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술은 작가의 권리지만, 독서는 독자의 권리다. 한 권의 책을 두고도 사람들은 저마다 완전히 다르게 읽을 수 있다. 통찰력 가득한 책일수록 해석의 여지는 무궁무진하다. 숏평 특별호는 합독만해(合讀萬解), 즉 한 권의 책을 함께 읽고 만 가지 해석을 시도해 보았다. 비평연대가 함께 읽은 책은 우치다 다쓰루의 '목표는 천하무적'(유유, 2025)이다. [편집자주]
무언가를 계속하는 경지에 이른다는 것
계속하다가 고꾸라질 것. '좋아한다'라는 감정의 동요마저 사라지고, 무언가를 계속하는 경지에 이른 사람에게 보이는 풍경은 무엇일까?
"그는 한물간 검객이지만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왕가위, '동사서독')
대사는 영화 속 뛰어난 무사인 홍칠공이 이제는 한물간 무사 '황약사'에 관해 하는 말이다. 이 책의 표현을 빌리면, 평생 하나의 '소실점'을 향해 규칙적으로 사는 사람은 무엇을 느낄까?
나는 어떤 일을 '그냥 하는' 사람을 약간 존경한다. 난 아직 '좋아함' 없이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지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하는 그 일을 좋아하진 않더라도, 그 일의 주변부에 무언가 '좋아할 수 있는' 구석이 있어야, 나는 일을 한다('일'이 꼭 '노동'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좋아함'을 발견하지 못하면, 내게 루틴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좋아하는 감정은 언젠가 끝난다. 이후에 오는 생활을 묵묵히 견디는 힘은 '지속'일 텐데, 그 냉정한 현실을 내가 어떻게 헤쳐 나갈지 아직 감이 안 잡힌다. '소실점'이란 말처럼, 거기로 계속 가다가 모든 사람은 사라진다. 이걸 받아들여야 하는데, 난 아직 멀었다. (맹준혁/출판편집자·콘텐츠 기획자)
옷장 속 잠자던 운동복을 꺼내다
"무도에서 염두에 두는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대개 위기 상황을 전제하죠. 내가 지닌 삶의 지혜와 힘을 송두리째 던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살면서 한 번쯤, 온 힘을 다해 극복해야 할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나 매일을 위기 상황처럼 사는 사람이 어디 나뿐일까. 무엇 하나 예측할 수 없어 늘 바쁘고 불안한 시대, 어떤 날은 모든 게 넘어야 할 산으로만 보인다. 눈앞의 그 산 때문에 많은 것을 적으로 여기며 살았음을 우치다를 통해 배웠다.
이 책에서 말하는 적은 꼭 경쟁자만이 아니다. 내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것, 심지어는 자녀나 바이러스까지도 적으로 보면 적이 된다. 그러니 적을 이기겠다고 아등바등 애쓰는 삶이 풍요롭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애초에 적을 다 무찌르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우치다는 확실하게 안전해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무도적 삶'. 적 없이 유유히 사는 것이다. '천하무적'이라는 개념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 있지만 우치다의 말은 촘촘하다. 추상적인 영역에 머무르지도 않는다. 책을 읽다 내가 냉큼 주변에 공유한 부분은 '슬픔과 괴로움을 해소하는 집안일 능력'이었으니 말이다.
강약, 승패, 우열로 점철된 몸과 마음을 무도적 삶으로 바꿔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몸을 깨우는 것이다. 옷장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운동복까지 꺼내 입게 하는 마법 같은 이 책을, 하루라도 빨리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솔림/출판편집자·비평연대)
'완력 최강' 문장들에 매료되다
좋은 책이란, 또 다른 책을 읽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다. 내 안의 지적 욕구들을 들끓게 하고, 더 많은 호기심으로 우릴 이끈다. 그리고 한 권의 책에서 단 하나의 문장이 그 책을 영원히 잊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을 때 연구자는 스트레스를 받지만, 제자는 기분이 좋아진다. 스승은 저렇게 탁월하다고 생각하고 더 정진하게 된다."
'목표는 천하무적'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무도에서는 이기는 것이 더 나쁘다. 이기는 것은 주저앉는 것이기 때문이다.(…)종교의 목표가 해탈이듯이 수행의 목적은 천하무적이다.”라는 무장과도 일맥상통한다. 마치 거대한 그물처럼 이 책은 시종 싱싱하고 빛나는 무엇인가를 한도 끝도 없이 건져 올린다. 결국 우치다 다쓰루의 전작들을 찾아 읽기로 한다. 사람의 시선과 마음을 붙잡는 면에서, 완력 최강의 문장들이다.
"용기란 옮음을 선택하기 위해 고립을 견디는 힘"
'용기론'에 등장하는 이 말엔 정말 깜짝 놀랐다. 예리한 칼날 같단 생각이 절로 드는 문장이라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을 길게 만들어 두는 것이 나중까지 오래오래 즐거운 법”이라는 문장은 '무지의 즐거움'에 등장한다.
"주체와 죽음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여백’이 있다. 그리고 희망은 그 틈에 산다. 희망은 죽음에 부가되는 것이 아니다. 죽음과 주체 사이가 희망이 있는 곳이다."
이것은 '우치다 다쓰루의 레비나스 시간론'에 등장한다.
2000년대 초반에 출간한 '하류지향'도 다시 찾아 읽어보았다.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소비란 본질적으로 무시간적인 행위이며, 소비자는 무시간적인 '유령'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 용기를 얻게 되지요. (…)출판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에 길이 있다면 저 먼 어딘가에서 같은 적에 맞서 싸우는 사람과 연대하는것, ‘싸우는 소수‘와 연대하는 것, ‘마이너리티‘를 갖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관에는 사람이 없는 편이 좋다'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이건 내 머리 속에서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김성신/출판평론가·비평연대 가디언즈)
삶을 사는 우리 모두는 각자의 수련을 하고 있다
여름 열기에 녹아 잔잔한 무기력을 즐기고 있을 때 제법 부담스러운 제목의 책을 받았다. 목표가 천하무적이라. 딱히 유별나게 미워하는 사람도, 날 싫어하는 사람도 떠오르지 않으니 난 이미 천하무적이 아닌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을 폈다. 오만한 생각이었다. 사상가로 익숙한 우치다 선생이 말하는 적이란 나를 위협하는 모든 조건이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날벼락부터 질병과 노화, 궁극적으론 죽음이 모두 적이다. 세상의 대부분은 적으로 이루어진 것. 이런 적들에 가로막히지 않고 어떻게 유려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수련하는 자가 무도가다.
그러니 이 책은 무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결국 각자의 수련을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다가올 위험을 인지하는 능력,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능력. 무도가가 아니더라도 다들 벼락치기로 준비한 시험 문제지 앞에서 발휘해봤을 능력이다. 저자에 따르면 무도는 체육관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훈련이 아니다. 무도를 수련하는 이유는 실제 삶에 적용하기 위함이고, 도장은 삶의 축소판이자 실험의 장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무도가에게 하산이란 없다. 수련에 끝은 없고, 만약 있다고 한다면 죽음일 것이다. 항상 어제의 나와 비교해서 나아가기에 80살이든 100살이든 “이 나이쯤 되면 그만할 때도 됐지…”라는 말은 게으른 어리광이다. 시간제한도, 달성해야 할 목표도 없이 최고를 추구하는 일은 얼마나 고되고도 벅찬 일인가. 하지만 그게 무도고 삶이다.
저자가 말하는 무도론을 읽다보면 삶의 의지가 샘솟는 걸 느낄 수 있다. 모자랄 거 없이 과하게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 생존 능력을 잃고 있었던 건 아닌가하는 반성도 따라붙는다. 하릴없이 바쁘게 움직이다 문득 ‘이게 맞나’ 멈춰 서게 되는, 삶에 시들하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서민서/출판마케터·비평연대)
때론 적절한 패배의 수용이 더 큰 성장을 이끈다
‘목표는 천하무적’을 읽으며 내내 머릿속을 맴돈 문장은 “결국,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었다. 책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겨온 삶의 원칙들을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흔든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패배를 경험하는 것은 중요하며 ‘적절하게 지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흔히 이기는 것이 곧 옳고, 이겨야만 가치 있다고 여긴다. 나 역시 그런 사고방식 안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하지만 우치다 다쓰루의 솔루션들을 따라가며, 패배를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닌 때로는 ‘적절한 패배’를 수용하는 것이 더 큰 성장을 이끄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깨달았다.
책에서는 적절한 패배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첫 번째 조건은 "패인의 원인을 타인이 아닌, 오직 자신에게서 찾는 단호한 자기반성"이다. 돌이켜보면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에는 나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익숙함 속에서 안주하며, 조용히 도태되어갔다. 그러나 실패를 딛고 다시 일어서려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는 조금씩 성장했고, 어느 순간 예전보다 한층 단단해진 나를 발견했다.
이전까지는 패배하는 것이 마냥 부정적으로만 다가왔는데, 나의 내면의 성장을 위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배움을 주었다. 우치다 다쓰루는 말한다. 삶은 반드시 이기기 위해 달려야 하는 경주가 아니라, 어떻게 패배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판으로 삼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이 책은 타인과의 승패의 논리 너머에서 ‘나’라는 존재를 어떻게 다루고 성장시킬 것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책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때로는 지더라도 무너지지 않는 나를 위한 생존력을 높이는 법을 책을 통해 얻어가기 바란다.(강민지/문화평론가·프롬레코드대표·비평연대)
겸허할수록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중학교 시절 무술을 배울 적에 읊었던 대목이 떠올랐다.
“무술은 깊고 깊은 심연이며 높고 높은 고봉이다. 많은 사람들이 입문하나, 그 득도함이 쉽지 않다.”
이 책을 처음 접한 순간, 이 문장이 떠오른 건 왜일까. 비단 수련뿐일까? 어떤 학문이든 경지에 다다르는 과정은 무술과 다르지 않다. 그럴 때마다 떠올려야 할 가치는 ‘몸으로 생각한다’가 아닐까.
가성비에 천착하는 사회에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시대가 ‘돈’ 앞에서 획일화되어가고, 직업 선택 역시 ‘돈’과 ‘계급 안정’에만 매몰되는 탓에 자신의 선택이 온전히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마음을 조금은 털어낼 수 있었다.
머리로 이것저것 재기보다, 명확한 이유 없이 어쩌다 보니 시작한 일이 결국 밥벌이의 밑바탕이 되었다는(본문 162쪽) 그의 표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멀리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
이 책은 각자도생의 시대에 나만 잘 챙기면 된다고 부추기는 위험한 책이 아니다. 오히려 위험한 사고에 빠지기 쉬운 이 시대에서, 어떻게 나와 타인을 도울 수 있을지를 몸소 일러주는 책이다. 가성비와 무한 경쟁이 지배하는 사회 속에서, 무술인처럼 순위나 성적에 천착하기보다는 일신일일(日新一日) 하는 사람처럼 겸허할수록 사소한 것에 신경 쓰지 않게 된다는 가치를 기억하고 싶다.
오히려 나를 정진한 자는 자신을 잘 돌보게 되고, 결과적으로 사회와 이웃을 돕는 조력자가 된다. 책을 읽었을 뿐인데, 정진하는 마음이 깃든 건 기분 탓일까.(최상현/출판평론가·9N비평연대)
'무도'와 '글쓰기'는 닮음꼴이다
'목표는 천하무적'은 일본의 학자 우치다 다쓰루(75)가 ‘무도(武道)란 무엇인가’에 관해 쓴 책이다. 우치다는 50년간 합기도를 연마하고 40년 넘게 철학을 공부한 일본의 무도가이자 사상가. 그는 이 책에서 오랜 합기도 수련 끝에 스스로 깨달은 무도의 본뜻을 밝히며, ‘무도적 사고’라는 개념을 탄생시키고 동시에 완성해 낸다.
우치다가 말하는 무도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것의 목표는 ‘천하무적’. “세상에 적이라 부를 만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온화하고 너른 경지에 이른 상태”다. 다시 말해 무도란 단순 승패를 위한 겨루기가 아닌, 자기 자신의 신체적·정신적 감각의 최대 성숙을 목표로 하는 수련인 것이다. 이를 위해 우치다가 강조하는 것은 올곧은 기합짜기도, 좋은 스승 고르기도, 예리한 발차기 각도도 아니다. 바로 ‘마음 자세’다. 그는 올바른 태도의 연마가 곧 위기의 사회에서 타인과 공생하는 기술이며, 이것이 진정으로 무도가 추구해야 할 과제라 말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올바른 태도일까.
책에서 연신 강조되는 배움의 태도는 ‘모른 채로 그냥 하기’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 내가 이걸 왜 배우는지, 이걸 공부해 얻는 이익이 뭔지 정확히 모른 채(열심히 헤매며)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치다는 이 태도가 필요한 이유로 우리 인간이 본디 ‘가성비’를 따지기 때문이라 말한다. 어떤 걸 배울 때 성과를 사전에 알면 인간은 ‘성과를 내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만’을 가하는데, 이런 효율지향적 태도는 결국 인간이 진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살아남는 힘을 해하는, “완만한 자살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삶에 필요한 지혜와 힘을 기르는 데 턱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덮고서(우치다 선생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무도를 ‘글쓰기’로 바꿔 읽어도 말이 되겠다 생각했다. 무도와 글쓰기가 서로 닮아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오랜 자기 수련으로 자아의 성숙에 이른다는 점, 그 자체로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다는 점, 그 수련의 끝이 결국 공생이자 나눔이 된다는 점에서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란 ‘모르면서 계속 쓰는 일’일 테다. 당장 이 숏평을 쓴다고 내게 무슨 이익이 돌아올지 모르지만 그냥 계속 쓰는 것처럼…. 목표는 일단, 천하무적이다.(김상화/출판편집자·비평연대)
기분 좋게 당한 메치기 한 판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선택지가 있다면 항상 명확한 인과의 기댓값이 존재하는 곳에 위치했었다. 그 인과 속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에 근거를 부여하고자 애썼다.
‘어떻게 이렇게 맹목적일 수 있지?’ 책을 읽으며 들었던 첫번째 혼란이었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으나 반드시 수련한다. 목적과 효율에 종속되지 않고 지속을 추구하려는 저자의 사무라이적 삶의 태도는 날 혼란스럽게 했다.
‘난 왜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고 있을까?’ 두번째 혼란이 왔을 때, 무의식 깊은 곳에 숨어있는 두려움과 마주할 수 있었다. 근거 없이는 존립도 지속도 할 수 없는 삶의 위태로움도 마주했다. 그리고 수많은 인과 밖에서 지속되는 삶을 상상했다.
“올바른 위치란 언제든 올바른 위치로 돌아갈 수 있는 곳입니다.”
책의 한 구절이다. 혼란은 어딘가 치우친 정신을 ‘올바른 곳’으로 옮기는 와중에 느낀 멀미가 아니었을까. 저자이자 무도가인 우치다 선생님과 삶의 태도를 놓고 벌인 승부에서 나는 보기좋게 한 판을 내주고 말았다. 일면식도 없는 타국의 한 무도가에게 사고방식을 ‘메치기’ 당한 것 치고는 꽤 뒷맛이 좋은 패배였다.(설명문/건축설계 및 공간디자이너·비평연대)
모든 비교와 평가에서 자유로운 것, 그것이 ‘무적’이다
책 제목을 처음 마주했을 때, 문득 쿵푸팬더 ‘포’를 떠올렸다. 세상 모든 적들과 맞서 싸우며 승리하는 존재들.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에 비해 나는 이름도 가물가물 기억나지 않는 엑스트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느껴진다. 어디서나 무난하지만 특별할 것 없는 존재.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천하무적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천하에 적이 없다. 누군가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조급함도, 잘해내지 못할 거라는 불안도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존재. 모든 비교와 평가에서 자유로운 것, 그것이 진짜 무적의 의미였다.
“무도에는 시간제한이 없다. 달성해야 할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경쟁자도 없다. (…) 거듭 말하지만 삶의 지혜와 힘은 남과 겨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껏 애써온 시간들이 떠올랐다. 때로는 아무 의미 없게 느껴졌던 순간들조차 계속하고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 충분했던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워졌다. ’계속하는 힘은 하다 보면 생긴다’는 말을 곱씹어 본다. 어떤 위로 에세이도 풀지 못했던 마음속 매듭이 조금은 느슨해진 듯한 기분이다.(배희주/출판마케터·비평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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