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평 - 새로운 서평]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계속 읽기 外
[숏평 - 새로운 서평]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계속 읽기 外
  • 김리선 기자
  • 승인 2025.07.1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비평연대] 서민서·최상현·김재훈·김성신의 500자 서평

젊은 문화비평가와 출판전문가들의 커뮤니티인 '비평연대'는 숏폼콘텐츠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500자 내외의 '매우 짧은 연대 서평'의 형식을 고안했습니다. 2030세대 지식인 특유의 빛나는 감각으로 제시되는 다양한 책들을 통해 지식의 최전선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인터뷰365 편집자주]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나영웅 지음, 지음미디어, 2024)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나영웅 지음, 지음미디어, 2024)<br>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나영웅 지음, 지음미디어, 2024)

취향이 뚜렷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와인과 향수 라벨을 줄줄 외우진 않아도 어떤 맛과 향을 좋아하는지 정도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책 좀 읽고, 영화 좀 보고, 노래 좀 듣는 사람으로 행세하고팠다. 그러려면 하루키와 박찬욱과 비틀즈는 일단 피해야 한다. 모두가 알만한 너무 유명한 예술가는 나를 나타낼만한 취향이 될 수 없으니까. 행색도 그렇다. 괜히 비싼 가방 들고 옷은 보세로 입을 바엔 아예 유행에서 벗어난 옷을 골라서 잘 조합해 입는 게 낫다. 이렇게 살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야, 이거 딱 네 스타일이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는 내가 가진 취향이 온전히 내 것인지 질문한다. 대중문화를 따르지 않으려는 반골 기질은 나만의 독특함을 호소하고 싶은 인정욕구에서 나온 건 아닐까. 경제 자본과 사회 자본으로는 내세울 게 없는 사회 초년생이 눈에 띌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닌가. 유행을 따르지 않으려는 취향은 결국 유행을 따라갈 만한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여력이 없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지하철에서 피곤에 찌들어 꾸벅꾸벅 졸다가도 화들짝 책을 펴는, 한적한 미술관 추상화 앞에서 어떤 느낌이라도 찾아보려 오래오래 서 있는 나의 지적 허영이 어디서 왔을지, 이 책은 하나의 길을 제안한다.(서민서 / 출판마케터·비평연대)

서민서
서민서

계속 읽기(한유주 지음, 마티, 2025)

계속 읽기 (한유주 지음, 마티, 2025)<br>
계속 읽기 (한유주 지음, 마티, 2025)

어린 시절 ‘책 많이 읽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하지만 살면서 꼭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지적이나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책을 읽는가? 사람마다 대답은 다르지만, 근원적인 질문 앞에서 나의 대답은 ‘활자인’이 되고 싶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려, ‘활자 속에 담긴 의미를 발견함으로써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나고, 아직 없는 힘을 만들어내기 위해(14p)’ 조금씩 활자를 모으다 보면 삶의 해상도를 넓혀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읽기의 흔적을 아로새긴 에세이다.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그가 책을 집어 든 순간마다 새겨진 기억들이 지금의 그를 읽는 사람으로 만든 건 아닐까. 읽는 내내 느꼈던 건 저자에게 읽기란 감각 그 자체였다는 점이다. 설령 인용한 문장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아도, 책이 한 사람의 경험을 바꾸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내일 이해하게 될 것(84쪽)’이란 믿음을 갖게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 책을 읽어 내려가는 건 아닐까.

어쩌면 “활자(活字)를 모으는 사람은 곧 그 자체로 활자(活者)”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읽으며 살아 있음을 감각하는 사람들, 그런 이들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바꾼다고 믿는다.(최상현 / 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최상현<br>
최상현 

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출판사, 2025)

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출판사, 2025)

어린 시절에도 나는 합기도, 검도, 태권도 등등 활동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아, 이거 내가 서평을 쓸 수 있을까?’ 이 한 문장이 계속 내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그렇게 단순히 무도를 통한 심신단련은 어떻게 하는가에 대한 책인 줄 알고 책을 펼쳤다. 들어가는 말부터 해서 첫 장을 넘기며 ‘뭐지, 내가 생각한 내용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조금 낯설었다. 그렇게 읽다 보니 어느새 난 책의 끝장을 넘기고 있었다.

책에서는 무도 수련을 통해서 얻는 지혜로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럼 ‘무도를 안 하는 사람들은 이해 못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읽어 본 후의 생각은 다르다. 무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가 중요했다. 이 인생의 지혜를 자신의 인생에 적용해 보면 된다. 자신을 중점으로 살 것.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책은 과거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해 정면으로 다시 마주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학생 시절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건축 강사 일을 했었다. 후배들을 가르치며 내가 모르는 지식에 대해 전달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였다. 지금 그 일을 마주하며 생각한다. 나는 그 잘 모르는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필사적이었나, 절박하였는가.

책을 읽고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 곱씹어 볼 기회를 얻었다. 내가 어떤 스탠스를 취하며 건축을 해야 하고 건축에 대해 어떤 시선을 가지고 마주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지금까지 포트폴리오를 준비하면서 디자인이 별로인 건가, 이걸 어떻게 예쁘게 표현하지 이 생각들로 가득 찼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내가 건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빠진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이전엔 잘 되어가는 친구들을 보며 많이 조급해지고 강박이 생기는 듯했다. 하지만 책을 읽은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리진 듯하다. 주변에 흔들리지 말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이젠 나만의 무도를 해보려 한다.(김재훈 / 건축설계·공간 디자인·비평연대)

김재훈<br>
김재훈 

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출판사, 2025)

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출판사, 2025)<br data-cke-eol=
">
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지음, 박동섭 옮김, 유유 출판사, 2025)

언론사의 매체를 통해 ‘숏평’을 연재하면서 연중 한두 번은 그 형식을 변주해 보기도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합독만해(合讀萬解)’다.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만 가지 해석을 시도해 본다는 의미다. 여럿이 모여 함께 활동하는 비평연대라서 가능한 기획이다.

우리는 2025년의 책으로 우치다 다쓰루(전 고베여학원대학 문학부) 교수의 신작 '목표는 천하무적'을 선정했다. 우치다 다쓰루는 늘 대중과 소통하며 글 쓰고 수련하는 사상가이자 무도가다.

'숏평' 특별호 ‘합독만해’편(▶관련기사 [숏평 특별편] 9인 9색 시선으로 본 '목표는 천하무적')이 발표되자 박동섭 박사는 이것을 번역해 우치다 교수에게 보여드렸던 모양이다. 화답이 왔다. 합독만해 서평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어쩌면 국경과 세대를 가로지르는 시대문답이 이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기대를 했는데, 박동섭 박사 덕분에 쉽게 이루어졌다.

우치다 선생은 “뜻밖에도 한국의 젊은 층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듯하다. 박 선생께서 아홉 명의 젊은 독자가 쓴 서평을 보내주셨다”며 이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 사회는 경쟁이 치열하다. 한류 드라마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경쟁자는 물러설 줄 모르고, 정상에 오르기 위해 기를 쓰며 올라가고, 탈락한 자들은 일말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가혹한 경쟁은 적지 않은 수의 젊은이들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수행자는 상대적인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그 일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끝도 없는 머나먼 길을 걷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보다 몇 킬로미터 앞서 있다’거나 ‘정해진 시간 내에 다른 사람보다 더 빨리 나아갔다’는 식의 비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략) “‘경쟁’의 반대 개념은 ‘낙오’가 아니다. 그것은 ‘수행’이다. 타인과 상대적인 우열을 겨루지 않는 것, 우열·승패·강약·속도·능숙함과 서투름을 논하지 않는 것이 수행이다. 그런 내용을 담은 책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아마도 ‘이런 식의 사고도 있구나를 알고 한숨 돌렸다’는 뜻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치다 선생의 이 화답은 아사히신문사가 간행하는 'AERA'라는 주간지에 실렸다고 한다.

일본의 70대와 한국의 20대 지성들이 한 권의 책을 놓고 교감하고 있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얼마나 뜨겁고 역동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김성신 출판평론가, 비평연대 가디언즈)

김성신<br>
김성신 

 

김리선 기자
김리선 기자
leesun@interview365.com
다른기사 보기

관련기사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신도림로19길 124 801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737
  • 등록일 : 2009-01-08
  • 창간일 : 2007-02-20
  • 명칭 : (주)인터뷰365
  • 제호 :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명예발행인 : 안성기
  • 발행인·편집인 : 김두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희
  • 대표전화 : 02-6082-2221
  • 팩스 : 02-2637-2221
  • 인터뷰365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6 인터뷰365 - 대한민국 인터넷대상 최우수상 .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interview365.com
엔디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