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포터가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한 이유
해리 포터가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한 이유
  • 김희준
  • 승인 2008.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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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소년 알렌을 통한 성인 신고식 / 김희준



[인터뷰365 김희준] 영원히 소년 마법사 해리 포터일 줄 알았던 배우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성인 신고식을 하고 있는 중이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중인 것이다.

래드클리프는 주인공 알렌 역을 맡아 정신과 의사 다이사트 역을 맡은 리처드 그리피스와 2시간 30분 동안 팽팽한 긴장으로 이끌어가고 있는 이 연극은 지금 브로드웨이 최고 화제작으로 꼽히고 있다.

연극 <에쿠우스>에 출연하는 것을 왜 굳이 ‘성인 신고식’으로 표현했는가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이 연극 <에쿠우스>가 지니는 의미가 각별하기 때문이다.

<에쿠우스>는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 피터 쉐퍼가 영국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바탕으로 쓴 희곡이다. 17세 소년 알렌이 마굿간에 있는 말 여섯 마리의 눈을 쇠꼬챙이로 찌르고 체포된 사건이었다.

소년은 왜 말들의 눈을 찌른 것인가, 이 엽기적인 사건 뒤에는 어떤 일이, 어떤 심리가 있는 것인가. 소년의 행동 뒤에 숨겨진 내밀함을 파헤치기 위해 판사는 소년을 정신병원으로 보내고 거기서 의사 다이사트와의 ‘혈투’에 가까운 진실 캐내기가 무대 위에 펼쳐진다.

답변을 거부하고 노래를 흥얼거리는 알렌과 그의 속으로 파고들려는 다이사트. 차츰 마음의 문을 연 알렌은 억압적인 아버지와 광신도인 어머니, 그리고 그같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말[馬]과 교감을 나누는 자신만의 제의에 대해 털어놓는다. 그 비밀스런 제의가 이루어지는 마굿간에서 알렌은 질이라는 여자에 유도돼 섹스를 하게 되고, 자신의 본능적 욕구와 신성시하는 영혼(말)과의 충돌을 견디다 못해 말의 눈을 찌르게 된 것이다. 다이사트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은 후 알렌은 악몽에서 벗어나지만 다이사트는 알렌이 벗어놓은 굴레에 하나씩 얽혀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 연극에서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마지막, 알렌이 말과의 제의를 재현하는 장면이다. 전라의 몸으로 등장하는 알렌은 말과의 교감, 그리고 말의 눈을 찌르기까지를 그대로 무대 위에서 선보인다. 이때 배우가 발산하는 에너지, 그리고 관객이 받아들이는 충격은 극에 달한다.

이 연극이 소년기의 배우가 청년 연기자로 변신하는 가장 극적인 과정이 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극중 알렌이 자기의 내면을 모두 터뜨리고 해방감을 얻는 과정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래드클리프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에쿠우스>는 국내 초연 때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75년 김영렬 연출, 강태기 주연으로 소극장 실험극장 개관작으로 초연된 이 연극은 외설 논란을 일으켰고, 이전의 정통적인 연극 개념에서 벗어난 무대장치와 음악 등으로 이슈가 됐다. 특히 말머리 모양의 철골 투구를 쓴 건장한 남자배우가 알렌 뒤에 버티고 서있는 모습은 알렌의 의식세계를 지배해오던 말의 존재를 강렬하게 부각시켰다. 때문에 남성적인 힘을 상징하는 말과 알렌의 관계를 동성애적 시각으로 보는 이들도 없지 않았다.

<에쿠우스>는 연극사상 최초의 6개월 연속 공연, 국내 연극계 최초로 관객 1만명을 돌파한 기록을 남겼고 이전까지 없었던 예매제도가 도입되는 등 연극계에 큰 획을 그었다.

지금은 어느덧 50대 중반을 넘긴 중견배우가 돼있는 강태기는 당시 동안이었던 외모로 알렌 역을 소화해내 연기력 폭발의 배우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하이틴 스타 이미지가 강했던 송승환, 최재성 등이 알렌 역을 맡아 기왕에 형성돼 있던 이미지의 껍질을 깼으며, 최민식, 조재현 등 연기파 배우들도 이 연극에 출연함으로써 자기 연기의 한계점을 돌파해냈다.

알렌 역을 소년적인 이미지에 폭발적인 잠재력을 지닌 배우들이 주로 소화해냈다면, 극중 알렌과 전투를 치르는 의사 다이사트 역은 노련하고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들이 주로 맡았다. 신구, 이호재 등 쟁쟁한 남자배우들에 이어 2001년에 올려진 무대에서는 박정자가 최초로 여자 다이사트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에쿠우스>는 또 주로 사회성 강한 영화를 만들었던 시드니 루멧 감독에 의해 1977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서 다이사트 역은 영국 왕실이 존경하는 배우 리처드 버튼이 맡았고 피터 퍼스가 올누드로 알렌 역을 해 또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연극의 제목 ‘에쿠우스(Equus)'는 라틴어로 ’말‘이라는 뜻. 혹시 국내에서 이 연극을 볼 기회가 있다면, 더구나 믿을 만한 배우가 알렌 역과 다이사트 역을 맡는다면 주저하지 말고 에쿠우스와 알렌의 제의(際儀)에 동참해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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