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서울 공연 이후 7년 만에 귀환한 태양의 서커스 흥행작
심층 문화 비평 칼럼 <앨리스 박사의 문화로 보는 세상풍경>으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주하영 칼럼니스트가 또 하나의 새 칼럼 <주하영 평론가의 짧은 단상>을 선보입니다. 짧은 형식 속에 담긴 자유롭고 날카로운 문화적 통찰을 기대해 주세요. [편집자주]
인터뷰365 주하영 칼럼니스트 =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장애를 모두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로 세계에서 사회운동가로 활동하며, ‘한계를 넘어서는 용기’의 아이콘이 된 헬렌 켈러는 수필집 '열린 문(The Open Door)'에서, “인생은 대담한 모험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변화로 가득한 삶에서 위험에 정면으로 맞서고 용기와 믿음을 갖고 행동할 것을 촉구한 켈러는 “안전은 대체로 미신에 불과”할 뿐, 장기적인 관점에서 위험은 피하는 것보다 위험에 노출되는 편이 더 낫다고 덧붙였다.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해 어려움을 딛고 자기 계발을 통해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피력한 켈러는 위기로 느껴질지라도 안락함에 머무르지 않고 “용감하게 변화를 수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를 강조했다.
위기를 변화의 기회로 읽고 안전지대를 벗어나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로 뛰어드는 일이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아니다. 도전은 짜릿한 흥분과 긴장감을 선물할 수 있지만, 실패할지 모를 불안과 초조, 두려움과 공포를 낳는다.
하지만 도전과 모험의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는 ‘불확정성’을 대담한 ‘용기’와 뜨거운 ‘열정’, 솟구치는 ‘호기심’으로 뛰어넘을 경우, 상상치 못한 미래가 눈앞에 펼쳐지는 경험과 지혜를 습득하게 된다.
안락함보다 용기를 선택하고, 성장을 위해 도전을 받아들이며, 궁극적인 목적을 찾아 세상을 변화시킨 예술 산업의 대표적 예를 꼽으라면, 캐나다 퀘벡의 ‘태양의 서커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982년, 고등학교 때부터 퀘벡의 여러 페스티벌에서 순회공연을 하고 졸업 후에는 유럽에서 곡예, 마임, 죽마타기를 배운 기 랄리베르테를 단장으로 질 생트 크루아가 설립한 공연단이 일주일간의 여름 페스티벌을 선보였다.
만 달러의 손해를 본 페스티벌이었지만, 다음 두 해 동안 수익을 창출한 랄리베르테는 “커다란 천막 아래 모든 것을 넣고 투어하는 하나의 서커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와이를 여행하던 중, 그는 저물어가는 ‘태양(Soleil)’을 바라보며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라는 이름을 구상했다. 태양의 뜨거움과 빛은 열정적인 “에너지의 원천과 젊음”을 의미했고, 불가능에 도전하고 위태로움을 경이로움과 환희로 바꾸는 서커스에 필수적인 요소를 상징했다.
1984년, 태양의 서커스의 11개 도시 순회공연 계획은 160만 달러의 정부 지원금을 받는 데 성공했고, 서커스를 오락이 아닌 예술의 한 형태로 “재발명”해 하나의 장르로 독보적인 위치에 서도록 만들었다.
태양의 서커스의 부회장을 맡고 있는 다니엘 라마르는 2022년, 코로나19로 인한 파산 위기에서 ‘창의성’의 가치를 인정받아 회생한 여정을 담은 책 '균형잡기의 기술'에서, 태양의 서커스가 “서커스 예술 분야 혁명의 포문을 열었다”라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라마르는 미국 ‘바넘 앤 베일리(Barnum & Balely)’의 전통적인 서커스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연극적 요소가 강하고, 캐릭터가 주도하는 서사를 갖췄으며, 독창적인 음악과 화려한 의상이 있고, 주의를 분산시키는 동물 퍼포먼스가 없는 서커스”를 선보인 랄리베르테의 창의적인 방식이 강렬한 매력으로 작용했음을 피력했다.
라마르는 성공적인 1990년대 태양의 서커스 작품들의 감독을 맡았던 프랑코 드라고네의 말을 인용하면서, “모든 쇼가 영화처럼 편집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서사의 드라마를 구성하고, 무대 위 퍼포머들이 펼쳐내는 ‘도전’이라는 경험에 관객이 모든 것을 잊고 완전히 빠져들 수 있도록, 영화의 편집 방식을 채택한 태양의 서커스 쇼들은 “상상력을 일깨우고, 감각을 자극하고, 사람들의 감정을 자아내라”라는 예술적 사명을 성취하고자 모든 도전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를 유지했다.
2007년에 초연된 태양의 서커스 20번째 쇼인 '쿠자(KOOZA)'는 뜨거운 열정과 에너지, 인생을 즐기는 마음으로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던 초창기 시절의 ‘순수함의 회복’을 겨냥한 작품이다.('쿠자' 심층 칼럼 ▶'순수함'을 되찾기 위한 '환상의 모험'...태양의 서커스 '쿠자)
불가능해 보이는 묘기에 도전할 때 느끼는 숨쉬기조차 힘든 긴장과 두려움의 불안한 분위기가, 도전에 성공했을 때 밀려오는 환희와 감동, 경이로움으로 인한 탄성의 분위기와 대조를 이루는 '쿠자'는, 서커스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곡예’와 ‘광대 퍼포먼스’를 강조한 특징이 있다.
태양의 서커스 초기 공연에서 뛰어난 광대 퍼포먼스를 제작한 데이비드 샤이너가 작가 겸 감독을 맡은 '쿠자'는, 자신보다 더 미친 자들의 존경을 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바보들의 왕”이 두 명의 궁중 광대를 데리고 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혼란과 혼돈”을 일으킨다.
여기저기 오줌을 싸고 통제하기 어려운 ‘매드 독(Mad Dog)’과 함께 쇼가 시작하기 전부터 무대 주변을 휘젓는 광대 퍼포먼스는 객석에서 관객을 끌어내 즉석에서 ‘웃음’과 ‘재미’를 더하는 라이브 쇼의 장점을 극대화한다.
구식 로봇의 외양을 갖춘 ‘하임로스(Heimloss)’는 무대 아래에 살면서 마법처럼 펼쳐지는 '쿠자'의 세상에 전선을 연결해 생명을 부여하는데, 연을 제대로 날리지 못해 의기소침한 ‘이노센트(Innocent)’가 ‘트릭스터(Trickster)’에게 이끌려 환상의 세상으로 모험을 떠나도록 만든다.
집 없는 추방자, 혹은 소외자를 일컫는 독일어 단어를 연상시키는 ‘하임로스’는 서투르고 외로운 ‘이노센트’의 마음에 숨겨진 호기심과 열정을 은유적으로 구현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한편, 규칙을 깨고 경계를 무너뜨리는 혼돈과 전복을 야기하지만, 변혁과 지혜에 도달하게 만드는 창조자이자 파괴자인 장난기 많은 ‘트릭스터’의 존재는, 1막의 밝은 축제 분위기와 2막의 어둡고 위험한 대조적인 분위기를 통해 이중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트릭스터는 이노센트에게 배달된 거대한 선물 상자 속에서 튀어나와 요술봉을 손에 들고 마법을 부리기 시작하는데, '쿠자'라는 쇼의 제목은 ‘상자’ 혹은 ‘보물’이라는 뜻을 가진 산스크리트어 ‘코자(KOZA)’에서 유래했다.
트릭스터를 ‘그림자 자아를 상징하는 보편적 원형’으로 해석한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에 근거한다면, 트릭스터는 이노센트의 무의식에 억눌려 있던 ‘모험심’과 ‘도전 정신’, ‘변형을 갈망하는 욕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웃음’을 이용해 일탈을 유도하며 모순과 부조화를 인식하도록 만들지만, ‘놀이’의 요소를 통해 불안의 감정을 정화하고 삶의 균형에 이르도록 하는 ‘광대’와 트릭스터의 연계는, 이노센트가 화려하지만 잔혹함 또한 갖추고 있는 세상에 맞서 ‘용기’를 내 시도하고 두려움을 이겨낸 뒤, ‘환희’의 감동을 경험할 수 있도록 이끈다.
1막에서 화려한 즐거움과 역동성을 선보인 무대는 2막 초반에 ‘어둠의 세계로의 초대’를 의미하는 해골 가면을 쓴 트릭스터와 퍼포머들의 댄스와 함께, 빠르게 회전하는 730kg의 ‘죽음의 바퀴(Wheel of Death)’ 위에서 점프를 선보이는 위험천만한 곡예로 이어진다.
트램펄린의 전신처럼 보이는 이누이트 전통 놀이 ‘담요 던지기’에서 영감을 얻은 ‘샤리바리(Charivari)’나 7.6미터 상공에 걸려있는 밧줄을 타는 ‘하이 와이어(High Wire)’ 등의 긴장감을 낳는 1막의 곡예들은 2막에서 점점 더 난이도를 높여간다.
‘죽음의 바퀴’의 심장이 멎는 듯한 공포와 스릴을 경험한 이노센트의 모험은 7미터 의자로 쌓은 탑 위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와 장대를 다리에 묶고 9미터 상공으로 공중제비를 도는 ‘티터보드(Teeterboard)’를 끝으로, 마법 상자 속 서커스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하지만 마법이 사라진 현실로 돌아온 이노센트의 손에는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연이 쥐어져 있다. 열정과 웃음이 함께 하는 한 세상의 위험은 더 이상 두려운 것이 아닌, 즐길 수 있는 모험과 도전이 된다는 깨달음, 이노센트가 얻은 지혜는 바로 그것이 아니었을까? 12월 28일까지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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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하영 칼럼니스트
앨리스(Alice 한국명 주하영)박사는 영문학자로 주목받을만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써온 프리랜서 공연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다. 상지대 겸임교수, 대림대 겸임교수, 한국외국어대 객원교수를 거쳐 현재 한국공학대학교 지식융합학부(교양교육센터)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월간 《한국연극》 편집위원과 한국연극평론가협회 편집위원 및 이사, 세계문화예술경영연구소 초빙연구원, 외국문학연구소 초빙연구원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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