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장할 짝짓기에 몰두하는 ‘불굴의 며느리’
환장할 짝짓기에 몰두하는 ‘불굴의 며느리’
  • 김희준
  • 승인 2011.11.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365 김희준】일일 드라마 ‘불굴의 며느리’가 종영을 앞두고 시청률 20%를 넘어섰다는 통계가 나왔다. 이 시청률을 보고 작가나 PD 또는 해당 방송국은 좋아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끝으로 갈수록 가관이다. 무인도에 달랑 두 가족만 사는 상황이 아니고는(그렇더라도 일어나기 힘든 일이지만)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미 이 드라마가 시작하던 초기에 ‘불굴의 며느리인가, 불굴의 짝짓기인가’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적이 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며느리 둘은 똑 같은 집안에 위 아래를 바꿔 재가를 하고 아이를 낳네 못 낳네 소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예전 시어머니는 옛사랑을 만나는데 이번에는 그 옛사랑의 아들과 자신의 딸이 좋아하는 사이다. 예전 같으면 어느 한 쪽 특히 부모 쪽이 물러서는 구도겠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어림없다. 부자, 모녀지간에 줄다리기가 시작되고 있다. 허허 이런.


말이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는 것처럼 끌고 나가자니 곁가지를 한없이 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곁가지마다 새로운 동티가 나서 드라마가 아주 누더기처럼 돼가고 있는 형국이다. 이 드라마의 시할머니가 에구 에구 한숨을 쉬며 살아있는 것이 갸륵할 정도다. 필자가 그 연기자라면 작가에게 도저히 이런 역은 하기 힘드니 차라리 극중에서 쇼크를 받아 사망하는 것으로 만들어달라 사정을 할 것 같다.(출연료 그리고 인간관계 때문에 일어나기 힘든 일이겠지만)


비단 ‘불굴의 며느리’뿐만이 아니다. 주말극 ‘천번의 입맞춤’에서는 자기가 버린 딸을 시치미떼고 며느리로 받아들인다. 또다른 주말극 '애정만만세'에서는 매형의 딸과 결혼하려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아무래도 심했는지 서둘러 매형과 누나를 이혼시키고 있고 ‘출생의 비밀’이 다시 등장하려 하고 있지만, 무인도에 두 가족만 있어도 벌어지지 않은 일들이 드라마에 횡행하고 있다.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끝없이 반복 재생산하는 걸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장치들이 들어간 드라마들이 시청률이 높기 때문인가. 그렇다면 결국 시청자들의 문제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드라마 속 인물들이 좀 사람답게 살았으면, 말도 안되는 짝짓기와 출생의 비밀에서 벗어나 ‘인간선언’을 했으면 좋겠다. 짝짓기에 환장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환장하다-동사. 마음이나 행동 따위가 비정상적인 상태로 달라지다)

MBC 주말극 '천번의 입맞춤'에서 주영(서영희)-주미(김소은) 자매를 버리고 떠났던 친엄마 지선(차화연)이 주미 남편의 새엄마다. 심지어 지선은 주미가 자신의 친딸임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최근 일련의 TV 드라마가 인륜, 천륜을 해체하겠다고 아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양상이다.

출생의 비밀로 인한 혼란과 겹사돈은 그나마 '양반'이 된 지 오래다. 모녀와 부자가 쌍쌍으로 결혼하겠다고 나서고 매형의 딸과 결혼하려고 한다. 친엄마의 며느리로 들어가고, 서로 형님-동서라 부르던 두 여자의 관계가 나란히 재혼으로 관계가 뒤바뀌는 등의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전통적인 가족상이나 건전한 가족상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최근의 인물 관계도는 상식을 벗어났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방송관계자들은 상상력의 빈곤이 이런 풍토를 만들었다고 입을 모은다. 한정된 등장인물들 속에서 갈등을 증폭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그들의 관계를 꼬는 것이기 때문.

배배꼬인 인간관계가 아무렇지도 않게 등장하다 보니 시청자는 그렇지 않은 드라마에도 으레 그런 복잡한 관계가 등장할 것이라 예상하기도 한다.


◇"수애가 이미숙의 숨겨진 딸?" = 하도 어처구니없는 관계가 빈번하게 등장하다 보니 최근 방송 중인 SBS 월화극 '천일의 약속'을 둘러싸고 여주인공 서연(수애 분)이 알고보니 향기 엄마 현아(이미숙)의 숨겨진 딸일 것이라는 인터넷 괴담(?)이 돌기도 했다. 물론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SBS도 드라마에 '막장'적인 스토리가 넘쳐나다 보니 '천일의 약속'의 회별 하이라이트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며 치명적인 실수를 하기도 했다. 향기가 지형(김래원)으로부터 파혼당한 뒤 충격으로 구토를 한 부분에 대해 자의적으로 '입덧'이라고 버젓이 써놓았다가 이를 안 제작진의 항의로 긴급 수정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드라마의 복잡하게 꼬이는 상황에 네티즌뿐만 아니라 방송국 관계자들도 익숙해져 벌어진 일이다.

하지만 '천일의 약속'이 그렇지 않을 뿐 실제로 지금 안방극장에는 숨겨진 딸과 아들이 넘쳐난다. 최근 종영한 KBS 일일극 '우리집 여자들'의 고은님(정은채)은 앙숙같은 홍주미의 새 엄마(이혜숙)가 과거 버린 딸이었고, MBC 주말극 '천번의 입맞춤'에서는 주영(서영희)-주미(김소은) 자매를 버리고 떠났던 친엄마 지선(차화연)이 주미 남편의 새엄마다. 심지어 지선은 주미가 자신의 친딸임을 알면서도 시치미를 떼고 며느리로 받아들였다.

MBC 주말극 '애정만만세'에서는 동우(이태성)가 결혼하려는 재미(이보영)가 알고보니 동우 매형(천호진)의 딸이고, MBC 일일극 '불굴의 며느리'에서는 혜자(김보연)-연정(이하늬) 모녀가 석남(이영하)-장비(이승효) 부자와 각기 쌍쌍이 결혼을 하고 싶어해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앞서 KBS '웃어라 동해야'는 한 여자의 전 애인과 현 남편이 알고보니 이복형제라고 설정했고, MBC '욕망의 불꽃'은 연인 사이인 두 남녀가 한 여성의 의붓아들과 친딸이라고 설정했다.

◇"사실은 내 자식이 아니다?"..네티즌 해결책 찾기도 = 꼬인 관계로 긴장감을 극대화한 뒤 등장하는 해결책은 '사실은 내 자식이 아니다'인 경우가 많다. 알고보니 혈연관계가 아니니 결혼을 해도 문제가 안된다는 식이다.

'애정만만세'의 경우 동우가 매형의 딸과 결혼하는 게 말이 안되는 상황에서 동우가 그 집안의 친아들이 아닐 것이라는 복선이 곳곳에 깔려 있고, 반대로 KBS 수목극 '영광의 재인'은 영광(천정명)과 재인(박민영)이 사실은 남남이지만 극중에서는 긴장감 유발을 위해 둘이 서로를 이복남매로 알게 해놓는 장치를 가동하고 있다.

답답한 마음에 네티즌이 해결책을 찾아나서기도 한다. '불굴의 며느리'에서는 연정-장비와 혜자-석남이 서로 결혼을 하겠다며 부모와 자식에게 양보를 요구하는데, 네티즌은 법적으로 연정-장비가 먼저 결혼해 그들의 엄마와 아빠가 사돈관계가 되면 사돈끼리는 결혼해도 법적으로는 무방하다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한동안은 연정이나 장비가 혜자나 석남의 친자식이 아니면 된다는 해결책이 대세를 이뤘지만 더 나아가 네 사람이 지금 상태로도 모두 행복할 수 있는 방법까지 찾아낸 것.

또 '애정만만세'의 경우, 제작진은 실제로 매형의 딸과 결혼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지만 네티즌은 일찌감치 이들 사이에 출생의 비밀이 있을 것이라고 단정짓기도 했다.

14일 시작하는 SBS 새 일일극 '내딸 꽃님이'는 역시 복잡한 관계를 내놓긴 하지만 처음부터 혈연관계를 끊어놓는 '안전장치'를 택하기도 했다. 꽃님(진세연)의 새엄마 순애(조민수)와 꽃님이 사랑에 빠지는 상혁(최진혁)의 의붓아버지 재호(박상원)가 과거 연인 관계였고 재회해 다시 사랑을 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스토리, 상식선을 회복해야 = 한 중견 드라마 작가는 11일 "시청률 경쟁과 한정된 제작비 속에서 작가들이 인물간의 관계를 꼬는 유혹에 쉽게 빠지는 것 같다"고 개탄했다.

그는 "이제는 상식선을 회복해야할 때다. 우리 드라마의 스토리가 너무 망가졌다"고 덧붙였다.

또 한 드라마 PD는 "인물간 복잡한 스토리의 드라마가 시청률이 잘 나오다보니 특히 연속극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안전한 장치를 하게 되는 것 같다"며 "'현실에서는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일이 있다'고 항변도 해보지만 사실 좀 낯뜨겁긴 하다"고 고백했다.

배우들도 자신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복잡한 관계에 대해서는 대부분 민망해한다.

현재 주말극에서 그런 역할을 연기 중인 한 배우는 "말도 안되는 상황인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극적 장치라고 생각하며 연기한다"고 말했다.

김희준
김희준
press@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