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전쟁 같은 세상에 선보인 아르케의 ‘전쟁터의 소풍’
[정중헌의 문화와 사람] 전쟁 같은 세상에 선보인 아르케의 ‘전쟁터의 소풍’
  •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승인 202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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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참혹한 현장을 가장 즐거운 놀이터로 보여준 김승철 연출의 역설
- 다소곳한 어머니 역할 이경성 배우의 파격 팜므파탈 연기...'숨은 끼' 발휘
연극 ‘전쟁터의 소풍’/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작은 축제 같았던 전쟁터, 하지만 세상이 바뀌어도 전쟁은 전쟁이야!!!

인터뷰365 정중헌 기획자문위원 =  페르난도 아라발 원작의 ‘전쟁터의 소풍’은 최근 몇 년간 여러 극단의 여러 버전을 보아온 터라 별 흥미를 갖지 않았는데, 대연장 제정 ‘올해의 연극인상’ 수상자인 이경성 배우의 초대로 7월 4일 선돌극장에서 첫공을 관람했다.

창작공동체 아르케 김승철 연출의 ‘전쟁터의 소풍’은 같은 작품은 맞는데 많이 달랐다.

원작을 벗어나지 않으면서 구성이 달랐고, 원작에 없는 분신 같은 유령을 설정해 전쟁터를 지켜보게 했다.

무엇보다 무대 세트에 공을 들인 점이 돋보였다. 포스터 이미지만큼은 아니지만, 무대 상단에 깃발을 여러 개 걸었고, 바닥 곳곳에 흙으로 전장의 황폐한 분위기를 살리려 했다. 분신 칼이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그네는 서정성이 깃들어 전장의 살벌함을 역설적으로 상쇄해주었다.

필자는 아쉽게도 아르케 대표를 겸한 김승철 연출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못했지만 ‘툇마루가 있는 집’을 보면서 이 연출가가 지닌 뭔가 다른 감성을 느꼈었는데, 이번 ‘전장터의 소풍’을 보면서 김승철 특유의 아우라에 살짝 꽂혔다.

소풍이 소풍다웠기 때문이다.

전쟁터에서 소풍이라니... 그 발상 자체가 기발하지만, 기왕 아이러니하려면 그 소풍이 화려하고 멋져도 되는 것 아닌가.

연극 ‘전쟁터의 소풍’/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소풍 장면이 이 극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김승철 연출은 조명과 음악, 배우들의 몸짓과 춤으로 화사한 축제의 미장센을 보여주었다.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는 향락이야말로 전쟁의 공포를 마비시키는 마약 같은 것 아닐까.

특히 전쟁터로 소풍 온 떼빵부인(이경성)의 빨간 구두와 정열적인 드레스, 진한 화장은 전쟁의 삭막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선정적이고 욕망이 흘러넘쳤다.

아라발이 한국전쟁에 자극받아 썼다는 이 작품은 전쟁을 희화한 부조리극이다. 그래서 코미디처럼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야 제맛이 산다. 웃음 나오는 연출이 쉽지 않은데 김승철의 '전쟁터의 소풍'은 자주 객석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배우들의 연기가 코믹한 탓도 있었지만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허를 찔렸을 때 나오는 웃음도 있었다.

축제처럼 즐겁고 웃음이 나올 만큼 재밌다가 한 방에 가버리는 것이 전쟁임을 섬뜩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이고 김승철 연출의 노림수였다고 본다. 특히 세대 간의 간극이 큰 전쟁관을 부각시킴으로써 요즘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연극 ‘전쟁터의 소풍’/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배우들의 연기가 쫄깃한 것도 재미의 큰 요소였다.

자뽀 역의 김영경 배우가 허수룩한 듯하면서도 신세대 전쟁의 표상이라 할 만큼 주어진 역할을 야무지게 해내 전쟁 부조리극의 아우라를 살려냈다. 제뽀 역 박정인 배우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상대의 연기를 받아치는 진솔한 연기로 관객의 호응을 이끌었다.

위생병 역을 맡은 한동훈 정다정 배우는 정석을 깨고 희극 연기로 관객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연극에서 소풍 장면을 이끄는 떼빵 부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남편 역 이형주 배우와 아내 역 이경성 배우의 호흡이 잘 맞았고, 전쟁터의 축제라는 아이러니를 듀엣 연기로 잘 살려냈다.

이형주 배우는 무게 잡거나 오버 연기 없이 저체급 권투선수처럼 가벼운 몸놀림으로 전쟁을 즐기는 올드세대(좀 젊어보였지만...)의 희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극 ‘전쟁터의 소풍’/사진=창작공동체 아르케 

고정관념을 가진 것은 아닌데 필자는 이경성 배우가 다소곳한 어머니상이나 굳건한 여인상에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왔다. 그런데 이 무대에서 여전사 같은 파격의 연기를 해내며 숨은 끼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옷차림과 분장뿐 아니라 동작과 발성에서 팜므파탈적인 매력을 발산한 것이다.

이 연극의 시작과 끝을 서사적으로 장식한 칼 역의 경미 배우는 연출의 의도대로 자뽀의 분신이자 전쟁을 객관적으로 보는 유령의 연기를 아코디언 연주와 마임으로 잘 펼쳐냈다. 다만 전쟁터 소풍의 파티가 한창일 동안 관객의 시선에서 그는 잘 보이지 않은 점이 좀 아쉬웠다.

창작공동체 아르케가 이 시점에서 아라발의 부조리극 ‘전쟁터의 소풍’을 올린 이유가 분명 있을 것이다. 유인물을 보면 최근의 우리 현실을 비춘 것 같은데 관객의 입장에서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게 전쟁 아니고 무엇인가?

정중헌

인터뷰 365 기획자문위원. 극단생활 대표. 조선일보 문화부장, 논설위원을 지냈으며 「한국방송비평회」회장과 「한국영화평론가협회」회장, 서울예술대학 부총장, 한국생활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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