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우건설 임원직 박차고 떠난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인터뷰] 대우건설 임원직 박차고 떠난 자전거여행가 차백성
  • 김다인
  • 승인 2012.02.0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9세에 자전거 두 바퀴에 새 인생을 싣고 달리다”

【인터뷰365 김다인】자전거여행가 차백성(61)씨는 자전거여행 1세대, 자전거여행의 ‘지존’으로 불린다.


1990년대 국내 산과 들, 강과 바다를 두루 자전거로 섭렵하면서 워밍업을 한 그는 2000년 12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전거여행가 길로 나선다. 그가 다니던 직장은 대우건설, 그는 공채 1기다. 당시 대우건설이면 모든 사회 신입들의 꿈의 직장이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을 많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면, 전인미답의 나라들에 건설 붐을 일으켜왔던 곳이었다.


인하대 토목과 졸업, 육군 공병 소위(ROTC)로 임관해 중위로 제대한 차백성씨는 1976년에 대우건설에 입사, 24년 만인 49세 때 상무이사직을 그만두고 자전거 두 바퀴에 새로운 인생을 싣고 내달렸다. 가까이는 동남아시아로, 그리고 대양을 건너 미국, 유럽으로. 전문 자전거여행가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물은 이미 두 권의 책(<아메리카 로드><재팬 로드>)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12년. 지금도 그는 다시 세계로 달려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왜 달릴까, 왜 자전거로 달릴까, 자전거로 숱한 나라들을 달리면서 무엇을 얻고 또 버렸을까. 올해 들어 가장 춥다는 날,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차백성씨를 만나 물어보기로 했다.

대우건설 공채 1기면 당시 건설인 가운데서는 ‘지존’ 아닙니까. 그 직장을 단칼에 그만두시다니요.
공채 1기는 그만두라는 말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입니다. 저는 2000년 12월 상무이사를 끝으로 그만뒀습니다. 오래된 제 꿈을 펼칠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중동 건설 붐 등으로 많은 나라에 가보셨겠습니다.
중동과 아프리카 건설 붐이 대단했었죠. 당시 건설인력만 10만명이 넘었습니다. 건설인들은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 원동력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저도 수단, 나이지리아, 영국, 리비아 등 해외에서만 10년을 보냈습니다. 첫 해외 근무지는 수단인데, 지금은 고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울지마 톤즈’ 등으로 잘 알려졌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나라가 있는 줄도 몰랐습니다.

왜 수단이었습니까.
대우건설이 수주한 첫 해외 공사였어요. 선발대를 뽑는데 자원했죠. 자원한 이유는 나일강이 있어서입니다. 어려서부터 나일강에 청나일강과 백나일강이 있다고 들었는데 과연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두 나일강이 합해지는 곳에 수단 정부가 영빈관과 호텔을 짓는다는 겁니다. 가서 봐야 했습니다. 수단에 자원을 하고 사장님과 면담을 했는데, 영어 잘 하느냐고 묻더군요. 영어시험을 볼 것도 아닌 것 같고, 사장님도 영어를 그다지 잘할 것 같지 않아서 “잘한다”고 답했습니다. 결국 선발대로 뽑혔죠. 출국 전 한 달 동안 매일 내복을 입고 다녔습니다. 그때가 6월이었는데, 한국보다 몇 배 더울 수단 기후에 미리 적응하기 위해서. 이건 탐험가 아문젠이 남극을 탐험하기 전 겨울에도 창문을 열어놓고 잤다는 일화에서 힌트를 얻은 겁니다.

지구본이나 청나일강, 백나일강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세계 지리와 역사에 밝으신가 봅니다.
어려서부터 지리와 역사를 좋아했어요. 제 꿈은 어릴 때부터 세계 여행이었습니다. 벽에는 커다란 세계 전도를 붙여놓고 책상에는 아주 큰 지구본을 두고 늘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이 지구본에 있는 나라들을 가보리라 다짐하면서, ‘김찬삼 여행기’ 같은 책을 보면서 꿈을 다졌죠.

마침내 그 꿈을 위해 움직인 것이 49세 때였군요. 하지만 좀 애매할 때 아닙니까, 자녀들도 아직 성인이 되기 전이고 경제적으로도 돈 들 일이 많았을 테고.
제가 딸 하나, 아들 하나를 두었는데 당시 고등학생, 중학생이었어요. 아내랑 다 모여 가족회의를 했죠. 아빠가 오래 된 꿈을 이루기 위해 회사를 그만두고 자전거여행을 떠나려 한다…그랬더니 아이들이 “일요일에 타면 되잖아!” 하더군요. 그래도 꿈을 실현하겠다는 아빠가 멋있어 보인다고 했습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하는 게, 그때 아내와 아이들이 저를 이해해 줬다는 겁니다.

가장이신데…부인께서 별도로 가정을 꾸려나갈 경제력이 있으셨는지요.
작은 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제가 20여년 동안 열심히 일해서 모아놓은 돈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해외 건설현장에 나가면 국내 급여의 2~3배를 줬습니다. 연말에 보너스까지 합하면 월급이 90만원 정도 됐는데, 그때 화곡동 집 한 채 가격이 300만원이었어요. 2년만 모으면 집을 장만할 수 있었죠. 그래서 마련한 작은 집 한 채가 있었고 저축도 있었어요. 아내가 알뜰하게 살림해준 덕도 있고.

하필이면 왜 49세 때였을까요.
타이밍이죠. 때가 된 겁니다. 체력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당시 외국어대학교 교수로 계시던 아버지께서 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충격이었어요. 그때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죠.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죽으면 한이 맺힐 것 같았습니다.


일본 최북단 와카나이에서


여행이라면 도보여행도 있고 배낭여행도 있는데 왜 하필이면 자전거여행을 택했는지요.
자전거가 마냥 좋았습니다. 처음 자전거를 탄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부잣집 친구 것을 빌려 탔는데, 그날 잠을 못 잤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다니! 몇 년 후 중학교 때 친척 한 분이 자전거를 가져다 줬습니다. 미군한테 얻은 거라면서. 그때부터 ‘김찬삼 여행기’에 나온 곳들을 자전거 타고 가보겠다고 구체적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지구본에서 가보고 싶은 곳을 찾고 관련 사진들을 다 찾아보면서 흡사 그곳에 가고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곤 했습니다.
제가 회사를 그만두고 처음 떠난 자전거여행이 미국 시애틀에서 샌디에이고까지 종주였습니다. 지구본을 볼 때마다 가장 눈에 꽂혔던 곳입니다. 그래서인지, 첫 여행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하루 100km씩 한달 동안 3000km를 달렸는데, 마치 자주 가던 강원도 길을 가는 듯했습니다. 지구본에서 보고 또 보고, 사진을 통해서 주변 풍광들을 다 익혔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자전거로 떠난 첫 세계여행지였나요.
아닙니다. 처음은 백두산이었습니다. 중국 쪽 백두산을 1996년 8월에 자전거 등정을 했습니다. 당시 중앙일보에 ‘중국 백두산 자전거 등정’ 모집 기사가 난 걸 보고, 이거다 싶었습니다. 세계 자전거여행의 출발을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사에 사정을 애기하고 휴가를 청했더니, 사장님이 “네 나이가 몇이냐?”하고 못마땅해 했습니다. 당시 전 이미 임원이었거든요. 그래도 허락을 해줘서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달릴 때는 좋아도, 자전거가 고장난다거나 문제가 생길 때면 곤란하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자전거가 애물단지 같을 때도 있습니다. 고장이 나거나 비가 오거나 길을 잃었을 때. 그래도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릴 때 그 상쾌함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제 몸 근육은 이미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화되어 있어서 자전거 탈 때가 가장 편합니다. 평지 같은 경우는 하루종일, 거의 무한대로 자전거를 타고 달릴 수 있어요.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서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요.
어디서 세워서 무엇을 먹을까, 어디 묵을까, 책에다는 어떤 내용을 쓸까 등등 갖가지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아무 생각도 않는 무념무상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구요.

자전거여행에 부인이나 자녀를 동반한 경우가 있습니까.
한번도 없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가면 그 사람을 배려하느라 정작 제가 하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들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에 자전거여행은 반드시 혼자 갑니다.

경비는 얼마나 드나요. 경비 조달은 어떻게 하시는지.
비행기삯 포함해서 보통 한번 여행에 500만원쯤 듭니다. 제가 책을 두 권 내서 인세가 꾸준하게 들어오고 이곳 저곳에 강연을 다녀 강연료도 들어옵니다. 이 돈들은 여행용 계좌에 따로 모아두었다가 때가 되면 길을 나섭니다.

국내에도 자전거 인구가 많이 늘어가고 있는데, 자전거여행에 관한 팁을 주신다면.
우선 준비를 철저하게 해야 합니다. 자전거여행은 캠핑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목적지마다 머물 곳 등을 세밀하게 체크해야 합니다. 간단한 자전거 수리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기본적인 부품들을 반드시 챙겨 갑니다. 일반적으로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라고 멋있게 말하지만 저는 ‘꽉 채우고 떠나라’라고 말합니다. 여행 전 준비가 철저할수록 실제 여행에서 참맛을 느낄 여유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자전거여행은 도착지가 겨울일 때는 피하는 게 좋습니다. 바람과 추위 때문에 달리는 것 자체가 고역입니다. 5~6월 정도가 가장 적당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장거리를 갈 때는 되도록 해안도로를 타고 가는 것이 좋습니다. 해안도로는 곳곳에 해수욕장이 있기 마련이고 따라서 씻고 먹고 캠핑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환경이 마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자전거여행 갈 때 반드시 가지고 가는 것은 뭡니까.
고기 넣고 볶은 고추장입니다. 여행 갈 때마다 아내가 챙겨주는 건데, 이거 하나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죠. 밥에 비벼 먹고 라면에 넣어 먹고 빵에 발라 먹고.


(위쪽부터 시계방향) 차백성씨가 자전거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만난 자전거 집시. 자전거에 짐을 싣고 평생 길 위를 달리는 할아버지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젊은이들. 북그리스 테살로비치에서. 터기에서 넘어가 닿는 첫 도시다. 미국 여행 중 만나 일주일 동안 길동무가 됐던 학교 교사 테드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지요.
일단 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사람들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미국이나 유럽 여행 중 잠시 숨을 고르려고 길가에서 쉬고 있으면 지나가던 자동차들이 거의 차를 세우고 묻습니다. 무슨 문제 있냐, 뭐 도와줄까. 물이나 먹을 것 필요하냐, 심지어 어떤 사람은 필요하면 쓰라고 핸드폰을 내주기까지 합니다. 나중에는 하도 많은 사람들이 물어보는 게 귀찮아서 일부러 한적한 곳을 골라 쉬기도 했습니다.
독일을 여행하는 중에는 길을 잃는 바람에 낯선 가정집에 하루 신세를 졌습니다. 다음날 부부가 출근을 하면서 더 쉬고 가도 좋다며 열쇠를 주더군요. 고맙지만 거절하고 나왔는데, 그 따뜻한 마음은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미국 여행 중에 만난 테드라는 사람도 생각납니다. 당시 학교 선생이었는데 마음이 서로 맞아서 일주일 동안 함께 달렸습니다. 나중에는 여자친구 얘기, 고민 등 속에 담아뒀던 말까지 나누는 사이가 됐죠. 귀국해서도 이메일을 주고받았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도 겪으셨겠습니다.
일본에서 비를 맞고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고 캐나다에서는 고속도로에 잘못 들어가서 차와 충돌할 뻔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데…그래도 큰 사고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행 중에는 자전거가 고장난다든가 길을 잃는다든가 몸이 아픈 것이 가장 힘듭니다. 그럴 때마다 주위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어려울 때 받았던 덕을 저도 베풀고 있습니다. 여행 중 다른 사람 자전거가 고장나거나 하면 달려가서 고쳐줍니다. 제 호의를 받은 사람은 또 언젠가 다른 사람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와주겠죠.

여태까지 여행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곳은 어딘지요.
뉴질랜드입니다.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종주를 했는데 경치, 사람 등 모두 좋았습니다.

일본은 특히 세 번이나 다녀오고 책도 냈는데, 무슨 이유입니까.
일본을 알고 싶어서.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다 보니 왜 우리나라가 일본에게 30여년 동안 잡혀 먹히게 됐는지, 과연 일본의 힘은 무엇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은 테마를 정해서 다녔고 다른 나라를 다닐 때보다 훨씬 무거운 마음으로 달렸습니다.

최근 대우건설 입사동기를 만나 보셨습니까.
입사 동기 중 10명이 지금 사장직에 있습니다. 그 친구들 만나면 언젠가 그 의자에서 내려와야 할 테니 현직에 있을 때 다음을 준비하라고 말해줍니다. 친구들은 “너는 좋겠다, 자전거나 타고” 하고 말하는데, 그러면 전 이렇게 되받습니다. “자전거나 타고가 아니다, 자전거여행은 치열한 싸움터다”라고. 사실이 그렇습니다. 하루 100km씩 꼬박, 한달이나 두달 동안 낯선 길을 달리는 일은 나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입니다.

국내 자전거여행 중, 신성리 갈대밭에서
자전거여행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여행의 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적인 도구를 가지고 적당한 속도로 가보고 싶은 곳에 가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또 자전거여행은 삶의 축소판입니다, 의식주를 다 매달고 다니는. 힘들기 때문에 해볼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로 정하셨습니까.
유럽 쪽인데, 동유럽이나 이베리아반도, 발틱 3국 등을 돌아보려 합니다.

자전거여행을 언제까지 하실 생각입니까.
두 발로 페달링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할 겁니다. 만약 자전거여행을 그만둘 때가 온다면 그후에는 글을 쓸 겁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문화적 차이, 사람들의 온기 등을 써볼 참입니다. 글솜씨는 없지만 정성스럽게 써나간다면 괜찮지 않겠습니까.

김다인

영화평론가. 인쇄매체의 전성기이던 8,90년대에 영화전문지 스크린과 프리미어 편집장을 지냈으며, 굿데이신문 엔터테인먼트부장, 사회부장, LA특파원을 역임

김다인
김다인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