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굴껍데기로 세계를 사로잡은 디자이너 이경순
태안 굴껍데기로 세계를 사로잡은 디자이너 이경순
  • 김우성
  • 승인 200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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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 반기문 넥타이가 그녀의 작품 / 김우성



[인터뷰365 김우성] 수많은 축구팬들은 베이징 올림픽 조별리그에서 아쉽게 탈락한 한국축구를 보며 다시금 히딩크호의 향수를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1승이 오랜 숙원이던 당시 국민들의 눈앞에는 믿기 힘든 광경이 연일 펼쳐졌다. 하루하루 기적과도 같은 명승부에 사람들은 거리로 뛰어 나왔고, 그것은 그대로 신화가 되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히딩크 감독이 착용했던 넥타이가 화제가 됐다. 태극과 건곤감리가 수놓인 넥타이는 이탈리아와의 16강전부터 히딩크 특유의 어퍼컷 세리모니와 함께 포착됐고 이후 남은 경기까지 4강신화와 함께 하면서 ‘행운의 넥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넥타이를 디자인한 ‘누브티스’ 이경순 대표의 회사 앞에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넥타이를 사기 위해 몰려들었다. 유사품이 양산된 건 어찌 보면 수순이었다.


히딩크 넥타이뿐이 아니다. 국내외 내로라하는 명사들 치고 디자이너 이경순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이가 거의 없다. 이명박 김윤옥 대통령 부부의 이름으로 나가는 청와대 선물 목록에도 그녀의 넥타이가 포함된다. 또한 반기문 UN사무총장이 총장 당선 직후 착용했던 유엔마크넥타이나 장관 시절 착용하고 다녔던 독도넥타이, 힐러리 클린턴의 해시계 스카프, 서울시장 선거가 한창일 때 오세훈 후보가 착용했던 초록색 넥타이와 강금실 후보의 보라색 스카프 등 인물의 면면이나 착용 용도에서 단연 압권이다.

그녀는 최근 세계 경제전쟁의 최전선으로 떠오른 상하이에 다녀왔다. 1백여년 전, 프랑스인에 의해 건축된 ‘Bund18’이라는 건물에 입점한 것이다. 얼마 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다녀간 이곳은 유네스코에 등록된 건물로 전세계 CEO를 상대로 비즈니스가 일어난다. 7천만원 짜리 핸드폰이 거래되는 일도 다반사다. 입점 자체가 쉽지 않은 이곳에서 그녀를 모셔가게 한 아이템은 태안의 굴껍데기와 갈매기 깃털이었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다음 날 그녀를 만났다.


태안에서 착안한 브랜드에 대해 자세히 설명 좀 해주시죠.

태안기름유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디자이너들을 데리고 현장에 내려갔었어요. 기름 닦으러 내려간 건데 미끄러지고 난리도 아니었죠. 민폐만 끼치고 돌아와서 ‘가수들은 노래를 부른다는데 디자이너로서 도울 수 있는 부분이 뭘까’하는 고민을 했어요. 생각해낸 것이 굴껍데기랑 갈매기 깃털 등 해변에 널려있는 것들로 실용품을 만들어 <춤추는 바다> 축제에 내놓자, 그 수익금으로 도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때 디자인한 쥬얼리들이 누군가의 소개로 상하이에 알려진 거예요. 밀라노에서도 연락이 왔고요. 다음 주에는 태안군청과 미팅이 있어요. 본격적으로 태안 브랜드를 시작하려 합니다.


해변에 버려졌던 것들이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네요.

점점 작품과 실용품의 경계를 넘나드는 시대가 오고 있어요. 상하이에서도 저를 디자이너가 아닌 작가로 초대한 거예요. 그곳에서는 디자이너, 건축가, 영화인 등을 아티스트로 예우합니다. 외국의 어느 건축가는 자신의 건물에 들어갈 카페트도 손수 디자인해요. 예술과 실용의 불필요한 경계를 극복해야 예술가도 살고 디자이너도 살지 않을까 합니다.


‘히딩크 넥타이’로 유명해지셨는데요.

환경재단 자문위원으로 있을 때 히딩크 감독이 왔다고 해서 한 번 뵌 적이 있었어요. 당시 여자친구 문제로 기자들하고 매일 싸우던, ‘오대영 감독(히딩크 감독이 이끄는 한국대표팀이 강팀들에 대패를 거듭하면서 생긴 별명)’ 시절이었죠. 하지만 눈을 보니 번쩍번쩍하는 거예요. 뭘 해드리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후에 이탈리아랑 16강전이 열리기 전 넥타이 3개를 만들어서 인천으로 달려가 선물했어요. 진남색, 빨간색, 노란색을 선물하면서 넥타이 도안에 담긴 건곤감리를 열심히 설명했고, 개인적으로는 ‘부귀, 영화, 광명’을 상징하는 노란색을 권했는데 디자인이라는 게 아무리 의미가 좋아도 본인이 싫으면 못하는 거잖아요. 별다른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넥타이를 전해주고 출발한 지 10분이 지나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진남색을 매겠다는 거예요. 10분이면 넥타이 3개를 다 걸쳐 본 시간이잖아요.(웃음)


대단히 히트했죠?

처음에는 히딩크 감독님이 페라가모 양복을 입으니까 넥타이도 페라가모 것이라는 보도가 나갔어요. 하지만 페라가모에는 그 넥타이가 없잖아요. 그제야 알려지기 시작한 거죠. 사람들은 회사로 몰려오는데 당시에는 샘플 두 개 뿐이었어요. 우리는 별다른 이익이 없었고 곳곳에서 모방품이 팔려나갔죠. 심지어 정부기관에서까지 그 디자인을 카피해서 전세계 정부통령에게 선물해 주는 일이 있었어요. 논란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 명백한 우리 디자인이었기에 소송을 했고 승소했습니다.



함평 나비브랜드 <나르다>, 금산 인산브랜드 <아젠다>와 같이 지역과의 협력이 인상적입니다.

함평에는 투자도 했어요. 처음엔 시의원들의 반대가 거셌어요. 좋은 양파 생산하고 좋은 마늘 생산하면 됐지 괜한 예산낭비 하지 말라며... 아주 어렵게 시작했어요. 몇 년 후 투자회수가 되었고 지금은 1000억대 브랜드가 됐죠. 일본의 유명 란제리 회사에서 브랜드를 통째로 사고 싶다며 찾아 올 정도예요. 일본이 나비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고요. 건강브랜드로 시작한 인삼브랜드도 순항 중이예요. 인삼도 그렇지만 인삼꽃이 딸기처럼 예뻐요. 보건복지가족부나 총리실에 가면 <아젠다>를 볼 수 있어요.


먼저 제안하시는 건가요? 추가 계획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기획을 해서 찾아가요. 거제도에 ‘유치환선생’ 브랜드도 추진 중이고요. 강화 ‘쑥’ 브랜드, 공주 ‘밤’ 브랜드도 곧 선보일 거예요. 쑥 브랜드 이름은 ‘가고’예요. 서브브랜드는 ‘가고 먹고 자고 입고’. 쑥이 여성들에게 그렇게 좋거든요. 여성들이 가면 남편 따라오고 애들 따라오잖아요. 넓고 예쁜 강화 쑥을 담아낸 예쁜 브랜드입니다. 공주 밤 브랜드는 밤 하나로 한정하지 않고 와일드플라워, 즉 들꽃이나 나뭇잎, 도토리 등 산과 들에서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을 소재로 해요. 패션특구가 된 서울 강남구에서는 ‘강남구다’라는 의미의 ‘GKDA’ 브랜드를 준비 중입니다. 오는 27일에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 도로를 전면통제하고 패션쇼를 해요. 도로 양옆으로 몽골텐트 쳐놓고 오후시간 내내 축제를 벌이죠.


해금, 태극, 무궁화 등 한국적 미와 서양 패션의 접목이 흥미롭습니다.

유럽에 있는 기업인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몇 피스 더 보내줄 수 없냐고. 선물 받은 쪽에서 ‘도대체 이런 걸 어디서 났냐’며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더래요. 악학궤범 같은 디자인은 어느 나라도 흉내낼 수 없고 굉장히 화려해요. 오히려 국내에서는 촌스럽다고 하지만. 외국 VIP가 한국에 오면 기업에서 전화가 많이 와요.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1천만원 짜리 선물도 행복하지가 않거든요. 재물적인 값어치보다는 선물 받을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무언가가 필요하죠.


한국적 디자인이 오히려 국내에서는 찬밥 신세인가요?

예전에 면세점에 입점해 있었는데 매출 1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매장에서 철수했어요. 대부분의 손님들이 물건을 고르고는 계산하기 전 ‘이거 외제 맞냐’고 물으셨어요. 외제가 아니라는 말에 실망하고 환불이 이어졌어요. 제가 몇 번을 뛰어갔는지 몰라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샀으면 한 번 선물해보시라 절대 후회 안할 거다. 하지만 판매하는 직원들도 너무 힘들어했고 결국 철수했죠.



이경순의 디자인을 한 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입니다. 환경재단에서 디자인 자문을 맡았을 때 큰 영향을 받았죠. 우리 스스로가 자연이고 환경이잖아요. 포커스를 거기에 맞추다보니 자연스럽게 디자인이 나와요.


독도 스카프도 그러한 연유에서겠죠?

그런 면도 있겠지만 저의 디자인에는 사회성이 많아요. 소설가도 행복추구형이 있으면 사회고발형도 있고 여러 가지 유형이 있듯이 디자인을 통해 사회문제를 이슈화시켜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자 합니다. 독도 스카프도 그래요. 만 번 외치는 것보다 선물 주면서 간단히 설명해주는 게 더 큰 효과가 있을 수 있어요. 그래서 해외에 선물하려는 이들에게 “VIP보다는 사무관, 과장에게 선물하라”고 일러줘요. 20년 후 주류를 이룰 사람들이잖아요. 정부기관에 납품할 때는 순전히 봉사한다는 심정으로 해요. 정치가 부강해야 자연스럽게 경제가 살잖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넥타이를 가장 선물해보고 싶은 인물을 꼽는다면?

너무 많아서요.(웃음) 이번에 조지 클루니가 유엔 홍보대사가 됐다던데. 만나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하하. 그는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인물이에요. 그냥 영화인이 아니고, 인류의 행복이나 전쟁이슈에 대한 고민이 깊죠.




전세계 리더들을 상대로 대한민국을 디자인하고 있는 그녀는 길에서 산 2만원 짜리 원피스가 잘 어울리지 않느냐며 기자에게 자랑했다.


“저 강원도 철원에 살아요. 여기 팔뚝 보세요. 까맣죠? 철원 가서 몸뻬바지에 보라색 고무신 신고 농사 지어요.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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