건축가협회에서 외국인 건축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에게 수여하는 ‘honor AIA’를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서울월드컵경기장을 비롯해 올림픽체조경기장, 중국 868타워, 한계령휴게소, 지하철 경복궁역사, 리츠칼튼 호텔 등이 있다.


 

 

 

 

“카피(COPY)가 뭔지 아십니까.”

 

류 회장은 붓펜으로 굵게 영어로 쓰더니 묻는다. 그리고 답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스스로 답을 하기 시작한다.

 

“대학에 떨어져서 한 2년 동안 절에서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스님들은 새벽 5시30분이면 어김없이 새벽예불을 합니다. 그럴 때 읊조리는 것이 계향, 정향, 해향, 해탈향입니다. 깨달음의 단계죠.”

 

다시 류 회장은 익숙하게 한자로 戒香, 定香, 解香, 解脫香이라고 적는다.

 

그것이 카피와 어떻게 연결됩니까.

들어보십시오. 계향은 열심히 공부하는 겁니다. 공부에는 세상에 있는 모든 정보나 지식도 포함됩니다. 그 다음에 정향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해향으로 바로 가는 것이 카피입니다. 습득한 것을 그대로 내놓는 것입니다. 정향의 단계는 공중에서 추를 내려뜨렸을 때 움직임이 없는 상태, 물가에 서있는 나무가 어느 순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물에 반사된 상태를 뜻합니다. 수많은 인파가 시끌벅적하게 지나가는 가운데서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글을 읽을 수 있는 것을 뜻합니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 공부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버리고 넘어섰습니다. 정향의 단계를 거쳐 해탈로 나아간 것입니다. 집중해서 몰두하는 가운데 이미 배운 것을 넘어서서 내놓는 것이 해향, 곧 창작의 결과물입니다.

 

절에 한동안 계신 것이 생각의 깊이나 건축 이념 등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습니다.

대학을 두 번 떨어졌는데 그때마다 문수산 축서사라는 절에 머물렀습니다. 그때가 아마 가장 힘든 시기였으면서 지나고 보니 가장 보람된 시기였습니다. 스님들로부터 마음공부도 많이 했고 무엇보다도 자연이 계절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훗날 자연친화적인 건축을 하게 된 정신축을 가지게 됐습니다. 만약 제가 외국 유학을 가서 건축을 공부했다면 제가 여지껏 지은 것 같은 건축물은 지을 수 없었을지 모릅니다. 방패연에서 월드컵경기장 아이디어를 얻지도 못했을 거구요. 고통은 오히려 기쁨을 만드는 필수조건인 것 같습니다.

 

건축가로서의 길을 얘기할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고 김수근 선생과의 만남 아닌가요.

공간에서 12년 동안 김 선생님을 모셨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왕성하던 시절이었죠. 74년 여름 고향 선배를 따라 우연히 공간사옥을 방문하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창, 벽돌, 조명, 가구 등 당시 건축회사에 몸 담고 있던 저에게는 전혀 새로운 공간적 충격이며 혼란이었죠. 그래서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저 공간을 거치지 않고야 어찌 한국에서 건축을 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해 9월 공간에 신입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습니다. 그리고 79년에 설계 점수 최고로 건축사가 됐죠. 당시 김수근 선생은 건축학도들에게 동경과 흠모의 대상이었고 우리에게는 왕이자 스승이셨죠. ‘건축 일은 타고나야 하는 것’이라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전국의 고찰과 박물관,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방대한 양의 스케치를 하셨습니다. 또 ‘감리는 곧 설계 변경’이라며 그 많은 현장을 다 가서 일일이 확인하셨습니다. 제 촌스런 매너도 바로잡아 주시고 모든 협상이나 대화를 당신 뜻대로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시며 제가 많이 배우도록 하셨습니다.

 

 

 

 

건축사 자격증을 얻으신 얘기를 잠깐 하셨는데, 건축사와 건축가는 어떻게 다릅니까.

건축사는 건축가가 되기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을 설계할 자격을 갖춘 전문직을 건축사라 한다면, 건축가는 건축사 중에서도 훌륭한 건축 작품을 남긴 작가에게 주어지는 호칭입니다. 기술을 바탕으로 한 예술적 창조자가 건축가인 것이죠. 한담인데, 얼마전 MBC의 작가 한 분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건축가가 등장하는 드라마를 만든다면서 자문을 구하러 왔더군요. 그래서 제가 삼각대 같은 걸 대고 그리는 장면 넣지 말라는 등등 얘기를 해주면서 왜 주인공을 건축가로 할 생각을 했느냐고 물었더니 답이 그래요, 건축가는 어디에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교수가 호텔에 나타나거나 연예인이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에 나타나면 이상하지만 건축가는 어딜 가도 직업상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아마 건축가를 바람둥이로 그릴 모양입니다. 하하.

 

회사 이름을 이공(異空, Beyond Space)으로 지은 것도 공간과 관련이 있습니까.

89년 공간을 떠나 회사를 차릴 때 이름 지을 일이 큰일이었죠. 그 얼마전 존경하는 스님이 제게 지어주신 불명인 종산(宗山)으로 하자니 너무 거창하고. 그래서 무무건축(無無健築)이 어떨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장자의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 空不異色)이 떠오르는 겁니다. 그래서 ‘이공’으로 지었습니다. 이공은 다른 공간일 수도 공간 아닌 것일 수도 있고 또 하나의 공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우주 저 너머의 새로운 세계를 뜻할 수도 있구요. 그래서 영어로는 Beyond Space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뛰어난 인물을 이인(異人)이라 하고 특이한 조형을 이색적이라 하니, 빼어난 공간을 이공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설계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직접 붓으로 그린 그림으로 하시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그림 그리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렇습니다. 어릴 때부터 매일 붓으로 그림 그리는 연습을 했고, 어딜 가나 붓과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닙니다. 스케치를 하는 것이 사진보다 오래 머리 속에 남기 때문에 스케치를 많이 합니다. 습관적인 스케치는 조형적 창조를 위한 기본행위입니다. 심심풀이 삼아 그리는 모든 스케치는 넓은 안목으로 볼 때 결국 건축설계라는 제 직업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고향인 봉화에 작은 별장을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우선 발음을 명확하게 해주세요, 제 고향은 봉하가 아니라 봉화입니다. 봉하마을처럼 유명한 사람이 살지 않는 촌이지요, 하하. 거기에 작은 집을 지었는데 아주 평범한 시골집입니다. 그 집은 별장이라기보다 우리 열악한 농촌 환경에 맞게끔 샘플로 지은 집이에요, 아참, 제가 앞으로 농촌주택 모형을 만드는 일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농촌 실정에 맞는 도면 12가지를 만들어 누구든 무료로 그 도면 가운데 마음에 드는 대로 집을 지을 수 있게 할 겁니다.

 

봉화에 가면 어떻게 소일하십니까.

전 이미 서울 사람이 아니라 봉화 사람입니다. 주민등록도 내려가 있고 투표도 거기 가서 합니다. 봉화 가면 시골 사람처럼 살지요. 작은 방에 앉아 인터넷을 하고 있으면 창밖으로 쟁기질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물감이 없어요. 천년 정도의 시차는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 풍경을 보다가 작살로 고기도 잡기도 합니다.

 

새총도 잘 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 맞아요, 잘 쏘죠. 그 말 하니까 막 생각이 났는데 국제슬링샷대회를 열면 어떻겠습니까. 새총대회 말입니다. 새총은 어느 나라건 아이들이 자랄 때 다 한번씩 하는 놀이 아닙니까. 자기들이 멋지게 새총을 만들어와서 빈 깡통 거리 두고 맞히기 등을 하는 겁니다. 그걸 한다면 제가 월드컵경기장을 빌려 보겠습니다. 그 대회가 열리면 저는 선수로 나갈 겁니다.

 

 

 

 

현관이 없는 집을 강조하시는 걸로 아는데 시골집에도 현관이 없습니까.

물론이죠. 처음 제가 살 집을 설계하면서 왜 현관이 필요하지?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고 결국 현관을 없앴습니다. 우리 전통 가옥들은 현관이 없고 각방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돼있습니다. 아니면 마루로 연결돼 있거나요. 왜냐하면 일자 형태로 짓는 것이 기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각 방마다 바람이 잘 드나들지요. 요즘 아파트는 현관을 통해 들어가 이방 저방으로 가게 돼있는데 그러면 바람이 통하지를 못합니다.

 

건축가로서 생각하는 좋은 집이란 어떤 집입니까.

사람마다 여러 생각이 있어 단순하게 정리하기는 어렵겠지만 쓸모있고 튼튼하고 아름다운 집이 기본이 아닐까 해요. 문과 창문의 위치, 콘센트의 위치 등에 따라 편리성이 얼마나 달라지는가를 경험한 바 있을 겁니다. 멋있게 보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 편리함, 쓸모가 망쳐지면 안되죠. 튼튼한 집에는 단열이 방수와 함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서민주택일수록 단열을 잘하면 난방이 거의 필요없습니다. 아름답다는 것은 화려한 색상과 재료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하나는 부족하고 둘은 많다는 생각으로 집 내외부의 재료와 색상을 고르는 것이 좋습니다. 간결하고 소박하고 깨끗함이 규모에 관계없이 그 집을 아름답게 만들 겁니다. 하지만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은 결국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안목입니다. 제 물건이 제 자리에 있다는 가장 평범한 조건이 가장 좋은 집을 만드는 가장 어려운 주문이죠. 좋은 집을 만들어주는 게 저 같은 사람의 사회적 의무일 테지요.

 

[인터뷰이 나우] 월드컵경기장 설계 건축가인 류춘수 회장(주식회사 이공)이 대한건축사협회가 주최하는 제5회 국제건축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이장호 영화감독이 조직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한 국제건축영화제는 31일 오후 7시 이화여대 캠퍼스 중심에 있는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개막한다. 이날 국악단 ‘소리개’의 서명희 명창과 이영광 단장의 개막 기념공연으로 시작해 국내외 건축 및 문화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남의 시간을 갖고 개막작품을 감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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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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