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낭송을 공연예술로 바꾼 직업 시낭송가 공혜경
시낭송을 공연예술로 바꾼 직업 시낭송가 공혜경
  • 김두호
  • 승인 2012.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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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묻혀 살다가 자신도 시인으로 데뷔

【인터뷰365 김두호】공혜경 씨(46 한국시낭송공연문화예술원 원장)는 지금은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문학지를 통해 시인으로 인정받기 전부터 시낭송가로 활동해 왔다. 어쩌다 시낭송회에서 시를 낭송하는 취미활동의 시낭송가가 아니라 ‘시낭송 예술인’이라는 호칭이 따를 만큼 시낭송을 무대예술로 이끌어낸 직업 시낭송가로 활동하고 있다.

2011년 말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 주최한 제1회 아름다운예술인상 시상식은 공혜경 시인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시낭송 퍼포먼스로 막이 올랐다. 사랑의 연기인 김혜자 씨에게 1억원의 상금이 전달된 이날 행사의 서막을 한층 따뜻하고 아름답게 열었던 시낭송 퍼포머 공혜경의 공연은 이미 오래전에 그에 의해 새로운 무대예술 분야로 시선을 모아왔다. 2005년부터 매년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기념식, 현충일 추념식,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에서 헌시를 낭송해 왔고 각종 문학, 음악공연에서도 그의 시낭송 프로그램이 함께 했다. TV에서 시낭송 출연무대가 마련되기도 했고, 전문 시낭송 CD도 세 차례 출반했다.

시낭송가로 출중한 기량과 직업적 활동 영역을 가진 공혜경 씨는 시의 정감이 감동적으로 우러나오는 목소리와 융화된 몸짓 표현, 화음이 되는 시의 배경음악 선곡 등에서 시낭송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있다. 시와 더불어 시의 정령(精靈)이 되어 살아가는 공혜경 시낭송가는 마음결이 솜털처럼 부드럽게 느껴지는 매우 여성적인 여성이었다.


간혹 모임에서 취미삼아 시를 낭송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전문 직업인으로 시낭송가를 만나게 된 것은 처음이다.
시낭송은 대체로 시낭송회라는 모임이나 행사를 통해 무대가 마련되기 때문에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나처럼 개별적으로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럼 공 시인이 직업 시낭송가 1호인가?
그렇게 단정하면 부담스럽다. 다만 나처럼 단독 낭송무대나 CD 제작, 초청 공연과 협연 형식의 공연도 열심히 해가며 시낭송으로 당당하게 보수를 받고 직업 활동을 하는 사람은 아직도 드물 것이다.

시낭송이 취미활동이 아닌 직업단계로 발전하게 된 동기나 과정을 듣고 싶다.
나는 원래 연극배우였다. 나중에 건국대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도 전공했지만 서울예대 연극학과를 나오기 전인 여고시절부터 청소년여름축전 연극경연에서 2년 연속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대학 졸업 후 극단 제3무대에서 활동했고 이어서 동화구연가로 경원대 강원대 연세대 색동회 등의 교육원에서 강의활동도 했다.
시낭송은 우연한 기회에 시작됐다. 1999년 가을 한국시사랑회가 주최한 시낭송 경연에서 최고상인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면서였다.

장관상을 받기 전에도 시낭송 경험이 있었는가?
없었다. 시사랑회 회원인 선배의 권유로 출연 신청을 했다. 연극 연기나 동화구연이 모두 시낭송과 통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편하게 느껴졌다. 내 나름으로 박두진 시인의 <강강수월래>를 낭송했다. 출연순서가 두 번째인데 발표 후 무대에서 내려오자 많은 분들이 “시낭송을 연극처럼도 하네요” “당신이 대상입니다”라고 확신을 해주는데 내 첫 낭송 실력이 그 정도가 됐다는데 스스로도 놀랐다.

오히려 경험 없이 첫 무대에서 최고상을 받은 것이 시낭송에 자신감을 안겨 준 동기로 보인다. 직업으로 택하려면 전문성이 따라야 하는데 시낭송가가 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나를 시낭송 예술가로 호칭하는 사람도 많다. 시낭송도 어떤 면에서는 예술직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시는 곡만 붙이면 노래가 된다. 시에는 언어마다 강한 메시지가 있고 클라이맥스도 있다. 공연주제에 맞게 시를 선택하는 일부터 다양하게 감정을 살려내는 언어 표현의 기교, 목소리의 고저(高低), 장단(長短), 강약(强弱)의 적절한 조절, 낭송에 맟추어 표현하는 동작과 행위, 시와 화음이 되고 분위기를 밑받침 시켜주는 음악의 선택, 의상과 무대 조명 시스템 등 모두 공연예술의 시각에서 감동을 만들어내는 지향점이 다른 공연분야와 같다.

듣고 보니 시낭송도 한편의 노래나 드라마를 보여주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시를 통해 그 시를 쓴 시인의 영혼을 모셔와 내 몸 안에 앉혀야 한다. 그래야 시와 시 낭송자가 일체가 된다. 내 것이 되어야 감정이 나온다. 나는 공연 성격이 정해지면 발표 작품을 선택하는데 수많은 시집을 뒤지지만 음악도 시 한 편에 100여 곡을 섭렵한다. 그것이 정해지면 꿈속에서도 시를 암송하다 말이 막히면 벌떡 일어나기도 한다. 전문성은 노력과 몰입에서 나온다.

그러한 노력 끝에 감동이 전달된 시낭송 객석에서 나온 다양한 반응 얘기를 듣고 싶다.
나를 사랑한다는 관객의 고백도 많이 받았다. 물론 이성적인 고백이 아니라 호감을 좋게 표현한 말이지만 가슴이 찡할 때가 있다. 실제 시구(詩句)에 담긴 어머니나 가족, 연인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표현할 때는 눈시울을 적시는 분도 많다.

시낭송으로 관객을 울릴 수 있다니, 예를 들면 어떤 시인가?
문득 생각나는 시가 있다. 나는 그 시낭송 공연 날을 앞두고 큰 수술을 받게 되었다. 일주일 입원하고 퇴원하는 날이 공연하는 날인데 수술 부위에 복대를 두 겹이나 두른 배를 한복의상으로 가리고 한 겨울 밤 무대에 올랐다. 실밥을 풀어 통증이 심했고 진통제를 먹었지만 몸이 온전치 못했다. 진행자가 그 사실을 알리자 객석은 숙연한 분위기였다. 시의 내용도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그날따라 수술 부위가 아파서 나의 목소리는 더한층 젖어 있었다. 지금 그 이기철 시인의 <추운 것들과 함께>를 낭송해 보겠다.

지고 가기엔 벅찬 것이 삶일지라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삶이다
천인절벽 끝에서 문득 뒤돌아보는 망아지처럼
건너온 세월, 그 물살들 헤어본다 한들
누가 제 버린 발자국, 쓰린 수저의 날들을
다 기억할 수 있는가
독충이 빨아먹어도 아직 수액은 남아 나무는 푸르다
누구의 생이든 생은 그런 것이다
세월이 할 수 있는 일은
노오란 새의 부리를 검게 만드는 일뿐
상처가 없으면 언제 삶이 화끈거리리
지나와 보면 우리가 그토록 힐난하던 시대도
수레바퀴 같은 사회도 마침내 사랑하게 된다
계절을 이긴 나무들에게
너도 아프냐고 물으면
지는 잎이 파문으로 대답한다
너무 오래 내려다보아 등이 굽은 저녁이
지붕 위에 내려와 있다
여기저기 켜지는 불빛
세상의 온돌들이 더워지기 시작한다
언젠가는 그 안에서 생을 마감할 사람들도
오늘 늦가을 지붕을 인다

‘시와 가곡의 만남’에서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시를 낭송하고 있는 공혜경씨

내용은 그렇게 울적한 느낌을 주는 대목이 없는 것 같은데 아마도 퍼포머의 그날 낭송 분위기와 표현 테크닉이 객석을 움직인 걸로 짐작된다. 즐거움을 준 얘기는 없는가?
나의 공연을 보고 단체들이 시낭송 모임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종종 전해 듣는다. 어떤 50대 남자 분은 자신의 산악회에서 산행이 있을 때마다 시낭송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 나에게 영향을 받은 거라고 말했다. 또 우울증이 심한 어떤 여성은 자신도 시낭송에 취미를 붙여 삶의 의욕을 회복했다며 고마워했다. 보람 있는 시간은 교도소를 찾아가 낭송 공연을 하며 재소자들에게 위안을 줄 때이다.

발표한 시낭송CD 가운데 첫 작품의 제목이 <어머니 그 이름>인데 아마도 그 내용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절한 사랑을 담은 시를 낭송한 것 같다. 최근에 낸 3집 <타는 슬픔은 연기가 난다>는 어떤 내용의 시인가?
탐욕을 버리고 교도소 같은 음지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며 춘천에서 사시는 허전 시인의 시가 너무 좋아서 여러 시인의 시를 모아 만든 1집 <어머니의 그 이름>과 달리 한 분 것만 녹음한 낭송집이다. 연세를 잘 모르지만 예순은 넘으신 분이다. 허전 시인의 시 ‘아버지를 용서해라’ ‘눈 내리는 춘천역’을 암송하면 온 몸에서 눈물과 감동이 스며 나온다. 미처 깨닫지 못한 정취가 묻어나온다.

시인들을 만나는 일도 많겠다.
많은 분들을 만난다. 인터넷에 떠다니는 시 중에는 발표된 원문의 문장이 틀리거나 개작된 시도 많아 서점에서 확인하거나 시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시작의 배경까지 물어 볼 때도 있다. <어머니 그 이름>을 녹음할 때는 주제에 맞는 시를 100편 넘게 모았다. 그 중 17편을 골라 낭송했다. 대체로 시인들은 자신의 시를 시낭송 공연에서 접하면 새로운 느낌을 갖는다. 정호승 시인은 <끝끝내>란 자신의 시낭송을 듣고 자신의 시가 그렇게 재탄생된 것이 놀랍다며 찬사를 하셨다.

언젠가 KBS 1TV에서 방송한 <낭독의 발견>이라는 프로에 출연해 윤동주 시인의 시를 낭송한 것을 보았다.
처음 출연했을 때는 논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시를 그렇게 퍼포먼스 보여주듯이 낭송하는 것을 두고 시의 세계를 아름다운 예술로 승화시킨다는 주장도 많았지만 반대로 시의 품격을 훼손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시낭송을 하며 직접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인가?
2010년 <서울문학>지에 <휘청이는 향기> <소박한 소망>으로 추천시인의 인정을 받았다.

자작 시 한 편을 소개해 달라.
연평도 포격사건 때 ‘붉은 다짐’이란 시를 썼다. 그 때 시낭송 동료 20여명을 모아 사랑을 주제로 한 <러브 스케치>란 낭송 CD를 만들어 연평도 주민돕기 모금행사도 개최하고 위문 공연도 갔었다. 배가 뜨지 않아 몇 차례 시도 끝에 공포가 가시지 않은 그곳을 찾아 연평교회에서 주민들과 함께 울며 위로 공연을 마련했던 일이 흐뭇하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 난 정말 뉴스를 듣는 순간 너무 놀라고 슬펐다. 내 작은 힘이라도 어떻게든 그곳 사람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 때 발표한 나의 시 <붉은 다짐>을 낭송해 보겠다.

간밤에,
몇 차례 터지는 천둥소리에
혹시나 전쟁이 아닐까하고
몸 달아 TV리모컨을 더듬거렸다.
천안함 사건이 있은지 1년도 안되어
이번엔 연평도 포격이라니...
우리에게서 점점 침잠하는
이 강팍함은 무엇인가...
꽃으로 물들여도
아깝지 않은 이 고운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이 아픔은 왜 인가...

지금은,
굳게 닫혀진 침묵 속에 불타는 남과 북.
함께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고
용광로 속 붉은 다짐으로
불이나 붙일 것이지...
돌고 돌아,
어차피 만나야할 동포라면
지울 수 없는 아픔 묻어 버리고
더 이상 서로의 가시에 찔려
붉게 물들이지 않게 하소서!
순백의 고운 것으로만
이 땅을 가득 물들게 하소서!

시낭송을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공혜경씨의 무대. ‘우동 한그릇’ 낭송회부터 다양한 무대에 서 왔다


주제를 달리한 시 한편을 더 소개한다면?
2년 전 11월에 쓴 <줌 아웃>을 낭송하겠다.

그의 카메라 렌즈는
어떤 순간도
나를 놓치지 않았고
조리개를 끌어당겨 선명하게 모았다.

그는 줌을 밀고 당겨
나를 읽고 있었고
그의 렌즈는
어느 때라도 내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가 나의 구도와 색상에 대한
경이로움이 사라지던 날,
그의 렌즈에 확대된 내 모습은
더 이상 신비롭지 않았다.

그의 렌즈는
나를 스쳐가더니 점점 멀어졌고
언제부턴가는 다른 나를
찾기 위해 줌을 당기고 밀어댄다.

그 후로
바깥쪽으로 향한
그의 시선은 착시현상이라도 일으킨 듯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에게 나는
이미 내가 아닌 나인,
피사체에 지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난, 그의 렌즈를 좇고 있었다.

그에 대한 집착이란 걸 안다.
하지만 더 이상 그에게 읽히고 싶지 않다.
그의 렌즈에서 빠져 나오려는 순간
두려움에서 자유로워진다.

그에 대한
나의 집착은
이젠,
줌아웃이다.


이제 당신 삶의 이면 이야기로 화제를 돌려보자. 혹시 시를 좋아할만한 성장과정의 에피소드가 있는가?
어른이 되어도 항상 내 머릿속에 맴도는 풍경이 있다. 아주 어릴 때 충남 보령군 깊은 산골 심동이라는 곳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서울에 살던 부모님이 함께 사업으로 집을 비우게 되어 시골 할머니 곁에서 자랐다. 한 시간 넘게 걸리는 학교까지는 바다 뱃길이 있었다. 사계절의 그림 같은 풍경이 바다와 산골에 사는 아이의 눈에 아름답게 들어와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며 산다. 시의 느낌도 그 시절 그곳이 배경이 되거나 바탕색이 되고 있다.

지금도 그곳의 자연경관이 그대로 남아 있는가?
언젠가 두 아이를 데리고 가보니 학교는 폐교가 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그 때 본 풍경과는 다르고 낯설었다.

자녀가 둘인가? 부군은?
17살, 16살 딸 형제가 있다. 남편은 무역업으로 주로 해외를 오가고 있어서 덕분에 나의 시간이나 활동이 자유롭다.

그 동안 시낭송 공연 횟수가 어느 정도나 되는가?
매월 10회쯤 된다. 1년이면 100회가 넘는다. 시만 낭송하지 않고 일본 구리 료헤이 원작의 <우동 한그릇>같은 단편 소설도 낭독 공연으로 좋은 반응을 얻어 낭독 공연의 다양한 장르를 개척해 가고 있다.

자식에 대한 가난한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삿뽀로 우동집 이야기인 <우동 한그릇>이라면 그냥 혼자 읽어도 눈물이 나는 작품이다. 그걸 낭송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얘기도 특별하다.
사실 그런 것은 언젠가 원작의 고향에서 공연하고 싶다. 2006년부터는 중국 무한의 황학루에서 한중문화교류 행사로 시낭송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어서 남병산 배풍대와 적벽전 유지 공연으로 이어질 만큼 시낭송 공연도 이제 한류 문화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금년에는 중앙아시아 쪽 공연을 추진하고 있다.

하고 싶은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미리 얘기해 줄 수 있는가?
청소년과 소외지역의 사람들에게 시를 통해 사랑과 용기와 꿈을 전달하는 낭송공연을 많이 하겠다. 지금 극동대 삼육대 등에서 통합치료론, 무대연기론 등을 강의하지만 젊은이들의 사회문화권에 들어가 시와 음악이 융합된 공연으로 정서를 새롭게 하는 운동을 다양하게 펼치고 싶다. 그리고 지금보다 더 많이 교도소나 재활원 등의 소외지역 봉사공연을 열심히 하고 싶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88서울올림픽 공식영화제작전문위원, 97아시아태평양영화제 집행위원,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대종상 및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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