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 쥬얼리 하주연, 내 아빠 배우 하재영”
“내 딸 쥬얼리 하주연, 내 아빠 배우 하재영”
  • 김두호
  • 승인 2008.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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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영 하주연 스타 부녀 첫 독점 인터뷰 / 김두호



[인터뷰365 김두호 / 사진 김강진] 아버지인 영화배우 겸 탤런트 하재영과 딸인 쥬얼리의 하주연(Baby J)을 한자리에서 만났다. 아버지는 영화 <바보들의 행진> <속 병태와 영자>로 1970년대 스크린의 우상이었고 지금까지도 TV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하주연은 여성 아이돌 그룹 쥬얼리 멤버로 빅 히트곡 <원모어타임>(One more time)에 이어 <모두 다 쉿!>으로 지금 한창 가요계의 인기 중심에 있다.


매우 재미있고 특별한 인터뷰가 시작됐다. 우선 22살 하주연이 태어나기 전인 1980년 말, 인기 배우 하재영을 인터뷰한 옛이야기부터 더듬어가야 한다. 그 때 하재영은 신문사 일선 기자였던 필자와 독점 인터뷰를 통해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3년째 사랑을 나누어왔다는 미모의 상명대 4학년생 김은자씨였다. 하주연을 낳은 엄마 김은자씨는 어느 덧 50살이 됐다. 28년이 지난 지금 하재영은 22살 연인 대신 22살 딸의 손목을 잡고 나타나 필자와 인터뷰를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세월이 총알 같이 빠르게 지나갔다. 아름답던 부인과 가족의 근황부터 궁금하다.

하재영) 주연이 엄마와 그때 인터뷰했던 기사를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기념으로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사진 찍고 인터뷰를 했던 곳이 덕수궁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산다. 꿈은 옛날과 크게 변함이 없지만 정말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나이가 들수록 더 자주 느낀다. 결혼해서 주연이의 언니 되는 규연이 자매를 낳았다. 규연이는 미국에 산다.

하주연) 어릴 때부터 우리 엄마를 보는 사람들이 배우 같다는 말을 많이 했다. 엄마는 얼굴도 예쁘지만 몸매도 늘씬하다.





주연 양의 언니 규연 양은 유학생인가?

아버지)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대학에서 호텔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우리 가족은 2003년에 미국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했다.



그럼 지금 주거주지는 미국인가?

아버지) 이민을 가도 그렇지 않다. 여전히 서울 노량진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살던 집이 그대로 있어서 주로 이곳에 살며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왔다. 모두가 미국에 살고 있는 처가댁 가족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어려웠던 때부터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가 아이들의 연령과 교육문제 등 고민거리도 생겨 결심을 앞당겼다.



어려웠던 때라면? 누구보다 바쁘고 화려했던 시기가 있지 않았는가?

아버지) 한때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했었다. 그러다가 모두 날렸다. 청산을 했을 때 달랑 5백만 원이 남았다. 그 돈으로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가족과 함께 일본 여행을 하면서 마음을 정리했다. 큰 재산인 남대문 시장의 점포도 세입자가 월세를 주지 않고 애를 먹여 헐값에 넘겨 버린 일이 있었다. 세를 받으러 갔던 아내가 울고 들어 온 걸 보고 참을 수 없었다. 나는 그렇게 이재에 어둡다.

딸) 그래도 아빠가 큰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우리 가족이 힘들게 산 적이 없었다.

아버지) 그런 점에서 운이 좋았다. 아직까지 자존심을 굽히며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아빠는 늘 생각하는 게 있어. 가족이 사는데 불편할 정도가 아니면 돈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데 죽을 때 안고 가는 것도 아니고...



주연양은 어머니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인터넷 팬 카페에 주연 양에 대한 팬들의 몇 가지 궁금증이 있다. 먼저 정확한 허리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

아버지) “22인치가 맞지?”

딸) “21에서 22까지인데 지금은 22가 정확해.”





S라인 춤이라고들 부른다. 도대체 곡예에 가까운 그 유연하고 다채로운 춤 솜씨는 언제 어디에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아버지) 엄마가 대학에서는 교육학을 전공했으나 서울예고 시절 특기가 무용이었다. 주연이는 국립발레단이 운영하던 문화학교에서 계성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발레를 배웠다. 발레리너 강수진씨와 함께 공연도 하며 꾸준히 발레를 익혔고 여의도중학 2학년 때 미국으로 간 뒤에도 계속해서 발레를 공부했다.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몸매 유지를 위해 운동이나 음식 습관, 영양 관리 등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딸) 나는 멀리 떨어져 앉아 소곤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도 듣는다. 눈과 귀가 밝은 것은 아빠를 닮았는데 무엇이든 잘 먹어도 살이 잘 안찌는 것은 엄마의 체질을 닮았다. 몸매의 유지는 운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무용을 하기 전에 필요로 하는 몸과 팔다리를 쭉 펴는 스트레칭 체조를 시간 날 때와 잠자리에 들기 전 꼭 한다.

아버지) 주연이는 된장찌개와 생선회를 매우 좋아하고 즐긴다. 참, 매운 고추를 고추장에 찍어 먹는 걸 보면 부모의 식성을 그대로 닮았다.



발레리나가 되지 않고 연예계로 들어 선 동기는? 랩을 부른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다. (주연 양은 살며시 아버지와 귀엣말을 나누었다. 어떤 비밀에 대해 공개를 해도 되느냐는 의향을 묻고 있었다.)

딸) 박진영씨가 운영하는 JYP에서 활동할 뻔했던 걸 처음 밝히겠다. 미국에 있을 때인 2004년 9월 로스엔젤레스에서 JYP와 미주한국일보사가 공동으로 주최한 오디션에서 수천 명의 경쟁자들과 2차까지 경합해 1등에 뽑혔다. 신문에 인터뷰 기사까지 큼직하게 실리고 이어서 사무실로 오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한 발 앞서 아버지와 친분이 있는 국내 유명 연예인 소속 매니저먼트회사가 나의 장래를 보장해 JYP로 가는 것을 포기했다. 나중에 아쉬움이 따랐다. 현재 소속사인 스타제국 엔터테인먼트로 오기 전의 이야기이다. 나는 가수 비를 좋아한다. 결국 메달과 상금만 받았다.

아버지) 매니저먼트사를 잘 만나는 것도 필요하지만 먼저 본인의 재능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아버지와 딸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듣고 싶다.

딸) 나는 엄마도 좋아하지만 아빠도 진심으로 사랑한다. 한 번도 큰소리치는 일이 없다. 착하고 다정다감하다. 자식의 의견을 존중한다. 한남동 극동 아파트에 살 때 뒷산이 있었다. 숲이 있고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산길이 있었는데 아빠는 틈만 나면 언니와 나의 손목을 잡고 그 산을 올랐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아빠의 손에서 전해오는 따뜻한 체온이 짜르르 느껴진다. 그곳에서 우리 자매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을 만나며 정을 나누었다.

아버지) 그래 그 소리를 주연이 한테서 여러 번 들었다. 그랬었지. 나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 산을 넘어가면 외무부장관 공관이 있었지. 주연이와 언니 규연이는 남다르게 정이 두터워 엄마 아빠는 행복하다. 규연이는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스스로 해결하고 어쩌다 돈이 남으면 동생에게 줄 예쁜 선물을 마련해 소포로 부쳐주고 있다. 계성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두 자매가 똘똘 뭉쳐 전교 줄넘기 대회를 1,2등으로 차지했던 모습이 너무 자랑스럽게 기억된다. 또 지금까지 학교생활에서 다 같이 단 하루도 결석 한 적이 없다는 것도 아버지는 자랑스럽다.

딸) 아빠, 나보다 언니가 더 착해. 언니는 천사야.



한국과 미국에서 다 같이 공부를 해 본 주연양이 두 나라의 교육 분위기를 비교한다면?

딸) 가정이나 학교 어디에서도 학생의 뜻을 구속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곳이 미국이다. 자유롭게 생각하게 하고 운동을 중요하게 여기는 곳이 미국 교육이다.



주연 양이 모자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깊숙이 감추는 것은 어떤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팬의 지적이 따르더라. 이유가 있는가?

딸) 사실 나는 신비주의자다. 보다시피 얼굴에 아무런 흠집이 없다. 모자를 좋아하고 선글라스도 좋아한다. 인영 언니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살리는 일종의 분장효과로 볼 수 있다.





가장 오랫동안 활동해온 대표적인 인기 여성 그룹 ‘쥬얼리(Jewelry)’는 2001년 첫 앨범 <디스커버리>를 발표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다. 2006년 멤버 이지현 조민아의 탈퇴로 사실상 해체 위기를 맞았다가 하주연과 그의 동갑내기인 김은정을 새 멤버로 맞이해 정상의 여성 그룹으로 재탄생 됐다. 하주연은 자신에게 노래를 가르쳐 준 가수 윤화재인의 앨범에 랩 피처링으로 참여하는 등 일찍부터 래퍼의 재능을 발휘해 왔다. 쥬얼리에서 랩을 실어 올리는 그에게 다른 멤버들의 특성을 물었다.



딸) 정아(리드보컬 박정아) 언니는 큰 언니답게 성격이 털털하고 리더십이 강하다. 인영(서브보컬 서인영) 언니는 무대에 서면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그러면서 귀여운 면이 있고 후배들을 포용하는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은정(보컬 김은정)이는 나랑 동갑내기로 친구처럼 편해서 좋아한다.



아버지의 출연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딸) 있다. <바보들의 행진>을 재미있게 보았다. 또 늦은 밤에 TV에서 아빠의 영화를 수시로 본다. 아빠는 젊을 때 모습이나 얼굴이 별로 변하지 않아서 좋다. 연기를 잘 모르지만 그때의 사람들은 아빠처럼 좀 허무하게 보이고 선량했던 것 같다.



아버지 하재영을 대변하는 영화 속 이름은 병태였다. 병태는 순진하고 가난했던 그 시대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슬픈 초상이었다. 허전한 시선을 따라가면 금방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우수적인 분위기에 지성적인 매력도 있었다. 걸핏하면 논리를 내세워 선배나 어른의 주장을 묵살하는 되바라진 젊은이가 아니었다. 알고도 모른 척하고 조금은 손해 보면서 상대를 배려하는 순진한 그들은 이기적이다거나 개인주의적이라는 말을 듣지 않았다. 병태는 하루살이 직업여성에게 순정을 바치며 사랑을 배웠다.





병태를 영화로 불러낸 사람은 서울예전(현재의 서울예대)의 하길종 교수였다. 흥행영화의 귀재였던 하길종 감독은 1974년 <바보들의 행진>을 연출하면서 자신의 제자인 하재영을 충무로의 아이돌로 키웠다. 하재영은 연기인재의 산실이 된 드라마센터의 동랑레퍼토리 극단에서 <태> <춘풍의 처> <초분> <니나> 등으로 연기자의 틀을 다졌던 기대주였다. 그 후 <여자를 찾습니다> <숲과 늪> <속 병태와 영자> <애마부인> <백구야 훨훨 날지마라> <애인> 등 1980년대까지 50여 작품을 남겼다.



1990년대 이후는 TV 드라마에서 주로 만날 수 있었다. 연기 무대를 바꾸면서 겪었던 일화를 듣고 싶다.

아버지) 병태의 시대가 가면서 영화에서 나의 역할이 줄어들었다. TV드라마는 윤석호 감독의 <겨울여자> <여름의 향기>를 비롯해 황인뢰 최윤석 오정국 감독들이 연출하는 드라마에 꾸준히 배역이 나왔다. 물론 세태의 변화도 피부로 느끼며 살았다. 영화를 할 때 만난 사람들은 돈보다 의리와 정으로 통했다. 일이 없어도 매니저의 생활비를 대주고 자녀 학비를 주기도 했다. 제작비가 모자라면 적게 받고 출연도 해주고 가난한 조감독이 첫 작품을 만들면 노 개런티로 출연도 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하면 상상할 수 없던 이야기들이다. 정말 돈이면 부모형제 사이도 냉혹해 지는 이 시대가 맘에 들지 않는다.



아버지가 이 자리를 만들기 위해 한 달 전부터 신경을 써 준 것으로 안다. 주연양이 정말 바쁜 것 같다. 주연양의 요즘 일과와 장래 계획들을 듣고 싶다.

딸) 하루 몇 군데의 공연 일정이 잡혀 있을 때도 있다. 출연과 촬영, 행사 일정이 매일 꽉 차 있다. 지금도 점심을 먹지 않고 빵을 사들고 왔다. 아무리 바빠도 몸이나 마음이 피곤하지 않고 즐겁다. 앞으로 계획은 세워 둔 것이 많지만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





쥬얼리의 하주연은 아버지 곁에서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고 진지하고 정성스럽게 대화를 계속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로 아버지를 바라보는 딸의 눈빛에는 자유분방한 무대 위의 춤추는 가수가 아니라 아주 귀엽고 선량한 딸의 마음씨를 느끼게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두 사람이 팔짱을 끼고 사라진 후에도 배우 아버지와 가수 딸의 행복한 모습은 기분 좋고 따뜻한 이미지로 한참동안 기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김두호

㈜인터뷰365 창간발행인, 서울신문사 스포츠서울편집부국장, 굿데이신문 편집국장 및 전무이사, 한국영화평론가협회 회장,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위원, 국회보 편집자문위원, 제5대 서울신문사우회 회장 역임. 현재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서울영상위 이사,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

김두호
김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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